MBC 이상호 기자의 법정 증언 자리에 몇 번 가 본 적 있다. 첫 번째는 소위 '구찌백' 로비사건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 기자는 충격적인 사건의 내막을, 그리고 부끄러운 자신의 심경을 소상하게 밝혔다. 정말 경악스러운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함께 자리한 대학생 기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쇼킹한 이야기 거리였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그 자체였다. 재벌의 비리, 기자사회의 부패를 들여다 수 있는 드문 저널리즘 공부의 현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련 기사는 그 날 어느 신문, 방송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대체 어떤 압박, 무슨 로비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동업자끼리 서로 봐주는 묘한 음모라도 있었다는 말인가? 모두가 그를, 그의 말을 애써 외면했다. 남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서까지 증언하는 용기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포함한 권력집단 내부의 음침한 부패 고리에 관해 고발코자한 의도와 달리, 모두가 이 기자의 행동을 무시했다. 엉뚱한 치기로, 저열한 영웅주의쯤으로 냉대했다.

권력 감시해야할 기자가 권력에 감시 받는 현실

그리고 7월14일,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 김병현 검사는 X파일 공개가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 아닌,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상호 기자에게 1년 실형을 구형했다. 그는 더 이상 범죄행위를 고발한 기자가 아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한 파렴치한 범죄자다. 사생활을 파괴하는 공공의 적이다.

검찰은 "사적인 대화는 알 권리의 대상이 아니며, 백번 양보해 대상이라고 해도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적인 삶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합리적 제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죽인다. 수시로 중대 범죄를 모의하는 현장도 사적인 대화로서, 합법적으로 들키지 않는 한 취재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적인 삶의 권리'라는 표현을 한국사회 최고의 실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 적용하는 게 너무 닭살스럽지 않는가? 포항에서 박살난 노동자, 그리고 한미FTA로 붕괴될 농민들의 삶의 권리는 대체 검찰이, 헌법이 얼마나 잘 보호해주고 있는가? 과연 그 '합리적 제한'이라는 잣대는 누구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 것인가?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X파일에 나타난 삼성그룹의 불법행위에는 애써 눈감았던 검찰이 이를 처음 보도한 기자에게 실형을 구형했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MBC 기자회도 성명을 발표해 유감의 목소리를 높였다. 맞다. 그렇지만 그걸로 충분치 않다. 왜 이상호 기자 개인이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가? 상식적으로 이 기자가 홍석현, 이학수의 밀담 테이프를 입수한 것 자체가 범죄를 구성할 성싶지는 않다. 내용이 텔레비전을 통해 보도되었기 때문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되는 거다. 그렇다면 누가 보도의 주체인가? 기자인가, 앵커인가, 사장인가, 그것도 아니면 MBC인가?

분명 이 기자는 보도를 원했다. 본인을 포함해 많은 시민사회단체들도 공개를 요구했다. 그렇더라도 왜 이 기자 홀로 법정에 서야 하는가? 조선일보에 뒤통수 맞았다고 판단한 데스크와 경영진에게 보도 결정의 궁극적인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MBC는 절대적 신분의 위험에 처한 이 기자를, 불안하고 위축된 기자저널리즘의 위상을, 의심받는 언론매체로서의 자기 양심을 제대로 보호하라.

기자는 법정 증언이 아닌 기사로 말해야

이 기자는 "검찰의 공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구형량은 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재판과정에 참여한 것은 X파일의 진실을 알릴,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삼성 일가를 고발할 장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자본권력에 포획된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서글프다. 어찌 기자에게 법정이 진실증언의 장이 되었는가?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 한다.

이상호는 멀쩡히 MBC 보도국 기자다. 외신을 전하고 있고, 지난 월드컵 때는 토고에서 깜짝 출연했다. 왜 그에게 X파일 진실보도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가? 무엇이 두려운가? 방송사가 돈의 위력, 광고의 위세가 두려워 '진실을 알리는 장'으로서의 책무를 포기할 때, 기자는 저렇게 법정을 떠돌 수밖에 없다. 한편의 웃기지 않는 블랙 코미디다. 그가 판사, 검사, 변호사들에게 둘러싸여 진실을 말하고자 할 때마다 자본권력에 구속된 자유언론/언론자유의 현 주소가 초라하게 드러난다. 허우대만 멀쩡한 신문과 방송에 울화통이 치민다. 그리고 또 미안하다. 왜 그에게 '마이크를 잡으라!'고 했던가?

지난 주 노회찬 의원 관련 증언에 나선 그를 또 다시 만났다. 그가 하소연했다. "선생님, 그냥 감옥에 가버릴까요." "무슨 소리, 악착같이 버티고 끝까지 고발합시다." 자본의 왕국을 배신한, 돈의 세계를 거역한 못된 놈으로 남으시오. 재벌의 명령에 비겁하게 복무할 때, 오만하게 머리 들고나서시오. 자본의 범죄자들에게 저주의 상대로 남으시오. 그의 날카로운 눈매만 떠올려도 밥맛이 뚝 떨어질 게다. "더 무서운 것은 굳게 닫힌 언론의 입이었다. 삼성 등 자본 독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언론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맞다. 그래서 더욱 악착같이 질러야지. 질긴 몇 놈이 침묵을 깨트리고 또 신화를 무너뜨린다. 강양구 기자, 이강택, 최승호, 한학수, 김재영 PD가 다 그랬다. 이상호 기자에게 법정은 안 어울린다.

다음달 11일 오전 10시에 선고공판이 있다. 언론사에 치욕으로 남을지 모르는 그 날, 여러분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실지. 심심하면 법원에 함께 가보고, 결과가 어떠하든 끝나면 깡소주라도 한잔 하심이 어떨는지.

전규찬(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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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미디어오늘>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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