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김연아 선수와 홍준표 대표?평화를 이루는 사람(마태복음 5:9)
이성훈 | 승인 2018.06.10 23:45

이번 주간 우리나라에는 큰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말씀을 읽고 나누실 때에는 이미 결과가 나온 이후일 수도 있겠지만, 12일에는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13일에는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가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팔복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신 말씀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우리는 어떤 신앙인의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팔복의 구조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은 단 한 절이면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팔복 중 하나입니다. 팔복은 마태복음 5장 3-12절의 말씀을 전통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오늘 팔복에 대한 전반적인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하고, 그 중에서 오늘 본문인 9절, 한 구절의 말씀을 더욱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헬라어 원문으로 봐도 상당히 짧은 말씀입니다. “μακάριοι οἱ εἰρηνοποιοί, ὅτι αὐτοὶ υἱοὶ θεοῦ κληθήσονται.”(마카리오이 오히 에이레노포이오이, 호티 아우토이 휘오이 떼우 클레떼쏜타이) 직역하자면 “복이 있어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아!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불릴 것이기 때문이다”입니다.

우선 팔복의 구조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팔복의 내용 중에 복의 내용들만 생각해서 본다면, 처음과 마지막, 심령이 가난한 사람과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이 받게 되는 복은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입니다. 헬라어로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호티 아우톤 에스틴 에 파실레이아 톤 우라논)으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그냥 성경을 읽으시는 성도님들의 경우에는 첫 번째와 마지막의 복이 동일하다고 생각하시며 넘어가실 수 있지만, 성경에서 특정한 구문이 동일하게 나타날 경우, 그것을 처음과 끝으로 묶어서 하나의 구조,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며 읽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처음의 복과 마지막의 복음 팔복 전체를 연결시키고 있는 장치로 생각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의 복이 어떠한 순서나 의도를 가지고 배열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쭉 나열해보자면, ‘위로를 받을 것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배부를 것이다’,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을 볼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기에서 어떠한 배열적인 구성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만, 딱히 그런 구성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헬라어로 읽어본다고 해도, 두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는 앞선 행동에 대한 반작용에 의한 복일뿐이고, 뭔가 다르게 보이는 것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받을 복에 대해서 살펴보기보다는 복을 받게 되는 요건, 행동에 대해서 살펴볼 차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하게 하는 사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입니다.

이 중에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순서를 약간 바꿔서 먼저 다섯 번째를 살펴보면, 여기에 나오는 ‘긍휼히 여긴다.’는 요즘에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에 조금 애매할 수 있어서 바꾸겠습니다.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 복은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남이 베푸는 자비를 받는다.’가 됩니다.

또 한 가지, 첫 번째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 있어서 간혹 번역본들 중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 번역한 성경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문에서 ‘심령’은 ‘프뉴마(πνεῦμα)’를 씁니다. 즉 ‘영혼’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마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음’이라고 말하려면 여섯 번째의 ‘마음이 청결한 사람’에서 사용된 ‘카르디아(καρδία)’가 사용되었어야 합니다.

사실 저는 ‘심령’이라는 표현도 약간 모호한 의미이기 때문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뉴마’가 가난하다는 의미는 쉽게 말하자면 ‘영이 고갈되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 우리가 창세 때에 하나님께서 불어넣어주신 영이 고갈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의 지금 모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겠습니다만, 너무 길어질 듯하여 생략하겠습니다. 다만 참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루아흐)이 나를 만드셨고, 전능하신 분의 숨결(네샤마)이 나를 살리셨다.’(욥33:4)

제가 다섯 번째와 첫 번째의 순서를 바꿔서 말씀드린 이유는, 첫 번째의 상태는 전혀 좋은 행동, 신앙인의 자세와는 무관합니다. 우리가 흔히 ‘성령 받으라!’고 이야기하지만, 참된 신앙인이라면 영으로 충만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영이 가난한 사람은 그 정반대에 놓인 사람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오는 사람은 ‘애통하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 역시 우리가 생각하기에 신앙인의 자세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점은 팔복이 참된 신앙인이 되기 이전의 단계에서부터 점차적으로 참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팔복은 마태복음을 기록한 교회가 제시하고 있는 신앙인, 교인의 여덟 가지 단계적 모형이 되는 것이고, 이 단계를 넘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 혹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변 성도님들로부터 받게 되는 복의 열거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세 가지,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천국을 소유하는 일’은 사람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받게 되는 복입니다. 그렇기에 팔복은 신앙인의 모습이 단계를 높여감에 따라,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혹은 세상으로부터 복을 받게 되지만, 마지막 단계에 다다름에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상상도 하지 못할 복을 받게 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궁극에 제시되는 복이 ‘천국의 소유권’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

팔복의 구조에 대한 긴 이야기를 드린 이유는 팔복이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팔복은 분명 마지막의 세 복,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얻게 됨’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어떤 복을 바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수많은 교회에서 예수님과 하나님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는 고작 두 번째 단계일 뿐입니다.

