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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싫은 말, 돈 안 되는 말예레미야가 보여준 길(렘 7:4-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19.10.27 17:10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성경에서 가장 고난을 당했던 예언자는 누구일까요? 아합과 이세벨을 피해 도망 다니던 엘리야일까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3년간 벌거벗고 다녀야 했던 이사야일까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에스겔일까요? 하기 싫은 예언을 피해 도망치다 풍랑을 만난 요나일까요? 저에게 가장 고난을 당했던 예언자를 꼽으라고 한다면 예레미야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저희가 예레미야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강 들어왔던 이야기들만 종합해서 생각해보면, 예레미야는 항상 죽음의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를 적대하는 세력들이 호시탐탐 그를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실질적인 위기에 처한 일도 많이 있습니다. 구덩이에 던져져 갇혀 있던 일도 있었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이집트로 끌려가게 되는 일까지 겪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왜 이렇게 고난을 당했을까요? 예언자의 역할이 왕을 견제하고 왕의 잘못을 질책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왕들은 예언자의 견제를 인정하였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엘리야의 예언이 귀에 거슬렸기 때문에 아합이 그를 죽이려 하였지만, 결국 엘리야의 예언을 들었던 것처럼 무조건 예언자를 박해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예레미야의 경우에도 여러 왕들이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합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경우는 많은 경우에 그가 선포한 예언에 반대하거나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요시야 종교개혁과 예레미야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역사적 정황을 통해 예레미야가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13년(BC 627년)부터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요시야는 우리가 열왕기하를 통해서 잘 알고 있듯이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던 왕이고, 열왕기가 칭찬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왕 중의 한 명입니다.

요시야 18년(BC 622년), 성전을 수리하던 대제사장 힐기야는 성전에서 한 권의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이는 아마도 신명기의 일부로 보입니다. 이후 요시야가 일으킨 개혁의 내용이 신명기의 명령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 Ilya Yefimovich(1844-1930), “Jeremiah lamenting the Destruction of Jerusalem”(1870) ⓒGetty Image

요시야 종교개혁의 핵심을 이야기하자면, 우상숭배, 지방 성소의 파괴와 더불어 중앙 성전만을 제의의 장소로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만을 종교적 제의 장소로 한정하고, 종교의 중앙화를 추진한 것입니다.

종교적인 감성으로만 생각해본다면, 요시야가 우상을 철폐한 훌륭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생각해본다면, 남유다 전역에 존재했던 지방 성소 폐쇄를 통해 지방 사제 집단의 권력을 몰수하고, 성전 제사장 집단의 권력만을 극대화시키는 개혁이었습니다. 이는 왕권 강화의 측면도 있었을 것입니다.

열왕기하에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아름답게만 나타나 있지만, 실제 당시 사회에서는 상당한 반발이 있었을 것입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신명기와 상당한 관련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가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과거로부터 전해지던 신명기의 단편이 당시 성전에서 발견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었다는 점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 혹은 꾸며낸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종교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 요시야, 제사장 힐기야, 서기관 사반 집단이 율법책을 기록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만약 왕, 성전 제사장 집단, 서기관 집단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법령을 작성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개혁을 수행하였다면, 이 일이 하루 이틀 사이에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상당한 준비 기간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시야의 대대적인 종교개혁이 단행되기 5년 전에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은 이런 측면과 무언가 연결점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이 언제 선포되었는지 특정한 연대가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앞선 예레미야 1-6장의 말씀들과 이어지는 시기라고 본다면, 요시야 때에 선포된 예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중심으로 정치와 종교의 중앙화를 이루어냈던 요시야 시기에 선포된 말씀이라는 점입니다.

예레미야는 성전 문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예레미야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예언을 선포합니다. 요시야 종교개혁은 예루살렘 성전만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이곳에 예배를 드릴 때에만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 말이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바로 이어서 말합니다. 5-6절의 말씀을 뒤집어서 읽으면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지 않았고,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지 않았으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였고,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렸으며, 다른 신들의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였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이 제의적 형태에만 연연한 개혁이었고, 사회에 만연해있던 불의는 해결하지 못한 개혁이었음을 비판합니다. 이 사회는 여전히 불의로 가득 차 있는데, 이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만 가지고는 참된 개혁이 일어날 수 없다는 비판입니다.

예언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또 하나의 역사적 측면에서, 예레미야가 활동했던 시기는 예언자들의 활동에 가장 큰 위기가 닥쳤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인해서 위기에 처했다기보다 난립하는 예언들로 인해서 예언자들 스스로 예언을 위기에 빠뜨린 시기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벨론의 침략을 없을 것이라고 했고, 어떤 이들은 이집트의 도움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된 이후에 예언자 ‘하나냐’는 2년 안에 포로가 귀환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또 다른 이들은 속히 포로 귀환이 이루어지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어쩌면 바벨론 포로기에 발생된 이런 예언의 난립이 예언자가 점차 사라지게 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포로기 이후의 예언자는 학개, 스가랴, 말라기 밖에 없습니다. 그런 시기에 가장 정확한 예언을 했던 사람이 예레미야입니다.

그는 바벨론에 의한 침략을 예언했고, 침략 이후 예루살렘 함락을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포로기를 70년이라고 선포합니다. 실제 포로기는 여호야긴이 왕이었던 BC 597년부터 고레스 칙령이 내려진 BC 538년까지 60년입니다만, 다니엘에 따르면 여호야김 3년째인 BC 607년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열왕기하도 당시 바벨론의 침략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70년 포로기를 선포한 때가 여호야김 4년, BC 606년 경인데, 1차 포로를 기준으로 선포했다면, 정확히 70년 뒤에 포로에서 돌아오게 됩니다.

