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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로 가는 또 하나의 큰 길이 열렸다‘베른하르트 로제’의 『루터 입문』에 대하여
이정훈 | 승인 2019.05.26 17:24

구교, 즉 천년이 넘는 전통의 로마 가톨릭과 대비해, 신교, 즉 개신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이 출발점이다. 그 출발점에 서 있는 첫 사람은 종교개혁의 출발지인 독일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이다. 1517년 독일 북동부에 위치한 비텐베르크(Wittenberg) 성당 정문에 ‘95개조 반박문’(95 Thesen)을 내걸면서 종교개혁의 불씨는 발화되었다.

이 불씨는 다양한 신학을 꽃 피우며 여러 교파로 분화되어 나갔다. 종교개혁 2세대라 불리는 프랑스의 존 칼빈(John Calvin)은 개신교 개혁파의 개조에 가깝다. 스위스 제네바를 거점으로 존 칼빈의 개혁파 신학은 루터파와 양대산맥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독일과는 바다 건너 있는 먼 이웃이었지만, 잉글랜드 본토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 2세기나 앞서 14세기에 존 위클리프(John Wycliff)가 등장해 종교개혁이 내건 신학 원리들이 선취되고 있었다. 또한 잉글랜드와 한 영토를 공유하고 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존 칼빈을 스승으로 한 ‘존 낙스’(John Knox)가 장로교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처럼 종교개혁은 로마가톨릭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영토 이곳저곳에서 균열을 일으키는 차이의 반복이었다.

다양한듯 하지만 빈곤하고 획일화 되어 있는 한국교회와 신학

이러한 종교개혁의 다양한 교파들 중 한국은 장로교의 영향이 강한 곳이 되었다. 장로교 안에서도 다양한 교단으로 분화되었지만 저마다 내세우는 것은 종교개혁의 양대산맥이었던 개혁파 존 칼빈을 따르는 신학을 근본으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뒤집으면 종교개혁의 시조였던 루터나 루터신학은 별 인기가 없는 곳이다.

▲ 루터가 되었든 칼빈이 되었든 개신교 정체성을 확립한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책들은 빈곤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초 루터에 관한 굵직한 연구서가 출판된 것은 큰 위안이 되었다. ⓒ에큐메니안

‘별 인기가 없다’는 필자의 이야기가 너무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인터넷 서점 아무 곳이든지 접속해 “마르틴 루터”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본다면 결과에 조금 놀라게 될 것인데 80권이 전부이다. 이 결과에서 마르틴 루터가 직접 저술한 책들과 교양서를 제외한다면 책의 숫자는 더 급격히 줄어든다. 마르틴 루터에 대한 진중한 연구서를 헤아리는데는 두 손이면 충분할 정도이다.

그렇다고 존 칼빈을 가장 앞세우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또 다른 의외의 결과를 만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어느 인터넷 서점에든 접속해 “존 칼빈”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140권이 채 되지 않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존 칼빈의 직접 저술을 제외하면 마찬가지로 묵직한 연구서는 두 손이면 충분하다.

‘마르틴 루터’든 ‘존 칼빈’이든 거장들의 1차 저술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들의 길잡이 역할이나 깊은 해석을 만날 수 있는 책이 드물다는 건 한국의 신학적 환경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아무리 중요하다고 한들 전문적인 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들에게 접근할 길이 열려 있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이들의 중요성을 알 수 있을까. 더군다나 거장들의 1차 저술들을 직접 대하기에 무리가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루터로 가는 길이 넓어졌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마르틴 루터에게로 향하는 길은 좀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아니 책 숫자에서는 적었지만 적어도 마르틴 루터에게로 향하는 걸음은 존 칼빈보다 가벼웠던 것이 사실이다. 마르틴 루터에 관한 굵직한 저서들이 일찍이 번역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이형기 명예교수에 의해 루터 연구의 중요한 두 책이 1990년대 초반에 번역되었다. 루터 신학의 대가이자 독일의 조직신학자 ‘파울 알트하우스’(Paul Althaus)의 책, 『마르틴 루터의 신학』이 1993년에, 그 뒤를 이어 또 한 명의 루터 연구의 거장이자 독일의 교회사 학자인 ‘베른하르트 로제’(Bernhard Lohse)의 『루터 연구 입문』이 1994년에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비록 두 권 모두 중역(重譯, 독일어 원저가 영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이라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미려한 번역문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 책이다.

