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협정 저지 운동에서 자유언론 수호 투쟁으로

장준하와 함석헌

1964년은 함석헌과 장준하를 군부의 매국 정치, 언론의 무제한 탄압에 저항하는 민중의 현장으로 불러내는 특별한 해였다. 1956년 초에 서로 만나 10년이 다 되 오는 이날까지, 그 세계사의 자랑이었던 4.19이후 한 해를 빼곤, 연년이 한해 같은 저항을 살아온 해들이었지만 1964년은 더욱 그랬다. 함석헌에게도 장준하에게도 신발끈을 고쳐 매야하는 해였다. 또 다시 연행되고 투옥되어야 하는 경우까지를 상정해야 하는 해였다. 

지난해 6월 23일, 여행을 중단하고 귀국한 이후 <사상계>와 함께 정말 바쁘게 살아 왔는데, 그 바빴던 삶이 오히려 자신을 더욱 격렬한 싸움으로 이끌어가는 것 같았다. 함석헌의 그 격렬한 글, 말의 싸움에 물론 장준하가 있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사실이지만, 함석헌에겐 그야말로 화신이라해도 좋으리 만큼 저항의 혼으로 불타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함석헌은 그 저항을 역사변혁의 실제 ‘판’(The place, The spot)을 만들어내기에는 희안하다 할 정도로 바보스러운 사람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말을 들어도 시종 “글쎄요” 하거나, 아니면 “글쎄, 그게 될까?”하는 사람이었다. 결국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곁에 또 달리 하늘이 낸 사람 장준하가 있었다!

후에 함석헌은 이 장준하를 일러, ‘무서운 사람’이라 했다. 함석헌이 장준하를 일러 “무서운 사람”, “참 무서운 이”라고 일컫는 것은 ‘오직하나의 이유’ 때문이었고, 그 ‘오직 하나의 이유’란 “장준하! 그 사람은 그저 일을 만드는 사람이 라는 것 때문이었다.해야 할 일을 두어 두고 못 견디는 사람, 그런데 후에 함석헌은 주변을 놀라게 한다. 

“내가 장준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던지 하겠다.”

제 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였다. 후에 다시 더 이야기 하겠지만 박정희의 한일회담, 월남파병에 대해, “나라를 팔아먹은, 젊은이들의 피를 팔아먹은 밀수왕초”라 한 발언이 문제되어 투옥을 당해 옥중에 있던 장준하가, 옥중에서 당시 통합 야당인 신민당의 후보로 입후보 했을 때이다. 함석헌은 정치의 정(政)자도 모르는 이었다.

그런데 장준하 선거운동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주변의 신앙친구들, 제자들 누구하나 함석헌의 정치 참여를 지지하는 이 없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은 그때 함석헌의 함석헌 답지 않은 단언이었다. 말끝마다 ‘글쎄’의 함석헌이 이렇게 내 뱉었다. 
“왜, 왜 안된다는 거야, 그럼 누가 해...”
함석헌의 그 결단은 결코 정치적 결단이 아니었다. 함석헌으로서는 하늘이 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함석헌과 장준하가 어우러져 벌리는 한일회담 저지 운동

1963년, 그러니까 지난 해 10월 15일, 새 헌법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된 박정희는 “정권의 운명을 걸고라도 한일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한다. 이미 그 전해(1962.11.12.) 박정희의 특명에 의해 김종필은 일본에서 일본 외상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와 한국의 대일청구권 문제를 협의한다. 그리고 합의사항을 김-대평메모에 담았다.이른바 ‘김종필-오히라’메모라는 것이다. 

그 타협의 내용은 오직하나 <돈>이었다. 거기 역사는 없었다.
한일회담문제는 이미 김종필이 특사로서 이미 띄워놓은 것이고, 박정희로서는 이제 전후좌우 돌아 볼 필요가 없었다. “진짜 지도자는 역사를 이끌어 간다”고 믿었으니....
더군다나 박정희가 누군가? 새로 제정된 헌법에 의해 표차야 어떻든지 대통령으로 당선된 자 아닌가? “이젠 문제없다”이것이 박정희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니어도 너무나 아니었다.

저항의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의 요구는 한일 회담을 전면 취소하라고 요구한다. 무상 3억 달라. 유상 2억 달라. 민간차관 1억 딸라로 한일 간의 문제를 완결 짓겠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매국외교, 매국 협정이라 했다. 더구나 김-오히라 메모로 나타는 협정의 내용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은 돈으로써도 수용할 수 없는 너무 헐값이라는 것이었고, 그러나 정말 수용절대 불가를 이의 없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게 한 것은 한일회담에서부터 확정될 협정에 까지 도대체 “역사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역사의 참여의식으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인류의 삶에 절대의 뜻이 있고, 내 삶, 내 역사(役事)에도 그 뜻이 있어 살아간다. 뿐만 아니다. 나도 그 뜻에 참여하고 있다고 믿을 때 진화(進化)를 이룬다.
시민과 학생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시위는 무려 한달이상 계속되었다. 매국외교집어 치워라, 조국을 수호하자. 그러나 박정희를 정점으로 하는 집권세력은 달랐다. 
“정권의 운명을 걸고라도 한일문제를 해결하겠다”였다. 

