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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은 교회를 향해하나님 심판의 도구(예레미야 27:6-7)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3.01 17:14

6 이제 내가 이 모든 땅을 내 종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주고 또 들짐승들을 그에게 주어서 섬기게 하였나니 7 모든 나라가 그와 그의 아들과 손자를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 섬기리라

얼마 전 아내와 구약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바벨론 포로 시기에 대해 이야기한 일이 있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이집트를 의지해야 하는가, 자주국방을 이루어야 하는가, 바벨론에 항복해야 하는가의 논쟁이 벌어졌고, 그런 시기에 예언자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하나님의 도구이며 이스라엘의 심판을 위해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들어 쓰셨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던 아내가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신천지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께서 ~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2004년 인도네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3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가슴 아픈 사건이었습니다만, 어떤 목사님들은 이 사건이 12월 26일에 일어났다는 사실에만 주목했습니다. 이들은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향해 크리스마스에 교회에 안 가고 놀러 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2014년 총리 후보자였던 어떤 사람은 일제의 식민 통치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조선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보수 신앙이 깔려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을 비통하게 만들었던 세월호 사건 때에도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이야기를 떠들었습니다. 사실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는 심판의 이야기들은 지금도 비슷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번 코로나 사태가 중국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신천지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지금 개점휴업을 선언한 대형 교회 중에는 이번 기회를 통해 신천지를 색출해내려는 움직임도 보입니다.

지금의 개신교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사용합니다. 무언가 큰일이 벌어지면 전부 하나님에게 책임을 돌려버립니다. 자연재해, 전염병과 같이 사람이 개입할 수 없는 사태에 관해서는 모두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때로는 사람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까지도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주관하시며 온 생명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기 때문에 이러한 ‘심판론’은 어찌보면 맞는 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면에 모든 사건을 다 하나님에게 돌리는 설교들은 조금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눈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바라보아야 할까요?

남유다의 혼란 시기

예레미야는 요시야 시대부터 바벨론 포로기까지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가 살아간 시대는 평안이라고는 전혀 없던 시대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평안했던 적이 있냐고 묻는다면 손에 꼽을 정도의 왕들을 나열할 수 있겠지만, 예레미야 시대는 외교 문제에 있어서 더욱 복잡한 시기였습니다.

▲ Stefan Lochner, 「The Last Judgment」(15세기) ⓒWikipedia

요시야는 앗수르의 힘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왕이 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남왕국 유다는 앗수르의 속국이었습니다. 당시 앗수르의 왕 앗수르바니팔의 영향력은 이집트에까지 미쳤습니다. 그는 이집트 제25왕조를 몰아내고 제24왕조의 후예인 네카우 1세를 왕으로 세워 이집트 제26왕조를 만듭니다.

그러다 기원전 630년경 앗수르의 정세는 크게 요동칩니다. 자식들간에 왕위 다툼을 염려한 앗수르바니팔은 자신의 아들 중 하나인 샤마쉬-슘-우킨을 당시 앗수르의 지배 지역이었던 바벨론의 왕으로 세우고, 앗수르-에틸-일라니와 앗수르 전역에 대한 공동통치를 시작합니다.

앗수르바니팔이 조금 더 살았다면 앗수르가 안정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4년 뒤인 기원전 627년 죽게 되었고, 그가 우려하였던 왕위 다툼은 결국 일어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바벨론의 왕으로 세워졌던 샤마쉬-슘-우킨은 앗수르바니팔의 장관 중 한 명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앗수르 내부에서는 앗수르-에틸-일라니와 신-샤르-이쉬쿤의 내전이 벌어집니다.

앗수르의 내전은 속국이었던 나라들에게는 기회였습니다. 바벨론에서는 나보폴라살이 일어나 626년 독립을 이루었고, 요시야도 622년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일으킵니다. 당시의 정황상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단순한 개혁이 아니라, 앗수르의 모든 종교를 몰아내는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원전 609년 요시야는 앗수르와 전쟁을 하러 올라가던 바로 느고(네카우 2세)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는데, 앗수르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이집트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 앗수르까지 침공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마도 이집트는 세력은 약해졌지만 여전히 동맹관계에 있던 앗수르를 도와 나보폴라살에 의해 강대해지고 있던 신흥 바벨론과의 전쟁을 위해 북으로 올라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와중에 앗수르를 배신한 남유다를 지나가면서 그들이 앗수르를 배신한 책임을 물어 요시야를 죽였을지도 모릅니다.

