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불편함을 만들어가는 역할”장로회신학대학교 암하아레츠 사람들
권이민수 | 승인 2019.06.29 16:41

작년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임성빈 교수, 이하 장신대) 채플실에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데이)’을 맞이해 ‘무지개 퍼포먼스’를 진행한 학생들이 있었다. 성소수자들과 연대의 뜻을 전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학교당국으로부터의 징계였다.

바로 장신대 동아리 ‘암하아레츠’의 학생들이다. 이들의 행동과 그에 상반된 학교 및 교단의 저지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학생들에게는 버거운 징계가 계속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현재 징계 처분 무효 소송 중에 있다.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27일은 2차 변론일이어서 서울동부지방법원 근처 카페로 암하아레츠를 만나기 위해 찾아갔다.

▲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진보적 학생 동아리인 “암 하아레츠” 구성원들. 지난해 아이다호날 연대의 의미로 채플실에서 무지개깃발을 든 일 때문에 학교로부터 징계를 당했고 무효소성 변론을 위해 법원을 찾았다. ⓒ권이민수

▲ 암하아레츠는 어떤 모임이며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서총명 : 1980년대 후반에 선배님들이 만든 동아리로 시작되었어요. 당시 빈민들, 가난한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게 목적이었죠. 처음엔 도시빈민선교동아리였다가 후에 ‘땅의 사람들’이란 뜻의 ‘암하아레츠’란 이름이 생기게 되었어요.

암하아레츠 활동의 핵심은 단순히 도시빈민, 가난한 사람들을 돕자는 것이 아니었어요. 그들도 이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주체이다, 단순히 돕는 게 아닌 그들이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식의 운동을 생각하고 펼치는 동아리가 암하레츠였던 것이죠. 80-90년대까지만 해도 눈에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기에 암하아레츠는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었어요.

그러나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신빈곤, 상대적 가난의 개념으로 빈곤의 구조가 변화되었어요. 그 시점부터 암하아레츠는 땅의 사람들이란 이름의 뜻에 집중해서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 외면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운동이 전환되게 되었어요. 그래서 노숙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소외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암하아레츠는 어떤 활동들을 해왔나요?

김지만 : 저희가 작년부터 올해 1학기까지 주력했던 것은 강연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신학생들의 성서 안에만 갇혀 있는 시각들을 열고자 하는 의도로 다양한 주제, 페미니즘이나 혐오와 같은 주제들을 열었습니다. 그 밖에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었습니다.

서총명 : 과거엔 현장을 많이 찾아 갔었습니다. 산업선교현장 이를테면 재능노조, 쌍용차, 유성노조, 동양(삼표)시멘트 등과 같은 현장에 찾아가서 기도회를 하고 같이 연대하는 활동들을 했었습니다. 최근에는 여러 강연들을 통해서 학교내 다양한 담론들을 만들어 나가려고 하고 있구요.

노숙인 사역도 했었습니다. 영등포산업선교회와 서울시와 같이 해서 ‘달맞이방’ 프로젝트란 것을 했었어요. 자그마한 방을 빌려서 함께 그 곳에서 노숙자분들이 식사도 하고 샤워도 할 수 있게끔 하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제공해드렸어요. 한 6개월정도 함께 참여 했었고요.

신학생시국연석회의에도 함께하면서 백남기농민사망사건이나 세월호사건에도 함께 연대 했었어요. 장신대 내에서 이에 참여하는 동아리나 단위가 많지 않았었는데 그래서 저희는 더욱 목소리를 학교 내에서 낼려고 했었던거 같아요.

▲ 암하아레츠는 학교 내외에서 많은 활동들을 해왔던 거 같은데요. 학교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반응들을 보였나요?

김지만 : 사실 학교 내에서 저희가 크게 관심을 끄는 동아리는 아니였어요. 그러다 제작년에 저희가 성소수자 목회 현장에서 일하시는 한 목사님을 초청해서 학교 내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자는 목표로 강연을 계획했었어요. 아무래도 성소수자 담론이 예민한 이슈다보니까 그 강연 계획이 알려지게 되면서 외부로부터 학교로 공격이 많이 들어왔나봐요.

함해 노회를 비롯해서 학교 측에 왜 그런 강연을 여느냐며 항의 전화도 하고요. 학교 측에서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싫었겠지요. 그 이후부터 암하아레츠의 활동에 대해 학교가 감시하기 시작하고 성소수자 뿐 아니라 저희가 이야기하는 다른 이슈까지 모조리 다 제제시키는 그런 형국이 되었어요.

