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말씀의 잔치 Junger Prediger
마태복음이 이야기 하는 신앙인의 참된 영성말씀을 이루심(마 27:50-53)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03.24 17:23

사순절 셋째 주일에 저희는 마태복음이 전하는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예수님은 무고한 사람이 죄인이 되는 현실을 고발하셨고, 그러한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해방이라는 이해에 덧붙여, 헬라인을 향한 선포 속에서 십자가 사건은 미련한 사건, 인간적으로 어리석어 보이는 사건이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서 섭리를 일으키시는 분이심을 전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두 주 동안 제가 전해드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발, 사회의 개혁을 위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사도 바울에게 종교성 또는 영성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 사건이나 사도 바울이 이해한 십자가 사건의 의미에 있어서는 영적인 의미보다는 사회적인 의미가 더 컸기에 그런 맥락으로 말씀을 전해드렸습니다.

이제 교회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사회적인 변화를 촉구했던 십자가 사건은 영적인, 종교적인 사건으로 차츰 의미가 변해가기 시작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러한 변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각 시대의 상황에 따라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점은 의미가 어떻게 변해간다 하더라도 우리가 말씀의 본질을 기억하고 간직한 상태에서 변화된 의미, 확장된 의미를 적용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의 말씀 해석 원리

먼저 저희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점은 ‘마태복음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였는가?’입니다.

▲ Domenico Beccafumi, “Depiction of Jesus leading the patriarchs out of limbo”(c.1530-1535) ⓒWikipedia

저희는 흔히 ‘초대교회는 유대교와 선을 긋고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만을 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유대교가 아닌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로 거듭났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초대교회는 자신들을 유대교와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로마 제국의 종교 정책이라는 상황이 있습니다. 로마 제국은 새로운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시대에 이단이라 불리는 종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식의 이단 종교가 아닙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신흥 종교가 이단이었습니다.

로마는 자신들의 제국에 혼란이 발생하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고, 신흥 종교는 혼란을 야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새롭게 생겨난 종교를 인정하지 않았고 박해했습니다. 그렇기에 초대교회는 자신들을 새로운 종교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할 이유도 없었고, 자신들 스스로도 유대교의 연장선에 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유대교의 입장은 이와 달랐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우리와 다른 신흥 종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유대교의 입장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유대교의 모습,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울(훗날 바울)의 모습이 유대교의 입장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초대교회는 자신들이 유대교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구약성경을 예수님과 연결시킵니다.

거기에 초대교회는 예수님께서 완전히 새로운 말씀이 아닌 구약성경의 말씀을 자신들에게 전해주셨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로마의 박해라는 이유도 있지만, 예수님의 말씀 이면에 있는 구약성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고민했고, 이런 고민들은 ‘모형론’이라는 성경 해석 방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영어로 ‘Typology’이고 우리말로는 모형론, 예형론, 예표론, 유형론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데,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구약성경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방식의 해석법입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발견할 수 있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라는 문구들이 기초적인 모형론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제가 지금 ‘기초적’이라던지 ‘간단하게 말하자면’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모형론을 설명 드리는 이유는, 이 해석 방법이 말처럼 쉽고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 지금식으로 부르자면 목회자들은 구약성경과 예수님께서 보이신 삶과 가르치신 말씀 사이에서 끊임없는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의 끝에 구약성경에서 나타난 사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도식인 ‘구약은 예언 또는 약속, 신약은 성취’라는 구조로 모형론을 쉽게 설명할 수는 있지만, 이게 모형론의 전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고민의 깊이만큼이나 모형론은 훨씬 더 복잡한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요즘 교회들에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연결시키면서 설교하시는 방식이 대부분 모형론을 따온 방식인데,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애시당초 모형론을 제대로 알지도 못할뿐더러, 구약과 신약을 어거지로 끼워 맞춘 내용들이어서, 모형론이 잘못된 방식, 구시대적 방식이라는 오명을 얻게 만들고 있는 듯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마태복음을 비롯한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구약성경과 예수님을 연결시키고 있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지만, 꼭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모형론은 그리 단순한 해석 방식이 아니고, 지금의 강단에서 구약과 신약을 어거지로 끼워맞추며 천박한 말씀을 전하는 이들이 사용해서는 안 될 해석 방법이라는 말씀만 드리고 싶습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깊이가 있는 말씀 해석 방식입니다.