이후 남유다는 이집트에 의한 지배를 받게 됩니다. 바로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벌금을 내도록 지시한 점이나, 여호야김이 바로 느고에 의해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당시 남유다가 이집트의 속국이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그 와중에 신흥 바벨론에서는 대제국을 완성하는 걸출한 왕이 등장합니다. 바로 느부갓네살입니다. 그는 여호야김 4년에 남유다를 침공하였고, 남유다를 바벨론의 속국으로 만듭니다. 요시야의 통치가 시작된 기원전 639년부터 시드기야가 통치를 시작한 기원전 597년까지 대략 40년 동안 남유다는 앗수르, 이집트, 바벨론 세 제국의 지배를 돌아가면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혼란기에 예언자로 활동한 인물이 예레미야입니다.

구원과 심판의 기준

우리가 잘 아는 예레미야의 예언은 바벨론에 의해 남유다가 완전히 멸망하기 직전의 예언들입니다. 물론 예레미야는 남유다 멸망 이후에도 바벨론에 의해 총리(아마도 왕)로 세워진 그달랴를 도와 유다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바른길로 이끌기 위해 예언을 선포합니다.

예레미야와 열왕기하를 읽어보면,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이 정쟁으로 점철되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바벨론의 세력이 강해졌고 이들의 힘이 남유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과거부터 자신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이집트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주국방을 이루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성경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지만, 바벨론에게 항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대부분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내용은 아마도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구원 받으리라’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 28장에는 하나냐와 예레미야의 다툼이 나타나는데, 하나냐가 선포했던 예언은 ‘하나님께서 2년 안에 자신들을 구원하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8장의 상황은 포로기 이후에 벌어진 일로 보입니다.

비슷한 내용이 오늘 본문 앞에도 나타납니다. 27장 9절을 보면 선지자나 복술가나 꿈 꾸는 자나 술사나 요술사가 전하는 이야기가 나타나는데, 이들은 ‘우리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마 27장은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 선포된 예언으로 보입니다.

예레미야는 각 장이 시간순으로 배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읽는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긴 합니다만, 바벨론 포로기 이전이나 이후나 대부분의 예언자들이 선포한 외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에 우리는 속국이 되지 않는다.’ 또는 ‘지금은 포로로 끌려갔지만 이런 시기는 금방 끝나리라’였습니다.

그때 예레미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합니다. 남유다는 70년간 바벨론의 속국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예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읽은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을 ‘내 종’이라고 부르십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침공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데에는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죄가 너무도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와 제사장들도 타락해 있었고, 고관들과 귀족들도 타락해 있었습니다. 이들의 죄는 일반 백성들마저도 악한 길로 나아가도록 이끌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심판 선언은 누군가를 잘못된 존재라고 꾸짖기 위한 선포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회개를 촉구하기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바벨론을 따라야 하는가, 이집트를 따라야 하는가, 자주국방을 이루어야 하는가를 따지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먼저 죄를 제거해야 한다는 외침이었습니다.

심판의 선언

하나님께서는 죄가 있는 이들에게 심판을 내리십니다. 이는 구약성경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믿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이 선포한 심판의 선언은 남을 향한 심판 선언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속한 집단을 향한 심판 선언입니다. 즉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가 심판을 받게 되었으니, 심판을 받지 않도록 우리가 회개하자는 선포였습니다.

지금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는 심판 선언은 어떻습니까? 누군가 나와 멀리 있는 누군가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나와 상관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심판받았다고 말합니다. 그 어떤 목회자도 자신의 가족이 교통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게 말해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예언자들의 심판 선언은 그런 안일한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나와 관계없는 누군가를 향한 외침도 아니었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기 위해 아내의 죽음을 봐야만 했고, 그 죽음을 슬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외침은 자신들에게 직결된 처절한 외침이었습니다. 회개하고 더이상 아픔과 슬픔을 겪지 말자는 처절한 외침이 심판 선언입니다.

신천지가 심판의 도구가 아니냐는 아내의 질문에 저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의 개신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지금 개신교에 아무런 죄가 없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오히려 개신교 내부에 너무나 죄가 많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신천지의 악질적인 교회 뺏기로 인해 너무나 고통받고 계신 목사님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그들이 심판의 도구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군가의 죄에 대해서 심판하신다는 설교들은 과거 처절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던 예언자들의 삶을 허사로 만드는 일입니다. 또 남에 대한 심판은 쉽게 말하면서 자기 자신의 회개를 말하지 못하는 목회자들은 예레미야의 회개 선포를 듣고 그를 죽이고자 했던 성전 제사장들과 같은 자들이며, 예수님을 향해 바알세불의 힘을 빌렸다고 말한 서기관 같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심판을 행하시는지, 어떻게 세상이 운행하도록 이끄시는지 그분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점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였을 때, 그것이 죄라는 점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습니다.

남에 대한 심판 선언만을 듣고 자기만족에 빠져서 우리는 당연히 구원받으리라고 생각하는 성도가 되면 안 됩니다. 남이 아니라 내가 먼저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바로 서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죄를 먼저 제거하였을 때, 그곳에 하나님의 참된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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