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이웃종교 칼럼 연재
하나님과 함께 편지를 읽고 쓰다<이옥희 선교사 칼럼>
이옥희 선교사 | 승인 2016.11.04 11:57

8월 내내 내 가슴은 폭염으로 달아올랐다.
뉴델리에 계신 이 집사님이 뿌렘담고아원 원장인 매씨목사가 쓴 편지를 보내주었다. 편지 내용이 21세기 사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고 사실 그대로라면 아이들의 앞날이 너무 암담하고 절망스러워서 전화로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재차 확인하였다.

문제는 아이들의 종교가 다 기독교라는 것과 아이들이 고아원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보수 힌두교도인 뉴델리 복지국의 책임자가 아동들의 종교 상황을 체크한 뒤에 종교법에 근거하여 매씨목사와 고아원을 법원에 기소하였고 법원은 아이들의 행복지수와 염원과는 다르게 그들 모두를 다른 힌두고아원으로 분산 수용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당국은 8월 초에 아이들을 지정된 4개의 고아원으로 이동시키려고 경찰들을 동원했으나 아이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음 날 아이들 전원이 법원으로 호출되어 다른 4개의 고아원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아이들은 응하지 않았다. 며칠 후에 법 이행에 1차적인 책임이 있는 매씨목사는 아이들을 데리고 지정된 고아원에 갔으나 가는 도중에 십여 명의 아동들이 거리에서 실신하는 바람에 아이들은 흩어짐을 면하고 다시 뿌렘담으로 돌아 왔다. 그 후 매씨목사는 아이들을 내보내야 하는 법적인 기한을 어기게 되었고 마침내는 사건을 고등법원에 항소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를 읽으면서 순진무구한 아동들을 괴롭히는 관계당국의 처사에 마음이 일그러지고 찌그러지며 욕설이 튀어 나왔다. 갓난아기 때 들어와서 초등학생들이 된 라니, 디뿌, 라훌, 무스탁, 빠빈 등등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것도 가슴 아픈데 종교를 빌미삼은 행정폭력으로 아이들을 다시 고아로 만들려는 그들의 무지와 억압에 치가 떨렸다. 불안에 떠는 아이들의 고통과 두려움이 조수처럼 밀려왔고 잠 못 이루는 매씨목사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들의 고통과 불안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나는 멀리 떨어져 있으니 마음뿐이었다. 기도 외에는 길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있었는데 우리 선교회가 자매결연으로 지원하고 있는 아이들의 생활비를 12월분까지 미리 앞당겨서 지불해주는 것이었다.
거의 매일 눈을 뜨면서 매씨목사와 아이들의 건강과 무사를 빌었지만 이집사님을 통해서 받은 편지는 나를 충격으로 몰아갔다.

100명의 아동들이 경찰에 끌려서 힌두고아원으로 강제로 분산 수용되었다는 사실과 매씨목사 자신도 경찰서에 3일이나 감금당한 채 조사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고등법원에 항소를 하는데 변호사 기본비용이 950만원이라는 내용이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식은 다 끔찍하였다. 그는 편지에서 절규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극심한 난관에 빠졌고 재판을 위해서 긴급하게 돈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 또는 그 누군가를 통해서 나를 도와주실 거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편지 내용이 점점 크게 울려서 귀에도 들리고 눈에도 보였다. 책을 읽어도 밥을 먹어도 그의 호소 때문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우울해졌다.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형편이므로 나는 가능한 마음을 빨리 정리하고자 들길을 배회하였다. 내면의 공전이 치열하였다.

“주님, 쫓겨난 선교사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마음뿐입니다. 아버지요, 세상에 재판 비용을 후원금으로 대주는 미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일 이백만원도 아닌 거금을요. 예에 저더러 주라고요. 제 사정 아시잖아요. 주고 싶어도 없어요. 그래도 저더러 주라고요. 이 때를 위해서 제가 있다고요. 저 아니면 돌볼 자가 없다고요. 아버지! 저 빈손이라는 것 아시잖아요. 매씨목사를 돕고 싶어 하는 제 마음도 아시잖아요. 아버지 저도 매씨목사 일 때문에 슬프고 힘들어요. 돕고 싶은데 도울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슬프고 힘들어요.

