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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가 불러온 비극죄의 고백(눅 23:34-3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04.14 19:22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이고 고난주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사순절 동안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생각하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알게 된 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어떤 식으로 이해되던 ‘죄’와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를 죄인으로 규정하는 죄, 또는 죄인이라고 규정되었던 사람들에게 씌워져 있던 죄, 이런 모든 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예수님의 한 마디를 덧붙임으로 그 ‘죄’에 대한 이야기를 완성시킵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에 나타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죄’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누구를 향한 용서인가?

먼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매년 사순절이나 고난주간이 되면,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셨던 말씀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자신을 희롱하는 무리들을 보시고, 하나님께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구하시는 장면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점은 예수님께서 누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씀하시는지, 누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는가 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을 우리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Getty Image

개역개정 성경에는 ‘자기들’에 해당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없습니다. 누군가가 예수님과 두 행악자를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그 주어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누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헬라어 성경에서 동사가 3인칭 복수형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생략된 주어는 ‘그들’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들’은 누구입니까? 단순하게 보자면, ‘그들’은 십자가 처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로마 군인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약간 이상한 점이 생깁니다. 문맥의 흐름상 구경하는 백성, 비웃는 관리가 뜬금없이 등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본문의 위쪽에 ‘그들’이 누구라고 나오는지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부터 조금씩 위로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조금 위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갑니다. 그러다가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합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그들’은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조금 더 위인 13절에서 우리는 드디어 ‘그들’을 찾게 됩니다. 빌라도가 불러 모은 사람들, 대제사장들, 관리들, 백성들입니다.

사실은 13절부터 읽어내려가면 오늘 본문에 나타난 ‘그들’이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들임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하지만 때로 우리의 상상력과 평소 들어왔던 이야기가 글의 문맥을 무시하고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을 용서해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를 구한 ‘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발하고 십자가에 달리게 만든 대제사장들, 관리들,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이야기해왔듯이 누군가를 죄인으로 만들며 자신의 이권을 챙기던 이들입니다.

자신들이 하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들’이 로마 군인이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신들이 하는 것’은 별 생각 없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의 행위가 됩니다.

하지만 이들이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 상층부라면, ‘자신들이 하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행위,’ 그 이상의 의미를 담을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이 ‘죄인이 아닌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 행위’ 자체로 이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을 때, 예수님께서 뒤이어 하신 말씀 역시도 의미가 더 넓어집니다.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악을, 무슨 죄를 행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죄를 씌우고, 아무런 잘못이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노략하고, 수탈하고, 빼앗고, 죽이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말씀이 됩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듯이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누가복음이 ‘죄’에 대한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분명 죄를 짓습니다. 잘못을 행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선인지 악인지 모릅니다. 제3자가 보기에는 악이 분명한데도 자신은 그것이 선이라고 말합니다.

얼마 전에 JTBC에서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해서 만들었던 ‘리갈하이’를 보면, 돈밖에 모르는 변호사 ‘코미카도’가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이 백 명이면 정의도 백 개다.” 사람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자신이 정의를 행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선을 행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회개할 수 없습니다. 죄를 뉘우치거나 변화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죄의 경계를 깨뜨리시는 순간에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길 간구하셨던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이들의 죄가 사라진 순간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죄의 고백

히틀러가 독일을 다스리던 때에 히틀러 암살 계획에 동참했던 독일 루터교회의 목사이자 고백교회의 설립자 중 한 명인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있습니다. 그는 히틀러 암살 계획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히틀러 정권이 무너지기 직전 1945년에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그는 나치에 의한 폭력이 자행되던 시대를 살아가면서 교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고,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첫 걸음으로 제시한 일이 죄의 고백이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인 『윤리학』에 나오는 글의 일부입니다.

“이 모든 일에 바로 내 죄가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인식해야 한다. 나는 절제되지 않는 욕망의 죄를 지었고, 발언했어야 할 자리에서 비겁하게 침묵한 죄를 지었고, 폭력 앞에서 거짓과 위선의 죄를 지었고, 나의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그를 부인한 죄를 지었으며, 그리스도에게 불충성하고 그분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죄를 지었다.”(「죄책, 칭의, 갱신」 중)

그는 그리스도인은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의 집단이기에 죄를 고백하는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가끔 이러한 개념을 잘못 생각해서, 교회는 개인적인 죄의 고백만 할 수 있고, 사회에는 개입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지만, 본회퍼는 반나치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사회 개입에 대한 관점이 다릅니다.

