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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근수 목사의 삶과 뜻은 여전히 진행형향린공동체, 홍근수 목사 5주기 추모음악회 열어
이정훈 | 승인 2018.10.08 20:20

“노동자들이나 투옥자들이나 핍박받고 박해받는 자들이 늘면 항상 향린교회 깃발이 나부낍니다. 한편으로는 참 좋았고, 그때는 항상 홍근수 목사님이 그 자리에 계신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감히 제가 홍근수 목사님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목회자로서 유기적인 지식인으로서 삶과 사명을 다하신 분이라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보넷 이종희 대표가 홍근수 목사를 기억하며 남긴 말이다. 홍근수 목사가 한국 사회에 끼쳤던 영향을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말은 없다. 홍근수 목사가 살아온 길과 방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홍근수 목사를 기억하며 향린공동체(강님, 들꽃, 섬돌, 향린)가 홍근수 목사 5주기 추모음악회를 개최했다. 10월7일 오후3시부터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예배당에서 평소 홍근수 목사가 강조했던 우리 정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는 국악으로 만들어졌거나 편곡된 찬송가와 음악의 향연이 펼쳐졌다. 홍근수 목사를 기억하는 향린공동체 교우들 뿐만 아니라 그를 존경하고 가까이 했던 사람들로 예배당은 채워졌다.

사회와 예배에 대한 관심 그리고 기억

이날 추모음악회는 홍근수 목사와 목회 기간을 부목사로 함께 했던, 그래서 누구보다 홍근수 목사를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한국기독교장로회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 이혜진 목사가 맡아 진행했다. 이 목사는 홍근수 목사를 기억하며 이런 말을 전했다. 특히 왜 향린공동체가 국악예배 혹은 한국적 예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증언이기도 했다.

“홍근수 목사님은 1987년 향린교회에 부임하시면서 교회가 변화되고 갱신되기를 원하셨습니다. 1993년 향린교회 40주년을 맡아서 교회갱신선언서를 발표하셨습니다. 특히 예배의 갱신을 원하셨습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찬송가에는 외국 민요나 외국 국가가 많았습니다. 미국에서 13년 동안 공부하시고 목회하시고 귀국하신 목사님은 우리 정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예배, 민족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찬송가와 성가가 만들어지고 보급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이렇게 국악 찬송가와 국악 찬양을 연주하는 예향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이어 향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희헌 목사가 인사말을 이어갔다.

“홍근수 목사님의 추모식을 음악회로 진행하자고 올초 3월에 제안했습니다. … 추모음악회 제목이 심상치 않죠? 추모음악회 기획회의를 진행할 당시 가장 가까운 조력자이셨던 박석분 선생님이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어요. 한 번에 이 제목으로 정해졌습니다. 홍근수 목사님이 목회와 사회활동을 하실 당시를 비교해 보면 감격스러운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 추모음악회 준비상황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홍 목사님을 기억하고 그 뜻을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을 모아 온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홍근수, 조헌정 목사에 이어 향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김희헌 목사가 홍근수 목사 5주기 추모음악회 여는 인사말을 하고 있다(가운데). 그리고 이날 사회를 맡은 이헤진 목사(왼쪽)는 홍근수 목사가 향린교회에서 목회하고 은퇴할 때까지 부목사로 함꼐 했다. ⓒ향린교회 김진 교우

2003년 향린교회에서 17년 가까이 목회하다 은퇴하고, 하나님의 곁으로 부름을 받은 지 5년이 되었지만, 향린공동체가 어떻게 홍근수 목사를 기억하고 있는지 보여준 인사말이었다.

홍근수 목사가 남긴 발자국들

또한 진보넷 이종희 대표는 이날 유일하게 추모사를 전한 인물이 되었다. 추모 행사에서 추모사는 고인과 관계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 이야기 하는 관행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홍근수 목사가 한국사회 민주화운동과 통일에 주었던 영향을 잘 보여준 추모사였기에 길지만 소개한다.