30년 세월을 나환자들과 미감아들, 고아들과 정신 장애우들과 묵묵히 살아온 매씨목사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핍박받는 것을 바라보는 제 심장이 얼마나 아픈지 아시잖아요. 18년 동안 함께 동역하도록 저희들을 불러 주셨는데 저는 쫓겨나고 그는 두들겨 맞고 빼앗기고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요. 아버지 매씨목사가 너무 불쌍해요. 저라면 아이들을 다 빼앗기고 벌써 미쳐버렸을 거예요. 아버지, 아버지여 저는 어떻게 못해 보지만 아버지는 하실 수 있잖아요. 아이들을 다 빼앗기고 돈이 없어서 재판마저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아요. 억울하고 분하고 슬퍼서 못살아요. 제발 재판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해 주세요.”

들판 한 가운데서 하나님과 씨름을 한 후, 그 밤 11시에 마음의 고통을 덜려고 뉴델리에 있는 집사님을 카톡으로 불러 대화를 시작하였다.

“고등법원 비용이 5렉이네요.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마음만 아프고 답답해요”

“매씨 목사님 옆에서 별로 도움도 못되어 드리고 오늘도 함께 한 숨을 쉬며 기도만 했습니다. 목사님은 오늘 식사도 거절하시고 가셨어요. 마음이 무거워요”

“집사님, 제가 최선을 다해도 500만 원 이상은 어려워요. 그것도 아프리카에 가기 전에 보내드려야 하는데...때가 때인지라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야 하는데 저도 힘들어요”

“근데 재판에서 꼭 이겨야 하는데 지게 되면 돈은 돈대로 들고 아이들은 못 돌아오고 매씨목사님은 계속 요주의 인물로 감시를 받을 것이고”

“그래요. 대부분의 판사들이 힌두교도일 텐데 실제로 이기기 어려워요. 그러나 우리는 승리를 믿으면서 기적을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되지요. 하나님의 정의가 이길 것을 믿으면서”

“이럴 때 목사님이 옆에 계시면 좋을 텐데”

“예, 그러나 하필이면 집사님이 인도에 계실 때 사건이 발생하여 고난의 현장을 보고 듣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목사님, 이 일은 저에게 힘든 영적 싸움이에요. 매씨목사님 힘들어 하시는 것을 보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요즈음 저에게 오실 때 마다 계속 우시고요. 오늘 아이들 떠날 때 촬영한 동영상을 봤는데 정말 지옥이었습니다”

“힘든 것을 보는 것은 괴롭고 고문이지요. 제가 달릿들을 만나서 처음 순회하고 다닐 때 너무 괴로워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알아요. 그 마음을...제가 매씨목사님께 드리는 희망의 메시지도 요즈음에는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냥 함께 있어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집사님이 계시기에 매씨목사님이 와서 울고 편지도 써서 제게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목사님, 저는 그냥 옆에만 있겠습니다. 기도하며”

“집사님, 같이 있어주는 것이 최고입니다”

긴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핑계 대고 고난 중에 있는 형제를 전심전력으로 돌보지 않으려고 하는 나의 적당주의가 너무 비루하고 기만적이라는 경보음을 계속 들었다. 게다가 나하고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던 70년대와 80년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며 나를 닦달하였다. 나는 생각의 흐름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유신시절 고난 속에 있던 한국교회에 세계교회의 도움이 답지하였다. 당시 나는 세계교회의 연대와 나눔에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가지긴 하였지만 가슴 절절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30여 년 전에 아무 이해타산 없이 한국교회에 도움을 주신 개개인들의 마음이 심장에 와 닿았다. 독재시절에 노동자와 농민들의 인권 문제와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하며 고통당했던 교회와 목회자, 청년들을 후원해준 세계교회들의 관심과 기도, 나눔 덕분에 핍박 속에 있던 우리교회와 교단이 힘을 얻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들의 기도와 협력이 우리 교회가 예언자의 음성을 발하며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내는데 크게 일조하였음이 분명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그들의 도움을 받지는 않았지만 우리 교회가 세계교회에 받은 사랑의 빚을 다른 세계 교회에 갚아야한다. 나는 준엄하고 치열한 내면의 소리에 아멘으로 응답하면서 매씨목사의 옆에 서기로 단호하게 마음을 먹었다.

