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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4.3평화공원-‘고난함께’ 제주 평화기행 1
최근규 | 승인 2018.05.10 22:13

‘死・삶 (4・3), 그 사이에 삶은 어디로 향하는가?’ 4・3사건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평화기행에 임하며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졌다. 화두를 던진 까닭은 여행(旅行)이 아니라 기행(紀行)인 까닭이다. 단순한 여행이 되지 않으려 화두를 벼리 삼아야 했다. 삶과 죽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잘 보고, 잘 들어야 했다. 그것이 이번 평화기행의 기행문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임무라 생각했다.

우리 숙소는 제주 중산간(서귀포 표선면 토산리)에 위치한 ‘빌레하우스’(한국기독교장로회 제주노회 소속 윤태현 목사 운영)라는 이름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빌레’는 제주방언으로 ‘반석’이라고 한다. 나름대로 집의 이름을 풀이해 보자면 ‘반석의 집’이라 부를 수 있을 텐데, 정말 그 집에 반석 같이 단단해 보이는 사람들이 모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고난받는 이들을 기억하고 품겠다.”며 뭍에서 제주까지 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석 같은 사람이라도 피곤한 눈꺼풀을 들어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20명 정도의 기행인원 중 대부분이 이른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주일사역을 마치고 왔기에 첫날밤은 간단한 일정소개로 모임을 마쳤다.

바로 이부자리로 향하고 싶었지만 제주바람을 느끼고 싶어 문밖에 나서니, 4・3기념식에서 낭독되었던 한 편의 시가 생각이 났다.

섬, 사월의 바람은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 같은 것

밟고 선 땅 아래가 죽은 자의 무덤인줄
봄맞이하러 온 당신은 몰랐겠으나
- 바람의 집, 이종형

우리가 머무는 빌레하우스가 제주 중산간 위치에 있음을 되돌아본다. 중산간 지역은 무장대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거의 모든 가옥이 불태워 진 곳이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의 죽음을 반석삼아 이곳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다.

4·3 평화공원, 혐오와 분노를 넘어 화해와 상생으로

둘째 날 아침 기상과 함께 4・3평화공원으로 향했다. 4・3기념관은 이번까지 포함하여 세 번째 방문이다. 그곳에는 아직까지 백비가 세워지지 못한 채로 있었다. 백비가 세워지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이 사건이 민주화 항쟁으로, 누구에게는 무장단체를 토벌하기 위한 군사작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고난함께’가 주최한 4・3사건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평화기행에 참석자들이 제주 4.3평화공원을 돌아보고 있다. ⓒ백현빈

문제는 4・3 사건을 단순히 이념갈등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약 3만 명, 당시 제주도민의 10분의 1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됐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었다. 군인과 서북청년단은 빨갱이 잡는다며 양민들을 죽였고, 무장단체들은 제주시민들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며 죽였다.

두 번째 이유는 유족들 간에 상생과 화해가 온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했지만 양민학살이 무차별적으로 이루어 졌기에, 희생자들의 죽음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족들은 70년 이라는 세월동안 온갖 갈등을 겪어내야 했다. 한 땅위에 살지만 서로가 서로를 죽였던 원수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빨갱이의 후손이라 불릴까, 학살자의 후손이라 불릴까 서로 숨죽여 살아야 했다.

“저는 양쪽 모두의 피해자입니다.” 한 시간의 가량의 해설을 마칠 무렵 평화공원 해설자 분이 꺼낸 말이다.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듯, 제주도에도 상생과 화해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며 밝은 미소를 비추셨다. 피해자 유족들은 죽음의 모양이 어떠하든, 죽음을 넘어 이제는 서로 화합하고 살자며 서로에게 대화와 화해의 손길을 조금씩 내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평화가 길’이라는 사실이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해서는 안 된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 무장단체를 해산시키기 위해 군대와 함께 서북청년단을 파견했다. 이는 분명 이념갈등을 조장하고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서북청년단원들은 대부분 북녘에서 땅과 권력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쫓겨난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좌익세력은 ‘악’이나 마찬가지였다. 좌익세력 숙청은 하나의 사명이었던 것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던 서북청년단원들은 태극기를 강매해 생계를 이어갔다. 자신들이 판매하는 태극기를 구입하지 않는 이들은 빨갱이로 간주해 폭력과 살인을 일삼았다. 서북청년단의 만행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문득 이들 또한 이념갈등이 낳은 또 다른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이 받았던 혐오와 분노의 총구를 세상을 향해 겨누었다. 권력에 편승해 나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악으로 규정하고 학살하는 괴물이 되었다.

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요즘, 이 평화가 거짓된 평화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갈등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괴물들에게 평화가 아름다워 보일 수 없다. 염려되는 바는 갈등조장에 편승되어 국민들이 또 다른 혐오와 갈등을 낳을까 하는 점이다. 평화는 느리지만 혐오는 빠르다. 4・3사건은 일제로부터 민족해방을 이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규  gonanwit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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