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원들이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는 당신이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기 때문에, 당신은 참되고 어느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합법적이냐? 또는 아니냐? 우리가 바쳐야 하느냐, 또는 바치지 말아야 하느냐?”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원들을 상종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철저하게 유대교 율법을 지키는 것을 삶의 제일 큰 목적으로 삼고 있는데, 헤롯당원들은 순수한 유대인의 눈으로 보기에 민족의 반역자이며 식민지 지배세력인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잡기 위해 야합을 하였습니다. 우리의 정치적 현실 속에서도 이러한 야합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시에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의 문제는 그 부담이 너무 무거웠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정정치 이념에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심각했습니다. 예수 당시를 전후해서 이 조세 문제는 아주 민감한 사회-정치적인 문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로마에 바치는 조세문제는 유다 지배층과 민중 사이를 대립시키는 주요인이 되었습니다.

민중들은 최소한 소득의 40%이상을 빼앗겼습니다. 말이 40%이지 수많은 민중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로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세금의 분량뿐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했던 것은 이방인들에게 세금을 내는 민족적 자존심과 신앙의 문제였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용납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 민중들은 로마 제국의 통치를 그들의 신정정치 이념의 빛에서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로마의 조세 정책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봉기를 일으켜 항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사제 요아자르를 위시한 유대 지배자들은 로마의 조세 정책에 응하였고 민중들에게는 그 정책에 순응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유다의 조세저항 운동 중에 하나는 6년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시작한 제4의 철학운동이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유다라는 갈릴리 사람은 자기 동족에게 저항할 것을 강조하면서 로마에 세금을 납부하거나 하느님 한 분 이외의 유일한 지배자들에게 굴복하는 사람들을 단호히 꾸짖었다. ...... 유다라는 갈릴리 사람은 아주 박식한 사람이었는데 키리니우스 황제 시대에 로마의 세력을 인정하는 유다인들을 꾸짖었다. 그는 하느님만이 주님이라고 주장하였다. ...... 유다는 많은 유다인들에게 조세를 위한 키리니우스의 호구 조사에 응하지 말라고 설득하였다.” 또 다른 하나의 사건은 66년 여름에 이 조세정책에 항거하여 일어난 무력적 혁명운동이었으며, 이는 70년까지 유다전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 내지 말아야 하느냐?”는 물음은 어떤 식으로든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데나리온 동전을 가져와서 보여라. 그것에 있는 초상과 표식이 누구의 것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데나리온은 1세기에 가장 많이 유통되던 은화였으며, 동방에서는 안디옥과 갑바도기아의 가이사랴에서만 주조되었습니다. 이 화폐는 군대의 봉급을 지불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 황제가 티베리우스(로마 제2대 황제로 14-37년 재위)였는데, 아마도 그 데나리온에는 “TIBERIUS CAESAR DIVI AUGUSTI FILIUS AUGUSTUS”(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라는 글과 황제의 흉상이 있고, 그 뒷면에는 “최고의 제사장”이라는 글과 신들의 보좌에 앉은 황태후 “리비아”의 모습이 있었을 것입니다. 통치자의 권위에 대한 증거는 그가 화폐를 유통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으며, 따라서 통치자의 힘은 그의 ‘화폐’가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물음을 통하여 그들의 위선과 음모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독자적인 화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나라의 주권이 자주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그들을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마당에 너희들이 하고 있는 짓이 무엇이냐? 수많은 민중들이 목숨을 걸고 로마에 저항하고 있는 이 때에 너희는 로마에 아부하며 목숨을 연장하고 있지 않느냐? 나라를 빼앗긴 것이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 말씀은 미국에게 마음과 몸을 빼앗겨서 미국의 부시가 하는 일이라면 살인도 전쟁도 옳다고 하면서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이 그들의 용병이 되고, 딸들이 그들의 노리개가 되어도 좋다고 하는 얼빠진 사람들과 같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미국을 마치 하느님으로 섬기는 사람들이야 말로 최대의 우상숭배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되돌려 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되돌려 주어라.”

지금까지 이 말씀은 주로 종교와 정치를 분리해야 한다는 근거로 이용되었습니다. 수많은 설교자들은 이 말씀에 힘입어서 종교는 정치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독재 권력과 기득권 세력에게 암묵적인 지지를 보내거나 그들을 위해 복을 비는 일을 해왔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사면초가와 같은 궁지에 몰린 예수님이 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지혜로운 말씀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예수님은 한 마디 말로써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원들의 음모를 따돌리고 궁지에서 빠져나온 훌륭한 재담가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합법적이냐? 또는 아니냐? 우리가 바쳐야 하느냐, 또는 바치지 말아야 하느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되돌려 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되돌려 주어라.”

예수님이 이 대답과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원들의 물음에서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치다”[δίδωμι]와 “되돌려 주다”[αποδίδωμι]입니다. 그들은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합법적인지 아닌지를 물었는데, 예수님은 되돌려주라는 말로 응수합니다. 두 단어는 접두어 하나 차이인데, 그 의미는 본문 전체를 전혀 다르게 해석해야만 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질문자들이 사용한 “바치다”(δίδωμι) 라는 동사를 “되돌려 주다, 빚을 상환하다”(αποδίδωμι) 라는 동사로 바꾸어 말합니다. 즉 유대 지배자들에게 ‘로마 황제를 주인으로 인정하는 너희들은 그 조세 구조에 타협하고, 거기에 빌붙어 살고 있으므로 로마 황제가 세금을 요구할 때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한 개의 주화만이 아니라 사람이나 물건을 모두 포함하여 종속된 전부를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속했다고 인정되는 모든 것을 그의 권한을 받아들이는 너희들이나 되돌려 주어라.’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권력에 대항하고 하느님의 통치를 바라면서 행동하라’ 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너희들이 백성들을 가르쳤듯이 누구의 것이냐? 하느님의 것이 아니더냐? 그러니 너희들이 아무리 권력에 빌붙어 아부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뜻이 실현될 것이다.’

예수님의 답변은 특정한 조세 문제를 떠나서 보다 광범한 주권의 문제로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주권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있을 뿐이라는 신앙(출애 20:31)을 철저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력적 혁명 이념을 고무 찬양하거나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로마 제국의 착취적 정책과 타협하여 권력과 특권을 누리고 있던 지배층의 안보 이념을 승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이든 유대 지배세력이든 하느님의 통치와 나란히 놓지 않고, 그 자체를 거부합니다.

당시의 사회적 정황은 결코 예수님의 답변을 비정치적 변증으로 해석하는 제국주의적 발상이나 합리화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오히려 물음의 근원을 캐고 들어가는 혁명적 자세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위기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질문자들의 삶의 근본적인 오류를 지적하고 돌아설 것을 강하게 요구함과 동시에, 하느님만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로마 황제와 하느님의 대립을 통하여 정치와 종교를 분리시키거나 그 둘 사이의 변증적 관계를 설명하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 어느 하나로 다른 하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로마 황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촉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추구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 이외의 여하한 주권이나 그에 대한 충성을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삶의 실체입니다. 오히려 하느님 나라는 옛 시대의 모든 삶의 행동이나 관습들이 통틀어 끝장나 버리고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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