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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북의 사회를 만났다[인터뷰] 재미통일운동가 최재영 목사를 만나다 (1)
이정훈 | 승인 2019.04.16 19:52

평소 기자의 관심은 장애인, 노동자, 성소수자 문제였다. 그래서 통일운동을 하시는 분들에 그리 밝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재미통일운동가 한 분이 출판기념을 겸해 한국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게 되었다.

젠틀한 신사가 왜

첫 인상? 너무 젠틀한 분이시구나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분이었다. 또 하나 기자를 놀라게 했던 것은 이 분의 신앙이력이었다.

보수적인 배경의 교단에서 신학을 공부하시고 목회활동을 하시다가 도미해 통일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교단에 출교(?)에 가까운 사건을 맞이했고 이제는 교단 배경도 없이 자유롭게 북을 왕래하며 남북 간의 화해의 접점을 찾기 위해 그야말로 통일운동에 전념하고 계신다. 무엇인가에 아무 댓가도 없이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대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도대체 왜이다.

재미통일운동가 최재영 목사님을 만난 것이다. 왜 그토록, 교단에서 출교까지 당하기까지 통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무엇이 그를 그 자리에까지 가게 하였는지가 궁금했다. 온통 궁금한 것 투성이었다.

어머니 젖가슴에 녹아든 포탄의 쇳물 모유를 먹으며 자랐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 목사님의 유년시절이 그렇게 인도할 수밖에 없었음을 확인했다. 6.25 당시 격전지 중에 하나였던 강원도 땅에서 자라, 연합군의 폭격으로, 그것도 민간이 거주지역을 초토화되도록 폭격한 살육의 땅에서 겨우 살아남은 어머니가 그 배경이었던 것이다. 그 폭격 가운데 포탄이 어머니의 가슴에 여전히 박혀 있고, 어쩌면 그 포탄으로 인한 쇳물이 녹아든 모유를 먹고 자랐다는 이야기에서 기자의 정신은 아득해지기도 했다.

▲ 수많은 북의 왕래를 통해 그간 알아왔던 북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는 최재영 목사, ⓒ이정훈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민간인 지역임을 알면서도 폭격을 가했다는 것은 노근리 참사와 같은 군의 폭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수면화되지 않았던 이야기. 이러한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들으며 통일은 그저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닌 구체적으로 풀어가야 할 수많은 난제가 있음을 보았다.

시간 상으로 1시간 남짓이지만 그 속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이 많기에 두 번에 걸쳐 인터뷰를 게재한다.

▲ 목사님에 대해서 자기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저에 대해 대북사역가 통일운동가 이렇게 불러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근데 그걸 부정하지는 않지만 너무 거창한 거 같고, 대북사역가니 운동가니 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구요. 그냥 저는 이게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옳다고 생각해서 제 힘 닿는 데까지 남북을 오가면서 강연활동, 집필활동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무슨 의미를 부여할 것도 없어요(웃음).

▲ 제가 알기로는 북한을 많이 왕래하셨는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저는 현재, U.S. Citizen, 미국 시민권자에요. 어렵다고 물어보신 것이 정확하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격 면에서는 영주권 이상 시민권자는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거죠. UN에서 승인을 해준 다음에 중국에 있는 북측 영사관이나 대사관 가서 비자를 받아서 들어가는 그 부분은 북측에서 알아서 하는 일이니까, 거부당한 적은 없었으니까 어려운 점은 없다고 봐야죠. 그리고 제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중·고등학교 다 다니고 군복무도 마쳤지만 남쪽보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보다 북측이 더 편해요 돌아다니는 거 먹는 거. 북측에 가는 게 더 고대되고 좋아요 오히려. 체질이 북 체질인가 봐요.(웃음)

▲ 중국 쪽으로 먼저 들어가셨다가 북측으로 가시는 거네요.

누구든지 판문점으로 가지 않는 이상은 중국을 통해서 들어가죠.

북측이 보여주려는 것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았다

▲ 그럼 북측에 들어가시면 주로 어떤 활동을 하시는 건가요?

그때 그때 방북목적에 따라 다 달라요. 프로젝트에 따를 때는 방북 프로그램을 세운대로, 일정대로 움직이죠, 출발하기 몇 개월 전부터 북측 대사관을 통해서 일정 조율을 합니다. 그렇게 일정을 보내는데, 예를 들어서 북한 교회를 탐방하는 일정을 넣었다, 그러면 교회를 탐방하는 걸 집중적으로 하죠, 만약 북측의 국립묘지를 탐방한다, 그러면 북측 국립묘지를 쭉 탐방하고 그렇게 해요. 여러 프로젝트에 따라서 그때그때 하는 일이 다르죠.

