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즘의 생명은 대화와 소통에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 테이블에 둘러 앉아 상대방의 생각을 경청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피력한다. 서로 다르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상대를 부정하지 않는다. 에큐메니즘은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대화의 원칙을 잘 지키는 훈련을 요구한다.

대화를 거부하는 보수 교회들

먼저 주 안에서 하나가 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화의 원탁에는 중앙에 성서의 말씀을 놓고 말씀을 함께 읽으면서 말씀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는 일에서부터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마침내 의견이 모아지면 좋겠지만 의견이 분분하여도 괜찮다. 다만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으로도 대화의 의미는 충분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이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성도들의 생각이 분분하기에 함께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의견은 존중되고 조율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자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통령 탄핵을 음모라고 주장할 때 그들은 보수의 궤멸을 탄식한다. 그들은 또한 성조기를 흔들면서 남북 간의 평화회담을 반대하고 전쟁을 불사하고서라도 김정은 정권의 멸망을 통한 통일을 기원한다. 우리지역에서 유명한 기장 소속의 대형교회의 어느 원로목사는 근자에 북한정권을 사탄의 정권이라고 규정하면서 사탄과 대화하는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오직 기도로써 김정은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들과 대화하는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에큐메니즘은 그들과도 대화한다는 마음을 품어야 한다.

6월 12일에 북미회담이 열릴 때 한반도에 종전선언이 이루어질 희망이 엿보인다. 종전선언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비핵화가 진행되면서 군축도 큰 규모로 이루어질 것이다.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남북의 철도청장이 참여한 것은 남북교류가 활성화 될 전망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북한에 전도하고 교회를 세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다. 북한선교의 길이 열린다면 NCC나 한기총이나 근본주의자들이나 누구나 환영할 것이다.

남한의 불량교회들

그러나 문제는 북한 교회의 입장이다. 조그련과 노동당이 기독교의 진출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문제이다. 남한의 기독교가 북한에 진출하면 어떠한 사회적 영향을 끼칠 것인지 궁금하다. 현재 교회들이 우리사회에서 끼치는 해악을 보면서도 북한이 남한의 기독교를 환영할 수 있을까?

그들은 불량한 기독교라고 판단할 것이다. 이런 불량 기독교를 아무런 여과도 없이 북한에 그대로 전파해도 될까 염려스럽다. 교회사에서 나타났던 온갖 나쁜 적폐들이 한국교회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교회주의, 교권주의, 목회자세습, 성직매매, 교회재산사유화, 창조과학회, 근본주의, 신비주의운동, 이단사상, 등등 변명할 수 없이 명백한 불량품이 한국기독교를 규정한다. 한국의 ‘세계선교’는 불량 기독교를 세계에 수출해 왔다.

에큐메니즘은 종전선언을 앞두고 북한선교의 원칙을 바르게 제시해야 한다. 기독교 확장주의자들이나 교회주의자들이 북한을 ‘복음화’ 내지는 ‘정복’이라는 선교적 목적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하지만 에큐메니즘은 해방정국에서 북한정권이 교회를 탄압하게 된 원인을 더욱 깊이 분석해야 한다.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출현과 전개에 대해서도 더욱 깊은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서양의 선교사, 특히 미국의 근본주의자 선교사들이 일제시대와 해방정국에 북한교회에 미쳤던 영향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서구기독교의 신학사상을 근본에서부터 재조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교회와 국가’라는 주제도 더욱 심도 깊게 다루어야 한다. 이 작업에 성서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조그련과 공동으로 성서를 연구하는 에큐메니칼 공동연구의 과정은 통일한국을 내다보는 선교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성서가 가르치는 생명사상

성서는 생명사상을 가르친다. 역사를 움직이는 분은 성령이고 성령은 물을 통해 일하시며 성령의 역사는 생명을 창조한다. 성령과 물과 생명의 관계는 창세기 1~2장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예수는 생명이다. ‘오직 예수’란 기표(시니피앙)가 담고 있는 기의(시니피에)는 다름 아닌 생명이다. 예수선교는 생명을 살리는 역사로 나타나야 한다. 북한선교도 마찬가지이다.

▲ Thomas Cole, O xardín do Edén, detalle ⓒWiki

창1:2은 ‘하나님의 영’과 ‘물’의 상호관계를 선포한다. ‘물’이란 단어 <마임 מַיִם>은 창세기 1장에서만 무려 11회나 반복하여 언급된다(창1:2, 6, 6, 6, 7, 7, 9, 10, 20, 21, 22). 창세기 2장에도 물이 자주 언급된다. 창2:6에 <에드אֵד >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온 지면의 흙을 적시는 물로서 “안개“라고 번역되어 있다. 창2:6에는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오는 “강“이 언급된다. 히브리어로 <나하르נָהָר >이다(창2:10, 13, 14, 14). 더 나아가 창세기 1~11장의 토라서론 부분의 노아홍수기에서 ‘물’<마임>이란 단어가 21회나 등장하고 있다. 성서는 물을 강조한다(창6:17; 7:6 이하).

