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동 교수...

대학시절, 몇 번 뵌 뒤로 만나 뵙지 못했었다. 그 때가 2007년이었던가, 서광선 교수님이 서남동 교수 23주기 추모행사로 광주에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오랜 기억 속의 인물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1980년, 유학길에 오른 뒤, 그 분이 돌아가신 줄도 몰랐고, 5.18묘지에 계신 줄도 몰랐고, 그 분이 이 고장 무안출신이라는 것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연세대를 다니고, 신학과 강의도 많이 들었지만 서 교수님을 학교, 특히 강의실에서 뵌 적은 없다. 박정희 유신 시절(72학번인 나는 1학년 2학기 때 박정희의 유신이라는 것을 겪었다), 장기집권과 유신독재에 항거하던 주역 가운데 한분이셨던 서 교수님은, 옥에 계시거나 석방되어도 해직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학과 학생인 내가 특별히 그 분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 캐나다를 방문하셨던 서남동 목사님. ⓒ죽재 서남동 목사 100주념 기념사업회

1974년 겨울이었나, 1975년 겨울이었나,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사직터널 옆에 있는 수도교회 다락방같은 곳에서 서 교수님의 강의를 듣느라 다른 대학생들과 어울려 몇 차례 뵈었다. 그 때 주신 한 마디가 그 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창비에 실린 어떤 일본 사람의 글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였는데 ‘성경의 문학사회학적 해석’이 주제였다. 아직 비린내 나는 풋내기였지만 사회학을 전공한답시고 매우 진지하게 들었다.

성경을 보면, 그 안에 쓰인 당시 사람들의 삶과 제도와 문화 등을 미루어 알 수 있는데, 성경이 쓰인 시대 배경을 알아야 성경문구에 대한 해석이나 전달하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회는 변하기 때문에, 20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시각 그대로 2000년 전에 쓰인 성경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있고, 달리 해석되어 잘못 받아들이게 되는 수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병아리 사회학도인 나에게는 머리와 가슴에 꽂히는 말씀이었다.

광주동부교회라는 독립교회를 이끄시던 백영흠 목사님 밑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에게 오랜 만에 귀에 들어오는 말씀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사회학을 공부하셨다는 백 목사님도, 그때는 잘 몰랐지만, 매우 사회학적인 시각에서 성경을 말씀하셨고 사람들을 이끄셨다는 것을 내가 사회학을 공부하고 난 후에 깨닫게 되었다.

“사회는 변해왔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도 변해왔다.”는 말씀 끝에 드린 나의 질문, “그러면, 예수도 변했는가요? 예수도 변하는 존재인가요?” 절대 존재인 예수가 변하는가 하는 우문에,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시던 끝에 하신 말씀은 “그렇다”는 것이었다. 아마 평소에 생각하시던 것이 아니라서 한참 동안 고민을 하셨던 것 같다.

신학과 강의를 듣는 중에, ‘야웨’라는 거룩한 이름을 그대로 쓰고 부르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이라서 일부러 스펠링을 틀리게 썼던 사람들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질문을 한 나도, ‘어떻게 답하시려나’ 무척 궁금했는데, 간단히, 그리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예수도 변한다.” 그 뒤에도 뭐라뭐라 다른 말씀을 더 하셨는데, 이 부분만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고, 아직도 내가 곱씹고 되뇌이는 대목이다.

내 스스로 나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 멘토들을 생각해보면, 그때그때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수, 부처, 공자님은 빼고, 이름을 꼽아보라면 백영흠 목사, 큰바위 얼굴 어네스트(작품 속 인물이지만)를 자주 꼽는데, 서남동 목사님도 ‘예수도 변한다’는 한 마디 말씀으로 평생 나의 멘토역할을 하셨다.

그 분이 가라마라 하신 적은 없지만, 백영흠 목사님은 내가 사회학과를 가게 되니 당신이나 안병무 교수처럼 다음에는 신학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공을 많이 들이셨는데... 1960년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지금까지, 학생 아니면 선생으로 평생을 학교 안에 있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한 학기 동안은 학교 밖에 있었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신학을 할 것인가, 사회학을 계속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잠시 세상이나 돌아다녀보자’ 하고 집에도 소식을 끊은 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잘 놀았다. 결국 사회학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그 선택은 지금 생각해도 잘 한 것 같다. 신학자나 목사보다 사회학자로서 할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2007년에 서남동 교수님의 그림자와 다시 만난 후, 해마다 그 때가 되면 기다린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즐거운 이야기도 하고, 세상 이야기도 하고, 옛적 서 교수님과의 일화들도 이야기 하는 것이 좋아서 달력에 표시해 놓고 다른 약속도 안 잡고, 다른 곳에 가는 것도 피한다.

서 교수님께서 살아오신 길이, 어찌 보면, 예수의 길처럼 보여서 다시 새기고 돌아본다. “예수 믿어서 천국에 가라”고 외치는 사람도 많고, 우리 동네 성공회 신부처럼 “교회에 나오라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참에, 예수를 보면서, ‘예수라면 오늘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서 서 교수님의 말씀을 자주 떠올린다.

예수를 ‘믿어서’ 천국에 갈 생각은 없지만, 흉내 내보려고 나름대로 애는 쓰는데, 코끼리 발가락만큼이나 하고 있는지, 꼬리의 터럭만큼이나 하고 있는지 우스울 것이다. 화석화되고 갇혀있는 예수가 아닌 우리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오늘의 예수를 찾는데 도움을 주신 백영흠 목사님, 서남동 교수님이 계셔서 나의 삶은 매우 좋았다.

김순흥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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