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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의 기도(누가복음 22:39-46)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이성훈 | 승인 2018.03.11 23:28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저희는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에 누가복음을 통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고자 하는 말씀은 성경 전체, 복음서 전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가복음이 전하고 있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즉 오늘 본문과 거의 유사한 본문들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나와 있지만, 각각의 복음서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 전하고자 했던 신앙은 서로 다르고, 저희는 그 중에서 누가복음의 신앙만을 살펴보겠다는 말씀입니다.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40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41 저희를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분명 지난 주일에 저희가 함께 살펴보았던 사탄의 시험, 제자들의 배신과 연결되고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시간의 흐름상 이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말씀의 맥락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지난주의 말씀을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사탄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시험합니다. 사탄의 시험에 빠진 제자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갑니다. 유다는 대제사장에게 예수님을 팔았고, 다른 제자들은 도망갔습니다. 다만 베드로만은 예수님께서 그를 위해 기도하셨기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후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베드로에게 예고하셨던 일입니다.

제자들을 향한 사탄의 시험은 제자들에 대한 시험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향한 시험이었으며, 사탄의 마지막 시험이었습니다. 모두가 떠나갔을 때에, 나만 홀로 남겨졌을 때에, 더 심하게 말하자면, 함께 동고동락하던 사람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하게 되었을 때에 너는 어떻게 하겠는가를 묻는 시험이었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에 기도하셨습니다. 동산에 올라가 기도하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시험을 이기실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 내용,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그 내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계속되는 시험

분명 누가복음은 최후의 만찬에서 겟세마네 기도로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다른 복음서들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 기술하고 있는 겟세마네의 기도는 예수님의 인간적 고뇌와 내적 갈등, 무능한 제자들의 실패를 그리고 있습니다.

▲ Duccio di Buoninsegna. Maestà (back, central panel): The Prayer on the Mount of Olives. 1308-11. Tempera on wood panel. Museo dell'Opera del Duomo, Siena, Italy.

저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인 마태복음 26장 41절에 보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기도하지 못하고 잠들어버린 제자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나 마가에서 제자들은 육신의 약함으로 인해서 졸음을 참지 못하고 기도를 이어가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잠들어버렸습니다. 사실 그들이 잠들었다는 점은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그들은 조금 전까지 포도주와 빵을 즐겼습니다. 저희는 성찬식 때에 아주 작은 잔에 포도주를 마시지만, 당시의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런 잔에 포도주를 마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저희가 식사 중에 물을 마시는 만큼 혹은 국을 먹는 만큼의 포도주를 마셨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연히 졸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많은 교회들에서는 이 본문을 새벽기도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할 때에 사용하면서 육신의 약함을 이기고 새벽에 나와야 한다고 말합니다만, 이 본문은 제자들의 실패, 예수님의 옆에 붙어있었다고 해서 진정한 제자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 예수님의 본 제자 집단을 중요시하는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그들이 졸려서 잠든 것이 아니라 45절에 보면, 슬픔으로 인하여 잠들었다고 말합니다. 몇 가지 이야기를 드릴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누가복음이 제자들의 실패를 말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40절과 46절에서 예수님은 동일한 명령을 제자들에게 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이 이야기를 통해서 누가복음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시험’, 유혹이며, 이를 이겨내는 ‘기도’입니다.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부터 시작된 사탄의 시험, 예수님의 곁을 떠나도록 만든 시험은 지금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시험의 결과는 제자들의 잠듦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곁을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사탄의 시험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떠나가는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사탄이 지금 행하고 있는 시험은 제자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는 예수님을 향한 시험이었습니다. 모두가 떠나갔을 때에, 지독한 고독, 외로움에 처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될지, 무엇을 행하실지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 시험이 예수님께 통했을까? 저희는 신앙인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당연히 시험에 빠지지 않으셨다고 단언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이 전하고 있는 바도 그렇지 않습니다.

확실성이 불확실성으로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땀이 핏방울처럼 떨어질 정도로 뜨겁게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 내용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입니다. 이 기도는 분명히 시편 116편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만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두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입니다. 우리는 보통 뒤에 나오는 문장에 중점을 두고, 예수님께서도 최후에 약간은 흔들리셨으나, 하나님의 뜻에 따랐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흔들렸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뜻, 구원의 계획을 이미 알고 계시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자신이 십자가에 처형당함으로 인해서 인류가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는 확실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도 수차례 말씀하셨지만 자신의 부활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 길에 들어서는 것을 꺼리셨을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이신지라 눈앞에 닥쳐올 고통이 두려워서, 육신의 고통이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께 이런 간구를 드렸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께 이런 제안이 들어왔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이 겪으신 수난과 동일한 수난, 채찍질과 모욕과 십자가 처형,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당한다면, 내일 아침에 내 몸은 완전히 멀쩡하게 회복되어 있고, 내 통장에 100억, 아니 1000억이 입금될 것이다.”

인류 구원을 돈으로 바꾸어 생각하는 점은 조금 불경스러워 보이기는 합니다만, 이해하기 쉽게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처럼 마지막에 지옥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하루 고통 받으면 다음날 멀쩡히 회복되고 막대한 돈도 생깁니다. 이런 제안이 있다면 여러분께서는 하시겠습니까? 절대로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제안에 대한 보답이 확실한지가 불명확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확실하다면 다음날 멀쩡해지는데다가 1000억이 생기는데, 인생에서 하루쯤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받을 수도 있겠죠.