▲ 홍근수 목사 5주기 추모음악회에서 유일하게 추모사를 맡은 진보넷 이종희 대표. 그는 추모사를 통해 홍근수 목사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향린교회 김진 교우
“80년도 말에 현실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나서 활동가들이 많이 방황을 합니다. 좌표를 못 찾았거든요. 그리고 그 중에 일부는 김영삼 정권으로 들어갑니다. 그때, 많은 분들이 몇 분들이 뜻을 같이 하셔서 한국 사회의 좌표를 새워보자, 한국사회 운동의 좌표를 새로 세우자고 했던, 같이 모였던 논의하면서 만든 조직이, 단체가 지식인 연대라는 곳이었습니다. … 많은 분들이 함께 하셨는데요, 그때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서 많은 후원도 있었고 실천적으로 개입도 많이 했습니다.
… 지금 관계하고 있는 진보넷과 관련해서 한 마디, 한 말씀만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86년도 크리스마스 이브때 김영삼이 노동법,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했습니다. 그러다 민주노총이 명동성당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며 총파업에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민주노총이 총파업 뿐만 아니라 전국민적인 투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저지 범국민운동본부라는 것을 만듭니다. 그때 상임대표가 김상곤 교수, 또 지금 집행위원장으로는 박승곤 대표가 맡고 있었어요. 제가 상황실장을 하면서, 그때 농성장을 향린교회에 차립니다. 그래서 향린교회가 경제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치적으로 신보수주의에 맞는 근거지로서의 역할을 다 할수 있도록 열심히 주장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한국 사회에 인터넷이 처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소개되기 시작했고, 많이,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하는 때였습니다. 그때 그 투쟁을 범국민 투쟁으로 만들기 위해서 인터넷을 활용했고, 그리고 이 투쟁을 외국에 소개시켜서 국제 연대 투쟁을 만들어 내는데 노력을 상당히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90%에 가까운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고 외국에서도 미국 샌프란시스코 항만노조에서 호주에 항만노조에서 연대투쟁을 해주고, 그리고 각 나라 대사관 앞에서 항의하는 시위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이 투쟁이 끝나면서 국제 노동 미디어라는 걸 했습니다. 그 당시에 그래도 신문물에 그래도 가장 많이 알고 있으셨던 분이 사실은 홍근수 목사님이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외국에서의 활동이 계셨기에 홍근수 목사님이 사실 그런 부분에서 앞에서 저희를 많이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기반이 되어서 지금 진보 네트워크 회사라는 정보통신 인터넷 연대 단체가 만들어집니다.
… 지금도 저희 최고의 모토는 연대입니다. 그 연대는 그때 그 당시 홍근수 목사님께서 앞에 내걸어 두셨던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 활동하는 저희도 많이 힘들고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힘들고 외로울 때가 되면 솔직히 김균진 선생님과 홍근수 목사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 앞으로 그 분들 생각하면서, 홍근수 목사님 생각하면서, 홍근수 목사님 가신 길 따라서 걷도록 하겠습니다. 홍근수 목사님 보고 싶습니다.”


엘리사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 홍근수 목사

특히 이날 5주기 추모음악회의 한 순서는 약간 어울리지 않는듯한 인물과의 “이야기 마당”이 진행되었다. 이병진 교수가 이야기 마당에 초대된 것이었다. 홍근수 목사와 이병진 교수와의 연관성은 무엇일까?

이야기 마당의 사회를 맡은 박석분 향린교회 교우는 이병진 교수에게 이렇게 질문하며 연관성을 언급했다.

“홍근수 목사님이 한 방송사 TV토론에 나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북한의 주체사상도 논의할 수 있어야 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을 꼬투리 잡아 홍근수 목사님도 1991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셨습니다.”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된 이병진 교수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되어 작년 9월 8년 만기출옥한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인도전문가였다. 그러나 인도 유학 당시 제3세계 진영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연구하는 차원에서 비공개 북을 방문했던 점이 공안기관에 포착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8년 실형을 선고받고 기나긴 세월을 영어의 몸으로 살았던 것이다. 이런 이 교수가 옥중생활을 하며 주고 받았던 서신들을 모아 『(끝나지 않은 야만) 국가보안법』을 홍근수 목사 추모일에 맞춰 펴낸 것이 계기가 되어 이야기 손임으로 초대된 것이다.

▲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8년만에 출옥한 이병진 교수가 홍근수 목사 5주기에 맞춰 책을 출판해 이날 추모음악회에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되었다(사진 왼쪽). 그리고 추모음악회의 제목을 지은 박석분 교우가 이야기 마당을 이끌었다(사진 오른쪽). ⓒ향린교회 김진 교우

이병진 교수는 이날 이야기 마당에서 그가 겪었던 감옥에서의 고통을 풀어놓았다. 어쩌면 홍근수 목사가 겪었을 이야기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혜진 목사는 또한 사회를 맡은 이혜진 목사는 국가보안법에 맞섰던 홍근수 목사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문익환 목사님은 서울대 재학 당시 기독학생회(현 KSCF) 강사로 초정해 강의를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문익환 목사님은 아모스서로 강의를 하셨는데, 홍근수 목사님은 그 강의를 듣고 한국신학대학 진학을 품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문익환 목사님을 스승으로 여겼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안기부에 체포되어 문익환 목사님이 취조 받으셨던 같은 수사실에서 수사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홍근수 목사님은 “나와 문 목사님의 관계는 정치적으로 스승 엘리야와 제자 엘리사가 아닐까 한다.”는 이야기를 남기셨습니다.”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간 선배 신앙들의 자세가 어떠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 일화였다. 그리고 여전히 그뜻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향린공동체의 정신이 아닌가 했다. 자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추모음악회가 가능했던 것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다양한 음악과 이야기로 꾸며진 이날 추모음악회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홍근수 목사의 삶과 뜻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했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의 기운이 넘쳐나고 있는 때에 그렇게 바라셨던 한반도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홍근수 목사에 대한 그리움이 담기 모습들이었다.

▲ 홍근수 목사 5주기 추모음악회는 평소 홍근수가 즐겨 부르고 좋았했던 음악들로 진행되었다. 특히 우리 감성, 한국적 감성을 추구하며 구성하게 된 국악 찬양대 예향이 찬양들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향린교회 김진 교우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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