아니면 북측이 행사만 참관하는 방북 포럼이면, 가령 북측의 모든 행사 참관 같은 것이며 예술 공연 같은 걸 관람하기도 하고 그때그때 다르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항상 남과 북이 서로 화합하게 하고 남과 북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관이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런 것들 위주로 일정을 짜요, 

저 같은 경우에는 북측에서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것을 보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솔직히 북측에서 보여주는 거는 더 볼 것도 없는 것 같아요, 하도 많이 봐서요, 그래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매뉴얼을 새롭게 해 보려고 고민해요.

▲ 북측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을 테고 목사님께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으실 텐데 그 사이에서 엇박자가 나는 상황도 있지 않나요?

당연히 그렇죠. 왜냐하면 방북하기 몇 개월 전부터 의견 조율을 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죠. 저쪽은 어떻게 해서든 좀 공개 안 하거나 안 보여주려는 게 많고, 나는 보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도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고, 그러니까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거죠, 속된 말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근사치로 가는 거죠 제가 원하는대로 아직도 내가 보고싶은 거 못본 게 엄청 많죠.

▲ 그러면 최근에 ‘나는 이걸 보고 싶은데 북한은 좀 난색을 표했던 것’ 이런 상황이 있었으면 하나 소개해 주세요.

저 같은 경우에는 위안부 할머니, 북측에도 위안부 할머니가 있잖아요, 북측의 위안부 할머니도 뵙고 싶고, 국군 포로도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국군 포로 같은 문제는 굉장히 이데올로기가 개입이 되는 문제니까, 그게 북측에서 접수는 되지만 성사가 안 되더라구요,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예민한 사항이라 아직까지 성사가 되지 못했어요,

제가 북측을 다닌다고 소문이 나니까 미주에 계신 동포들이나 남쪽에 계신 동포 중에 6.25 때 헤어진, 남측 표현대로 하면 피납자, 납북자 유족들이 무덤 좀 알아봐 달라, 생사여부 좀 알아봐 달라, 그런 부탁을 저한테 많이 하세요. 제가 이런걸 신경 써서 그쪽에 문의를 하고 요청을 하는데 잘 안 되더라구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려고 했을 때, 안타깝게도 북측은 모든 위안부 할머니가 다 돌아가셨어요. 생존자가 단 한명도 없어요. 마지막 할머니가 7, 8년 전에 다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장기수 어르신들, 비전향 장기수 어른들이 북측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 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 보고 싶다고 하니까, 그건 다 또 허락이 되어서 만나뵈었어요. 그분들이 사시는 집까지 다 들어가서 장롱문까지 열어볼 정도로 다 볼 수 있었어요, 어떻게 사시는지 활동하시는지 다 보게 되었어요. 그런 부분은 북측에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줘요.

북, 닫힌 사회라는 말은 거짓이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면 북측에서 지방을 다니다가 제가 화장실이 좀 급하다 하면서 실제로 화장실을 가고 싶기도 했지만 그걸 빌미로 가까운 가정집도 들어가고 보고 했어요, 비공식적으로 들여다 본 것이죠, 진짜 속살을 들여다 본 거에요. 예정되어 있고 프로그램에 따라 외국인들이나 해외동포들이 오면 가게 되는 코스들을 탈피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리고 아침에 저는 이제 평양호텔에 주로 묵는데, 호텔 이름이 평양호텔이에요, 평양호텔은 대동강변에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거길 제가 선호해요. 아침에 산책하고 좋아서요. 개인적으로 어디서든지 혼자서 새벽예배를 드리거든요 자동으로 일어나게 되요.

북측을 방문하면 안내원이 원래 따라 붙어요. 저를 담당하는 안내원은 제가 도착해서 평양을 떠날 때까지 저를 수행한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제가 5층에 묵으면 안내원도 5층에 자기 숙소를 정해요. 바로 옆에는 아니고 두 서너 방 건너서 자기 숙소를 정하죠, 그런데 안내원이 나한테 볼일이 있어서 내 방을 노크해도 내 방문 안에 발을 들여놓지를 않아요.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금전 문제, 성적인 스캔들들 때문에 문 밖에서만 할 얘기를 해요.

