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문명으로 박탈된 삶과 영혼의 회복



▲예수살이공동체가 모토로 삼는 것은 ‘지상에서 천국처럼’이다. 어딘가에 위치하는 먼 천국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국의 삶을 이 땅 위에서 그대로 실천해보자는 것이다.

담쟁이 굵게 드리운 집 안의 거실로 들어서자, 벽난로 위에 반짝거리는 물체들이 눈에 띈다. 뭘까. 가까이서 다가가보니 부분이 조각난 CD들이다. 그 CD들을 장식처럼 매달아 놓았는데 반짝거리니 예쁘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하다. 한참이나 들여다보는데 예수살이공동체 청년대표 조상인씨가 “저건 교육에 참여한 회원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 다짐하면서 만든 CD예요”라고 설명한다.

예수살이공동체가 벌이고 있는 7가지 ‘Off운동’을 삶에서 실천하겠다는 다짐으로, 동그란 CD의 일부를 잘랐다. 지금까지 갖고 있던 삶의 방식, 둥그런 원을 조각냄으로 ‘끊음’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는 조씨의 설명이다.

Off운동은 7가지의 단절운동으로 차의 사용을 끊고(AO) TV를 줄이고(TO) 치장하는 것을 줄이며(MO)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끊는다(PO). 또 카드사용을 줄이고(CO) 한동안 핸드폰 사용을 자제하거나(HP) 쇼핑을 줄여 소비를 줄이는 것(SO)도 그 일환이다.

이렇게 다양한 운동을 벌이는 목적은 ‘소비문명의 폐해 덕분에 일그러진 우리의 삶과 영혼을 회복하고 예수가 가르쳐준 삶의 표본’을 지켜가자는 것. 예수살이공동체는 이런 운동의 삶에서 실천함으로 예수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자 노력한다.

도시 속의 작은 공동체가 꿈꾸는 회복

합정동 절두산순교성지 담벼락을 따라 보행로를 걷다보니 마리스타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으로 활짝 열린 문이 하나 보인다. ‘예수살이 공동체’. 대문 위쪽에 시원스레 쓰인 글씨 뒤로 빨갛고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잎새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젊음의 거리 홍대 근처에 이런 공동체가 있었다니. 시끄러운 도시 뒤편에 머물러 있는 공동체의 고즈넉함에 잠시 넋을 잃는다.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담쟁이 넝쿨진 건물이 보인다. 예수살이공동체 건물이다. 건물에 넝쿨진 담쟁이나 정원에 크게 손벌리고 드리운 정원수, 그리고 먼지가 쌓인 오래된 의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예수살이공동체는 지난 98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예수의 삶을 바탕으로 “소유로부터의 자유와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자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투신”을 모토로 함께 교육받고 생활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설립했다. 하지만 공동체설립을 위해 고민이 시작된 것은 1977년여. 그때부터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고자 청년 영성훈련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젊은이들을 교육시켰던 가톨릭사제그룹이 공동체를 고민했다.

98년 그 주축에 섰던 것은 박기호신부였다. ‘어떻게 예수를 따라 살 것인가의 고민에서 현대사회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소비문명이며 그것을 끊음으로서 우리 삶의 조금 더 예수의 삶에 가까워질 것이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그 정신에는 소비문화로서의 단절도 있지만,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 하는 것과 이 땅의 현실과 문제에 분노하고 거기에 투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소비문명의 문제를 생활로 극복하되 시대의 아픔을 공감하고 거기에 반응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박기호신부가 생각한 예수를 따르는 바른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지상에서 천국처럼

예수살이공동체가 모토로 삼는 것은 ‘지상에서 천국처럼’이다. 어딘가에 위치하는 먼 천국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국의 삶을 이 땅 위에서 그대로 실천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들의 교육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삶의 변화다. 따라서 각종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로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1년에 한번 여름에, 며칠동안 ‘나를 찾는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 함께 여러 교육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을 비롯해, 매주 수요일에 강좌를 열고 금요일엔 미사를 드린다. 또 한달에 한번은 ‘공동체의 날’로 지정해서 강연이나 학습시간을 열고 공동체 교육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그들의 많은 교육이 언제나 ‘좋은 성과’를 맺는 것은 아니다. 청년대표 조상인씨는 “사실 교육이나 운동에 참여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변화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솔직히 3분의 2는 ‘아, 이런 새로운 삶의 변화도 필요하겠구나’라고 생각하지만 곧 자기 현실로 돌아가는 사람들인 거 같고 나머지 3분의 1정도가 크게 변화하는 것 같아요. 예전과는 다르게 확 달라진 삶을 살려고 하는 것 같고요. 우리가 왜 소비문화에 저항해야 하는지 그게 왜 예수의 삶에 반대되는 일인지 깨닫게 된다고나 할까요.”

그의 솔직한 지적처럼 ‘어떻게 모든 사람이 진리의 말을 깨달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껏 예수살이공동체를 거쳐 나간 이들은 천여명. 그들이 비록 모두다 현실에서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해도, 적어도 지금 이 사회에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인식하는 좋은 계기는 됐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면 지나친 욕심일까.



▲예수살이 공동체 안에 있는 성모동산.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면서도 세상의 분노를 저버리지 않았던 예수의 삶. 예수살이공동체는 그랬던 예수의 삶을 고스란히 본받고자 한다. 그래서 저너머 피안에서가 아니라, 이 땅 위에서, 현실 속에서 올곶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자고 말한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회복

예수살이공동체를 시작하면서 만든 청원기도문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근면 검소하면서도 인색하지 않으며 순결 정숙하면서도 자유로우며
겸손하고 너그러우면서도 절도가 있으며 솔직하면서도 존중함이 있어
자신에게는 엄격하나 이웃에게는 관대하게 하소서
거룩하신 아버지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기를 청하오니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하시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함에서 기쁨을 얻게 하시며
세상의 변혁을 위한 몸바침으로 한 생이 예수를 닮아 살게 하소서. 아멘.”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면서도 세상의 분노를 저버리지 않았던 예수의 삶. 예수살이공동체는 그랬던 예수의 삶을 본받고자 한다. 그래서 저너머 피안에서가 아니라, 이 땅 위에서, 현실 속에서 올곶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자고 말한다.

예수살이공동체는 얼마 전 충북 단양에 ‘산위의 마을공동체’를 꾸렸다. 합정동의 예수살이공동체가 세상 속에서 예수의 삶을 따르는 교육을 담당하고 도시와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공동체라면, ‘산위의 마을’은 도시를 떠나 좀 더 본격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실천의 표본을 보여주는 공동체다.

벌써 몇 가정이 그 곳에서 생활을 시작했고 자급자족의 농사와 서로 나누고 공유하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아직은 갖춰진 모습이 아니지만 예수살이공동체가 지향하는 대안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여줄 계획인 셈이다.

이렇게 예수살이공동체는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생활의 작은 부분들을 개선함으로 삶의 회복을 꿈꾸고 예수의 삶에 더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 결실이 비록 지금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언젠가 그 사람들의 삶이 변화될 때 ‘지상에서 천국처럼’ 사는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 점쳐본다.

예수살이공동체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예수살이공동체는 언제나 방문할 수 있다. 계간지 발행, 교육, 강의, 피정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밖의 상담도 가능하다. 문의 02)3144-2144 http://www.jsari.com

김진아 기자 nebo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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