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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기나 보자, 무엇을 위한 줄다리기 일까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19.05.15 18:58
그(~요나)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져 (파도가) 너희에게서 물러갈 것이다. 나 때문에 이 큰 폭풍이 너희에게 닥쳤음을 내가 알고 있다.(요나 1,12)

요나는 하나님을 피하고 사람을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선장에게 걸려 책망을 듣고 제비뽑기에 걸려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의 신분과 그의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가 폭풍의 원인임에도 감히 그를 어찌  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치 선원들이 그를 '토해내게' 하시려는 듯 깨진 배를 더욱 거센 파도로 몰아붙였습니다. 더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선원들은 요나에게 널 어떻게 하면 좋으랴 하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자 요나는 위와 같이 대답을 합니다.

이 상황이 전적으로 자기 탓임을 깨달은 요나의 이같은 대답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요? 책임을 지려는 것이라면 다른 행위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예컨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먼저이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 구약성서의 요나서를 각색해 무대에 올린 한 장면 ⓒGetty Image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에는 책임을 지는 측면도 없잖아 있겠지만, 거기에서는 다른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차라리 죽을 망정 본래 목적지인 니느웨는 절대로 못가겠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죽음으로 '도피하겠다'는 것으로 들립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회개나 용서 운운하는 것은 처음부터 되도 않는 소리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뜻을 굽힐 수 없다고 고집하며 하나님과 끝까지 씨름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바닷속으로 던지지만, 그의 계획은 하나님이 준비한 큰 물고기 때문에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그는 배 위에서 뱃속으로 옮겨집니다.

이렇듯 요나와 하나님의 줄다리기는 멈출줄 모르고 요나서 끝까지 계속됩니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요나입니다. 그렇지만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행위에서 정의와 공의 같은 보편적 가치가 결여되어 있어서입니다. 요나만 그랬을까요? 아, 우리 속의 요나 어찌 할까요?

하나님에게 저항하는 우리 속의 요나가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조금은 달라지는 오늘이기를. 우리의 신념이 된 우리의 편견을 사랑과 연민으로 극복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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