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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인간 존엄성 보장의 원칙교회를 위한 기독교 경제윤리 (3)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 승인 2019.05.27 19:46

경제는 인간의 타락 이후에도 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여전히 하나님에 의해 보존되는 생명의 위탁들 가운데 하나이며, 정의의 원칙에 따라 형성된다.

기독교경제윤리의 정의의 원칙

세상과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은 어느 시점인가부터 죄에 의해 침탈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타락과 더불어 작용하기 시작한 죄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틈을 벌리고 그 관계를 일그러뜨리고 심지어 파괴하기까지 한다.

타락사화(창세 3장)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낙원추방과 땅에 대한 저주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땅이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었다는 것은 땅과 인간의 관계가 적대적인 관계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운 생명의 질서인 생육과 노동이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저주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낙원 추방 이후에도 인간은 생육하고, 노동과 경제 활동을 통하여 삶을 꾸려나갈 것이다. 생육과 노동은 여전히 하나님의 축복의 질서에 속해 있다. 

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경제가 삶을 꾸리는 방식으로서 하나님에 의해 보존된다고 해도, 그것은 역사의 특정한 조건들 아래서 사람들이 조직한 경제가 하나님에 의해 있는 그대로 긍정된다는 뜻이 아니다. 죄가 지배하는 세상의 현실은 참혹하다. 호세아 4장 1-3절에 따르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져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뜨려지니 사람들 사이에 폭력 관계가 끝없이 이어지고, 그 결과 피조물 공동체가 생명력을 잃고 영락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호세아는 피조물의 생명력 상실과 영락이 사람들 사이의 폭력 관계가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전가되어 나타난 결과라고 통찰하고 있다.

▲ 기독교경제윤리를 위한 세번째 원칙은 정의의 원칙이다. ⓒGetty Image

죄의 지배 아래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폭력 관계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경제를 꾸리기 위해 사람들이 맺는 관계도 지배와 수탈의 관계로, 배제와 차별의 관계로 일그러진다. 강자가 권력을 독점하고 그것을 가지고 약자를 억눌러 약자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고 약자를 멸시한다.

이러한 세상에서 경제가 여전히 생명을 꾸리는 방식으로 보존되려면 경제를 지배하는 폭력의 논리가 정의의 이름으로 제어되지 않으면 안 된다. 히브리 성서는 폭력으로부터 세상을 해방시키는 정의의 원형을 하나님의 정의에서 찾았다. 하나님은 약자의 편에 서서 약자가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기회를 주장할 권리를 옹호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지배 없는 사회적 파트너관계로 회복하기 위해 기득권 구조를 해체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이 정의로운 분임을 드러낸다. 이를 보여 주는 실례는 성서에 차고도 넘친다. 이집트 땅에서 파라오의 손아귀로부터 히브리인들을 건져낸 야훼는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파라오 체제를 부정하고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왕이 없는 평등공동체를 구현하고 ‘만나의 경제’를 실현할 것을 요구했다.

하나님의 정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처럼 약자들 편에 서서 정의를 실천할 것을 요청받는다. 작은 사람들을 편드는 정의는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과부, 고아, 이방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십일조 제도로 표현되었고, 작은 사람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안식일 준수, 임금 정시 지급, 저당권 제한, 생계대부에 관련된 이자 금지 등을 명시한 히브리 사회법으로 구체화되었고, 하나님의 땅에 대한 주권을 앞세워 소유권을 제한하여 히브리 사회의 양극화와 채무노예화를 근절하려는 노력으로 나타났고, 땅과 주택과 신체의 자유 등 인간의 생존과 삶에 필수불가결한 것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원상을 회복시키는 희년법 제정으로 나아갔다.

희년 정신을 계승하는 메시아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음을 선포하고, 세금과 지대와 강제노동 등 로마 제국을 지탱하는 세 가지 수탈제도들로부터 작은 사람들을 해방시켜 안식을 누리게 하겠다고 약속했다.(마태 11:28-30)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에서는 누구나 ‘일용할 양식’을 보장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극히 작은 사람들이 의식주와 치료, 위로 등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할 수 있도록 행동하여야 한다.(마태 25:31 이하)

위에서 말한 바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보호하는 정의가 타락한 세상에서 하나님이 보존하는 경제의 운영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경제가 타락한 세상에서 생명의 위탁으로 보존되기 위해서는 피조물에 대한 폭력적 지배도 줄여야 한다. 죄의 지배 아래서 사람들 사이에 끝없이 이어지는 폭력 관계로 인하여 피조물이 생명력을 잃고 영락한다는 호세아의 통찰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폭력이 인간의 자연에 대한 폭력으로 옮아간다는 것을 시사한다. 강자가 축적을 위해 약자에게 행사하는 폭력은 자연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착취하여 부의 형태로 전환하기 위해 자연에 가하는 폭력과 동전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다. 자연의 착취와 지배는 경제가 축적을 목표로 하지 않고 사람들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삶의 방편으로 자리를 잡을 때 최소화될 것이다. 경제는 인간과 자연의 공생과 평화를 깨뜨리는 방식으로 지속될 수 없다.

호세아는 피조물이 파멸의 힘으로부터 벗어나 생명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사람들 사이에 폭력관계가 종식되어 정의와 평화가 깃들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람들을 다시 사로잡아야 한다고 전망한다.(호세 14:1-8) 이러한 호세아의 예언자적 전망은 그리스도 사건을 기억하는 바울에게서 피조물이 그 자신을 파멸시키는 죄의 종살이로부터 해방될 날을 고대하고 사람들이 몸의 속량이 이루어질 날을 고대한다는 종말론적 전망으로 표현된다.(로마 8:18-27)

위에서 논의한 바로부터 자연에 대한 폭력의 최소화는 타락한 세상에서 경제를 운영하는 기본 방침으로 설정되고, 이 방침은 경제의 생태학적 규율의 원칙을 내용적으로 보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 존엄성 보장의 원칙

사람은 능력이 있는 한에서 경제 활동에 참여하여 자신의 삶을 책임 있게 꾸리고, 공동체 복지에 기여하여야 하지만, 사람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는 경제에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나 경제적 업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는 삶의 방편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사람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는 그가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져서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는 데서 창설된다.(1)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상대로서 하나님 곁에 현존하도록 허락된 존재이다. 비록 그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죄인으로 현존하는 사람에 대한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신실한 분이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런 대가 없이 죄인을 받아들여 그분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붙든다.

사람이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것은 자유이다. 사람은 물질적 궁핍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물질적 궁핍으로 인하여 자유를 상실하지 않을 경우에만 존엄한 삶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물질적 궁핍으로부터의 자유는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진 존엄한 존재인 인간에게 그 어떤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한다. 경제 활동에 참여하여 경제적 업적을 쌓지 않은 경우라 해도 모든 사람은 경제적 업적에 무관하게 존엄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무조건 요구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경제적 업적 강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경제를 운영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 원칙은 간략하게 인간 존엄성 보장의 원칙으로 정식화될 수 있다.

소결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 사건에서 조명되는 창조와 종말의 지평에서 기독교 경제윤리가 삶의 방편인 경제를 규율하고 형성하기 위해 구상하는 규범적 장치는 생태학적 규율의 원칙, 참여의 원칙, 정의의 원칙, 인간 존엄성 보장의 원칙이다.

미주

(미주 1) 볼프강 후버/하인츠 E. 퇴트, 『인권의 사상적 배경』, 주재용·김현구 옮김(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216.

강원돈 교수(한신대학교 신학부/사회윤리와 민중신학)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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