제가 북측에 가면 안내원들한테 ‘일어나세요 나 산책 갑니다’ 하면, ‘아, 목사님, 혼자 다녀오세요, 전 더 자겠습니다.’ 이렇게 답변을 해요. 비공식적으로 혼자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것이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서 이야기 하고, 가고 싶은데 가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궁금한 것도 많이 기록도 해놓고 평양시민들 붙들고 이것저것 되지도 않는 이야기 물어보기도 하고 그래요. 우리 같으면 ‘저 사람 뭐야?’ 하고 위아래 훑어보고 휙휙 무관심 하게 지나가겠지만 평양시민들은 접근을 하면 다 친절하게 응대를 해줘요, 그렇게 해서 필요한 거, 궁금한 거 충족해 갔죠.

▲ 그렇게 북측에 방문하시고 여러 가지 확인하시면서, 처음 북측에 들어가기 전과 실재 확인하고 나서, 정말 이런 것이 다른 것이었구나, 내가 몰랐던 것이구나, 있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너무 달랐죠. 제가 가장, 솔직히 모든 것이 다 충격적이었지만, 그리고 지금 편집장님과도 관련이 좀 있을 수도 있는데, 장애인분들에 관한 부분이었어요. 우리가 남측의 언론이나 교육을 받기로는 몸이 불편한 장애가 있으신 분들은 평양밖에 내쫓는다고 해서 저도 그런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평양을 방문하고 며칠 지난 다음이었는데 버스로 이동 중이었어요. 시내버스가 아니라 방문객들을 싣고 다니는 버스가 있었는데, 궁금해도 피곤하면 차안에서 자는데, 뭐가 차바깥 쪽에서 쿵쿵쿵 거리는 거에요. 평양시내에서 교통체증인지 여하튼 서행을 하고 있는데 차를 쿵쿵 거리는 소리가 나서 이렇게 보니까, 목발을 양쪽을 짚은 장애인이 뭔가에 화났는지 우리 버스를 발로 걷어차고, 목발로 두드리는 거에요.

▲ 평양 옥류아동병원에 입원한 초등학교 어린이 환자를 가르치는 교원들과 함께 한 필자. 교원 1인당 2명의 환자 학생을 가르친다. ⓒ최재영 목사 제공

순간 깜짝 놀랐어요. 속으로, ‘어? 장애인이 왜 여기 있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관료들한테 물어보니까, ‘무슨 소리냐고, 다 여기 살고, 따로 어디에 보내거나 그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 사회적으로 각별하게 지원해 주고 같이 어울리며 살지, 별도의 장소에, 평양 시에 외국인들이 오면 창피하다고 추방시키고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 이건 우스운 질문일 수 있는데요, 목사님께서 평양 외에 ‘야, 이건 정말 내가 생각해도 너무 깊이까지 한번 들어가 봤다.’ 혹은 ‘북측에서 공개하지 않는 곳도 가봤다’ 한 곳이 있으면 이야기 해주세요.

양강도 혁명사적지, 포평 혁명사적지가 있어요. 그 안에는 포평교회가 있어요. 북측이 왜 교회를 보존해놨느냐, 혁명유적지 안에, 거기가 김일성 주석 삼형제 하고, 김일성 주석 부친· 모친 양가 부모가 같이 신앙생활 하던 교회에요. 지금도 거길 남겨 놨어요. 그 청천강 이북지역은 아무도 못가요. 외국인들도 못가고 해외동포도 못가고. 정말 못가요. 남측에서 동포들이 공식적으로 방문해도 보여주질 않아요.

첫째는 도로가 안 좋아서 못 보여줘요. 김정은 위원장도 저번에 얘기 했잖아요, 우리 도로가 좋지 않다는 얘기를. 두 번째 이유는 청천강 이북 그 지역은 군사지역이라 또 보여줄 수 없어요. 그래서 굳이 가야 된다면 즉승기, 헬리콥터를 타고 가야해요.

그런데 저는 운 좋게 청천강 이북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지도 끝이잖아요 양강도가. 중국 바로 보이고 포평 혁명 사적지를 둘러보고, 포평교회도 둘러보고 했어요.