분명 본회퍼도 교회가 사회에 완전히 개입하는 일, 우리나라처럼 일부 어떤 목사님들이 기독당을 만들고 정치에 참여하겠다고 말하는 식의 행동은 거부합니다. 다만 교회는 사회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음’을 분명 인지할 수 있고, 이를 지적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즉 교회가 국가의 영역에 뛰어들어서는 안 되지만, 세상의 악함은 드러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악함을 직접 고치는 일을 올바른 국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세상의 악함을 어떻게 드러낼까요? 앞서 말한바와 같이 먼저 나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죄를 범했음을 고백하고, 더 나아가 내가 세상에서 침묵했음을 고백하는 일, 세상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음을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았음을 고백하고, 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가 되고, 그렇기에 그들의 고백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 됩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가?

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이어 본회퍼의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본회퍼가 말한 지점 역시도 마찬가지의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알지 못하고 그렇기에 고백하지 않고 살아왔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고 고백해야만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를 압니까? 그래서 고백하고 뉘우치고 변하려고 노력합니까?

진도 앞바다에서 300여명이 목숨을 잃었던 세월호 사건도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세월호 배지를 정장에 달고 다닙니다만, 저는 이 사건을 생각하면 그냥 많이 아프고 슬픕니다. 우리의 수많은 아이들의 생명이 사라진 사건이기에 너무나 아픕니다.

어쩌면 제가 이 배지를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제 정치 성향이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배지를 달고 다니는 이유는 이 사건이 우리 모두의 죄로부터 발생한 사건이기에 끊임없기 기억하고 뉘우치기 위해서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생각, ‘이 정도는 괜찮아’가 만들어낸 사건입니다.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는 일 정도는 괜찮아, 교통법규 한 번쯤 어기는 일 정도는 괜찮아, 인터넷 댓글로 욕 한 줄 정도 쓰는건 괜찮아, 술 마시고 잠깐 운전하는 정도는 괜찮아, 이성에게 가벼운 성적 농담을 건내는 정도는 괜찮아.

우리가 늘 가지고 있는 생각, ‘이 정도는 괜찮아’가 점점 확대되어서, 늘 해오던 일이니까 화물 과적 정도는 괜찮아, 사고 날 일 없으니까 안전장비는 구비해놓지 않아도 괜찮아, 맨날 몰던 배니까 술 좀 마시면서 항해해도 괜찮아, 내 생명도 소중한 생명이니까 나만 먼저 탈출해도 괜찮아, 지금 당장 구하지 않고 지원이 오면 구조해도 괜찮아, 배 한 척 뒤집힌 건데 대통령이 조금 늦게 살펴봐도 괜찮아.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괜찮아 괜찮아는 점점 커져서 사회로 퍼집니다. 사회로 퍼져나간 괜찮아는 사회적 범죄가 되고, 이는 결국 누군가를 죽이는 일까지 만들게 됩니다.

비단 세월호 뿐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비극적인 사건들 뒤에는 전부 ‘이 정도는 괜찮다’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또한 내가 직접 개입되지 않았으니까 ‘난 괜찮아’라는 인식까지 만들어 놓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생각은 지금 우리의 자녀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게 되고, 결국 우리의 자녀들도 똑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은 여전히 똑같은 비극을 만들어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종려주일에 감히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탓 맞습니다.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 잘못입니다. 우리가 그 아이들을 죽인 겁니다.

고백하는 교회

우리가 이 모든 사건에 대해서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죄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하시는 말씀,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변해야 합니다.

한때 교회에서 ‘내 탓이오’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탓이오’하는 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입으로는 ‘내 탓이오’라고 하시는데,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이건 분명 니 탓이지만 난 교회 다니니까 내 탓이라고 할게’ 마치 그래야만 하나님께 복을 받으니까, 마지못해 말하는 것처럼 ‘내 탓이오’를 입으로만 말합니다.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만이 교회입니다. 그렇기에 고백하는 장소, 모임이 교회입니다. 죄의 고백이 없는 모임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가 고백하고 뉘우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랑 상관없는 일은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우리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죄는 우리의 죄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또한 반대로, 그렇기에 우리는 작더라도 분명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겁니다.

우리가 먼저 변화됩시다. 우리의 작은 변화, 내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일은 분명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게 됩니다. 또 우리의 교회의 자녀들은 이런 잘못된 생각을 품지 않도록 키웁시다. 그러면 지금의 우리는 이미 너무도 잘못된 생각에 빠져 살아왔기에 쉽게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르더라도, 우리의 아이들로부터 세상이 변화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저 아이들은 변화된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한 걸음, 내 죄를 깨닫고 고백하는 성도님 되시길 바라고, 우리가 함께 그 변화를 만들어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슬픔과 아픔이 가득한 세상은 점점 사라지고, 기쁨과 평안만이 가득한 하나님 나라가 될 줄 믿습니다. 적어도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그 나라를 전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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