최동빈 : 학생들의 반응은 반반이었어요. 동조해주는 친구들도 있고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구요. 작년과 제작년의 여파도 결국 암하아레츠는 동아리 등록을 하지 못했어요.

학교에서는 그 이유가 아니라고는 하는데 저희가 느끼기엔 그 영향이 분명히 있었다고 그래서 받아주지 않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동아리 등록을 위해서는 학생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친구들은 대체로 너희를 돕고는 싶지만 같이 하기는 어렵겠다는 반응이었구요.

▲ 2016년 축제 부스 모습 ⓒ암하아레츠 제공

서총명 : 도시빈민선교라는게 원래 운동권 분위기가 있잖아요? 최근만 아니라 예전부터 그랬고. 그래서 이런 성소수자 관련 이슈가 있기 전에도 사실 ‘암하아레츠는 종북동아리’라는 이야기는 많았어요.

제가 활동할 때가 과거가 아니라 2011년 이후임에도 “여기는 종북동아리다.“ “위험한 동아리다.” 하는 인식은 많았어요. 대놓고는 하지 못했지만 암암리에, 뒷소문으로 아니면 후배들한테 “저기는 위험한 동아리니깐 조심해라” 식으로요.

그러다가 2017년 성소수자 목회자 초빙건 이후부터는 아예 대놓고 종북동아리, 친동성애 동아리라고 낙인을 찍더라구요. 학교든 학생이든 그런 인식들이 심해졌고 학교에서는 계속해서 그런 예민한 이슈에 저희가 침묵하길 원하죠.

▲ 암하아레츠가 학교 내에서 그간 힘들게 활동해온 거 같습니다. 혹시 이런 활동들로 인해 학교가 변화되거나 개개인이 바뀐 사례가 있을까요?

김지만 : 저희가 한번은 학교내 청소노동자 분들의 삶을 다큐로 찍어서 축제 때 상영을 했었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그 분들의 활동도 보고요. 저희가 바랐던 것은 그 분들의 처우개선이었는데 그 정도 까지는 이루지 못했어요.

하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서 그 분들은 학교에 숨어있고 가려져있는 존재였거든요. 그런데 이 계기로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안에 분명히 계시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었어요.

오세찬 : 저희 때문에 학교에 학칙이 추가되었어요. (웃음) 동성애 이슈 관련해서 학교가 관련된 인물을 배제하고 벌줄 수 있게 되었어요. 안타까운 변화죠.

서총명 : 저희가 어쨌든 동아리다 보니 학교에 눈에 보이는 큰 변화를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학교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은 했던 거 같아요.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답답해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저희의 존재가 때로는 그들에게 불편하고 맞지 않은거 같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다양한 이슈들에 대해서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펼치는 저희의 모습을 보며 사회현장이나 학교내에서 자신의 위치 때문에 표현하지 못하는 이들이 저희로 위로를 얻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기대가 없으면 계속해서 운동하기 어려울꺼 같아요. 아마 얻고 있겠죠. (웃음)

▲ 암하아레츠가 생각하기에 보수적인 신학교내에서 진보적인 신학생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김지만 : 역시 담론을 만들어내는 역할인거 같아요. 이야기조차 할 수 없게끔 상황을 만드는게 지금의 학교 잖아요.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저희가 어른들이 보시기엔 철이 없고 삐딱하게만 보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말아야죠. 그렇게 저희가 담론을 만들어가면 저희뿐만 아니라 또래의 신학생들이 함께 관련된 이슈를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이 형성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 2012년 영등포 산업선교회 햇살보금자리 후원을 위해 마련한 부스 ⓒ암하아레츠 제공

서총명 : 저는 계속 불편함을 만들어가는 역할인 거 같아요. 학교 당국이나 교단은 학칙이나 입학서약서를 통해서 본인들의 입맛에 맞는 학생들만 뽑으려고 하잖아요. 왜냐면 교회 자체도 많이 보수화 되었고 그런 교회에서 성장하는 신학생들은 더 보수화되었으니까!

학교는 그런 목회자만 양성하는 게 그 목적인거 같은데 이러한 방향에 진보적인 신학생들이 문제제기하고 제동을 걸면서 불편함을 표출할 수 있어야겠죠.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나 교회의 교인 사회의 사람들도 이것이 문제가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요. 작고 별볼일 없어 보일 수 도 있지만 멈추지 않아야겠죠.

최동빈 : 학교의 행보에 대해서 ‘이건 아니다.’ 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적지는 않아요. 그런데 다 자신들 사역이 있고 삶이 있고 바쁘고 용기도 없어서 아무런 이야기도 못하는 상황이죠. 그런데 저희 같은 동아리들이 중심이 돼서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만들어 가는거 같아요.

