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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곳이 쓰이기 때문에”無之以用도덕경과 마가복음을 묵상하면서 11
이병일 | 승인 2018.03.20 02:23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는데, 당연히 그 속이 비어 있어야 수레가 쓸모 있다. 반죽하고 붙여서 그릇을 만드는데, 당연히 그 속이 비어 있어야 그릇이 쓸모 있다. 문과 창을 뚫어 방을 만드는데, 당연히 그 속이 비어 있어야 방이 쓸모 있다. 그러므로 있는 것(형체)이 유익하게 되는데, 그 빈 곳이 쓰이기 때문이다. ”
- 노자, 『도덕경』, 11장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用

10장의 물음(“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림에 능히 무위(無爲)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無는 나라를 다스림에 인위적인 수단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인위적인 수단을 쓰지 않는 無가 정치에 쓸모 있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예법과 형벌 등 인위적인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릇이나 방은 그 속이 비어 있어야 쓸모가 있듯이 예법이 없는 정치가 쓸모가 있습니다.

수레, 그릇, 집 등과 같은 존재의 세계는 분명 이로움을 주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질적 존재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텅 빈 무의 세계입니다. 모두가 비움으로써 채움을 가능하게 합니다. 무가 유를 낳게 하는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존재의 세계가 눈에 보이는 존재의 현상 세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도의 세계는 보이는 가시적 세계보다는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무의 세계에 더 주목합니다. 인간은 이미 존재하는 유의 세계에 익숙하고, 유의 세계에 집착하게 되고 빠지게 됩니다.

MB가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았는데,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다고 합니다. MB의 혐의는 다스 및 도곡동 땅 등 차명재산 의혹, 삼성전자로부터 미국에서 진행된 다스 소송비 60억 원을 대납 방식으로 수수한 혐의, 다스의 BBK 투자금 140억 원 반환 소송에 청와대 등 국가기관을 개입하게 한 혐의, 300억 원대 다스 비자금 조성 및 탈세 등 경영 비리 혐의, 지난 2007년 대선 당시부터 측근과 친인척을 통해 민간으로부터 수십억 원 전달받은 혐의입니다. MB의 모든 협의는 돈을 향한 탐욕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권력과 돈을 모두 탐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적폐의 최고봉입니다. 그러면서도 혐의를 모두 부인하는 것은 탐욕으로 가득 찬 마음을 아직도 비우지 않고 부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MB의 이러한 태도는 노자에 의해서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합니다.

네가 길이라면 나는 길 / 밖이다 헝겊 같은 바람 치렁거리고
마음은 한켠으로 불려다닌다 / 부드럽다고 중얼대며
길 밖을 떨어져 나가는 / 푸른 잎새들이 있다 햇살이 
비치는 헝겊에 붙어, 말라가는 / 기억들 가벼워라 //
너는 한때 날 가로수라고 / 말했었다, 길가 가로수
그래, 그리하여 전군가도의 벚꽃쯤은 / 됐던 것이었을까, 그래서 봄날의
한나절 꽃들의 투신 앞에서 / 소스라치는 절망과 절망의 그 다음과 같은
화사함을 어쩌지 못했던 것일까 //
내가 길의 밖일 때 / 너는 길이었다
내가 꽃을 퍼부어대는 가로수일 때 / 너는 내달려가는 길, 아니 
그 위의 바퀴 같은 것이었으니 //
오히려 길 밖이 넓다 / 길 아닌 것이 오히려 더 넓고 넓다
- 이문재의 시 “길 밖에서”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에 길들어져 있습니다. 돈과 권력을 향한 탐욕, 자기와 가족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 당장 보이는 눈앞의 현실만을 생각하는 집착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흐름을 거부하고 더불어 함께 살려는 대안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쓸모 있는 비움의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은 쓸모 있는 빈 공간을 만들고 있는 벽과 그릇을 인정하면서 자기의 탐욕을 비우는 사람들입니다. 절망과 죽음과 공포를 뛰어넘는 희망을 품는 사람들! 미련하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사람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쓸모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것입니다.

“이미 꿰맨 이후에는 오래된 옷이나 새로운 조각은 옷의 일부가 됩니다. 그 옷이 더 심하게 찢어진 다는 것은 옷 자체가 아예 망가진 다는 것입니다. 새 포도주가 오래된 가죽 부대를 터뜨리면 가죽 부대는 물론이고 포도주도 쏟아져 버리는 것입니다. 오래된 옷에 새로운 조각을 깊지 않는 이유나, 새 포도주를 오래된 가죽부대에 담지 않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공동체 모두를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새 것과 오래 된 것의 가치평가는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래 된 것과 새 것이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 내에서 우리는 옷을 깁고 술을 담는 일을 할 때에 옷이 찢어지지 않도록 가죽 부대가 터지지 않도록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면서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를 닮는 일이고, 서로를 살리는 일입니다. 어떤 공동체 속에서든 함께 살기 위하여 헌옷과 생베조각, 헌 부대와 새 술, 각자가 처한 상황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의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함께 살기 위한 목적이 중요합니다.”
- 이병일, 『미친 예수』(서울: 도서출판 밥북, 2017), “함께 살기 위하여” 중에서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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