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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CA 위장결혼식 사건아침이슬이 ‘나’였고 그 자체였다
김정택 목사 | 승인 2019.05.04 19:53

종로5가 NCCK에서 종열이형을 만났다. 나에게 무언가 할말이 있는듯 한데 뜸을 드린다. 그러다 한마디 살짝 던진다. 대통령간접선거가 진행될 지금 상황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어떤 집회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냐고.

나는 고심하지도 않고 마치 진작부터 준비를 해온 사람처럼 필요합니다고 쉽게 대답했다. 그러면 민청협의 조성우를 만나보면 좋겠다. 나는 아무래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되야될 것같다. 형님은 빠지싶시오. 기독교계에서는 오직 EYC회장인 나 혼자만의 책임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계엄하에 집회를 하면 구속될 것은 뻔하고 그러면 구속자는 최소로 줄여야 운동은 이어진다는 인식은 발달되어 있었다.

은밀히 조심히

그렇게 해서 조성우를 만났고 조성우는 집회를 준비하는 모임에 나를 포함시켰다. 조성우는 나에게 군부도 민주화를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나를 안심시켜 확실하게 EYC를 참여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얘기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분명한 정보를 가지고 얘기했는지는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미래를 약간은 밝게 보게하는 힘으로는 작용했다.

나는 EYC임원으로는 이상익 한사람만 만났다. 감리교청년회쪽으로는 후배인 박일성이만 만났고. 둘에게는 나와의 만남은 없었던 것으로 해서 절대 구속은 되지말고 이후를 준비하기로 했다.

숨어 다니면서 모임은 집회를 준비해갔다. 민청협 회장인 이우회와 조성우, 홍성엽, 강구철, 문국주 양관수는  항시 참여하였고 이명준, 신동수는 가끔 참여했다. 신동수 형은 도통 말이 없었다. 그러면서 왜 참여하는지 궁금은 했다.

계엄하에 어떻게하면 집회를 성사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계험 하에 허가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결혼식과 장례식뿐임이 명확해졌다. 결혼식이든, 장례식이든 위장은 다 마찬가지이고. 장례식은 정말 누가 죽었다고 해야 하는데 그건 정말 풀기힘든 숙제였다. 장례식이란 것이 또 침울하기도 하고, 그래도 미래가 밝아야지. 누군가가 옛날에 유진산 씨도 비슷한 집회를 결혼식을 빙자해서 했다고 하면서 결정에 힘을 보태었다. 결혼식으로 결정이 났다.

▲ YWCA위장결혼사건의 신랑의 맡았던 홍성엽 씨 ⓒGetty Image

그럼 누구를 신랑, 신부로 내세우지? 홍성엽이가 자원해 나섰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었다. 그럼 신부는? 신부는 신랑 홍성엽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고 성엽이는 세우지 말자고 하여 신부는 찾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청첩장에는 신부 이름은 명기해야 하니까 홍성엽은 윤정민이라는 가상인물을 만들어 내었다. 작명이 중요한지는 YWCA 집회 후 주동자들이 보안사에 끌려가서 조사받을 때 알았다. 신부 이름이 문제가 되었다.

윤정민을 거꾸로하면 민정윤이다. 너희들은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해서 권력을 민정이양 하려는 내란음모를 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신부이름 때문에 내란음모 사형까지 받을 뻔 했다.

필요한 역할마다 사람을 정하였다. 나는 이왕 주동할거면 확실히 하고 EYC조직의 명예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로서는 유일한 전국조직이었고 민청협과 대등하게 집회를 준비해가는 책임있는 조직임을 분명하게 하고 싶었다. 사회의 적임자를 정해야 하는데 관수가 맡겠다고 나선다. 나는 사회는 회장이 맡는 것이 적합하다는 변을 내세우고 내가 사회를 보겠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EYC회장이 사회를 맡는 것이 설득력이 있었나보다. 내가 사회로 정해졌다.

그렇게 해서 11월24일 오후5시 YWCA결혼식은 정해졌다. 철저히 결혼식으로 위장하기로 하고. 구속은 당일 행사를 맡은 이우회, 홍성엽, 김정택은 어쩔 수 없고 다른 모의자들은 잡히지않고 도망다니면서 다음 일을 도모하기로 했다. 구속자를 최소화시킨 것이다.