구약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잘될 거야.”, “나라가 회복될거야.” 라고 좋은 말만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진짜 예언자들은 “그거 아니다.”, “우리 지금 망해가고 있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이었어요. 우리도 그런 예언자들처럼 소외되고 배제되고 간과될 수 있는 부분들을 찝어내는 역할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진보적인 신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그런 예언자적 역할을 하는거 같아요.

▲ 앞으로의 암하아레츠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서총명 : 일단 앞서 말했듯 학교에서 동아리등록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내 동아리로써 활동은 어려울꺼 같기는 합니다.  

최동빈 : 암하아레츠는 신대원과 학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학부는 일단 청원서를 2학기에 낼 예정입니다. 아무쪼록 별탈없이 학교에 동아리등록이 잘되었으면 좋겠고요.

신대원은 학부와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학부는 청원서의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도시빈민선교회답게 동아리등록과 상관없이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계속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서총명 : 제 개인적으로 암하아레츠는 되게 큰 의미이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암하아레츠는 동아리거든요. 학생 때 참여하는 동아리 말이예요. 학생들이 암하레츠를 참여했던 경험으로 사회에 나가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거든요.

그렇다면 암하아레츠는 일종의 매개체가 되는거죠. 우리가 앞으로 어떤 큰 결과물을 더 만드는 것을 추구하지는 않구요. 그저 고민이 있는 학생들, 이에 대해 궁금하거나 참여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암하아레츠를 통해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 ‘이런 현장, 사회가 있구나?’ 하고 느끼고,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보고, 느끼고, 깨달았던 것들을 실제로 행하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암하아레츠는 매개체 역할을 충실히 하려고 합니다. 비록 동아리는 아니어도 다양한 현장을 학교에 소개하고 생각할 거리를 신학생들에게 던져주는 모임으로 남아있으면 예전에 암하레츠를 처음 만들었던 선배들이 이 모임에서 해왔던 그 일들을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시대에 따라서 운동의 형태는 다르지만 그 방향성은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죠.

▲ 재능노조 기도회 참석 ⓒ암하아레츠

김지만 : 항상 그랬듯이 할 수 있는 만큼, 저희가 해왔던 만큼 계속해서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싶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면 해주세요.

오세찬 : 암하아레츠는 제가 소수가 되어보는 경험이었어요. 저는 항상 다수의 위치에서 다수의 시각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암하아레츠 일원으로 학교에 있으면서 소수자의 입장, 소수자의 편에 서게 했고 소수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죠. 암하레츠는 우리 모두 소수자일 수밖에 없으며, 소수자여야 한다는 걸 제가 깨닫게 해주었어요.

한국 기독교는 소수임에도 자꾸 기득권, 다수의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하기 때문에 지탄을 받는거 같아요. 그러니 학교 안에서 신학함을 일구어가는 학생들이라면 암하아레츠처럼 소수자의 편에 서고 소수자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더욱 학교에 암하아레츠가 있어야 하는거 같아요.

꼭 학교에 암하아레츠가 남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학교와 교단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단지 무조건 학교와 교단이 악이고 나빠서가 아니예요. 지금 교단과 학교의 방향성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는 것인데 어른들은 저희의 반대를 그저 부담스럽고 불경하게만 보는거 같아요.

그러다보니깐 저희가 이야기하는 메시지나 의미들을 돌아보고 반성하는게 아니라 그냥 대화를 차단하고 소통을 막아버리는 거죠. 그게 참 답답합니다. 많은 친구들은 이런 어른들의 태도와 답답한 현실 앞에 ‘고지론’을 주창하며 “우리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꿔야 한다.” 이야기 하기도 해요.

하지만 한번도 학생일 때 학생으로써 목소리를 내보지 않았으면서 이 후에는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 때는 그 때의 사정이 있을텐데 하는 의문이 들어요. 소수자의 위치에 서볼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 2016년 세월호 신학생 연합예배 피케팅 ⓒ암하아레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시끄러웠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총회장 림형석 목사)의 몇몇 목사와 교인들이 ‘암하아레츠’ 학생들과 재판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성소수자들과 연대인들을 사탄, 마귀로 몰고 있었다.

소수자들과 연대하며 소수자들의 자리에서 함께 혐오를 비를 맞기 원하는 암하레츠 학생들과 이들을 정죄하기 여념없는 이들 가운데 예수는 어디에 계실까?

▲ 암하아레츠 소속 학생들의 변론 기일이 있었던 날,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통합측 교우들이 학생들과 재판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이민수

권이민수  simin004@nate.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권이민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및 편집인 : 이해학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해학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19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