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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의 탄압에 저항하는 민중혼(民衆魂) (18)<함석헌과 장준하, 그리고 박정희>
문대골 목사 | 승인 2017.01.20 13:26

「자유언론수호연맹」 위원장 함석헌(咸錫憲)

이미 언급한 바대로 제도권 언론(制度圈 言論)들이 박정희의 「언론윤리위원회법」 보류를 사실상 폐기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자신들이 구성한 「언론악법철폐투쟁위」를 해산하기로 내정, 실제로 해체모임을 갖는 바로 그때, 장준하를 중심으로 한 자유언론의 주창자들이 「자유언론수호연맹」을 결성하고, 그 위원장으로 추대된 함석헌의 강연을 들었다. 실로 함석헌의 그 강연은 의미심장한, 역사적인 강연이었다. “들사람 얼”을 예찬하는 들사람 (씨알, 민중) 함석헌이 정치, 교육, 종교, 문화, 예술 각부면의 대표적 인사들을 망라해 조직된 대기구의 위원장에 추대되어 하는 연설이었으니...

함석헌의 말의 핵심은 ‘말’이었다. 통치한다 하는 자들은 민중이 말없이 따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역사는 말하는 민중에 의해서 발전한다. 그러므로 사람 노릇 하려거든 할 말을 꼭 하라는 것이었다.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내용이지만 함석헌은 민주주의와 언론을 종교적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사(韓國史)를 무언극의 역사라고 성토했다.

“민중은 지금도 여전히 꿈틀하고 밟혀죽는 버러지 인가?그러나 그 꿈들이야 말로 무서운 꿈들이다. 그것은 사나운 겨울바다 같은 권세 밑에 갇히는 민중의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이 터지고야 봄은 있다. 말도 못하고 죽는 민중의 꿈틀거림은 생(生)의 항의다. 삶의 외침이다. 삶의 음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이다. 말씀이다. 역사의 길(道)이다. 내가 성명없는 민중이라도 민중이기 때문에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함석헌은 모든 민중의 가슴속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선언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민중이야 말로 하나님의 메신저이다.

“통치하는 자들은 법을 말하나 법 그 자체가 힘 있는 것 아니다. 그 사회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마음이 있을 때에만 힘이다. 언론윤리요, 학원 보호요 떠들지만 그것으로 무엇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 주객이 바뀌어 폭력 뒤에서 법이 감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국회 뒤에 칼을 뽑아 들고 서서 법을 제정하는데 어리석음이 있다. 설혹 그렇게 해서 악법을 제정한다고 하자. 그것은 법이 아니다. 계엄을 무서워 아니하는 우리가 그 힘 밑에 되는 법을 무서워 할 리가 없다. 진시왕의 법도, 네로의 법도 오늘 있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도(오늘의 법도, 필자) 그럴 것이다.”

어떤 법도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민중의 동의 없이 존재할 수 없음을 선언하는 함석헌은 ‘말’의 메신저로서의 민중의 의기(意氣)를 요구한다.

“일찌기 일본제국주의가 서슬이 시퍼럴 때 그들이 새로 도둑해 얻은 대만은 ‘생번’(生蕃, 원시생활을 하는 대만의 원주민족) 들을 굴복시켜 보려다가 망신을 한 이야기가 있다. 생번들의 반항이 아주 완강한 것을 알자, 그들을 아주 미개한 야만으로 없이 여긴 폭력주의자들은 자기들의 무기를 자랑해 보여주면 겁이 나서 굴복하려니 옅은 생각으로, 그 추장들을 불러 소위 시찰이라 하여 일본에 데려다가 여러 가지 군사 시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돌려보내려는 때에 그 소감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 야만으로 알았던 추장들은 대답하기를, ‘그래 우리는 당신네의 굉장한 무기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도 겁내지 않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내려오는 가르침이, 이 땅은 피로 얻었으니 피로 지켜라 했습니다’ 했다는 것이다.”

함석헌은 그의 「자유언론수호연맹위원장의 추대강연을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낸다. 
“우리 입에 재갈을 물리고 우리 손발에 고랑을 채우며, 우리 가슴에 칼을 꽂고, 우리 살점을 에어 너희와 너희 자녀를 먹이며 향락을 하려는 너희까지도 사랑해 주마! 민중아, 우리는 이 나라를 하나로 얽히는 피로 얻었으니 또 서로 부어주는 피로 지키자!”

장준하, 박정희의 샅바를 잡다
함석헌의 저항철학 (抵抗哲學)

박정희와 장준하

함석헌의 글에 「겨울이 만일 온다면」이라는 것이 있다. 영국의 시인 쉘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라는 시에서 따낸 것으로 영화화 되어 1920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까지 동서양을 초월 널리 알려졌었다. 함석헌의 글 「겨울이 만일 온다면」도 함석헌이 그 영화를 보고 크게 감격, 그의 나이 60대에 이르러 그때의 감격을 되살리며 쓴 것이다. 함석헌이 쉘리의 시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요?’(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를 통해 얻은 감격이 소위 <저항정신>이라는 것에서 였다. 

저항정신, 그것은 함석헌의 철학이요, 생명혼(生命魂)이었다. 그 쉘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 「겨울이 만일 온다면」은 그의 생명철학, 생명혼에 그의 평생을 두고 고맙기 그지없는 속살, 속 기운을 주었다. 쉘리를 통한 함석헌의 저항의 노래를 들어보자.