우리가 요구하는 기독교가 아니지만 북의 기독교는 살아있다

포평교회라고 하면 무슨 십자가 있는 예배당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정도는 아니고 그냥 기와집에요, 하지만 가정집보다는 좀 크죠. 그걸 예배당으로 사용한 거에요. 그 기와집 예배당에 사용된 기와가 일반적인 게 아니고 처음보는 신기한 기와더라구요. 그런 기와가 그 지역에만 있다고 하더라구요,

거기 가면 해설사가 ‘여기는 우리 위대한 수령님께서 신앙생활을 하던 곳이고, 김형직 선생님과 강반석 여사님께서 새벽예배를 드리시고 교인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지 아니 하시고, 그대로 모아 놓고, 거기에서 항일 계몽 운동을 하신 유서 깊은 곳입니다’ 하면서 방문한 학생들한테 설명하더라구요. 북측에 있는 모든 초등학생들, 중·고등학교 학생들, 대학생들은 의무적으로 그곳을 깃발 들고 행군해서 탐방해야 해요. 광복의 천리길, 배움의 천리길이라고 하면서, 우리로 하면 수학여행이죠. 그것을 도보로 하는데 그 코스의 마지막 종착지가 바로 거기에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간접적으로 전도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김일성 주석 부모들이나 김일성 주석 형제들이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그리고 아버지 김형직 선생이 굉장히 기독교 음악쪽으로 뛰어나셨어요. 찬송가 반주를 직접 풍금으로 하셨는데, 김일성 주석이 아버지한테 풍금을 배워서 반주도 했다는 얘기를 하고. 실제로 회고록 하고 인터뷰에 보면 이야기를 하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고, 가문이 다 그 교회에 충성을 하다시피 한 유서 깊은 교회죠. 그런 곳을 방문했으니 정말 특별한 곳을 방문한 것이죠. 다른 분들은 아마 못 갔을 거에요(웃음)

▲ 경계선 얘기가 나왔으니까, 사실 남측에서 북측을 호도할 때에 “중국과 러시아 경계지역에 탈북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렇게 탈북한 분들을 통해 북한 사정이 굉장히 어렵다.” 하면서 북한에 대한 담론을 재생산 합니다. 목사님께서 실제로 경계지역을 방문하셔서 경험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실제로 국경 지역은 열악해요. 그러니까 탈북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회령이라던지 양강도 지역 같은 곳, 그 쪽 지역에 사는 분들이 탈북하는 확률이 많죠. 거의 그쪽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탈북하니까, 자기들이 고생한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사실이냐 아니냐 그런걸 떠나서 북측 경계지역에서 중국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가자면 하루에, 제가 목격한 어떤 사람은 하루에 여덟 번을 왔다갔다 하는 사람을 봤어요. 통행증만 받으면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에요. 그런데 통행증 없이 강을 건넌 사람들, 압록강을 건넜던 두만강을 건넜던, 사선을 넘었다고 하잖아요, 드라마틱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하지만 잘 생각해 보세요, 통행증을 발급받지 못하는 처지에서 불법적으로 가는 것이잖아요. 대한민국만 해도 예를 들어 밀수 같은 범죄자들을 봐도 국경을 몰래 넘어 가잖아요. 비슷한 예를 들어 선박 속에 자기 몸을 숨겨서 일본으로 밀항을 한다든지 중국으로 밀항을 한다든지. 그런 것을 볼 때에 북측에서는 국경을 넘어 탈남을 하는 게 법으로 금지되어 있잖아요. 북도 마찬가지잖아요.

북도 북이라고 하는 영토를 탈북하는 게 불법이잖아요. 그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가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범법자들인 것이죠. 북측도 헌법 조항이 우리 하고 거의 똑같아요. 거기도 법을 어겨 도망해야 하는 사람들은 통행증을 정상적으로 발급받지 못하죠, 그러니까 강을 건너는 거죠. 그래서 북측에서는 탈북자라는 말을 안 쓰고 도강자라고 해요. 강을 건넜다고 해서. 

그런데 그쪽 지역에서는 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굉장히 유두리가 있어요. 도강을 했어도, 또 오면 또 받아요. 훈계하는 그런 또 부서가 있지만, 잠깐 몇 시간 동안 우리로 말하면 훈방 조치하는 거에요. 그래서 탈북한 사람이 또 탈북하고 그런다는 얘기가 그런 거에요. 쉬우니까. 정말 저 사회가 총칼로 인민들을 옥죄고 탈북하면 쏴죽이고 이런 사회면 어떻게 세 번 네 번 탈북하고 그러냐구요, 있을 수가 없죠.

경계 보초들도 그냥 묵인해줘요.(웃음) 그러면 보초들이 자기네 구역에서 월북했다고 해서 뭐 목 달아나고 그런 거 아니에요. 조심해서 갔다 오라고 하고 그래요.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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