말씀의 성취와 십자가

조금 길어졌습니다만, 마태복음을 읽어가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에 모형론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모든 행적이 구약성경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고, 이를 성취하시는 사건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십자가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 의해 잡혀가실 때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만 나타납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마26:53-54)

예수님께서는 열두 군단보다도 많은 천사들의 군대로 이 상황을 모면하실 수 있지만, 성경의 말씀, 구약성경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마태복음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봤을 때, 우리는 27장에서 예수님을 희롱하고 있는 로마 군인들의 모습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우습게 여기며, 나약하게 여기며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예수님에게 신 포도주를 먹게 하고,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졌고, 예수님의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붙여놓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든 행위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구약성경의 말씀을 성취하는 행위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마태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처형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처참함을 말씀의 성취로 바꾸시고 처참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놀라운 승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는 분명 사도 바울이 ‘미련함으로 지혜로움을 이긴다’고 말했던 십자가의 의미와도 연결됩니다.

십자가에서 성취된 말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어떤 말씀을 성취하셨는가?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의 어떤 말씀을 성취하고 계신다고 생각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성취된 말씀은 종말입니다. 종말론이라고 하면 조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종말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잘못된 체계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체계로 변화된다는 의미의 종말론이 있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이 땅의 모든 체계가 사라진다고 말해야 할지, 변혁된다고 말해야 할지, 전체적인 체계가 바뀌어버리는 종말론이 있습니다. 비슷하면서도 개념적으로 조금 다릅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종말론이라기보다 앞의 현실적 종말론이 더욱 강화되어서 우주적 종말론으로 확장되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우주적 종말론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죽음의 소멸입니다. 죽음조차도 사라지는 세상에 대한 이상이 우주적 종말론입니다.

그럼 마태복음은 둘 중 어떤 종말이 성취되었다고 말할까요? 27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의 상황이 나타나는데,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27:52-53)

예수님의 죽음 직후 죽음을 극복한 자들이 나타납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의 영향력으로 인해서 죽었던 사람들이 되살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예수님이 죽으심과 동시에 죽음이 소멸되었고 극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주적 종말론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징조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과 동시에 종말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소한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3일 동안 죽음과 싸우셨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죽으심과 동시에 죽음을 이기셨다고 말합니다.

용어가 ‘종말’이다 보니까 말 자체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종말의 본질적 의미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전환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계로의 완전한 전환이 우주적 종말론의 본질적 의미입니다. 즉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악한 세계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선한 세계로 완전히 개변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사명은 당연히 그 시대를 전파하는 일입니다. 아직 새 시대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마태복음이 전하는 영성

마지막으로 처음에 말씀드렸던, 교회 시대의 영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영성은 하나님, 예수님과의 동질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예수님 한 분에게만 국한된 사건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사건을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으심과 동시에 부활한 성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도 죽음과 부활에 동참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세계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 따르는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계,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되었음을 마태복음은 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과정 속에서 예수님과 하나 됨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 나라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 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 시대의 우리는 하나님 나라는 저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죽음 이후에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런 신앙을 갖고 있기에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여기거나 지금의 현실을 바꿔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우리가 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는 일밖에 없다고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은 이미 그 때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며 예수님과 함께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음을 깨뜨리셨기에 예수님과 함께 부활에 동참하고, 이 새로운 세상,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를 세상에 전하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러분들께서 골방에 조용히 앉아서 기도하신다던가, 금식하며 기도하신다던가, 성경을 열심히 읽어나가는게 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말씀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그 마음가짐과 작은 실천들 하나하나가 영적인 삶이고 신앙인의 참된 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초대교회도 그러한 영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순절 기간 마태복음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 사건, 새로운 세상으로의 초대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 말씀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기간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께서 이미 예수님과 함께 부활하셨음을 깨닫게 되실 줄 믿습니다. 또한 이러한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전파해 나가시는 여러분 되실 줄 믿고 또한 그렇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