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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중혼(民衆魂) (16)<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7.01.12 11:07

박정희의 「언론윤리위원회법」과 장준하의 「자유언론수호연맹」 (4)

1974년 박정희 정권의 광고 탄압에 맞서 신문 하단에 백지 광고를 실은 동아일보. (출처 : 동아일보)

박정희 군부정권과의 투쟁에서 「5.16」자체를 밤중에, 몰래, 도둑처럼 왔다며 태초부터 거부해온 함석헌으로서는 그 5.16을 저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함석헌에게 있어 그 싸움은 ‘죽고살기’의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대 5.16 군부세력과의 투쟁에 전선을 만들어 주는 것이 장준하였으니, 그 장준하가 더 할 수없이 고마웠다.

함석헌이 보기에 장준하에겐 시대의 흐름을 뚫어보는 대단한 투시력이 있었다. 지난 5, 6, 7월 3개월여 장준하는 사람 찾아다니기에 여념이 없었다. 언론자유, 자유언론 수호를 위한 전선의 형성을 위해서였다. 장준하의 예감은 신묘하리만큼 적중했다.

7월 30일, 공화당에 의해 헌정사상초유의 규제입법이 제안되었다. 언론규제였다. 이른바 「언론윤리위원회법」(言論倫理委員會法) 이라했다. 장준하가 장장 3개월여를 아예 바닥을 훑듯 사람을 찾아다녔던 것. 자유언론수호투쟁을 조직화하기위해 긴 한숨을 몰아쉬며 달려 다녔던 것은 공화당과 크게 변질되어버린 상당수의 야당위원들의 무게아래 「언론윤리위원회법」이 곧 제안될 것이라는 확실한 정보가 있어 그 대안을 준비해온 것은 아니었다.  

박정희의 정권이 “함석헌을 비롯한 일부의 ‘광필’(狂筆)들을 한 번 손보려고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있었지만, 지난해 6월 함석헌이 세계여행도중 여행을 취소하고 돌아온 이후 사상계가 중심이 되어 ‘함석헌의 글과 말을 퍼 나르면서 직접 피부로만이 아니라 전신으로 부딪히게 되면서 더 큰 싸움을 준비하자는 것이었는데, 마치 일종의 예언처럼 외형으로는 공화당이 제안한 것을 야당인 삼민회(三民會)가 수정, 공화당이 이의 없이 수용하여 8월 2일 야간국회에서 10시 15분 제일야당인 민정당과 삼민회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제석 149명 중 96명의 가표로 민주주의 질식을 초래할 그 악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상당한 언론의 탄압이 구조적으로 이루어 갈 것이라는 예감은 있었지만 장준하로서도 이렇듯 노골적으로 사상유례가 없는 언론규제를 제도적으로 확책하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다. 어처구니가 없는 곧 그것은 민주언론사의 더할 수 없는 퇴행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러나 한 편으로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이미 거의 ‘완전히’라 할 수 있으리만큼 확실하게 내밀히 투쟁세력이 조직화되어있어서였다. 

정식으로 조직이 발족할 때 조직의 명칭은 논해도 좋을 것이라 여겨 장준하는 그 이름까지도 「자유언론수호연맹」이라 내정하고 있었다. 함석헌 역시 이 공화당(?)의 「언론위원회법」을 ‘악법’으로 규정하며 투옥도 각오하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언론윤리위원회법」의 핵심은 「언론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선거를 통해 정권(?)을 창출했다고 하나, 그 정권의 정당성에서 결코 당당할 수 없는 박정희로서는 끊임없이 그 정당성의 시비를 강론(講論)하는 함석헌과 장준하를 좌시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의 그 「언론윤리의원회법」이라는게 함석헌·장준하의 언론저항때문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한다해도 그 단추가 되었다는 주장은 부인할 수가 없다할 것이다. 

