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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세계 속에서 구약성경 읽기<소소한 남자의 소소한 독서>
정주현 (예사랑교회) | 승인 2016.12.30 11:23
<구약성경과 신들>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경기도, 2016)

성경, 어떤 언어의 책인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경은 꽤나 낯선 언어의 책이다. 합리적 추론이나 과학의 눈으로 성경을 바라본다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이해가 안 되면 믿으라’는 말은 목회자와 대형집회의 강사들의 유행어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필자는 ‘이해가 안 되면 믿으라’는 말을 이해했던 적이 있다. 아니 그게 당연했던 적이 있다. 신학의 물을 조금 먹은 지금에서야 따지고 들고 의심하기를 서슴지 않지만, 그 이전의 모습은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적이 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 시절 필자는 참 근심걱정 없는 신앙생활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은 후 옷을 벗었음을 알게 되었던 에덴동산의 그들이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듯이 필자 또한 신학교육을 거치고난 후 이제는 그 이전의 눈으로 성경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성경은 끝없는 때론 답 없는 탐구의 대상이 되어 버렸고, 덕분에 성경을 읽으면서 의심과 질문은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성경 앞에서 매순간 답을 찾기 힘들고 때론 답을 찾을 수 없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며, 오히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을 읽는 재미가 점점 더해진다고 과감히 말하게 되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 접하는 것들에 질문하고 하나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을 느끼듯 말이다. 문제는 이 어린아이는 자신이 새로 알게 된 것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늘 말하고 싶어 한다는 것과 자신이 아는 것만 이야기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성경을 읽어나가던 필자에게 새로운 장이 열어준 책이 있다. 그것은 <구약성경과 신들> (주원준, 한님성서연구소:경기도, 2016) 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신화적 세계에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종교심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구약성경에 듬뿍 담긴 고대 근동 신화의 언어를 이해해야한다고 말한다. 고대 근동 신화나 종교사비평을 따로 공부 하지 않은 필자에게 고대 근동 신화는 알지 못하는 영역이었다. 게다가 구약관련 수업에서도 그리 깊게 공부해 보지 못한 탓에 파편적 지식들 밖에 없었다. 

물론 이스라엘이란 소국이 고대 근동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분명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상식선에서 추론 가능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교회어린이’와 ‘교회오빠’로 살아온 사람에게는 성경만이 유일하게 읽어본 고대 근동 관련 텍스트였다. 또한 특히 성경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성경이 고대 근동 신화에 ‘오염(?)’ 되었으리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에겐 굉장히 짧게 느껴진 신학대학원 시절동안 채 넓히지 못한 고대 근동 세계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도록 만든 <구약성경과 신들>은 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신선한 이야기를 들려준 책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우연히 한 영상을 보게 된 이후이다. 그 영상은 플라톤 아카데미란 단체에서 만든 공개영상으로 <구약성경과 신들>의 저자인 주원준 선생의 강의 영상이었다. 강의주제는 ‘길가메쉬 서사시’였고 대략 90분 정도의 짧고 함축적인 강의였다. 필자는 단숨에 강의에 빠져들었는데, 그 이유는 강사인 주원준 선생이 들려주는 고대 근동 세계의 이야기가 일단 굉장한 흡입력 있었고, 또 짧은 강의 임에도 불구하고 들으면 들을수록 풍부하고도 깊은 이야기를 명료하게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강의를 듣고 주원준 선생의 저서를 찾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주원준 교수 (출처 : 한겨레)

구약성경에 '듬뿍'담긴 신화의 언어

<구약성경과 신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대략 세 가지 큰 틀에서 이 책의 매력을 느꼈다. 먼저 첫째로 <구약성경과 신들>은 구약성경이 고대 근동 신화의 언어를 듬뿍 담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여섯 가지 표상, ‘하늘’, ‘달’, ‘바람’, ‘강’, ‘피’, ‘가시나무’는 구약성경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 표상들의 원래 의미를 고대 근동의 신화적 맥락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저자는 책을 열면서 ‘신화’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 

