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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손가락만 보고 살아온 교회영원한 생명(요 6:26-2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10.20 17:19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몇 일 전 f(x) 맴버였던 설리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평소 연예인들의 죽음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있거나 마음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설리라는 연예인은 생전에 끊임없이 악플이 달리기로 유명했던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다른 연예인들의 죽음에 비해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설리의 죽음을 전하는 기사에는 악플러들을 향한 욕설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악플러들 때문에 설리가 죽었다느니, 악플러는 다 처형해야 한다느니, 하는 댓글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조금 어이없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설리 사망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댓글을 단 어떤 사람에 대한 정보였습니다. ‘설리 살려내라, 이 악플러 XXX들아’라는 댓글을 써놓은 어떤 사람이 평소에 썼던 다른 댓글들을 모아놓은 게시물이었는데, 이 사람이 평소에 쓴 댓글들은 거의 악플이었습니다. 심지어 설리와 관련된 기사에도 악플을 달아놓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설리 사망 기사에는 악플러 나쁜 놈들이라는 댓글을 또 달고 있는 겁니다.

이 사람에 대한 정보가 올라와 있는 게시판에서는 또 이 사람에 대한 댓글이 달렸습니다. 대부분 ‘정신이상이다,’ ‘이중인격이다.’ 이런 댓글들이었는데, 한 사람의 댓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 사람은 아마 자기가 썼던 글들을 악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 하다.’

공허와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극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우울증에 때문에, 또는 삶에 대한 비관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8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10-3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습니다. 이는 사망원인 2위인 암, 교통사고보다 2-3배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40-5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암이지만, 2위는 자살이었습니다. 40대의 경우 암과 자살의 비율이 비슷하고, 50대는 차이가 많이 납니다. 60대 이상으로 가면 자살은 사망원인에서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고령 자살률을 OECD 국가들 중에서 높은 편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어른이라 불리는 분들은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표현으로 ‘라떼는 말이야~’로 말을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는 먹고 살기도 힘들었고, 나라 경제 살리느라 죽기 살기로 일했는데, 요즘 애들은 살기 편해져서 오히려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고, 열심히 일할 생각은 안하고 일하기 어렵다는 말이나 한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예수께서 주셨다고 하는 물고기와 빵만 보고 살아온 교회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Getty Image

저도 예전에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자살 예방 교육을 받을 때 후임들에게 그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군대가 편하니까 쓸데없는 생각이나 해서 자살하는거라고. 어찌보면 맞는 말입니다. 군대라는 사회에서 제대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곳입니다. 맹목적으로 막노동 같은 군생활을 하다 보면, 자살 같은 생각은 머리 속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시계가 돌아가기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이렇게 맹목적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더 잘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회입니다. 고민하고 생각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끝없는 고민과 생각들은 불안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기에 지금 시대는 불안한 시대이기도 합니다.

지금 시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으며,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어서 그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이라는 방식을 택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이들은 왜 누군가를 향해서 악플을 달고 있을까요? 연예인에 대한 기사 뿐만 아니라 정치 기사에도 항상 뻔한 악플들이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악플을 다는 행위 자체를 즐기면서 악플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적고 있는 글이 악플인지 아닌지 구분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손 가는대로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왜 악플을 쓰는지도 모르는 채 그냥 뭔가에 분노하며 악플을 달고 있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저는 심리학자도 아니고, 정신과 의사도 아닙니다. 심리학 공부야 적당히 했지만, 이 시대 사람들의 심리 상태를 완벽하게 분석할 정도의 지식은 없습니다. 하지만 목회자로서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을 바라보면, 많은 사람의 마음에 빈공간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지만, 지금 시대 사람들의 모습은 빈공간이 더 커져 있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 그 사람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마음에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 누군가가 오늘도 악플을 달면서 자신의 마음속 빈공간을 채우려고 하는지도 우리는 모릅니다. 특정한 누군가가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만, 분명한 점은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나 많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런 시대에 기독교가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악하고 무분별한 모습들은 수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도록 만들었지만, 그런 모습들에 대해 교회가 회개해야 하며, 이 시대에 참된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6장의 본문을 통해 그 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영원한 생명

