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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목사가 아닐 때<흐물흐물하게 혹은 말랑말랑하게 교육하기>
김정원 | 승인 2017.02.07 13:56

취미가 ‘지질히’ 고상한 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좋아하여, 특별한 절기에는 꼭 세인트 폴 대성당을 방문하곤 하였다. 그날도 오르간 연주자 근처에 앉을까 하였지만, 이미 만석이라 비껴 놓인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미간까지 찌푸려가며 ‘영국말 설교’를 알아듣고자 했지만 영 쉽지가 않다. 나의 빈곤한 리스닝 능력에 더해 어디선가 스멀스멀 거리는 퀴퀴한 냄새를 맡고 난 뒤부터는 ‘영국말 예배’를 향한 집중력은 이내 무너지고 말았다. 그 냄새의 발원지를 찾고자 큼큼거렸고, 곧 내 옆의 여성에게서 나는 냄새임을 알아차렸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미사 모습. (사진: LEON NEAL/AFP/Getty)

그녀가 노숙자라는 것을 눈치 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느 노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서너 개의 큰 보따리를 가지고 있었고, 보따리는 거뭇거뭇한 살림살이로 가득했다. 이제 예배는 물 건너갔다. 내 코를 비롯한 대개의 감각은 그녀에게 꽂혀 있었다. 그녀는 베이지색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돌려 맨 푸른색 스카프가 가슴 언저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내가 입은 그것들 보다 좋아 보였다. 순간 그녀가 노숙자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조금 과감해지기로 한다. 살짝 목을 돌려 그녀의 차림새를 더욱 찬찬히 살펴보니, 꼬질꼬질 때가 가득한 소매는 베이지색을 잃은 지 오래 돼 보였고, 영근 때가 머리카락에 드레드레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노숙자였다. 시간이 지나도 코를 자극하는 그녀는 노숙자가 분명했다. 

그녀는 부산스러웠다. 예식이 많은 성공회 예배 절차를 따라 여러 개의 책자를 찾아 보느라 더욱 그러했다. 그녀는 쪽수를 못 찾을 때가 많았는데, 나는 빤히 알면서도 그런 그녀를 돕지 않았다. 뒷자리의 미소 띤 백인 여성이 그녀를 도와주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다. 아니다. 그 노숙자에게 미안한 것인지, 그 미소 띤 백인 여성에게 민망스러운 것인지는 잘 모를 일이다. 문제는 성찬식이었다. 한국 개신교의 그것과는 다르게 영국의 성공회는 대개의 경우 배잔을 하지 않는다. 성직자 앞으로 줄을 선 성도들은 하나의 큰 은잔에 담긴 와인을 차례대로 마신다. 

잔을 들고 있는 성직자는 총 네 명. 줄을 잘 서야 했다. 잘못하다가는 내 옆의 그녀가 마신 잔을 나도 사용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뿔싸. 나는 그녀 바로 뒤에 서 있었고, 난 그야말로 주의 ‘쓴 잔’을 마셨다. 쓴 잔이 지나자 이번엔 서로 인사하는 시간이 왔다. 서로에게 ‘peace be with you’라는 인사말을 건네며 악수를 나누는 시간. 본디 작위적이고도 어색한 그 시간을 즐기지 않지만, 그 날은 특히 그랬다. 거무튀튀한 그녀의 손을 잡는 게 영 석연치 않았다. 그렇게 온 감각이 그녀를 향해 쭈뼛 댈 때, 온통 예민해진 나를 향해 그녀가 손을 내민다. 나를 올려다 보는 그녀 얼굴에 함박 미소가 들었다. 못 돼 쳐먹은 나를 향한 그녀의 미소가 너무 환하여 금새 주눅이 들고야 말았다. 내 손을 꼬옥 잡으며 그녀가 말한다. “PEACE BE WITH YOU” 

영국 교회에 가면, 나는 더 이상 목사가 ‘아닐 수’ 있다. 누구를 챙길 필요도 없고, 설교를 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내 소개를 할 필요도 없다.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되고, 먼저 다가갈 필요도 없고, 어색한 칭찬을 건넬 필요도 없다. 몇 명이 출석했는지 알 필요도 없고, 분주할 필요가 없고, 찬양을 크게 부를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친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더 정확하게는 친절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 영국 교회에서의 시간이다.  

‘목사가 아닐 때’, 나는 또 하나의 ‘참 나’를 마주한다. 오르간 연주는 핑계일 게다. 실은 소극적이고 폐쇄적이고 예민한, 그런 나를 만나러 교회에 갈는지도 모른다. 공간은 엄연히 교회당인데, 내 존재가 한국에서와는 참 다르게 머문다. 이곳에서의 나는, 노숙자의 냄새에 코를 찡긋거릴 수도 있고, 도움에 소극적 일 수도 있고, 예민함을 드러낼 수도 있다. 다만 가끔 ‘양심’의 소리가 내 속을 긁을 뿐, 그 낯설면서도 편안한 ‘참 나’의 시간은 모순적이지만 값있다. 