“오, 사나운 서풍이여, 너 산 가을의 숨이여”하는 첫 줄로 시작이 되는 그 시는 첫 글자 그대로 와일드(Wild)한 생기 찬 영의 부르짖음이요, 자기의 말대로 “예언자의 나팔”이요, “슬프면서도 녹아드는 혼의기도”다. 나뭇잎을 흔들어 떨며, 씨를 날려 땅속에 묻고, 구름을 몰아쳐 폭풍우를 퍼부으며, 죽어가는 해를 위해 만가(輓歌)를 부르고, 지중해를 흔들어 평화의 꿈을 깨쳐 어지럽게 하며, 이 시대의 오는 앞길을 여는 사나운 서풍을 향해 노래를 하다, 외치다 못해,

사나운 영아 네가 나려무나
나를 일으켜 주려무나 
잎새처럼, 구름처럼, 물결처럼
나는 인생의 가시밭에 엎어졌노라
너처럼 그렇게 날쌔고 그렇게 뻣뻣하고 자랑하던 내가....

하여 울음으로 다루어가며 애타는 기도를 하는 셀리는 저 자신이 이 나를 몇 번이나 엎어진 데서 일으켜 주었는지 모른다. 일제시대의 그 내리누르는 압박 밑에서 숨이 막히려 할 때에도, 황성산 푸른 솔잎을 흔들고 오는 그 ‘서풍’은 내 코를 뚫어 새 숨을 넣어주었고, 해방 후 공산주의의 그 살벌한 포악 앞에서 사지가 움츠려질 때에도 몽고 사막, 만주 벌판을 쓸고 압록강을 건너오는 그 ‘서풍’은 내 가슴에 새 피를 돌리어 한 몸을 버티어 걸어 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그것은 슬플 때의 나의 위로요, 내가 터무니없는 잘못을 하고 내 혼이 꺼꾸러질 때 나를 책망해 뒤엣것을 잊고 알 수 없는 앞을 향해 막 더듬어 나아가게 하는 ‘빈들의 소리’다.

내가 셀리를 좋아하는 것은 문학적인 자리에서 하는 것은 아니다...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다만 그의 불타는 「반항정신」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반항아였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는 온갖 구속, 압박, 묵은 것에 대해 죽기로 반항하는 자유의 혼이었다. 「서풍의 노래」 셋째절에서 그가 불어오는 서풍에 지중해 고요한 물위에 뜨는 옛 궁전의 꿈이 깨지고 대서양의 수평이 흔들려 깨지며 바닷 속의 해초들이 생기를 잃고 떨며 길을 여는 것을 본 것은, 그가 어떻게 바야흐로 무르익으려는 문화에 있어서 벌써 그것을 벗어버리고 새 시대를 바라는 혼이 사무쳤던 가를 보여주는 것이다....반항, 항의, 생명의 바탕이 만일 자유에 있다면 그 자유를 구속하고 빼앗으려는 세력이 밖에서 오고, 말라붙으려는 제도, 전통의 때가 안에서 끼려 할 때, 거기 대해 일어나 결러 대는 정신이야 말로 가장 귀한 도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영어를 나는 잘 모르지만 그 중에 Resist란 말처럼 좋은 것은 없다. Resist, Revolt, Protest, 다 좋은 말이다. 만일 Resist란 말이 없다면 나는 영어를 아니 배울 것이다.:“
함석헌은 저항(抵抗)을 사람의 최고의 성성(聖性)으로 믿었다.

함석헌의 저항철학은 왜 그가 살아생전, 죽을 때까지 그렇듯 장준하를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명증(明證)해준다. 장준하! 그는 일생을 저항으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함·장지교(咸·張之交)는 자유, 자주를 그 기저로 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자유와 자주하는 인격을 통해 구현되는 것이라 한다면 함석헌과 장준하는 실로 그 참 역사의 구현을 위해 보낸 사람들이었고, 그 역사(役事)를 위한 절대의 사슬에 묶인 이들이었다. 역사의 길동무요, 동지였다는 데서 그들의 교분은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넘어선다. 

함석헌은 장준하를 ‘무애(無涯,無礙)의 사람’이라 했다. 도무지 거칠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었겠는데, 장준하의 그렇듯 거칠 것이 없는 내달림이 함석헌에겐 저항하는 사람으로 보였을 터이다. 

함석헌은 어쩌면 장준하에게서 쉘리를 보았을는지 모른다. 쉘리에서 고마우리 만큼 위로를 받았다는 함석헌은 같은 위로를 아마 장준하에게서도 받았을 것이다. 장준하를 먼저 떠나보낸 함석헌은 늘 늘 장준하를 불렀다. 아, 장준하야!

박정희 정권은 그야말로 발악을 한다. 그것은 분명히 말해 천벌이었다. 이미 정치는 실종되었고, 경제는 지상(至上)이 되어버렸다. 박정희의, 박 정권의 비극은 정통성이 없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은 어쩔 수 없이 대적(對敵)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박정희와 장준하의 만남, 장준하의 박정희와의 충돌은 하늘의 뜻이었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그 정통성 부재의 정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장준하가 신봉하는 그 정통성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장준하와 박정희, 박정희와 장준하의 충돌은 하늘의 뜻, 하늘이 벌리는 것이었다.

이제 장준하의 투옥의 인생이 시작된다. 이후 아홉번에 걸친 감옥행 중 첫 번째의 옥살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1966년 10월 26일, 당시 야당인 민중당이 주최한 ‘특정재벌밀수진상폭로 및 규탄국민대회’ 주연사로 참여한 장준하는 박정희를 사실상 ‘밀수의 왕초’로 ‘존슨 미 대통령이 한국에 오는 것은 박정희 씨가 잘났다고 보러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청년의 피가 더 필요해 오는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무사할 리가 없었다. 박정희, 지금 그가 신이 되려 하는 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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