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연구가 깊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지금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다. 중력이 시간과 공간에 미치는 영향력도 인지되고 있는 가운데 양자물리학은 힘을 강력과 약력 등 네 가지로 분류하여 연구하고 있다. 성서는 과학책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영성의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1장은 기원전 2500년 전에 벌써 이러한 물리학의 주제들을 언급하였다.

현대물리학의 연구는 성서의 언어와 잘 어울린다. 하나님의 영<루악흐>은 중력과 양자역학의 네 가지 힘과 연관될 수 있다. 물<마임>은 천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수소(H)와 연결된다. 빛<오르>은 일반상대성 원리의 시간과 연관되고, 궁창은 공간에 대한 연구와 연관된다.

그러나 이 모든 성서의 주제들을 과학이라 칭할 수는 없다. 신기하게도 이 주제들을 일일이 물리학의 주제들에 대입할 수 있지만 성서가 과학책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성서를 성령의 영감으로 계시하신 책이라고 믿는다.

신바빌로니아제국과 페르시아 제국과 헬라 제국의 시대에 성서가 저술되었다는 오경연구의 결과는 지중해 문명권에서 활발하게 제기된 신화와 종교의 기원에 관한 논의들을 배경으로 본문을 읽어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성서는 매우 짧은 말로써 제국의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해 적절하게 응답하고 있는데 이는 너무나 경이롭게 여겨진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 빛을 창조하신 데 이어서 둘째 날에 ‘궁창’을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물 가운데 궁창이 생겼다(창1:6~8).

‘궁창’의 히브리어 원어는 <라키아רָקִיעַ>이다. 중국어 성경도 개역성경과 마찬가지로 ‘穹蒼’이라고 옮겼다. 일본어 JAS성경은 ‘대공’(大空)이라 번역했다. 영어성경 KJV/RSV는 firmament라고 옮겼는데, NRSV는 이를 dome이라고 고쳐서 옮겼다. 영어로 firmament는 단단한 고체의 관념을 전달하지만, dome은 궁창이나 대공과 마찬가지로 공간의 둥근 모습을 지시한다. 그렇다면 히브리어 <라키아>의 정확한 개념은 무엇일까?

<라키아רָקִיעַ>는 동사 <라카 רקַע>에서 파생한 명사이다. 동사 <라카>는 사람이 어떤 물질을 발로 꾹 밟아서 발자국이 나게 하거나 그 물질을 옆으로 납작하게 펴지도록 만드는 행위를 가리킨다. 또한 망치로 금속을 두드려 펴서 어떤 모양을 내는 행위를 묘사하기도 한다(출39:3).

하나님께서 땅을 펼치셨다는 표현에도 이 동사를 사용한다(사42:5; 44:24). ‘땅을 물 위에 펼치셨다’는 표현도 있고(시136:6), ‘하늘을 펴다’란 표현도 있다(욥37:18). 그래서인지 영국에서 발간한 ESV성경은 이것을 expanse라고 옮기고 있다. Expanse는 ‘확장/팽창’이란 뜻이다.

그리스어성경은 <라키아>를 <스테레오마 στερέωμα>라고 번역했는데 이 단어는 돌로 만든 석조물의 단단한 고체 상태를 가리킨다. 이 그리스어의 심상에 연계하여 라틴어 성경은 firmamentum이라고 옮겼고 이를 따라서 영역본 KJV/RSV도 firmament라고 옮겼다. 영어의 firmament는 단단한 고체를 가리킨다. 물이 아랫물과 윗물로 나누어지고 윗물을 떠받치는 단단한 받침대와 아랫물을 내리누르는 물막이가 생겼다는 뜻이다.

히브리어 <라키아>는 단단한 고체의 개념이다. 그래서 욥기는 동사 <라카>를 사용하여 하늘을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묘사하고(욥37:18), 에스겔은 <라키아>가 수정 같이 단단한 물체라고 표현한다(겔1:22).

그러나 개역성경의 번역 ‘궁창’은 딱딱한 고체가 아니다. ‘궁창’은 텅 빈 공간을 가리키는 단어다. 중국어의 ‘穹蒼’이나 일본어의 ‘大空’도 마찬가지다. 새번역과 공동번역은 ‘창공’이라고 옮겼다. 이것도 고체는 아니다. 영역본 중에서 NRSV/ESV/CJV의 번역인 dome도 고체의 개념은 아니다. 그러면 히브리어 <라키아>는 어떠한 개념인가?