「언론윤리위원회법철폐투쟁위원회」(言論倫理委員會法撤廢鬪爭委員會)

8월 2일, 국회심야회의에서 「언론윤리위원회법」이 통과되던 그 밤, 장준하는 한 잠도 이룰수가 없었다. 정말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벨소리 때문이었다. 

“장 사장, 이거 무슨 일 나는 거 아니요?”
“선생님, 신문을 죽여 놓고 도대체 어쩌자는 걸까요?”
“이거 일 났소, 또 장 사장 바빠지게 생겼소”

어떤 이는 화를 내며 노발대발하기도 했다. 그래도 언론분야라면 「사상계」가 있어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게 뭐냐?”하는 독자도 있었고, “그래 「사상계」는 박정희의 이런 간계를 몰랐단 말이냐?” 등, 전화는 밤새도록 그치지를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밤을 지나고 아침이 되니 이건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그러나 장준하는 이 같은 소음(?)들이 고맙기만 했다. 그들 모두가 자유언론수호를 위한 투쟁의 더할 수 없는 동료들이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게다가 장준하는 지난 2, 3개월간 마치 이때에의 계시가 있었던 듯 정계, 교육계, 문화계, 종교계, 재야, 법조계의 바닥을 훑으면서도 엮어낸 동료들이 있는 터….

8월 2일 심야국회에서 야당의 묵계 하에 「언론윤리위원회법」이 통과되고, 5일 그 법(?)이 공론화 되면서, 그간 ‘자유언론수호’(自由言論守護)를 위한 문제로 장준하와 깊은 대화를 나누어온 상당수의 내노라 하는 인사들이 혀를 내둘렀다. 장준하의 시대의 흐름, 정치적 상황을 읽어내는 그 혜안(慧眼)을 두고서였다. 

참 예언자란 앞으로 있어질 일을 예견하여 말하는 사람이 결코 아니요, 있어야 할 일, 있어야만 할 일을 상황과 현실을 개의치 않고 말(言)하고 해내는 사람이라면 장준하는 분명한 시대의 예언자였다. 그런 중에서, 장준하는 한 숨을 돌려 쉬게한 참으로 고마운, 그것은 간절한 기대이기도했던 운동이 시작된 것이었다.

이름하여 「언론윤리위원회법철폐투쟁위원회」의 출범이었다. 실로 그것은 장준하의 큰 바램이었다. 장준하는 벌써부터 함석헌을 앞세우고 「사상계」의 알려질 만큼 알려진 필진들과 함께 그 뿌리가 여전히 군부(軍部)인 박정희 정권과 싸워오는 중에, 음으로만이 아닌 양으로까지 가해지는 갖가기 탄압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언론의 연대적 대응을 사실은 은근히 기대해오고 있던 터에, 이 박정희 정권의 언론규제(言論規制)의 획책이 노골화되면서 전체언론인들이 들고 일어나 역사적인(!) 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그랬다. 그것은 역사적인(!) 투쟁이었다. 

전국언론인대회(全國言論人大會)

전국언론인대회

박정희 집권부로서 그것은 경천동지(驚天動地)라, 하늘이 놀래고 땅이 흔들리는 일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사건 중의 사건이었다. “은인자중하던” 애국군대가 목숨을 걸고 그 군문을 떠나 구구의 대업을 구현해가고 있는데, 신문, 잡지, 방송이라는 것들까지 틈만 있으면 그 혁명세력을 향해 시비를 걸어온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은 전혀 없고, 그저 언론자유운운하면서 국사의 은행에 걸림돌 노릇만 한다. 

그래서 그 같은 무책임한 언론들을 규제하자고 심사숙고하여 제정한 것인데, 이 땅의 거의 모두라 해야 할 언론인이라는 것들이 그 절대의 의미를 지닌 법을 철폐하겠다며 「전국언론인대회」라는 것을 개최, 그 「철폐투쟁위원회」를 조직한다니, 그건 군·정세력의 총수인 박정희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반대세력은 늘 있어왔다. 그러나 박정희에게 있어 분명한 것은 그 같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세력을 늘 깨부셔 이겨왔고, 정권 역시 쟁취, 강화해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언론인이라는 것들은 그 유(類)가 달랐다. 언론의 책임(言論責任)을 명하는 자신을 향해, 언론의 자유(言論自由)를 요구하는 것이었으니...