▲ 독일 루터파 조직신학자 파울 알트하우스를 이어 루터 연구의 대가로 손꼽히는 베른하르트 로제 교수는 『마틴 루터의 신학』을 출판해 루터 신학을 새롭게 정리했다.

여기에 교회사 학자인 베른하르트 로제의 또 다른 역작이 2002년에 번역되어 나왔다. 장병식 교수가 『마틴 루터의 신학: 역사적, 조직신학적 연구』를 번역한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로제의 마지막 역작이었다. 물론 시간 순으로 볼 때 로제의 마지막 책은 아니지만 루터 연구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책이 마지막이다.

그리고 이번에 또 다시 로제의 책, 『루터 입문』(서울: 복있는 사람, 2019)이 번역되었다. 1993년 이형기 교수가 번역했던 로제의 책 『루터 연구 입문』이 초판을 번역한 것이었다면 이번 번역판은 로제가 생을 다하는 순간까지 손질한 3판을 박일영 교수(루터대학교)가 독일어 원저에서 직접 번역한 것이다. 속된 말로 거장의 마지막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루터 공부를 위한 종합선물센트같은 책, 『루터 입문』

이러한 책들을 앞에 두고 보면 비교해 볼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앞서 언급한 알트하우스의 책과 로제의 저술들 사이의 비교가 그렇다. 먼저 종교개혁의 핵심 혹은 루터 신학의 출발점에 대해 알트하우스는 그의 책을 시작하며 이렇게 서술한다.

“루터의 모든 신학적 사고는 성경의 권위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의 신학은 성경을 해석하는 하나의 시도에 불과하다. 그것의 형태는 근본적으로 주석이다.”(파울 알트하우스, 『마르틴 루터의 신학』, 이형기 옮김[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17], 19)

알트하우스의 짧지만 명확한 진술에 대해 로제는 이를 조금 더 발전시키고 있다.

“종교개혁은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의 권위에 반대하여 성경의 권위를 내세웠던 운동으로 묘사된다. 종교개혁의 이러한 성경적 원칙은 전통의 유효성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과 대조된다(312). … 의심할 바 없이 성경의 권위에 대한 루터의 강조는 전례를 찾을 수 없이 강한 것이었다. 면죄부 논쟁에서 루터가 교황의 권위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권위를 주장하였을 때, 그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이었다(315).”(베른하르트 로제, 『루터 입문』, 박일영 옮김[서울: 복있는 사람, 2019])

루터라는 거인을 다룸에 있어 이러한 공통점에 대한 인식은 사실 상식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식을 조금 벗어나는 면을 두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루터의 신학을 언급함에 있어 “십자가 신학”은 핵심이라고 이야기된다.

이러한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는 사람은 알트하우스다. 알트하우스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대해 “제1부 제5장 십자가 신학”으로 취급하고 있다. 알트하우스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이렇게 언급한다.

“요약해 보면,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십자가가 하나님을 숨기고, 그럼으로써 자기 확신적인 이성 편에서 행하는 하나님에 관한 모든 사색의 종언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인간에 대한 심판의 상징이고, 따라서 자기 확신적 도덕주의적 인간 편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이루려는 모든 시도의 종언을 나타낸다. 십자가는 경험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십자가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우릴 위해 하나님에 의해 예비된, 하나님의 고난의 표현이다.”(알트하우스, 44-45)

이에 반해 로제는 전통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있다. 그의 책에서 십자가 신학은 개별적인 항목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로제는 십자가 신학이 왜 출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교회사 학자 답게 루터가 당면해야 했던 수많은 논쟁 역사 속에 위치시키고 있다.

