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1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삼성 불법뇌물 공여사건 등 정경검언 유착의혹 및 불법도청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주최로 각계 인사들과 시민, 학생 등 4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X파일 진상규명과 이건희 회장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를 삼성본관 앞에서 9월 9일(금) 저녁 7시부터 가졌다.

▲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우비를 입고 촛불을 밝히고 있는 참석자들(사진 김진아)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삼성 본관 주위에는 참석자들의 두 배에 가까운 전투경찰 7개 중대 700여명이 배치되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경찰은 본관 앞과 옆 도로 등의 행사장 주위를 전경버스로 사람 한 명이 지나가는 것도 불가능하게 빼곡히 세워놓아 퇴근하거나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행여나 행사 장면이나 행사장에서 들려오는 각종 발언들과 노래조차도 들려지지 않도록 원천 봉쇄했다.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인가' 작사, 작곡 : 윤석민 1.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인가.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인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삼성으로부터 나온다. 2. 대한민국은 이건희왕국인가. 대한민국은 이건희왕국인가. 엑스파일을 전면 공개하고 이건희를 구속 수사하라. 3. 대한민국은 도청공화국이다. 불법도청을 철저히 수사하라. 불법도청과 엑스 파일을 철저하~게 수사하라.

이런 경직된 분위기와는 달리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인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삼성으로부터 나온다"는 가사로 시작되는 윤석민 씨의 새롭고 빠른 템포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간간히 비를 뿌리는 고르지 않은 일기에도 불구하고 문화제는 강행되었다.

최광기 씨의 사회로 시작되어 여는 말을 맡은 오종렬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상임의장은 "오늘 이 문화제는 삼성이 때려죽인 국가와 노동자, 민중과 정의를 위한 씻김굿"이라고 정의하고 "도청자에 대한 엄중 처벌"과 "X파일에 대한 철처한 수사"를 요구했다.

이어진 박순희(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공동대표는 "지금 내리는 피는 민족의 피 눈물"이라고 하고, "오늘 우리는 민족을 살리고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강한 문장과 어조로 연설을 진행했다.

박 대표의 연설이 끝나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준비한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홍석현과 이건희 회장으로 분장한 가면극이었다. 이 순서에서 참가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던 것은 이건희 회장의 연기 도중 비난하는 관중들에게 이 회장의 얼굴이 합성된 만원권 지폐와 삼성 입사원서가 뿌려질 때였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준비한 가면극

이번 X파일에 드러난 "떡값 받은 전, 현직 검사들의 명단"을 공개해 주목을 받고 있는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사건의 본질을 불법도청이라고 하며 덮어버린 노 대통령"의 행태를 비판했다. 또한 "국민들이 분노하는 건 바로 이건희의 지시에 의해 수백억원이 정치권과 검찰, 언론을 주무르는 데 쓰였기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검찰은 이번 수사를 진행할 자격이 없다"고 하며 "특검법과 특별법의 도입"을 주장했다. 특히 "노 대통령과 한나랑당 박 대표가 연정론을 포기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 동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물 밑 연정을 통해 이건희를 살려주는 야합을 단행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삼성과 이 회장을 분리하고 회사를 정당한 노동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대안적인 발언해 많은 갈채를 받았다.

연설이 끝나자 삼성의 하청 업체인 얼라이언스의 대표 조성구 씨의 회사측이 저지른 각종 불법에 대한 폭로와 삼성의 무노조 신화를 깨기 위해 노조운동을 하다가 구속 수감된 김성환 씨의 부인 임경옥 씨의 규탄 발언이 있었다. 특히 임 씨는 "지금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삼성과 맞서는 건 군사독재와 싸우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오늘의 촛불이 함성이 되어 전국 곳곳에서 힘있게 타오르게 하자"는 강력한 투쟁 참여를 당부했다.

마지막 발언에 나선 박석운 공대위 집행위원장은 "앞으로 이곳 삼성 본관 앞에서는 매주 목요일마다 촛불문화제가 열릴 것이며, 이것이 이번 사건을 해결해 가는 기본"이라는 입장과 계획을 밝혔다. 이것은 X파일 사건이 장기화 될 것에 대한 포석으로 보였다. 그리고 "언제가는 도청 테이프 안에 있는 내용들이 터트려지면 온 국민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수동적인 발언은 참석자들을 의야하게 만들기도 했다.

문화제를 마치면서 사회자가 제안 한 "바위처럼"이라는 노래를 참석한 모든 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힘차게 부르며 촛불은 서서히 그 임무를 다했다.

▲ 이건희 구속이라는 문구가 적힌 카드를 들고 있는 참석자(사진 김진아)

당초 민주노총은 행사를 위해 최대 3000여명이 운집할 것이라고 집회 예상 참석 인원의 숫자를 신고했다고 한다. 이는 처음부터 참석이 예상되었던 기아 자동차 노조측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 자동차 노조가 협상을 예상밖에 순조롭게 마무리 하는 것을 보고 참석을 포기했다고 한다. 내심 그래도 얼마 정도 인원의 참석을 바랬지만, 막상 행사가 시작되자 보이지 않는 노조측의 모습에 적지 않은 실망감을 내비취기도 했다.

행사가 마친 후 삼삼오오 뒷풀이 장소로 이동한 좌파 운동 단체의 한 회원이 기자에게 귀뜸한 것은 "자신의 동료 중에 기독교인 있는데 이러한 행사에 기독교계의 목사님이나 단체가 없어서 매우 실망스럽다"고 했다며, "기자를 알았으면 소개해줬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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