‘신화’는 과학과 합리를 거스르는 낡은 이야기가 아니고, ‘의미’와 ‘상징’을 표현하고 전달하기에 가장 적절한 이야기 방식임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성경을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지 말고, 영원한 ‘진리’를 선포하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는 신앙서로 볼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그럴 때 신화의 언어를 통해 심원한 의미를 전하는 성경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구약성경과 신들>은 고대 근동이 하나의 ‘세계’였음을 강조한다. 이 말은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가 따로 탄생한 독립적인 문명이 아니며 주변의 강대국들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탄생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환경에서 무척 독특한 신앙이 형성되었다. 고대 이스라엘인은 수많은 민족이 다양한 신들을 믿는 세상에서 살았지만, 오직 야훼 하나님 한분께만 몸과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런 독특한 그들의 영성을 우리는 신명기에서 볼 수 있다.(신명기 6:4-5참조) 

이제 독자들의 관심은 고대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들만의 독특한 영성을 구축하고 보존하고 있는 지로 옮겨갈 것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설득은 매우 강력하다. 저자는 여섯 표상의 매 부분마다 고대 근동 세계가 공유했던 정보와 사상들을 고대 이스라엘이 어떻게 소화하는지 구약성경을 통해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구약성경이 고대 근동 신화의 신들을 어떻게 탈신화화하고 이를 다시 야훼신앙으로 재신화화 하는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필자가 특히 매혹된 부분이 바로 여기다. 구약성경의 탈신화화와 재신화화 과정이 들려주는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게 됨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고대 이스라엘이 작고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종교의 다양한 요소를 소화할 수 있었던 ‘내면적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좌우하는 큰 제국의 문물과 종교적 상징을 무작정 받들고 섬기지 않았다. 자신들의 신앙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성찰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기준에 따라서 고대 근동의 하늘 신, 달 신, 강 신 등을 야훼 하나님의 피조물로 고백하는 담대함을 보인다. 이것은 약소국 이스라엘 신학자들의 용기와 기개가 절로 드러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의 고유성을 어떤 역사적 사실이나 요소에서 찾으려고 하지 말 것을 권한다, 오히려 외래 종교적 요소가 구약성경에 수용된 과정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역사적 의미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배타적 고유성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신학의 필요성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래야만 이를 통해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이 더욱 선명히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필자도 적극 동감한다.

마지막으로 관심 있게 보게 된 부분은 저자의 관심은 성경 번역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현대 한국어 성경을 읽는 독자가 히브리어 원문의 느낌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갈 수 있는 방법으로 원문 성경과 우리말 성경의 ‘의미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는 것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실적 일치’에 중점을 두었다면, 앞으로는 ‘상징의 일치’까지 더 깊이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구약성경과 신들>에서 보여주는 통찰과 제시한 근거들을 볼 때, 이 제안은 매우 적극적으로 고려해야할 제안이라고 생각된다. ‘의미와 상징’이 성경 언어의 본질에 더 부합하게 만든다는 저자의 의견은 <구약성경과 신들>의 매력에 푹 빠진 필자로서는 너무나도 절실하게 공감되는 제안이다. 

<구약성경과 신들>은 200쪽 분량의 비교적 얇은 책이지만 그 안에는 여러 번 곱씹어볼 고대 이스라엘의 영성의 형성기가 담겨 있다. 저자에게 여러모로 감사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글을 참 쉽게 쓴다는 것이다. 저자가 너무나도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쓴 탓에 생소한 영역을 접하면서도 너무나도 재밌게 읽었다. 분명 신학서적인데 재밌게 읽었다고 하니 기분이 좀 이상하지만 필자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해서 재미있었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저자의 글 솜씨 덕이 클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앞서 말했지만 이 책이 주는 첫 번째 재미는 접해보지 못한 영역을 열어주는 신선함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저자가 제시하는 고대 근동의 문헌 자료와 구약성경을 비교하며 새롭게 맛보게 되는 구약성경의 맥락들이 지니는 의미를 살펴보는 재미이다. 그 재미를 따라가다 보면 구약성경은 고대 근동이라는 하나의 세계 속에 공유했던 신화와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상징들을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적극적으로 소화한 결과가 담긴 책이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될 것이다. 이 재미에 힘입어 <구약성경과 신들>을 어린아이가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것 같은 마음으로 마음껏 추천하고 싶다.  

정주현 (예사랑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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