드디어 8월 10일 상오, 신문회관에서 「전국언론인대회」를 열었다. 이 언론인대회는 아주 분명한 박정희 정권을 향한 포문이었다. 언론자유(言論自由)를 민주정치체제하의 「第一自由」로 선언하며, 지난 8월 2일 심야국회에서 공화당이 제안, 통과시킨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악법으로 규정, 그 철폐투쟁을 선언했다. 

“500여명의 신문, 통신, 방송, 정기간행물 등 각계언론대표들이 모여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인 언론윤리위원회법을 규탄하고, 동법에 의한 언론윤리위원회의 발족과 구성에 어떠한 협력도 하지 않았을 것을 결의하고, 어떠한 장애를 무릅쓰고서라고 굳은 결속으로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적 언론자유의 수호를 위해 전국적 규모로 끝까지 싸울 것을 선언했다. 

「전국언론인대회」는 언론윤리위법투쟁위원회 위원장을 조선일보 주필인 유봉영(劉鳳榮)으로, 편집인협회장 고재욱(高在旭), 일선기자단협의회대표 김영수(金榮洙), 발행자협회부이사장 김우중(金雨中) 등이 발표한 선언문, 결의문, 건의문 등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존경하는 대통령, 국회의장 각하
「언론윤리위원회법」은 이미 우리들이 성명서 등을 통해 지적한 바와 같이 다음 몇 가지 이유만 보더라도 위헌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이며 그 법 내용자체에 내포된 모순성 및 기만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은 도저히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에게 보내는 건의문에서 투쟁위원회는 동법수용의 불가이류를 가지로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첫째로, 이 법은 다음과 같은 위헌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헌법 제 18조 1항의 규정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의 기본정신을 원천적으로 간섭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 법은 국회심의과정애서 주관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고의로 폐기하여 본회의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는 점에서 의회정치의 규범에 심히 위배되는 반민주적 입법과정을 통하였습니다. 
셋째로, 이 법은 입법가능의 한계에 대한 극히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이론적모순과 기만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법의 개념과 도덕률 내지는 사회윤리의 개념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현명하신 대통령, 국회의장 각하께서는 동법을 굳은 결의와 단결로서 반대하는 우리 전 언론인 및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국민의 애정을 양찰하시고 조속한 시일 내에 동법이 폐지되고 동법으로 인한 정부여당과 언론계와의 긴장 및 대립관계를 지양하여 다 같이 합심, 국리민복을 위하여 진력할 길을 열어주시도록 건의하는 바입니다”        

1964년 8월 10일
전국언론인대회 

이 언론자유수호를 위한 투쟁에서 「언론윤리위법폐기투쟁위원회」는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한달 여동안 지속된 이 언론투위의 싸움은 거룩한 싸움이었고, 그래서 그 승리 또한 위대하고 거룩한것이었다. 고난을 각오하고 하는 싸움은 그렇듯 당당했다. 언론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당하리라며 대드는 언론세력을 박정희라서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9월 10일, 시내 곳곳에 대량의 호외신문들이 뿌려졌다. "언론차동 월여만에 일단락 정부발표 윤리위법시행전면보류“라는 호외였다. 장준하는 그 회외를 받아들고 이를 질끈 깨물고 있었다. 「투위」는 언론규제법자체를 분명하게 허물어 버렸기 때문에 「투위」를 해체하자는데, 장준하에게는 이제야말로 시작해야 할 싸움이 있어서였다.

「자유언론수호연맹」의 출범이었다. 

문대골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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