양심은 모순적이지만 값진 그 시간을 방해한다. 양심의 소리 때문에 완전한 해방감을 얻기가 영 쉽지 않다. ‘평화의 인사’를 건네는 그 노숙자의 미소 앞에서 양심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곧 죄책감을 몰고 온다. 친절과 환대를 머뭇거릴 때,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죄책감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프로이트의 생각을 빌려오면 조금 가벼워질 수 있을까. 그는 양심을 사회적 압력이 만들어 낸 사회 규범이 우리 속에 내면화 된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억압이 빚어낸 친절을 가장하지 않았으니, 그러니까 ‘초-규범적’ 인간일 수 있었으니 그리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겠다. 

니체야 오죽하겠나. 그는 양심의 가책이란,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채무자가 느끼는 부채감과 같은 것이라 말한다. 빚을 갚지 못하고 있는 채무자에게 채권자가 들이닥쳐 위해를 가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의 본래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귀가 솔깃하다. 신 안에서 늘 불편한 나에게 그의 말이 꿀 같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빚 받으러 몰아쳐 오는 채권자가 아닌 이상, 나는 억지로 ‘유죄판결 된 삶’을 살 필요가 없다. 물론 노숙자에게 친절과 봉사를 행하던 그 백인 여성이나 환하게 웃으며 휙휙 악수를 나누던 그 교회의 목사들 앞에서 기가 죽을 이유도 없다. 그들이 나를 ‘까칠한 아시아 여자’로 인식하더라손, 그 판단에 아쉬워 ‘목회적 마인드’로 갈아 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른바 노예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면 너무 자위적일는지. 

“노예의식을 갖는 개인들 사이에서 타자에 대한 승인은 여론이나 평판 혹은 대중들의 판단에 의해 규정된다. 허영심 있는 인간은 자신에 대해 듣는 모든 좋은 평판에 기뻐하며, 모든 나쁜 평판에 대해서는 괴로워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 두 평판에 예속되어 있으며, 자기에게서 나타나는 가장 오래된 복종이라고 하는 본능에 예속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니체 전집 VI 2, 281).”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페미니스트인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고독했지만 강했고, 사랑했지만 배신당했고, 걷지 못했지만 자유로웠던 그녀의 자아가 둘로 쪼개져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맞닿아 있다. (두 명의 프리다, 프리다 칼로, 1939)

이왕 이렇게 된 거, 포이에르바하까지 가보자. 그는 신앙인들의 특권의식을 비판하며 신앙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에게 우월감과 특수한 명예감을 부여한다고 지적한다. 하인이 주인의 품격을 자신의 품격으로 여기듯, 스스로의 본질을 어떤 다른 본질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지금껏 교회 안팎에서의 나의 시혜적 행동은 신 혹은 목사라는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인격을 꾸역꾸역 다른 인격 안으로 밀어 넣으며 도덕, 선, 평화, 사랑과 같은 개념들을 성취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신학(anti- theology)을 벗삼아 되묻게 된다. 

죄책감이나 특권의식이 만들어 낸 ‘친절한 나’를 까뒤집고 나면, 마침내 ‘폭로된 나’를 마주하게 된다. ‘폭로된 나’는 여리고 작고 보잘것없다. 호의를 가졌지만 그 호의를 베풀 용기가 부족한, 겨우 그런 여자일 뿐이다. 주목 받는 것이 두려워 큰소리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아량이 좁아 불쾌감을 이겨내지 못한다. 탈-죄책감과 탈-노예의식을 선취했을지는 몰라도, 마주한 ‘참 나’는 부끄럽다. 반신학 위에 올라 타, 의기양양 했다면 좋았으련만- 가식과 허위를 벗겨낸 나의 모습 앞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은폐된 나’의 폭로는 한줌의 자유로움과 곱절의 부끄러움을 몰고 온다. 목사를 벗고, 성도를 벗고, ‘신앙’을 벗고, 죄책감을 벗고, 양심을 벗고…… 그리고 난 후에 마주하게 되는 ‘참 나’는 부끄러움으로 물들어 있다. 비로소 유한함의 고백이 터져 나옴에 겸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신 없이 신 앞에’ 엎드려지는 기도의 시간이 얻어진다. 죄책감도 없고 참회도 없는데, 신 앞에 엎드려진다. 죄의 고백 없이 눈물이 나고, 선포 하나 없는데 자유롭다. 작은 나를 발견하고는 이내 신을 끌어온다. 이 때 나를 만나러 오는 신의 손에는 회초리도 율법책도 없다. 도덕군자의 형상도 아니요, 신실한 모습도 아니다. ‘신앙심이 깊고 친절을 베푸는 여자’가 아닌 ‘소극적이고 아량이 없는 여자’를 만나러 오는 그 신은, 나를 탓하지도 않고 타이르지도 않는다. 특권의식과 우월감을 내려놓고 신을 부르니, 신 역시 권위를 벗었다. 부끄러운 나와 함께 부끄러워하고, 자유로운 나와 함께 자유롭다. 부족한 ‘참 나’의 모습 속에 되려 신의 기운과 신의 고백이 들어찼다. 사랑과 자비의 기운 속에서 나와 신은 거듭 만나고, 그로 인해 역시 부끄럽지만 이내 자유롭다. 다시 모순이지만, 다시 값지다. 

어찌 된 일인지 반신학의 조화가 요사스러워 다시 신학적이다. 내 교육과 내 설교에 죄책감을 느낀 이들에게 죄를 고백하며 새해를 부끄러움으로 연다. 

김정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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