톰 크루즈가 주연했던 ‘엣지 오브 투모로우’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외계인과 전쟁하는 영화인데, 주인공인 톰 크루즈는 죽으면 바로 전날 동일한 장소로 되돌아가 깨어납니다. 처음엔 주인공이 죽음을 피해서 도망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외계인들과 맞서서 끊임없이 싸웁니다. 그가 이렇게 싸울 수 있게 된 이유는 죽어도 다시 되돌아가서 살아난다는 확실성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90년대에 나왔던 빌 머레이의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영화도 사랑이야기이긴 하지만, 이와 동일한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간다는 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 일이 자신에게 오지 않기를 바라셨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 십자가 고난, 부활, 인류 구원이라는 섭리를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이며 섭리이기에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일을 망설이고 계십니다. 심지어 땀이 피방울처럼 떨어질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하고 계십니다.

사탄의 마지막 시험, 철저한 고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시험으로 인해 파생된 결과입니다. 그것은 확실하게 믿었던 것이 불확실하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불확실함은 의심과 흔들림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불확실성의 근원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사탄이 한 일은 그저 철저한 고독 속으로 예수님을 몰아넣은 것 뿐입니다. 모두의 떠나감, 나 혼자만 세상에 남은 것처럼 느끼고,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만든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낸 영향은 대단합니다. 확실한 것조차 불확실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조차도 그 시험에 영향을 받으셨습니다.

혜민 스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 생각의 감옥 안에 갇혀있다’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 하면서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의 머릿속을 더욱 어지럽히며 고통스럽게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예를 들었는데,

“직장에서 퇴근 시간이 될 무렵에 상사가 나를 부르더니 지금까지 한 프로젝트는 웬만큼 됐으니 다른 동료에게 넘기고 내일부터는 다른 일을 하라고 지시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좀 우울해지면서 생각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상사가 왜 내가 지금까지 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그만두라고 한 걸까? 내가 일을 못했다는 뜻인가? 지난번에 맡았던 프로젝트를 제때 마치지 못해서 나를 못 믿어서 그런 건가? 이번에도 승진하기는 그른 것 같다. 스펙도 다른 동료보다 달리고 여러모로 자격도 안 되는 내가 팀장이 돼서 여러 사람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예전에 아버지가 그러셨지. 나는 형에 비해 뭐든 모자란다고. 결국 아버지 말이 맞는 건가. 아, 내일 회사 나가기 싫다.’

현실은 상사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긴 것뿐 이지만, 그 현실에 대한 해석들, 머릿속에서 나온 해석들은 수많은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끄집어내고 그것은 결국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스님이 한 얘기니까 우리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불교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실 속에서 우리들이 겪고 있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이건 우리의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은 거의 유사합니다. 다만 거기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사탄이 심어놓은 철저한 고독감은 우리를 생각의 늪에 빠뜨리고 생각의 늪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옥죄면서 확실했던 것마저도 불확실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누가복음이 이러한 생각의 감옥, 생각의 늪이라는 개념을 생각하면서 복음서를 기록하지는 않았겠지만,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는 이들이 고독감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흔들림은 예수님조차도 피해갈 수 없었다고 누가복음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험에서 벗어나는 길

누가복음이 이러한 시험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시험에 대한 두려움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탄은 두려운 존재임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앞에 당연히 놓이게 될 이 시험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분명 예수님의 삶에서 그 해답을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시험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어떻게 이 시험을 이기고 십자가로 나아가셨는지 명확하게 말합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너무 간단한 대답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지난주에는 우리가 고독하다고 느낄 때에도, 철저한 외로움에 빠져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번 주 본문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고독의 끝에서 ‘생각의 감옥’에 갇혔을 때에 ‘생각의 늪’에 빠졌을 때에 기도를 통해 벗어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기도는 아닙니다.

오늘 본문 39절에는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말이 적혀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다’는 말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시고 성전에서 말씀을 전하신 후에는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물론 다른 복음서들이 기도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가복음은 분명 다른 복음서들보다 기도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하여 습관적으로 행해왔던 기도가 시험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즉 21장 36절에서도 나왔다시피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결국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키포인트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꾸준히 습관적으로 기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그때만 조금 운동을 하고 몸이 괜찮아지면 다시 운동을 그만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몸을 좋게 만들겠다고 과도한 운동을 해서 지속적이지 못한 운동 습관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몸에 가장 좋은 운동은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너무 길지 않은 조깅같이 매일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 우리의 육체에 건강을 주듯이 꾸준한 기도가 우리를 시험에서 벗어나게 만듭니다. 고독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나를 옥죄어오는 생각의 늪에서도 벗어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셨기에 결국 사탄의 마지막 시험을 이겨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확실성을 되찾으신 후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꾸준히 기도하심으로 시험을 이기시길 바랍니다. 어떤 순간에도 여러분 옆에 계신 하나님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시길 바라고 믿으며 축원합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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