하나님께서 <라키아>가 “생겨라” 하고 말씀하시니 물속에 <라키아>가 생겼다. <라키아>가 윗물을 떠받쳐 올리고 아래의 물을 내리누르자 물 가운데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라키아>라는 물체(體)로 인하여 공간(空)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은 온통 물로 둘러싸여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는 대목이다. 라키아는 물통과 같이 물을 가로막는 통의 개념을 전달한다.

이러한 개념은 현대물리학으로도 부정할 수 없다. 블랙홀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며 우주의 끝에 있는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우주는 물로 둘러싸여 있다고 성서는 알려준다.

현대의 천체물리학이 제시하는 우주의 모양은 아래의 그림과 같다. 이 둥근 우주 공간에 수소와 헬륨이 가득 차 있다고 한다. 수소는 곧 물의 원소이니 성서의 말씀과 어긋나지 않는다. 공기의 압력으로 생긴 물마개가 <라키아>일 수도 있겠다. 라키아가 우주 바깥의 물을 가로 막고 있어서 우주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성서의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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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6은 이 공간을 가리켜서 <마브딜מַבְדִּיל>이라고 부른다. “주께서 ‘물 한 복판에 라키아가 생겨라’라고 말씀하시니 물과 물 사이에 <마브딜מַבְדִּיל>이 생겼다.” 명사 <마브딜מַבְדִּיל>은 ‘나누다/가르다’란 동사 <바달 בָּדַל>의 동명사인데 이 형태는 성서에 오직 창1:6에만 한 차례 나올 뿐이다.

그리스어 성서에는 <디아코리존 διαχωρίζον>이라 번역했는데 이것도 ‘가르다/나누다’란 동사 <디아코리조 διαχωρίζω>의 분사형이다. 히브리어 성서나 그리스어 성서를 직역하면 ‘틈이 있으라’라고 번역할 수 있다.

그러나 라틴어 성서는 dividat aquas ab aquis라고 번역했고 영역본들과 한글역본들도 일제히 ‘나뉘라/갈라져라/갈라놓아라’라고 번역하여 <마브딜>의 명사적 성격을 살려내지 못했다. 히브리어 본문으로 이해하자면 우주공간은 <라키아>로 생겨난 물 사이의 틈새 공간이다.

창1:8에 의하면 주께서는 <라키아>를 ‘하늘’<샤마임 שָׁמָיִם>이라고 부르셨다고 한다. 창1:1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진술하는데 8절은 하늘의 창조를 보도한다. 창1:10에 의하면 ‘땅’은 셋째 날 창조되는데 주께서는 드러난 ‘뭍’<야바샤 יַבָּשָׁה>을 가리켜 ‘땅’이라고 부르셨다고 한다.

베스터만이란 학자는 성서의 세계관을 고대 근동의 세계관과 동일한 삼층적 우주관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성서를 꼼꼼하게 읽어 보면 창세기 1장의 세계관은 삼층적 우주관과는 거리가 멀다. 『에누마 엘리쉬』의 창조 신화에 나타나는 고대 수메르인의 세계관은 땅 아래의 지하세계와 땅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라는 삼층적 우주관이었다.

그러나 성서의 세계관은 우주가 물 사이에 있는 틈새라는 둥근 우주관이다. 수메르인의 세계관과 성서의 세계관은 판연히 다르다. 셋째 날 창조되는 ‘땅’은 물이 걷히자 마른 부분이 드러나는 부분인데 이것을 지구와 동일시할 수는 없다.

지구는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들과 더불어 창조된다. 아무튼 성서의 창조기사에 나타난 우주의 모습은 윗물과 아랫물 사이에 <라키아>로 인하여 형성된 틈새 공간으로서 둥근 궁륭의 모양을 띤다. 이것은 현대 물리학이 제시하는 세계관과 유사하다.

과학과 성서의 세계관을 넘나드는 영성의 언어를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로 믿는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서가 무오하다는 교리적 고백도 성서를 공부할수록 확실하게 다가온다. 과학과 신앙의 경계를 너머서는 성경의 언어와 세계관을 공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존숭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앞으로의 에큐메니즘의 과제는 근본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만, 더 나아가 종래의 합리주의적 역사주의에 입각한 성서비평학을 너머서는 과제도 중요하다. 현대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연구결과를 참조하면서 좀 더 깊은 영성의 언어로 성서를 해석해내야 한다.

사회변혁을 위하여 사회과학을 공부하다가 성서의 신앙을 상실한 기독인 활동가들이 더러 있다. 사회변혁을 위해 일하는 기독인 활동가들에게 성서의 신앙을 되찾아주는 성서공부의 장을 새롭게 열려야 할 것이다.

이영재  rheeyjae200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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