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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먼지와 함께 한다”-同其塵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04
이병일 위원 | 승인 2018.01.29 22:33
“도는 비어 있어서 그것을 쓰니, 마치 가득 차 있지 않은 듯하다. 깊도다! 마치 만물의 으뜸(뿌리)인 듯하다. 날카로움을 꺾고 엉클어진 것을 풀고, 높이 빛나는 것을 부드럽게 하고, 낮은 먼지와 함께 한다. 맑도다! 마치 항상 있는 듯하다. 나는 그것이 누구의 아들인지 모르나, 상(만물을 낳는 자연의 덕)은 옛 제왕보다 앞서 있었다.”
- 노자, <도덕경>, 4장 

道沖而用之 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粉, 和其光, 同其塵. 湛兮似或存, 吾不知<其>誰之子, 象帝之先

노자는 당시의 예법이 주장하고 있는 자연의 무질서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 세상은 원초적으로 무질서한 존재인가? 백성이 법과 예를 따르지 않으면 혼란이 오는가? 노자는 도의 활동을 설명하면서 그 물음에 답하고 있습니다.

도는 음과 양의 기운 같이 서로 대립하는 힘을 가운데서 조화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노자는 그것을 충(沖)이라고 하고, 충은 속이 비어서 양극단을 조화시키는 작용을 말합니다. 모든 생명은 음과 양의 상반된 기운을 충기(沖氣)가 가운데서 조화시키기 때문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만물이 멈추지 않고 태어나는 것을 볼 때, 이 沖이 가지고 있는 조화의 작용은 언제나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가득 차 있지 않아 끝없이 채우려는 듯 활동을 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도는 비어 있고, 그 비어 있음으로 작용합니다. 우리가 어떤 건물을 사용할 때에는 건물의 벽이 아니라 벽이 만드는 빈 공간을 쓰는 것입니다. 길을 갈 때 바닥에 깔린 시멘트가 아니라 길 위의 공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주가 비어 있어서 지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비어 있는 것을 사용할 때 모든 생명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비어 있음은 도의 한 표현방식입니다. 만물이 만물로 인식되는 것은 만물 사이에 있는 빈 공간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는 만물의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도는 비어 있음으로 만물을 포용합니다. 그러나 그 실체를 좀처럼 알 수는 없습니다.

날카로움과 어지러움은 각각 서로 반대되는 자연의 현상을 뜻합니다. 빛나는 것이나 하찮은 먼지 또한 서로 반대이나 조화를 이루는 것은 자연에 조화의 덕(沖)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맑고 가벼운 것은 올라가 하늘이 되고, 탁하고 무거운 것은 내려와서 땅이 되고, 沖和의 기운은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천지는 정기를 품고 있어서 만물이 생성한다.” - 『列子』, 天瑞 편

노자는 만물을 낳는 덕이 자연계에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이 자연의 덕을 象으로 표현합니다. 도덕경에서 象은 만물을 조화롭게 하는 자연의 덕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됩니다. 옛 제왕이 정치를 하기 전부터 만물은 이미 자연의 덕인 象에 의해 조화를 갖추고 태어났다는 것을 노자는 강조합니다.

그 속이 깊으면서도 맑은 사람!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인간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어 있으면서도 가득 차 있는 사람! 비어 있어서 누구나 포용할 수 있고, 가득 차 있어서 진득한 사람은 도에 가까운 사람일진대, 모든 일상에서 그런 사람이 되거나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어 스스로를 먼지처럼 여기는 사람의 그런 삶의 모습을 닮으려는 노력은 사소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작은 것에도 과거를 회상하고 우주를 보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합니다. 

“길을 가다가 / 눈발치는 산길을 가다가
눈 속에 맺힌 새빨간 열매를 본다 / 잃어버린 옛 얘기를 듣는다
어릴 적 멀리 날아가버린 / 노래를 듣는다 //
길을 가다가 / 갈대 서걱이는
빈 가지에 앉아 우는 하얀 새를 본다 / 헤어진 옛 친구를 본다
친구와 함께 / 잊혀진 꿈을 찾는다 //
길을 가다가 / 산길을 가다가
산길 강길 들길을 가다가 / 내 손에 가득 들린 빨간 열매를 본다
내 가슴 속에서 퍼덕이는 하얀 새 / 그 날개 소리를 듣는다
그것들과 어울어진 내 / 노래 소리를 듣는다 
길을 가다가”<신경림의 시 “길”>

날카로움을 꺾고 엉클어진 것을 풀고, 높이 빛나는 것을 부드럽게 하고, 낮은 먼지와 함께 하는 삶의 모습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조금씩 쌓여진 습(習)은 나의 삶을 바꾸고, 우리의 시대를 전환할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습(習)으로 준비할 때에 찾아올 것입니다. 일상에서 하느님 나라에 길들여지기를 습(習)하는 사람은 그 때가 결정적으로 다가왔을 때에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가 찾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이 예수님의 선포가 아직도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이유, 예수님의 선포와 가르침이 복음, 기쁜 소식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도 하느님 나라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욕망에 찌든 통치자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해방의 야훼 하느님께 길들여지는 일, 예수님의 복음에 길들여지기 위하여 함께 공부하고 삶을 나누는 일, 예수님의 복음을 거리낌이 아니라 기쁨으로 받아들이기 위하여 나를 비우는 일,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아니라면 단호히 거부하는 일, 기쁜 소식을 만들고 선포하기 위하여 몸으로 움직이는 일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선포하고 가르치신 하느님 나라와 복음에 길들여지는 일입니다. 그 일은 우리에게 불이익이나 위협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하느님 나라와 예수님의 복음에 길들여질 때입니다. 지금은 길들여지기 위해 마음과 몸으로 애쓰며 노력할 때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현실에 길들여진다면, 우리는 당당하게 예수님의 선포를 받아들이고 선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하느님 나라에 길들여지기” 중에서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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