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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경제윤리를 위한 참여와 생태학적 원칙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2)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19.05.21 20:08

기독교 경제윤리는 경제의 문제들을 분석하고, 그 배후의 이데올로기를 밝히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경제를 규율하고 형성하는 데 필요한 규범들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것을 그 과제로 하는 학문이다. 경제는 기독교 경제윤리 앞에 놓여 있는 현실이기에 경제윤리는 경제를 주어진 현실로 다루는 데서 출발한다. 기독교 경제윤리의 규범들은 경제를 초월하는 근거를 가질 수 있지만, 반드시 경제의 역동적 과정에 접촉점을 가져서 경제를 내적으로 통제하는 효과를 가져야 한다. 기독교 경제윤리는 현실의 경제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지향적이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실현가능성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실천지향적이다.

이러한 기독교 경제윤리의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나는 기독교 경제윤리의 규범들과 그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경제의 기본문제들을 파악하는 것이다.(1) 이 두 가지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기독교 경제윤리의 관점에서 경제의 기본 문제들을 푸는 방안을 일관성 있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경제윤리의 원칙들

기독교 경제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의 관점에서 경제 문제를 판단하고 경제를 규율하고 형성하는 데 필요한 규범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한다. 교회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만물이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다는 신앙을 고백한다. 이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임 당함과 부활의 사건에 대한 기억에 근거한다.(빌립 2:5f.)

그리스도가 죄의 힘에 의해 살해당했다가 그 힘을 이기고 부활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배권의 교체(2)가 이루어졌다는 고백으로 이어지고,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은 세상을 무로부터 불러내셨다.”(로마 4:27)는 찬미로 표현된다. 부활의 빛에서 창조가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를 짓고 그 안에 사는 생명체를 지어서 피조물에 대한 주권을 갖는다는 히브리 성서의 고백은 하나님이 피조물을 무로부터 불러냈으니, 피조물을 무화시키는 힘에 맞서서 피조물을 끝끝내 보존할 것이라는 고백으로 새로워지고 강화된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죄가 피조물을 파괴하고 멸절시키는 힘으로 작용하지만, 그 힘은 피조물을 무로부터 건져 올리는 하나님의 권능을 이길 수 없다. 이처럼 창조를 새롭게 조명하게 하는 부활 사건은 피조물의 미래인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도 확실한 전망을 갖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파괴하고 멸절시키는 죄와 죽음의 힘을 꺾고 만물에 대한 지배권을 완성하여 이를 하나님에게 돌려 드리면 하나님은 만유의 주로 영광 가운데 임하게 될 것이고,(고전 15:28) 만물은 하나님 안에서 생명의 충만함을 누릴 것이다.

그리스도 사건에서 조명되는 창조와 종말의 드라마는 기독교 경제윤리가 경제를 다루고 경제를 규율하고 형성하는 원칙을 구상하는 지평이다.(3)

참여의 원칙과 생태학적 규율의 원칙

세상을 생명의 질서로 창조하고 보존하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허락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경제는 사회적 차원과 생태학적 차원을 가진다.

▲ 천지창조의 모습 ⓒGetty Image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하나님은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을 축복한 뒤에 생명을 영위하는 세 가지 방식을 제정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위탁한다. 하나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을 채우라는 위탁이고, 다른 하나는 땅을 경작하라(cabash ha’arets)는 위탁이고, 마지막 하나는 하늘의 새들과 땅의 짐승들과 바다의 물고기들을 다스리라는 위탁이다. 땅을 경작하라는 위탁은 생육·번성의 위탁과 생명체 지배의 위탁 사이에 있고 두 위탁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땅을 경작한다는 것은 생육·번성의 위탁에 의해 늘어나는 인구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경제 활동을 하면서 문화를 형성하라는 뜻이다. 경제는 인간이 생명을 영위하는 기본 방식이며, 하나님의 축복의 질서에 속한다. 이러한 경제 위탁은 무제약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체 지배의 위탁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경제의 위탁을 받은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규정으로부터 밝혀지는 인간의 지위는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하나는 하나님과 소통하고 사람들끼리 소통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맺는 주체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하고자 하는 일을 맡고 있는 대리인들이라는 것이다.