또한 지금의 현실 속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복은 결국 세 번째 복인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일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땅이 아니라 강남 한복판에 있는 금싸라기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의 단계 역시도 세 번째에 머무르고 있을 뿐입니다.

슬플 때 위로 받고, 좋은 땅을 상속으로 받고, 배고픔이 사라지고, 남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자비를 받는 삶을 우리는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복만을 요구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멈추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복은 우리가 신앙인의 모습을 갖춰갈 때에, 영이 고갈되었으나 채워졌고, 슬퍼하였으나 울지 않게 되었고, 온유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갈증을 느끼게 되었고, 남을 돕는 삶을 살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부차적으로 그저 주시는 복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깨끗케 하고, 평화를 이루어가며, 하나님의 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받게 되는 복은 하나님과의 참된 관계 회복입니다. 하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천국의 주인이 됩니다.

이는 분명 어려워 보이기는 합니다만, 우리는 이미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던 시절을 지나왔고, 그런 모습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또한 그를 위해서 행동해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우리는 아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던 그 자리에 아직도 서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의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고 할 때, 우리는 어떤 방식을 취해왔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팔복의 단계를 거쳐 왔다면, 우리는 분명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인채로 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합니다. 혹시나 우리의 행동이, 의를 위해 목숨을 바쳐왔던 우리의 모습이 평화가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의 모습은 아니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 "The Sermon on the Mount", a Bible illustration by Gustave Doré. ⓒWiki Commons

그렇기에 저는 여러분께 먼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힘쓸 때에, 평화를 미워하고 분쟁을 좋아하는 이들은 분명 우리를 핍박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평화를 위해서 평화를 들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얻게 되는 길입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이라는 헬라어는 ‘에이레노포이오이(εἰρηνοποιοί)’인데 이 말은 화평을 뜻하는 ‘에이레네’에 ‘포이오이’를 붙여서 만든 합성어입니다. ‘에이레네’라는 단어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평화, 평안, 화목 등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치유 이적을 행하신 뒤에 평안히 돌아가라 라고 말씀하실 때에 사용되는 단어가 ‘에이레네’입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에이레네’는 그렇게까지 어려운 단어는 아닙니다. 병을 고침 받았으니 이제 ‘에이레네’ 해라. 즉 ‘불안해하지 말고 편안하게 돌아가라.’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편안함, 평안함, 이것이 ‘에이레네’입니다.

개인에게만 적용해서 생각한다면 ‘에이레네’는 마음의 편안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가족, 친척 등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날 때에는 화목이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더 넓게 세상 속에서 세상의 일부분인 우리에게 ‘에이레네’는 평화가 됩니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에 나오는 말 중에 우리가 잘 아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본래 대학에 나온 전체 글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은 후에 알게 된다. 알게 된 후에 뜻이 성실해진다. 성실해진 후에 마음이 바르게 된다. 마음이 바르게 된 후에 몸이 닦인다. 몸이 닦인 후에 집안이 바르게 된다. 집안이 바르게 된 후에 나라가 다스려진다. 나라가 다스려진 후에 천하가 태평해진다. 그러므로 천자로부터 일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 몸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입니다.

나의 마음이 바르게 되고, 바르게 된 마음으로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바른 몸가짐이 있을 때에 집안이 바르게 되고, 집안이 바를 때에 나라가 다스려진다. 어떻게 생각하면 ‘에이레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의미를 한 단어에 담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마음의 편안함에서 시작하여, 가족과의 화목, 사회에서의 화목, 세상에 평화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평화를 이루라는 말씀은 어떻게 생각하면 어려울 수도 있지만, 먼저 우리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평안하게 만드는 데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나의 평안함이 가족의 평안으로 이어지고 이는 세상에도 평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고 평안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평화를 이룬 사람

지난 평창 올림픽 개막식을 보면서 성화의 마지막 주자가 누가 될까 기대하면서도 당연히 ‘김연아’ 선수가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인물이고 동계올림픽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에 당연히 김연아 선수가 하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창 올림픽 개막식 직후, 인터넷에 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평창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기 위한 김연아 선수의 10년’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두 번 실패한 후에 2009년 대한체육회는 김연아 선수를 평창 유치 1호 홍보대사로 선정합니다. 그리고는 김연아 선수에게 밴쿠버 올림픽에 나가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고 그 후에 평창 홍보를 하라고 주문합니다.

그 다음 해 2010년 김연아 선수는 밴쿠버에서 금메달을 따냅니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딴 후에도 대한체육회는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세계선수권 대회에도 계속 나가라고 압박했다고 합니다. 2011년 김연아 선수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연아 선수는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대한체육회가 끊임없이 압박해서 반년간이나 이 문제로 다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팬들에 대한 보답의 차원에서 결국 자신의 의지를 굽혔고, 그렇게 2010년 201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해서 1위를 합니다. 그후 2011년 남아공 더반에서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합니다. 당시 현장에 참여했던 세계 인사들의 전언에 따르면 김연아 선수의 프레젠테이션이 평창을 선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김연아 선수의 노력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에 성공합니다.