요한복음 4장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를 통해 영원한 생명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무언가 마음의 빈공간을 채우지 못하고 살아가는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이 계속 바뀌는 자신의 처지도, 매일같이 물을 길으러 가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도 불만스러웠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여인에게 영원히 차오르는 생명수를 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생명수는 마음의 불만을 사라지게 하고, 갈증을 완전히 채우는 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은 성만찬에 대한 요한복음 공동체의 해석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먹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살과 피를 가진 인간으로서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에 동참하며 예수님의 삶을 따르라는 표현을 하셨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실제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명확하진 않지만, 요한복음의 공동체는 이를 종교적,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며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오늘 전해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이런 성만찬에 관련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희가 읽은 본문에 있는 말씀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앞선 말씀들과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혹시 ‘표적’, ‘이적’이라는 표현이 ‘증거’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봤는데, 요한복음은 이 ‘표적’이라는 단어를 거의 ‘기적적인 어떤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4장 48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표적을 보면 믿는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6장 2절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예수님을 쫓았던 무리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았기에 쫓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표적’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에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앞선 이야기들과 다른 맥락의 말씀을 하시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자들의 입을 통해 나온 출애굽 때의 만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저는 어렸을 때,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홍해를 가르셨고 이를 또 덮으셔서 이집트 군대를 몰살시키신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봤다면,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눈으로 봤다면, 저런 식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어린 시절 제가 던진 질문에 대답해줍니다. 출애굽 때의 사람들이 바라본 것, 예수님을 쫓던 사람들이 바라본 것은 하나님의 기적, 예수님의 기적 자체가 아니라, 그 기적으로 인해 파생된 결과물, 즉 떡과 병고침이었다는 것입니다. 기적을 보았다면, 기적을 체험하였다면, 이를 이루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를 보여주신 예수님을 경외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굳게 확신하며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건 놀라우신 하나님에 대한 지혜나 확고한 믿음이 아닙니다. 그저 세상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채워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요구가 채워졌을 때 하나님을 따랐지만, 새로운 요구가 발생하였을 때나, 받았던 것이 사라졌을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때로 배신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썩어 없어질 것을 위해 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닌 영원한 양식을 위해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영원한 양식, 또 다른 표현으로 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생은 단지 ‘영원히 이어지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삶’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물론 요한복음이 추구하고 있던 ‘본질’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바라보는 바와는 전혀 다릅니다. 조금 더 철학적인 개념에 가까운 ‘본질’입니다만, 지금 시대에 있어서 ‘본질적인 삶’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기쁘고 행복하고 평안하게, 한 마디로 사람답게 사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만을 요구하는 신앙은 예수님의 기적이 아닌, 떡을 보고 쫓는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과거 출애굽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물이 떨어졌을 때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처럼 언제라도 하나님을 떠나갈 수 있는 신앙입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하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떡이 나온다고 말해왔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살고, 돈 많이 번다고 말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라보지 말라고 말씀하셨던 것들을 바라보라고 전해왔습니다. 그렇기에 그것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던 성도님들은 이제 교회를 떠났습니다. 출애굽을 체험했으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배신할 수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교회를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신 것은 ‘나는 너희에게 빵을 줄 수 있다,’ ‘나는 너희의 병을 고쳐줄 수 있다.’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너희의 삶에 평안을 줄 수 있다.’이며 ‘나는 너희에게 생명으로 가득 찬 삶을 줄 수 있다.’입니다.

지금 시대는 떡만을 바라보는 시대입니다. 더 많은 떡을 가지고 있어야만 행복하고 평안하다고 여기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많은 떡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사람은 결코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것은 썩어 없어질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속에서 썩어 없어질 양식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바라보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양식이 있음을, 예수님을 통해 얻을 수 있음을 세상에 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여러분의 음성을 통해서 전해 가시길 바랍니다. 지금의 세상 속에서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진정한 위로를 전할 수 있는 그런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들의 노력이 지금의 기독교를 다시 세우고, 참된 하나님의 뜻과 평화로 세상을 채우게 될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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