6.3 사태

6.3사태 당시 사진

그래서 벌어진 것이 소위 「6.3사태」라는 것이다.
1964년 6월 3일, 박정희는 서훌 일원에 드디어 계엄령을 선포한다. 완전 무장군들이 탱크를 몰아 서울에 진주한다. 이제부터 서울엔 민주시정(民主市政)이 없다. 대한민국 어디라고 민주주의가 있었겠는가만은 특히 서울은 그랬다. 민주주의는 없었다. 박정희가 불러들인 무장군들이 주인들이었다.
장준하는 다시 함석헌을 찾는다.
“선생님, 그래도 싸워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싸워야지. 싸워야하고 말고....”
한 사람은 골똘이 생각하는 이었고, 한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었지만 ‘싸워야 한다’는 데는 거의 신기하다하리만큼 그들은 하나였다.
“선생님 그럼 박정희의 계엄령에 대해 글 하나 쓰시지요.”
“글세...그거 괜찮을까?...”
“선생님, 언제는 괜찮을지 따져보고 했습니까? 이번에 (계엄령에 대해) 선생님 글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장준하였다. 그가 함석헌에게 “선생님, 이번에 글 좀 쓰셔야겠습니다.”할 때는 거의 신변을 정리하고 있는 때였고, 함석헌 역시 “이번엔 또 무슨 선물 받을까?” 해야 했다. 다 죽기로 사는 사람들, 아니 죽어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싸움은 이제 자신들도 아는 새 모르는 새 한일협정저지 운동에서 언론자유투쟁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할 말을 꼭 하라”

그래서 나온 글이 <사상계> 9월호 (1964)에 실린 “우리는 알았다”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계엄령에 대한 항의다. 함석헌은 이 글에서 민중을 향해, 구체적으론 사상계 독자들에게 칼을 뽑아들고 할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은 ‘남의 여인을 탐한 강간범’이라 성토하면서 역사의 가는 길을 열기 위해 “할 말을 꼭 하라” (전집 16, 209쪽)고 역설한다.

“요새 세상이 왜 이 꼴이냐? 이제까지 못 살겠다 죽겠다 하던 사람들 왜 말이 없나?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선 극한투쟁을 하겠다고 큰 소리를 하던 정치인들은 다 어떻게 됐나? 계엄령 선포한 달에 (함석헌이 이 글을 쓴 것은 7월 초순경이었던 것으로 사료됨, 필자) 세상은 정말 살만큼 개선이 됐는가? 될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생각해서 인가? 그래서 협상하자는가? 아프다는 소리를 지를 때까지는 오히려 가망이 있어도 그 부르짖음을 못하게 된 때는 정말 절망 아닌가? 약을 써서 아픔이 멎어서 앓는 소리가 없어졌다면 그것은 병이 나은 것이지만, 그저 억지로 아프지 않다 해서 병이 나을 수 있을까? 하물며 옆에서 칼을 목에 겨누며, ”아프단 말 다시하면 죽여 버린다“ 하므로 죽을까 겁이 나서 앓는 소리를 참는 것이라면, 그것은 낫기는 그만두고 더 한 것 아닌가? 몸의 병이 낫기 전에 정신이 먼저 죽은 것이다. 그리고 정신이 죽고 몸이 사는 법이 어디있나? 그리고 위협으로 아프단 부르짖음을 못하게 하는 것이 의사일까?

계엄 하에서는 말을 못하는 줄만 알지만 계엄 하에서야 말로 말은해야한다. 못하게 한 것은 이른바 유언비어이지 결코 바른 말이 아니다. 칼을 겨누어 유언비어를 못하게 하는 본뜻은 도리어 바른 말을 하도록 하자는데 있을 것이다. 도둑이 안방에 침입하여 가슴에 총을 겨누며, “옴짝했다간 죽여 버린다” 하면 그 말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정말 그 명령대로 옴짝하지 않아야 할까? 그러면 그 놈이 내 세간을 다 빼앗고, 보물을 다 가져가고, 내 아내를 내 보는 눈앞에서 강탈할 것이다. 그러고도 살았다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생명일까? “옴짝마라”하는 말은 사실은 네 목숨을 내걸고 반항해라 하는 말이 아닌가? 계엄령을 선포하여 함부로 왔다 갔다 하지 말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하는 것도, 사실은 바른 행동들을 더 활발히 하고, 해야 할 말을 꼭 하라는 명령으로 들어야 할 것이다.“

함석헌은 그 계엄령 앞에서 말했다. 그리고 그 계엄령 앞에서 할 말을 꼭 하라 한다. 이후 함석헌과 장준하가 하나로 어울려 싸우는 싸움은 언론자유의 신장을 위한 싸움으로 이어진다. 이때 이미 함석헌의 ‘입’에는 굴레가 씌워지고 있었다. 경찰에서는 7,8만이었다고 하고, 주최 측에서는 10만 대중이었다고 발표하게 되는 대광고등학교에서 개최된 강연회 이후 박정희 정권은 “함석헌의 야외 광장대중집회절대불가”령이 내려졌기때문이었다.

1963년 8월 3일, 그 대광고등학교 강연회 이후 함석헌은 그 장준하의 1967년 통합야당의 공천으론 동대문을구의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기까지 대중연설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함석헌은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는 당국을 향해 사자후를 뿜는다.

“이 민중을 뒤에 두고 나는 정부당국에 묻는다. 민중이 내 말을 듣고 싶어 하는데, 왜 내가 말하는 것을 방해하나. 대답하라. 천하에 내놓고 대답하라. 대답이 나올 때까지 나는 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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