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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인간에게 필요한 것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1)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0.03.07 18:19

오늘은 먼저 작은 책 한권을 소개하며 위에서 설명이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이어서 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소개하려는 책은 『칼빈의 신앙교육서』로 번역된 책입니다. 이 책은 칼빈이 제네바의 개혁에 본격적으로 관연하게 되면서 G. 파렐의 권고에 의해 제네바 시민에게 기독교의 신앙내용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소개하려는 목적에서 이미 출판된 자신의 초판 『기독교강요』를 요약 정리한 첫 번째 『제네바 신앙문답서』입니다.

중생이 필요한 인간

따라서 칼빈은 여기서 로마 가톨릭 신학에 대한 공격이나 논쟁을 지양하고 개혁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내용을 간결하고 명료하게, 그리고 고결하고 위엄 있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기독교강요』의 핵심적인 내용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봤던 제2권 2장 27절의 내용은 이 책 18항 “회개와 중생”에서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을 통하여 죄악과 우리의 옛 자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따라 사는 일에 대하여 명상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 죽을 몸에 갇혀 있는 동안 이 중생은 결코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회개를 통한 치료는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1)

굉장히 위로가 되는 말이 아닙니까? 믿는 자들은 세례를 중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은 나의 옛 자아가 죽고 새로운 자아가 태어나는 상징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한번 중생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칼빈이 분명히 말하고 있듯이, “이 죽을 몸에 갇혀있는 동안, 이 중생은 결코 완성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로마서 7장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19, 24)는 탄식을 대합니다.

▲ 인간 타락의 시작으로 이야기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따먹은 사건 ⓒGetty Image

여기서 이 탄식을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바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펠라기우스, 세미펠라기우스주의자들, 개혁교회내의 아르미니우스주의자 들은 여기서 탄식하고 내적으로 갈등하는 자는 중생하지 않은 자라 고 말해왔고, 그에 반하여 어거스틴, 루터, 칼빈은 바로 이 사람은 중생한 사람이라고 가르쳤습니다(참고, II.ii.27).

웨슬리안들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완전해질 수 있다는 그리스도인들의 완전의 교리를 가르치는데, 개혁파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는 것은 전혀 불가능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칼빈의 신앙교육서』를 신앙교재로 활용해보시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간 의지는 완전히 부패했다

앞으로 몇 주 동안은 3장부터 5장까지의 내용을 살펴볼 것입니다. 여기서는 “의지의 전적인 부패”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육체’는 죄악되기 때문에, 그리고 육체란 전인을 포함하기 때문에, 3장 제목에 표기된 대로 인간의 부패한 본성은 저주받아 마땅한 것만을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칼빈은 인간의 마음이 사악하고 어떠한 선함도 찾아볼 수 없다는 성경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시14:1이 하).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시5:9),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시140:3). …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 이 없느니라’(시36:1; 롬3:10-16, 18).

칼빈은 사도바울이 이런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을 통해서 어떤 특수한 사람이 아니라 아담의 후손 전체를 공격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바울의 의도는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단순히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피할수 없는 큰 재난에 휩쓸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II.iii.2).

그런데 인류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고결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칼빈도 비록 완전하고 절대적인 기준에서 그들이 선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칼빈은 그러한 사람들 속에서 “내면적으로 억제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하기 때 문에 그럴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본성이 부패한 데서도 하나님의 은총이 움직일 여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은총은 본성을 정결하게 만들지는 않을지라도 내면적으로 억제하는 은총이다”(II.iii.3) 이것은 구원의 은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사회를 위해서, 이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 베푸시는 은총입니다.

부패했기에 중생해야 한다

5절로 넘어갑시다. 칼빈은 여기서 12절까지 인간은 죄의 노예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중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합니다. 우선 그는 인간은 타락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강제에 의해서 죄를 짓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필연’과 ‘강제’를 구별합니다.

“의지는 죄의 속박을 받아 노예 상태에 빠졌으므로 선을 향해서 움직일 수 없으며, 더더욱 선에 전력을 다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런 움직임은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시초가 되기 때문이며, 그래서 성경은 이 전향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돌린다”(II.iii.5). 인간의 의지는 죄에 빠져서 노예상태에 종속되어 버렸기 때문에, 선을 향해 움직일 수 없고, 전력을 다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선을 향한 움직 임은 단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가능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만일 자기를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해주시기를 기도했던 예레미야를 인용합니다(렘31:1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지는 남아 있어서, 가장 절실한 욕구로 죄를 향􏰀여 기울어지며 달음질한다. 이것은, 사람이 이 필연성에 몸을 맡겼을 때 의지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의지의 건전성을 빼앗겼기 때문이다”(II.iii.5).

칼빈은 제2권 2장 12절에서 인간은 죄로 인한 부패로 인해서 지성의 건전성과 마음의 성실성이 제거되었다는 말을 하였는데, 여기서는 의지의 건전성도 빼앗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칼빈은 바로 어거스틴을 인용하면서 이 “자유를 빼앗긴 의지”는 외부적인 강제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악으로 끌려들거나 인도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사람은 자유로 죄에 빠졌다. 그러나 그에 따르는 형벌인 부패는 자유를 필연성으로 변질시켰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할 때는 언제나 죄의 필연성인 속박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구별(필연과 강제의 구별)의 중심점은 사람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부패했을 때에, 그것은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지은 것이지 마지못해서 또는 강제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심정의 가장 간절한 욕구에 의한 것이지 힘에 의한 강제로 인한 것이 아니며, 그 자신의 정욕의 선동으로 한 것이지 외부로부터 강요를 받아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본성은 극도로 부패해서 움직이면 반드시 악한 일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결국 사람은 죄를 짓는 필연성에 예속되어 있다 고 분명히 말하는 것이다(II.iii.5).

칼빈은 뒤에서 인간이 필연적으로 죄를 짓지만 자발적으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좀 더 자세히 해명할 것입니다(II.iv.1-2).

미주

(미주 1) 존 칼빈, 이형기 옮김, 『칼빈의 신앙교육서』(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1),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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