“여기에서(하이델베르크 토론) 루터는 그 당시 현안이 되었던 사항들을 논하지 않았다. 그는 토론을 위해 준비한 신학적, 철학적 논제들을 다루면서, 인간의 죄성,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의지의 부자유함, 인간의 협조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동, 그리고 믿음에 대한 관한 그의 근본적인 종교개혁 신학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가장 날카로운 문장으로 표현했다. 루터는 “영광의 신학”에 대비되는 “십자가의 신학”을 내세웠다. … 루터는 이 개념을 통해 확실히 당시의 신학이 피하지 못한 명백한 협소함과 편파성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게 했다.”(로제, 117)

논쟁에 속에 비추어본 루터

필자가 보기에 로제 책의 미덕은 바로 루터의 신학을 루터가 치뤄야 했던 수많은 논쟁 속에 위치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로제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 부분이다. 바로 “III. 당대의 논쟁에서 루터의 역할”(109~202쪽)이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루터가 참여해야 했던 논쟁의 역사들을 로제는 짧지만 간결하게 짚어나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루터가 무엇을 주장했고 로마 가톨릭 신학에 어떻게 대항했는지 보여 준다. 또한 그 속에서 루터가 어떤 생각으로 신학을 정립해 나갔는지 살펴주었다.

▲ 루터 연구의 대가였던 독일의 교회사 학자인 ‘베른하르트 로제’의 『루터 입문』은 교회사 학자가 저술한만큼 루터가 치뤄야 했던 수많은 논쟁 속에서 루터의 신학을 위치시키고 있다.

여전히 루터 신학의 기념비적인 책은 알트하우스의 책일지도 모른다. 방대한 양에서 뿐만 아니라 루터파 조식신학의 대가답게 조직신학적 항목으로 루터의 신학을 배열하고 있다. 하지만, 동어반복이 될지도 모르지만 도대체 왜 루터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신학으로 정립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는 책이다.

하지만 로제의 『루터 입문』은 이를 해소시켜 준다. 누군가 필자에게 이 책의 독서방법에 대해 묻는다면 필자는 “그냥 3장부터 읽으세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로제가 책의 분량 상 혹은 입문서 나 개론서라는 책의 특성상 자세히 다루지 못한 논쟁의 역사는 좋은 교회사 책 한 권 곁에 두고 읽으면 좋겠다고 덧붙이고 싶다.

또한 로제의 이 책은 마치 ‘종합선물세트’라는 말 이외에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루터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는 루터에 대해 공부해 보고 싶은 사람을 향해 “이런 이런 것이 있으니까 참고해 보세요. 그리고 더 많은 책들이 있으니 찾아서 잘 읽어보시면 됩니다.” 하고 친절한 할아버지 신학자가 등을 토닥여 주는 책 같다.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이야기이지만, 독일에서 입문서나 개론서는 학문의 현장에서 은퇴한 대가가 저술한다는 암묵적 원칙이 그대로 들어난 책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너무 모든 것을 다루려고 했던 것이 아쉽다면 아쉽다는 역설이 존재한다. 어떤 면에서는 너무 간략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루터에 관해 거의 모든 것을 언급하고 있으니 자세히 언급하지 못하고 짧게 짧게 넘어가는 부분이 필자로서는 섭섭했지만 그래서 다른 책을 찾도록 했다면 로제는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까지 해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 책의 미덕 혹은 로제의 미덕이라고 할까, 어느 것이 되었든 로제가 교회사 학자로서 가지고 있는 시각의 공정함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많은 논쟁이 그의 종교개혁 사상으로 인해 발생하였다. 이러한 교회적, 신학적인 논쟁이 이 시기에 일어난 모든 갈등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그러나 그 논쟁 속에서 단지 서로 다른 경제적, 정치적 주장들만을 밝혀내려는 것도 마찬가지로 일방적인 것이다. 당시의 교회적, 신학적인 논쟁은 정치가들, 영주들, 그리고 경제적 집단들 사이의 이권을 둘러싼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다양한 사건의 국면들이 어떤 계기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분명하게 분리해 내는 것은 종종 불가능한 일이다. 신학적, 종교적인 요소와 다른 동기들 사이를 구분하려는 시도 역시 종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종교는 진공 상태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실제적인 삶의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로제, 『루터 입문』, 106-107)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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