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 있어 ‘문익환’은 마치 바위 위에 새겨진 글씨처럼 지울 수 없는 분명한 이름 석 자이다. 문익환 목사는 1976년 이전까지 ‘한국신학대학’ 교수와 성서번역학자로 활동했다. 그러나 장준하 선생의 의문의 죽음을 계기로 ‘3.1 민주구국선언 사건’부터 시작해 60대의 노구를 이끌고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의 길로 투신했다. 1976년 59세에 처음 구속된 이래 1994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생애 마지막 17년 중에서 11년 반을 감옥에서 보낸 것이다.

▲ 늦봄 문익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예배당에서 기념예배가 진행되었다. 이날 기념예배에는 문익환 목사와 함께 했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동료들, 제자들과 이웃종교인들 250여명이 참여해 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고상균

한국기독교장로회 장공 김재준 목사의 뒤를 이어 장준하, 함석헌과 함께 개신교의 대표 격으로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을 이끌어 간다. 또한 가톨릭 대표인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원주교구장 지학순 다니엘 주교, 서울대교구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 전주교구 문규현 바오로 신부 등과 두터운 교분을 가지고 있었으며 늘 돕는 관계였다. 이들과 함께 한국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의 효시, 문익환 목사

특히 한국 현대사에서 그 남긴 가장 큰 사건은 1989년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만나 포옹을 하며 회담의 시간을 가진 것이었다. 이 사건은 곧바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 임수경 전 의원의 1989년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 참여로 이어졌고, 민간 차원 통일운동의 불씨를 당긴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단순히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을 위한 방북이 아니라, 문익환 목사는 이 방북을 통해 김 주석과 통일에 대한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 이야기가 이후 1991년 “남북합의서”와 2000년 “남북 공동선언”에 그대로 반영되는 선구적 길을 개척했던 것이다.

▲ 6월1일, 늦봄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예배당에서 기념예배가 진행되었다. 이날 예배는 늦봄 문익환 목사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세워진 "늦봄학교" 학생들이 풍물로 예배의 시작을 알렸다. ⓒ고상균

이러한 ‘늦봄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6월1일(금) 오후2시 수유동 소재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예배당에서 “새롭게 펼쳐진 늦봄의 꿈”이라는 주제로 ‘기념예배’가 진행되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주최하고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평화통일위원회와 한신대학교, 한빛교회가 공동으로 주관한 예배였다. 이 자리에서 ‘함세웅’ 신부는 늦봄을 이렇게 기억했다.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통일을 앞당겼던 예언자, 문익환 목사

▲ 문익환 목사와 함께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함께 했던 함세웅 신부가 이날 기념예배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고상균

“서대문(형무소)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재판을 받으러 가기 위해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대화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문익환 목사님이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셨어요. 저야 제자 격이니 문 목사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쪽이었습니다. 제가 목사님으로부터 크게 자극을 받았던 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개신교 목사님으로서의 자유로운 신학의 자세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함세웅 신부가 가톨릭의 정형적인 신학과 비교해 “자유로운” 것이라 규정했지만, 문익환 목사가 가졌던 이 “자유로움”이야 말로 “늦봄” 삶의 궤적을 잘 설명해 주는 키워드로 고쳐 읽어도 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엄혹했던 군사독재정부 시절, 반공주의와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이 한국사회를 짓누르고 있었을 때 방북을 결심하고 김일성 주석을 만나 통일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 “자유로움”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가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번역해 내놓은 ‘공동번역성서’는 그간의 전통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신학적 상상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문익환 목사, 문명의 대전환을 꿈꾸었던 몽상가

그러나 이러한 문익환 목사의 삶과 사상은 과거의 유물로만 남겨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이날 예배의 핵심이었다. 기념 예배에서 현 KBS 방송 이사장을 맡고 있기도 하며 그 자신을 “늦봄의 제자 1세대”라고 칭한 김상근 목사는 “예수의 이상, 인류의 꿈, 늦봄의 꿈”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늦봄 문익환 목사의 신학 세계를 더듬고 그의 현재성을 설파했다. 김 목사는 ‘고은성’ 어린이(한빛교회)가 봉독한 이사야 2장 4~5절 말씀에서 늦봄 문익환 목사의 신학을 발견했다.

“칼의 문화가 창궐해 있을 그때 이사야가 꿈을 꿉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꿈,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치지 않는 꿈, 다시는 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꿈. 주께서 나라들을 판결하시는 꿈, 뭇 백성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해 주시는 꿈. 이 꿈을 꿉니다. 그 바탕에는 큰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칼과 창의 문명을 흘려보내지 않고는 평화를 만들 수 없다는 큰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보습과 낫의 문명으로 시대의 대전환을 이루지 않고는 평화를 만들 수 없다는 큰 깨달음이 그 바탕에 있습니다. (...) 공존과 상생의 문명으로의 대전환을 이루는 꿈을 꾸었습니다. (...) 칼과 창의 문명을 거두고 보습과 낫의 문명으로의 전환은 인류의 꿈이었습니다. (...) 늦봄도 보습과 낫의 문명을 꿈꾸었습니다.”

▲ 늦봄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예배 설교를 맡은 김상근 목사는 문익환 목사가 문명의 대전환을 꿈꾸었던 성서의 전통을 이어갔다고 강조했다. ⓒ고상균

김 목사는 늦봄 문익환 목사가 추구했던 통일의 꿈을 보습과 낫의 문명으로의 대전환을 이루려 했던 것으로 평가했다. 그리고 이러한 늦봄의 사상이 바로 오늘에도 되살려야 할 정신으로 파악했다. 김 목사의 표현대로 “칼의 문명을 거두고 보습의 문명으로 대전환”을 이루어내는 것이 늦봄의 제자들이 가야 할 길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예배에는 늦봄 문익환 목사를 기억하는 이웃종교인들을 비롯해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함께 했던 인사들, 그리고 제자들과 교계 인사들 250여명이 참석해 예배당 안을 가득 채웠다. 특히 늦봄 문익환 목사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세워진 “늦봄 학교” 학생들이 풍물과 늦봄 문익환 목사의 삶을 연극으로 표현한 “늦봄 문익환”라는 창작극을 선보여 많은 갈채를 받았다.

예배를 마친 후 참석자들은 늦봄 문익환 목사와 그의 아내이자 함께 통일운동의 선두에 계셨던 ‘박용길’ 장로가 생활했던 “통일의 집”을 개조해 유품들을 전시해 놓은 “문익환 통일의 집” 박물관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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