성서시대에 사상의 주류를 형성했던 헬레니즘에서도 ‘물’은 매우 중요한 주제였다. 탈레스는 ‘물’에서 만물이 생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형이상학을 논하며 만물의 제일원리는 물이라고 보았다. 성서와 유사하게도 헤시오도스도 안개가 지면을 적시고 생명이 흙에서 발원한다고 노래하였다.

헬레니즘의 세속적 사조에 대해서 성서는 더욱 깊은 묵상으로 나아간다. 빛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물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물은 성령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고 성서는 선언한다. 안개가 솟아올라 지면을 적시니 사람과 동물이 그 젖은 흙으로 창조되었다(창2:6, 19). 헬레니스트와는 달리 성서의 창조선언은 물과 성령의 관계 속에서 생명이 창조되었다고 강조한다. 생명사상의 기조는 요한계시록까지 줄기차게 이어진다.

생명사상은 창1:11~12의 핵심이다. 창조의 셋째 날에 ‘보시기에 좋았다’는 평주가 두 차례 나온다. 무엇을 보시고 좋아하셨는가? 마른 땅에 자라는 식물을 보고 좋아하셨다. ‘식물’은 히브리어로 <데쉐דֱּשֶׁא>이고 그 파생어 동사는 ‘싹이 나다’란 뜻의 <다샤דָּשָׁא>이다. 동종목적어를 사용하여 <타드쉐 데쉐>라고 표현된다.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창1:11). 이 문장에서 생명창조의 핵심어는 ‘싹틈’<타드쉐>과 ‘씨’<제라>와 ‘열매’<퍼리>인데 생명창조를 노래한다. 이 중에 ‘씨’라고 번역한 <제라זֱרַע>는 생명을 가리킨다. 궁창이 생기자 하늘이 창조되었고 물이 한 곳으로 모이자 바다가 창조되었으며 ‘마른 곳’<야바샤יַבָּשָׁה >이 드러났다(창1:9). 거기에 처음으로 생겨난 <제라זֱרַע>, 곧 ‘씨알’이 생명이다.

성서 저자의 한계와 그 극복

생명이 창조된 후에야 넷째 날의 창조가 이어진다. 넷째 날 창조기사인 창1:14~19은 지구 중심의 관점에서 우주를 바라본다. 태양계나 은하계를 지구에서 바라본 관점이다. 해와 달이 가장 큰 별이고 그 둘을 둘러싼 성좌들이 창조되었다고 본다.

성령께서 저자를 감동하여 성서를 기록하실 때 저자가 몸 담은 역사의 한계성은 본문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서의 저자는 고대의 세계관을 지닌 분이었고 프톨레마이우스와 마찬가지로 천동설에 공감하였던 분이다. 성령께서는 인간을 최면에 빠뜨린 다음 그 인간을 도구로 삼아서 성서를 기록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기계로 창조되지 않았다.

성서의 저자는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의 제약을 받았으며 자기 시대의 역사적 환경 안에 종속되어 있었다. 인간은 세계내적 존재이며 자기 역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이다. 역사적 제약을 받았기에 저자는 동시대의 사람들과 잘 소통할 수 있었다. 성서는 일상적인 언어로 기록되었다. 성령의 감동은 인간의 저작권을 존중한다.

생명의 창조는 태양계와 지구가 생기기도 전에 이루어졌다. 현대의 세계관으로 통역하자면, 지구를 비롯한 모든 우주에 생명이 편만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생명사상을 계시한다. 생명은 지구뿐만 아니라 외계에도 있다고 성경은 선언한다. 셋째 날의 창조는 생명의 원초성과 보편성과 고귀함을 만방에 선포하는 생명의 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을 하잖게 여기고 죽이고 멸종시키는 세상의 폭력문명을 성경은 경계한다.

예수님의 창조신앙은 생명사상이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셨다. 교회가 행하는 모든 예수선교는 생명선교여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온 사회에 생명이 넘치도록 돕고 참여하는 일이 생명선교이다. 국내선교나 세계선교나 열방선교는 모두 생명선교여야 한다. 북한선교도 마땅히 생명선교여야 한다. 북한사회가 잘 살 수 있도록 돕고 참여하는 것이 생명선교이다. 이러한 성경의 원칙을 확고히 세워야만 서구교회가 전수한 교회주의와 기독교확장주의의 적폐를 청산할 수 있다.

이영재  rheeyjae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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