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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선과 서남동내가 만난 서남동 목사 ⑯
노정선 | 승인 2018.05.13 21:29
노정선 목사: 연세대 명예교수, 하바드대 석사, UNION THEOLOGICAL SEMINARY, PH.D.. 현 NCCK 통일위원, YMCA 평화통일운동 공동대표, 열린평화포럼 공동대표, 북한 밤나무 보내기 운동본부,  RADIO FRANCE INTERNATIONAL ANALYST, BBC FREE LANCE ANALYST.

1964년 연세대 신학과에서 서남동 교수를 만났다. 그는 안테나 신학자라고 불렸다. 하비 콕스, 유르겐 몰트만, 판넨베르크, 떼이야르 드 샤르뎅 등 시대에 유명한 외국 신학자들을 소개하는데 천재였다.

한번 세계교회협의회 신학 컨퍼런스에 참석했는데, 그는 완전히 자신감을 가지고 참석했으나, 크게 망신을 당했다. 질문은 “김지하 시인이 사형을 당했는가? 감옥에 아직 살아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는데, 그는 김지하가 누군지를 전연 몰라서 답을 하지 못했다. 뉴욕타임스는 7장의 완전기사를 김지하의 시들을 소개하고 “Revolutionary Poet”라고 일요주간지에 실을 정도였다.

서남동 교수는 일본에서 김지하의 시집을 사서 종로 2가 YMCA 호텔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일주일 동안 시를 읽고서, 드디어 김지하의 신학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민중신학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1965년 연세대 정문 앞에서 전경들에세 자갈돌들을 던지면서 시위를 했는데, 서 교수는 아주 큰 소리로 나를 야단을 30분 이상 쳤다. 데모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죽재 서남동 목사 100주년 기념사업회 제공

1974년 내가 연세대 교목으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선언문 초안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저에게 “민주화 선언”에 서명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독재타도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1976년 결국 감옥으로 갔다. 1977년 나는 서남동의 민중신학을 중심으로 해서, “1894년 동학혁명에서의 민중의 정의를 위한 투쟁에 나타난 폭력과 비폭력”으로 뉴욕에 있는 Union Theological Seminary에서 Ph.D.를 받았다.

1984년 여름 서 교수와 사모님은 유니온에 오셔서 세미나를 했다. 방학이어서, 6명 정도가 모였고, 노영순(나의 큰 누님)도 참여했다. 그는 물질적으로(Materialishe) 신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다. 마르크스주의적인 말씀을 하는 것으로 들렸다.

그는 폐암으로 결국 2주 후에 일본에서 민중신학을 강의하던 중 쓰러지시고, 세브란스에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가 비교적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강의한 것을 속기한 자료를 누군가가 나에게 전달해주어서, 그 민중신학자료을 원본그대로 복사를 해서, 예일대학교 아카이브(귀중본 도서실)에 기증을 해서 Minjung Theology 라는 제목으로 보관되어 있다.

안병무·김용복·서광선 등의 제1 세대 민중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서구신학과 다르게 민중문화 민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만든 것이 서남동의 특징이었다. 오리지낼리티가 가장 강한 신학자였고, 세계 신학의 역사에 주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특히  한의 신학이 그렇다.

그의 신학은 당시 독재정권 치하에서, 민중들의 해방 투쟁을 신학적으로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은 주로 맑시즘을 사용한다. 그러나 서남동은 한반도의 고유한 개념과 패러다임을 사용하는 특징에 성공했다.

나는 결국 박사학위 논문을 한국의 고유한 투쟁역사를 민중신학의 틀을 사용해서 저술했다. 1983년 박사학위를 받기 일년전에 필자는 “First World Theology and Third World Critique: Reinhold Niebuhr from the perspective of Minjung Theology”(New York, The Sung Press, 1983, Seoul, 1987)를 출판했고, 박사논문 “Religion and Just Religion”(New York: The Pana Press 1984; Seoul. 1987)을 출판했다. 그 후 나는 통일신학, 인민신학을 발전시켰다.

민중신학은 남한의 신학으로 1975년 경에 발생되었고, 인민신학은 1945년 경부터 강량욱 목사를 중심으로 북에서 발전된 신학이며, 레위기 25장 희년의 명령을 실천하는 신학이다. <민중신학+민중신학=통일신학> 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냈다.(각주 1)

지난 5월 1일부터 3일 까지 중국 단동에 가서, 북한에 밤나무 묘목 20,000 그루를 보내는 작업을 했다. 신의주와 의주의 산들에는 거의 완전하게 나무들이 없다. 장작으로 사용되었고 다락밭을 만들기 위해서, 나무들을 베었는데, 그 결과 산사태가 나서 논, 밭이 다 무너지고, 홍수가 나도 조절을 하지 못하는 산이 되어 버렸다. 밤나무 3억 그루를 심으면 150만톤의 밤과 밤꿀 100만톤이 생산될 것이며, 북은 이를 남한과 외국에 수출해서 경제를 살릴수가 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서 레위인과 제사장들은 강도 당한 사람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오늘의 신학자들은 바로 이 제사장과 레위인들처럼 산다. 강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사마리아인들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분단의 범죄를 저질렀고, 그 밤죄에 대해서 보상과 배상금 10경 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이 돈으로 북의 낙후한 경제와 식량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

미국은 북에 대해서 경제제재, 군사적 제재를 풀어야 하며, UN은 즉시 모든 제재를 풀어야 정의가 실현될 것이다. 일본도 대북제재를 즉시 풀고, 북에 200억 불 정도의 지원 투자를 해야 구원을 받는 일본이 될 수 있는 문이 열리기 시작할 것이다.

각주

(각주 1) 노정선, 지속가능한 평화와 통일 전략, 파주, 한울, 2016, “민중신학 인민신학 통일신학” 참조.

노정선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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