매씨목사일로 헤매고 다니느라 친구에게서 카톡이 온 줄도 몰랐다. 밤늦게야 카톡을 열어 보고 친구의 질문에 “지금은 무엇보다 인도 뉴델리 고아원이 힌두들의 박해로 큰 어려움에 빠져서 그 쪽 지원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상황” 이라는 답신을 보냈다.
친구는 “뉴델리 고아원의 긴급 상황과 긴급 도움이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정리해서 알려주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볼게” 라고 답신을 보내왔다.
나는 기도하며 절박한 마음으로 장문의 글을 썼다.

‘뿌렘담고아원은 쑥밭이 되었다. 경찰관들이 강제 난입해서 아이들 100명을 잡아다 힌두고아원 4곳에 분산 수용해 버렸고. 매씨목사님은 연행되어 3일 동안 경찰서에서 감금상태에서 조사를 받았고 무혐의로 풀려 나왔다. 그의 죄목은 아이들을 기독교오 개종시킨 것과 아이들에게 기독교 교육을 시킨 것이지. 그 목사님께서 아이들을 되찾기 위해서 고등법원에 상고하였는데 기본 재판비용이 950만 원 정도다. 그는 사회사업을 하는 여느 사람들처럼 치부하지 않았고 2년 전 부터 계속 관계당국의 핍박을 받다보니 후원이 거의 다 끊긴 상태란다. 지금 무일푼으로 재판을 감당할 비용이 없어서 고통스러워. 최악의 상황이야.

나는 그의 친구로서, 동료로서, 누나로서, 협력자로서, 보호자로서 변호사 선임비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으며 최선을 다해서 그와 동행하려고 한다. 빼앗긴 아이들, 그 아이들이 다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거든. 변호사 선임비를 누구에게 부탁할 수가 없어서 그냥 엎드리고 있다’

나는 그 밤 이따금 흐느끼며 뜬 눈으로 세웠다.
그 다음 날 아침 늦게 카톡을 열어 보고 내 눈을 의심하였다.

“옥희야 변호사비 950만원은 내가 보냈어. 국민은행으로 2번 나누어서 아침에 송금했으니 확인해보렴. 아이들 후원금은 또 보내주는 곳이 있을 거야”
나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감격과 감동의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아 하나님, 당신이 하셨군요. 당신이 아닌 누구도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저를 몰아세우실 때 이미 당신은 준비를 다 하셨군요. 아버지께서 매씨와 함께 편지를 쓰시고 저와 함께 읽으셨군요. 저와 함께 편지를 쓰시고 친구와 함께 읽으셨군요. 아 하나님 당신입니다. 매씨를 아시고 고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당신이십니다”

나는 바로 뉴델리의 이집사님께 기쁜 소식을 알렸다. 
“집사님, 950만원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아멘”

우리는 감개무량하여 함께 아멘을 연발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신속하고 절박한 응답에 전율하며 사람들을 못되게 괴롭히는 악한 사람들을 향해 쏟았던 분노와 저주의 말이 못내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동과 은혜의 빛 안에서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어느 장로님께서 카톡을 보내주셨다.
 
“목사님 급하게 필요한 곳에 사용하시라고 적은 액수지만 300만원 입금하려 합니다”
또 한 분이 무목적 헌금으로 100만원을 보내주시며 긴요한 곳에 사용하라고 부탁해 오셨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친구가 재판비용이라며 300만원을 보내주었다.

며칠 후, 이집사님이 힌두고아원으로 강제로 떠난 아이들이 매씨목사에게 보낸 카드편지를 보내주셨다. 카드 글을 읽는 내 가슴에 눈물이 아침 이슬처럼 반짝였다.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그리고 용기를 잃지 마세요.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님을 믿는 아빠와 우리 가족을 돌보시는 것도 압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겁니다. 아빠는 우리에게 소중하고 귀하신 분이십니다. 아빠를 아버지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이들도 하나님과 함께 편지를 썼다. 아마 매씨목사도 하나님과 함께 편지를 읽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함께 편지를 읽고 쓰는 사람들이 만드는 감동과 새로운 힘이 고난 속에 있는 매씨목사님의 영혼에 메아리치고 있다. 뉴델리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하나님과 함께 편지를 쓰며 읽는다.

이옥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2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