밀려드는 하객들에 놀랐다

행사 당일이 되자 밖에는 많은 인원의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들킨 것인지, 그냥 운동권의 결혼식이라 그래도 혹시해서 동원된 것인지 분위기만 보고서는 감지할 수가 없었다. 행사장안에는 축하객들이 가득찼다. 어쩜, 이렇게 많이 올 수가 있는가!

조직력인가, 무엇에 대한 갈망때문일까? 계속 축하객들은 밀려들어왔고 시간은 오후 5시 시작 시간이 되었다. 이제 내가 단상에 올라가서 식을 시작해야 한다. 언제 급습할지 모르는 사복의 경찰이 밖에는 쫙 깔려있고 그 상황에서도 집회는 성사시켜야 하고.

사회를 정석으로 본다고 한다면 오늘 행사는 홍성엽 결혼식이 아니라 홍성엽 결혼식을 위장한 통대선거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임을 설명하고 축하객들의 양해를 먼저 구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경찰이 바로 치고들어 오겠지. 그래서 나는 나가자마자 신랑 홍성엽군과 신부 윤정민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하고 결혼식을 선포했다.

그리고는 바로 이어서 대회 취지문이 낭독되었다. 취지문 낭독까지는 완료되었다. 이제 내가 구호를 선창할 차례다. 통대선거 저지한다. 거국내각 구성하라 하자 문이 부숴지는 소리, 책상이 부숴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로 장내는 곧바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경찰들은 사회인 나를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도망갈 틈도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경찰들에 들려 경찰차에 짐짝처럼 던져졌다. 내가 끌려간 곳은 종로경찰서였다. 붙잡혀온 사람들은 성명과 생년월일만 대고 사진만 찍고 유치장에 들여보냈다.

박정희 암살 사건의 여파

다음날 새벽이 되니 10여명을 호명하여 불러낸다. 밖으로 끌려 나가보니 군대차가 와 있었다. 아! 이제 풀려나나보다 하는 안도감이 그 순간 생겼다. 그런데 그것은 잠시 뿐이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머리숙이라고 소리치며 M16총으로 머리를 내리친다.

어, 이거 어떻게 된거지? 분위기가 살벌하게 느껴진다. 뭐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다. 우리들이 끌려간 곳은 서빙고 보안사였다. 보안사에 들어가자마자 한명씩 한방에 집어넣는다. 군복을 주면서 빨가벗고 갈아입으라 한다. 군복을 입자마자 몽둥이로 개패듯 후려친다. 우리가 무슨 화를 돗구는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씩씩대며 주먹과 구둣발로 분풀이를 한다.

이제 힘이 다 빠졌나? 2층 취조실로 끌고간다. 취조실에는 여러명이 보인다. 조사는 하지도 않고 서로 돌아가며 구둣발질, 주먹질부터 한다. 그리고는 나무로 고문하고 사정없이 온몸을 부숴뜨릴 것처럼 팬다. 아, 나는 왜 기절을 안 할까? 기절이라도 해야 끝날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기절하는 연극을 하자는 마음이 일어났다. 

나는 억억대고 허허 정신나간 사람처럼 소리를 냈다. 그랬더니 찬물을 붇고 군의관을 부른다. 군의관이 나의 눈깔을 뒤집어 보고 입안을 휘집어 보더니 괞찮다고 하고 퇴장한다. 그때부터 조사가 시작되었다. 기절의 연기가 먹힌 것이다. 조사가 끝난 주동자들은 한명씩, 한방에 가두었다. 여전히 분위기는 살벌했고 조금만 움직여도 문을 따고 들어와 구둣발로 찬다.

나는 오히려 그 시간이 좋았다. 전혀 요동함이 없이 가만히 앉아 호흡운동을 할 수 있었으니까. 군인들에 대한 적대감도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자신감이 슬며시 올라왔다.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이겨낼 수 있을 것같은 자신감이었다.

군인들도 이제는 화가 풀린 것 같았다. 자기들 이해도 좀 해주라고 한다. 김재규 집단을 조사·감시하면서 20일간 잠을 못잤는데 끝나고 이송시키자마자 너희들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노래할 사람, 없느냐고 한다.

내가 일어나서 아침이슬을 불러 재꼈다. 아마 그때처럼 아침이슬을 잘 부른 적은 이후에 없었던거 같다. 무수히 맞고 맞아 죽을 지경까지 가고서 이제 서서히 몸과 정신이 회복되어갈 즈음에 부른 아침이슬은 ‘나’자체였고 터져나오는 소리였다.

김정택 목사  kjt94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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