성경에서 당대의 예언을 이렇게까지 적중한 예언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예레미야의 예언은 거의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적중률이 높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데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정권 비판적인 성향 때문인지, 또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의 선포는 당시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는 선포였습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한다는 선언이나, 70년 동안이나 포로로 잡혀 있어야 한다는 선언, 요시야가 단행한 종교개혁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선언 등은 사람들이 그의 예언으로부터 귀를 닫도록 만들었습니다. 그의 예언이 아무리 정확하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구절을 통해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집트에 끌려간 사람들과의 대화는 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예레미야 44장에서 이집트에 끌려간 사람들 중 여인들이 예레미야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늘의 여왕, 아스다롯을 섬길 때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않았는데, 아스다롯을 섬기지 못하게 된 이후로 우리가 재난을 당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고 하늘의 여왕을 다시 섬기겠다.’고 여인들은 이야기합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을 향해, 오히려 그런 행위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였고, 그 행위로 인해 벌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남유다의 남은 백성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풍요를 누리던 시기에 자신들이 행하던 행위를 그대로 따라 살아갈 것이라 외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아무리 옳은 말이었다 할지라도, 그가 말한대로 모두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그의 말은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새로운 역사 해석을 또 내놓습니다. 차라리 우상을 섬길 때가 더 풍요로웠다고 말합니다. 자신들의 풍요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예레미야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와 예레미야

저는 지금 시대는 예레미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이 나라는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으로 치달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과거 지역감정보다 더 심한 갈등이 넘쳐납니다. 연령에 따른 갈등은 점차 극단화 되어가고 있고, 여성과 남성의 갈등도 끊임없는 대립의 관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정치적 색깔은 그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어떤 부분은 동의하고 어떤 부분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형태로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어떤 정치 집단은 내 편, 어떤 정치집단은 내 적이라는 도식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기에 내 편이 아닌 적들은 모두 때려죽일 놈들로 전락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대통령과 종교 지도자들간의 대화는 한국 기독교가 얼마나 갈라져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이홍정 총무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이 땅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평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의 김성복 회장은 오히려 차별금지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런 시대의 모습은 예레미야가 살아가던 시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떤 이는 바벨론 편에 서야 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이집트 편에 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자주국방을 이야기합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들을 비판하는 적대자는 어떻게 해서든 처단하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민족 안에서의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었고, 제사장 집단들 조차도 계열이 나뉘어 누가 정통이냐를 놓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제사장을 포함한 권력 집단은 자신들의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정통성을 강조하던 시기입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와 상당히 비슷해 보입니다.

이런 시대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최소한 오늘 저희가 읽은 본문의 말씀처럼 약한 자를 외면하는 목소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많은 교회들은 끊임없이 풍요의 이야기만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풍요를 주시리라고 말합니다. 나에게 주어질 풍요를 위해서 남은 외면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의 교회 앞에서 외칩니다.

“이곳이 교회라고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마라”

제가 지금 시대에 예레미야의 말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예레미야가 어떠한 세상 권세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풍요만을 요구하고 외치던 세상 속에서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시에 예레미야가 중요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권력자들을 향해 비판했지만, 자신이 비판했던 사람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회복을 바라며 그들이 온전해지기를 간구했습니다.

에스겔을 비롯해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바벨론 유배지에서 자신들의 왕조 정통성, 제사장 정통성을 주장했습니다. 어쩌면 예루살렘에 남았던 예레미야와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갈등 관계에 놓여 있었다고 봐도 무관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24장에서 그들을 향해 말합니다. ‘너희가 좋은 무화가가 맞다.’ 그리고 29절에서는 그들에게 우선 바벨론에서 정착하여 살아가며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라고 말합니다.

정치적으로 예레미야를 깎아내리고 포로로 끌려가서도 자신들의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집단을 향해 예레미야는 ‘그 권력 너희가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을 향해 평화의 안부를 전합니다. 하나님의 회복을 전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남유다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또 독려합니다. 이집트로 끌려간 후에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회복을 선언합니다. 예레미야는 분명 당시 종교 권력 갈등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그 권력을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권력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였습니다. 특정 계층에게만 넘쳐나는 과도한 풍요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소소한 평안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역시도 잘못된 기독교를 향해서, 잘못된 정치권을 향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만 하고,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외쳐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비판의 대상을 미워하고 적대하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참 평안이 있기를, 그들이 참된 길로 돌아설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의 풍조에 빠져있는 이들은, 그들이 기독교인이건 목사이건, 자신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어떻게 해서든 짓밟으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의 적대자를 깨뜨리려고 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예레미야를 죽이려 했던 이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다른 예언서에서도 이런 사람들의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호세아는 그들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 에스겔은 이들을 ‘반역하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에 대한 심판이나 그들에 대한 판결은 하나님께서 내리실 것입니다. 시편 1편이 그들을 향해 말한 것처럼 ‘그들의 길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만드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잘못을 비판하고 잘못이라고 말해야 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안타까워하고 안쓰럽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레미야가 보여주었던 하나님의 뜻이고 참된 예언자, 참된 신앙인의 길입니다. 그것이 세상과 참된 하나님의 길을 걷는 성도가 다른 점입니다.

나의 적대자이기 때문에 파멸을 바라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참된 길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참된 하나님의 세상을 함께 이루어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가 보여준 길,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쫓는 길을 따라 걸으시는 성도님들 되길 바랍니다. 그 길의 끝엔 분명 하나님의 참된 세상이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만 풍요가 집중된 세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함께 평안을 나누는 세상이 그 곳에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 세상을 만들어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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