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월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NCCK 정의평화위원회와 제주NCC가 주최하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제주노회 정의평화위원회가 주관한 사순절 맞이 “제주 4.3 길을 걷다” 프로그램에 참여하였다.

걷고 싶었다. 봄도 되었거니와 귀한 휴가를 잘 보내고 싶었고, 조용한 역사기행일거 같아  신청하여 바쁜 와중에 맘 졸이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교회(주민교회) 전도사님께서 확답을 주셨을 때 기뻤다. 구역식구여서 같이 신청한 현광순 집사님과 조수복 권사님, 세 명이 조촐한 공동체 여행을 할 수 있다 하니 일단 설레였다.

사실 4.3유적지를 일찍이 1996년 1월쯤 역사교사모임연수에서 돌아보았으나 백조일손지묘와 관덕정, 동광리의 동굴을 힘겨운 낮은 포복으로 들어가 동굴 안을 들어보았던 충격(그 당시 아직도 주민들이 쓰던 옹기그릇들이 널부러져 있었기에), 해안가 일본 가미가제용 동굴을 보았던 몇가지 기억만 남아 있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께서 2006년 4.3 위령제에 참여하여 추도사를 읽어 내려갈 때 TV중계를 보고 내가 한 없이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 현의합장묘 앞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최용숙 주민교회 집사 제공

첫날 성남 용인에 사는 우리들은 다섯 시 정도에 공항버스를 타고 움직였기에 일찍이 제주에 도착하였다. 항상 바쁘게만 오가던 제주공항 공원 앞에서 야자나무 귤나무아래에서 사진을 찍으며 현 집사님이 가져오신 셀카봉 조작이 여의치 않아 어찌 웃어가면서 사진을 찍었던지 줄지어 서있던 택시기사 분들이 심심치 않았을 것이다.

제주공항에서 기행단의 짧은 오리엔테이션과 자료를 받고 버스차량 두대에 나누어 용두암근처의 식당에서 맛있는 성게알 미역국을 먹고 바로 4.3 평화공원으로 향했다.

날씨도 좋았고 제주의 풍광을 즐기며 중간산쪽으로 올라가니 아주 넓은 평화공원이다.

우리의 안내자이고 멋진 송영섭 목사님의 우렁차고 감동적인 해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송 목사님은 우리 교회에 계셨던 전도사님이셨으니 더욱 반가울 수밖에.

교단 대표들이 헌화를 하고 들어간 위패기념관은 4.3의 희생자 인원을 가늠케 하는 공간이다.  공식집계는 만 오천 여명이지만 그 당시 인구의 십분의 일인 삼만 여명이 희생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고, 아직도 발굴중이기 때문에 빈 위폐자리와  기념관 중앙에  왜 백비가 길게 놓여있는 지를 알 수 있었다.

봄바람이 휘몰아치는 평화공원에 중앙에  엄마가 아이를 업고 맨발로 걷는 조각상을 돌아보며 1945년부터 54년 9월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민족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당했는지 뼈저리게 느껴져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할 정도였다.

기념관에서 양조훈 이사장님의 그간 4.3기념사업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해주시며 강의를 해주셨고, 곧바로 두 팀으로 나누어 기념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생생한 동영상 증언들과 특히 토벌대이자 도민학살의 주범들인 서북청년단의 만행들이 기독교도인 우리들을 더 분개케 했다.

서둘러 북촌의 너븐숭이 학살현장으로 향했다. 순이삼촌의 무대... 대학졸업 이후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을 때 처음 접했던 연재소설... 아직도 어린 날의 단상을 가지고 계신 고완순 어르신의 증언.... 살다보니 살아지더라는 말씀이 가슴을 멍하게 만든다. 49년 1월 추운겨울 500여명이 집단 학살된 이 북촌마을... 학교마당이 피로 물들어 검붉게 된 땅을 잊을 수 없다는 할머니... 너븐숭이 들판에 낮게 핀 수선화꽃무리들이 바람눈물에 흔들리고 송 목사님의 노래가 가슴을 짓이겼다.

ⓒ최용숙 주민교회 집사 제공

둘째 날 밤새 비바람이 새차게 몰아쳐 걷기순례일정을 변경하였다. 한라산의 짙은 안갯길을 뚫고 도착한 곳은 남원읍의 의귀리 복지회관.

평생을 4.3에 헌신해 오신 의귀리 학살현장의 증언자이신- 전 회장님??-의 현의합장묘가 마을의 희생자분들을 위한 집단무덤이고 지금의 현의합장묘역이 어떤과정을 거쳐 위령공원으로 조성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곧바로 우중산책처럼 묘역을 둘러보았다. 하얀 백구 한 마리가 회관 뒤편 묘역지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름이 “상생”이란 설명을 들으니 묘역보다도 백구에게 더 관심이 끌린다.

또한 49년 1월 12일 의귀초등학교 교전에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들을 집단 매장한 송령이골이 있다. 의귀리 유가족분들이  마을사람들의 묘역과 함께 이 야트막한 언덕의 무덤을 돌보아 왔다고 한다.

송령이골을 돌아보며 같이 동행했던 회장님의 이야기 중 이덕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집안 좋고 일본 교토에서 대학을 마치고 고향 조천중학교에서 사회, 체육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2대 무장대의 지휘관, 사려니숲 길로 우리에게 알려진 곳에서 경찰과 대치하다 붙잡혀 49년 6월, 효수된 머리와 관덕정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 때 낡은 군복 웃도리에 꽂혔던 “지상에 숟가락 하나”

<현기영 소설>... 그의 무덤조차도 자손들이 쉬쉬하며 이리저리 이장해야만 하는 제주도민의 말로 표현이 안 되는 4.3의 피맺힌 사연들... “학살이 집중적으로 자행되었던 그해 겨울과 초봄, 한라산 눈 속에서 동백꽃이 무수히 떨어졌다.”(그 소설 속에서 한줄 인용)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4.3 평화공원에서 보았던  제주국제공항의 약 400여구가 넘는 유골 사진은 밤에 누우면 천정에서 보이고 섯알오름 학살터에서 한여름날 200여명의 시신들이 엉켜 마치 멸치액젓처럼 되었다는 송영섭목사님의 해설이 귀전을 맴돈다.

오늘 4.3 항쟁 70주년기념일! 
나는 이번 기행 중 제주 4.3기념사업회에서 받은 예쁜 동백꽃 뱃지를 달고 출근을 하려한다.

최용숙  mach20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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