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꽃은 저마다 자기의 자리가 있고 역할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몸을 맡겨 하늘을 날다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온통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심이지만 작은 틈에 내려 앉아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곳에 뿌리내린 이 공동체가 자기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빕니다.
이곳에서 퍼져나가는 또 다른 홀씨들과 들꽃의 향기가 온 세상을 덮을 수 있기를 빕니다.

들꽃은 저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크고 화려한 꽃뿐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꽃도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파리똥만한 들꽃도 그렇기 때문에 파리똥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들꽃이라고 부르는 그 공동체 안에는 독특한 개성들을 가진 하나하나의 꽃들이 있습니다. 들꽃향린이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들꽃이라는 전체적인 무리를 일컫는 이름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 들꽃들의 무리를 이루는 하나의 개체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 썩어가는 물을 정화시키는 고마리

들꽃은 저마다 자기의 자리가 있고 역할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양지쪽에 자리를 잡고 어떤 것은 물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몸과 마음의 질병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약초가 되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행복한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향기가 되어 기쁨을 널리 전하십시오. 세상사에 시달려 쉼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윽한 향기로 영혼을 쉬게 하며, 해방의 복음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씨앗이 되어 바람타고 날아가십시오.

맘몬을 숭배하는 자본주의의 첨단에 빠져서 썩고 냄새나는 곳에서는 죽어가는 물을 정화시키는 고마리나 부레옥잠이 되어 그곳을 깨끗하게 하고, 흙탕물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연꽃처럼 고고함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에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 하늘에 고하는 며느리밥풀꽃이 되십시오. 이 땅을 투기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과 이 땅을 전쟁기지로 만들려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온 몸을 바쳐 여기저기 노란 꽃을 피워서 경고하는 민들레가 되십시오.

▲ 억울한 죽음의 한을 하늘에 고하는 며느리밥풀꽃

인간의 욕심으로 잠식되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예언자가 되어 하느님의 통치가 어디까지인지를 분명하게 선을 긋는 청미래넝쿨이 되십시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들꽃향린과 그 속에 있는 모든 들꽃들이
하느님 앞에서 예수님과 함께 거룩한 영의 도움으로 처음 마음 잃지 않고,
소박하지만 진한 향기를 풍기는 이름값 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어느 꽃 하나도 쉽게 피었다가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모든 꽃은 때를 따라서 열매를 맺기 위해 자기의 온 힘을 쏟아서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 열매는 다른 생명들의 먹이가 되고, 자기의 생명을 이어주는 희망이 된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둡시다.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실들을 언제나 기억하는 들꽃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땅을 짓밟는 이들에게 옐로우 카드로 경고하는 민들레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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