소통 능력을 갖고 있는 인간은 사회적 파트너 관계를 맺는 주체이고, 사회적 파트너 관계를 맺는 주체들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고 함께 책임을 진다. 참여와 책임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규정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관계 형성의 기본 원칙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세상에서 할 일은 생명체의 지배이다. 생명체 지배는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늘의 새들과 땅의 짐승들과 바다의 물고기들을 다스린다는 말로 표현되어 있고, 그것이 곧 하나님이 사람들을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한 목적이다. 생명체의 지배는 발로 내리 누른다는 뜻의 히브리어 ‘라다(radah)’로 표현되어 있어서 생명체에 대한 폭력적 지배를 암시하는 듯하지만, 생명체 지배의 본래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세상과 생명체를 창조하면서 관철하고 있는 의도로부터 파악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를 공간적으로 분할하고, 각각의 공간에 서식하는 생명체들을 배치하여 서식 공간으로 인한 생명체들 사이의 충돌과 갈등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4)

땅 위에서 살아가는 짐승들과 사람들은 서식 공간을 함께 하여 충돌의 여지가 있으나, 하나님은 창세기 1장 29-30절에 채식 규정을 두어 사람들과 동물들이 먹이를 얻기 위해 서로 살육하지 않게 하는 장치를 만든다. 이렇게 생명체들 사이에 공생의 질서를 수립한 하나님은 사람들을 그분의 대리자로 세워 그 질서를 지키게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맡은 일은 피조물을 임의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사이에 공생과 평화를 수립하는 것이다.(5) 오늘의 세계상에 근거하여 말한다면, 생명체 지배의 위임은 인간이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보전하는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워진 인간이 욕망을 충족시켜 삶을 펼치기 위한 방편으로서 수행하는 경제는 사회적 차원과 생태학적 차원에서 두 가지 요구 아래 선다. 경제는 서로 마주보고 소통하는 사람들의 주체성과 사회적 파트너관계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경제 활동은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보전하는 한도 안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기독교 경제윤리의 규범을 제정하는 것과 관련하여, 앞의 요구는 참여의 원칙으로 정식화할 수 있고, 뒤의 요구는 생태학적 규율의 원칙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성별하고 축성한 안식은 경제를 삶의 방편으로 상대화하고, 피조물 공동체에서 각각의 생명체가 제 자리를 유지할 권리를 갖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안식은 창조의 목적이다.(6) 엿새 일하고 이레째 되는 날에 안식을 취한 하나님은 사람들과 여타 피조물들도 안식으로 초청한다. 하나님은 공생과 평화를 누리는 세상과 온 생명체들이 그분 앞에서 그분을 찬미하기를 원한다.

안식은 사람이 노동과 경제활동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과 소통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삶의 목적을 되새기는 거룩한 기회이다. 따라서 안식은 사람의 경제가 삶의 방편일 뿐 삶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킨다.

또한 안식은 피조물이 인간의 경제 활동에 동원되는 데서 벗어나 각각의 피조물이 자신에게 배정된 자리에서 충만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보장하고자 한다는 것을 경축하는 거룩한 시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안식은 각각의 피조물이 하나님이 세운 공생과 평화의 공동체 관계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갖고 있고, 그 자리를 보장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하는 날이다.(7)

이와 같은 피조물의 권리가 인정되어 보호받게 된다면, 경제의 생태학적 규율의 원칙은 자연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의 도움을 받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미주

(미주 1) 이 두 가지 작업은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문제지향적이고 실천지향적인 기독교 경제윤리는 분석의 수준에서는 경제의 기본문제들을 먼저 파악하고, 그 다음에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꼭 필요한 원칙들을 가다듬고 그 신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데 집중하여야 한다. 그러나 서술의 순서에서는 경제윤리의 규범들을 먼저 제시하고, 그 다음에 그 규범들에 따라 경제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로 나아간다.
(미주 2) E. Käsemann, An die Römer, HNT 8a, 3. Aufl.,(Tübingen : Mohr, 1973), 27.
(미주 3) 이에 관련된 상세한 논의는 拙著 『인간과 노동 : 노동윤리의 신학적 근거』(성남 : 민들레책방, 2005), 특히 제2장을 보라.
(미주 4) 공간의 분할과 생명체들의 서식 공간 배정은 고대 히브리 세계상의 기본 얼개이다. 고대 히브리 세계상에서 나무와 플 같은 식물들은 땅에 부속된 사물로 인식되었기에 생명체로 간주되지 않았다. 생명체를 나타내는 표지는 피였다.
(미주 5) O.-H. Steck, Der Schöpfungsbericht der Priesterschrift(Göttingen : Vandenhoeck & Ruprecht, 1975), 206ff.
(미주 6) J. Moltmann, Gott in der Schöpfung : Ökologische Schöpfungslehre, 3. Aufl.(München : Kaiser, 1987), 283.
(미주 7) 이에 관한 상세한 논의로는 拙稿 “성서의 노동 이해와 그 윤리적 함의,” 『신학사상』 126(2004), 144-146을 보라.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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