이후로도 여러분들께서 잘 아시겠지만 김연아 선수는 평창 홍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하지만 지난 정권에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장시호의 측근의 말에 따르면 김연아 선수는 정권에 찍혀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상태로 홀로 평창 홍보활동을 지속하게 됩니다. 작년 11월에는 UN본부에서 ‘평창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호소하였고 김연아 선수의 호소에 힘입어 유엔은 이 결의안을 통과시킵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김연아 선수는 정권의 서포트가 있건 없건, 대한체육회가 도움을 주진 않고 압박만 했어도 묵묵히 평창올림픽이 평화롭게 개최되고 이 올림픽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페럴림픽 아이스하키 선수인 정승환 씨는 한 인터뷰에서 평창 올림픽 홍보 대사 중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사람은 김연아 선수 밖에 없는 것 같다고, 힘들어 하면서도 정말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습니다.

글의 내용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김연아 선수가 성화의 마지막 주자였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고 마땅히 그래야만 했던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전직 대통령을 향해서 분노를 쏟아내고 있을 때에, 그녀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행사를 통해 한반도에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김연아 선수에 대한 예찬을 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가 하도 김연아, 김연아 하지만 그녀는 이제 고작 28살이 된 여성입니다. 이 여성은 정권의 비상식적인 압박 속에서도 한 번도 정권을 향한 부정적인 말을 뱉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사명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평화만을 가지고 평화를 이룬 사람이기에 우리가 한 번쯤은 그녀에 대해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로 이 이야기를 드립니다.

평화를 저해하는 사람들

그런데 이렇게 평화를 이루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평화를 저해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 정당의 당대표는 얼마 전 북미회담에서 종전선언은 하면 안 된다는 입장발표를 했습니다. 북한이 언제라도 뒤통수 칠 수 있기 때문에 종전선언은 안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이해는 됩니다만, 그 분과 그 정당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종전선언을 하면 뒤통수 맞을 수 있다는 말 자체는 어불성설입니다. 종전선언은 지금 한반도의 전쟁상태를 종료하는 선언입니다. 그 후에 북한이 전쟁을 또 일으킨다면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는 북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수없이 많이 존재합니다.

지금도 자신의 적대국을 향해서 미사일을 날리고 있는 이스라엘을 생각한다면, 북한이 언제라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추고 있으니 종전은 안 된다는 그 분의 말이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나라 역시도 군사력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킬 수 있으니 국군을 해체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평화를 거부하는 모습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평화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위기감과 공포감, 긴장감이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모습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 모습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얼마 전 드루킹 특검이 임명되었습니다. 네이버 댓글 조작 사건이 주요 내용입니다만, 솔직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네이버 댓글에 대해서 실제로 아시는 분들이 얼마나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네이버에 올라온 기사로 뉴스를 보고, 네이버 정치 뉴스에 달린 댓글을 거의 다 읽어온 편입니다. 솔직하게 드루킹이 사용했다는 아이디인 ‘tuna****’도 자주 본 아이디입니다.

네이버 댓글들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곳은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장이 아닙니다. 애시 당초 댓글들 대부분은 올라온 기사의 내용도 읽지 않습니다. 제목만 읽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합니다. 물론 누군가가 이 댓글에 가짜뉴스를 만들어서 유포한다면 그것은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네이버 댓글을 조금이라도 이용해본 사람들이라면 그곳이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곳은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네이버 댓글은 그저 사람들의 분노를 쏟아내는 화장실일 뿐입니다. 그곳에 써 있는 글들은 친정부 성향이던 반정부 성향이던 둘 다 아무 의미 없는 말들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솔직하게 과거 정권에서 이루어졌다는 댓글 작업도 여론 형성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일은 별개입니다. 그냥 댓글들과 ‘좋아요’의 숫자가 여론을 조작하겠는가 하는 입장입니다. 네이버 정치 뉴스에는 항시 대기 중인 일베 친구들 200명 정도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친정부성향의 글에는 무조건 ‘화나요’를 찍고 반정부성향의 글에는 무조건 ‘좋아요’를 찍습니다. 그리고 댓글 내용은 그냥 호남 욕밖에 없습니다. 기사 내용과 전혀 무관합니다.

아무튼 저는 그들의 글들을 보면서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들은 왜 이렇게 분노에 차있을까? 왜 누군가를 좌파 빨갱이라며 욕하고 또 반대에서는 꼴통 보수라고 칭하면서 비난하고 욕하기에 급급할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은 이들의 마음에 평안이 없다는 점입니다. 지독히 힘든 이 땅에서 살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해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욕설을 하고, 악담을 하면서 평안을 얻으려고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평안도 없고 평화도 없습니다. 끝없는 공허함 뿐입니다.

저는 여러분들께서 먼저 마음의 평안을 얻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땅에 평화를, 하나님의 평화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단지 선거에서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평화를 전달하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여러분에게 천국을, 이 땅에서조차 느낄 수 있는 천국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이성훈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서대문구 경기대로 55(충정로 2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 생명의집 204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윤인중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인중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8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