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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부머 리무버한국교회와 한국사회가 살 길을 고민해 본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 승인 2020.04.01 01:17

1. 부머 리무버

바야흐로 코로나19를 기준으로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와 AD(After Disease, 질병 이후)가 나누어졌습니다. 그리고 AD 시대의 세례 요한의 외침은 “회개하라. 부머 리무버가 가까이 다가왔다.”입니다.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라는 말은 우리말로는 ‘꼰대제거기’ 정도로 번역됩니다.

최근 코로나19 감염병이 퍼지면서 이 신조어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곧, 코로나19가 기성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를 제거한다는 말입니다. 베이비부머는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1960년 중반까지 태어난 이들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86세대를 뜻하겠지요. 아무튼 10대들은 기성세대가 탐욕에 찌들었으며, 경제를 망가뜨렸고, 지구를 병들게 했다고 비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저씨들은 그냥 앉아 있기나 해!”, “그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않나?” 이렇게 코로나19를 통해 젊은 세대들은 노인세대들에게 “부머 리무버!”를 외치고 있습니다. 노인 세대와 청년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된 것입니다.

‘42만→38만→34만→30만→32만’ 무슨 숫자일까요? 최근 5년간의 출생아 수입니다. 그럼 다음 숫자는? ‘68만→66만→70만→74만→78만’ 올해부터 5년간 65세 노인이 되는 인구의 숫자입니다. 다른 나라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출생아와 노인연령 숫자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아주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고, 그 중심에는 베이비부머(1955-1964년생)가 있습니다. 조금 확장해서 1955-1974년 20년 동안 태어난 이들이 현재 1680만 명입니다.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아무튼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올해부터 노인인구로 편입되기 시작하며 고령화도 급속히 진행될 것입니다. 2019년 중위(中位)연령, 곧 전체 인구를 연령 순서대로 세웠을 때, 정 중간에 있는 사람의 나이가 43세였습니다. 그러나 약 10년이 지난 2030년에는 50세가 됩니다. 인구 절반이 50세 이상이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죽음이 유보된 장수 사회가 마냥 좋은 것은 아닙니다. 사회의 혼돈과 혼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생명 경시가 만연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습니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되는 14년 뒤의 현실을 배경으로 쓴 박형서의 소설 『당신의 노후』 (현대문학, 2018)의 한 장면입니다.

“연금이 저축해둔 돈 찾는 게 아닌 거 알잖아. 생산인구 소득을 거둬 비생산인구들에게 나눠주는 거야. 요새 청년 세 명이 노인 일곱 명을 부양하고 있어. 청년들이 100만 원씩을 벌면 너희 늙은이들한테 쪽쪽 빨려서 집에는 대략 50만 원씩 가져간단 말이야. 그 돈으로 애인 만나 찻집에 가고 결혼을 하고 애도 낳아 기르고 월세도 내야 돼. 나머지 50만 원은 당신 같은 늙은이들한테 갖다 바치고 말이야.”

14년 후에는 평균 수명이 늘면서 연금이 바닥을 드러냅니다. 정부는 나라 곳간이 거덜 날 지경이 되자 극단의 대책을 세웁니다. 곧, 연금 초과 수령자를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제거하기로 한 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장길도는 국민연금공단의 노령연금TF팀 팀장으로 재직하다 퇴직했습니다. 어느 날 장길도는 지병으로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 있는 아홉 살 연상 아내 한수련이 오래전부터 노령연금을 부어왔고, 연금의 수급자였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그의 아내 한수련도 제거 대상이 됩니다. 장길도는 아내를 죽이려는 킬러를 마주합니다. 킬러의 말입니다.

“왜 안 죽어? 응? 늙었는데 왜 안 죽어! 그렇게 오래 살면 거북이지 그게 사람이야? 요즘 툭하면 100살이야.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데 대체 왜들 안 죽는 거야! 온갖 잡다한 병에 걸려 골골대면서도 살아 있으니 마냥 기분 좋아? 기분 막 째져? 어제도 출근하다 보니 어떤 노파가 횡단보도를 점거하고는 5분 동안 건너더라고. 영락없이 지각을 해서 이사장님한테 꾸중 들었지 뭐야. 나라 전체가 그래. 사방이 꽉 막혀서 썩어가고 있어. 하는 일이라고는 영혼이 떠나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게 전부인 주제에 당신들 대체 왜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거야!”

2. 당신의 노후

이렇게 소설은 젊은 세대들이 늙음과 노년의 삶을 저주합니다. 아니, 연금만 받고, 낡아빠진 몸 안의 영혼을 부여잡고자 안간힘을 쓰는 부모세대들에게 자신들의 미래가 저당 잡힌 젊은 세대의 울부짖음입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지하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하철은 늙은이가 밥 먹는 속도로 달렸다. 하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시간이 남아도는 이들만 지하철을 타기 때문이다. 장길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통 노인들이었다. 하나같이 ‘내가 경험이 많아 다 안다’는 표정과 ‘나이 들어서 창피하다’는 표정을 함께 짓고 있었다. 전자는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고, 후자는 너무 당연해 하나 마나 한 소리였다. 그들의 무임승차를 벌충하기 위해 젊은이들의 지하철 요금은 어지간한 밥 한 끼 값을 넘은 지 오래다. 값싼 고령 인력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도 갖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지하철을 이용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노년의 경험은 이제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지혜와 믿음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튼 연금 수령자 가운데 적색 리스트에 오르면 연금공단에 의해 제거됩니다. 과다 수급자를 처리할 때 노령연금TF팀의 외곽 공무원들은 주로 ‘가능성을 높인다’고 표현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사람 목숨이란 참으로 질긴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 보면 ‘피로 가득 찬 풍선’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 풍선과 같은 아내의 목숨을 지키고자 장길도는 킬러에게 이렇게 변명합니다.

“사실 내 아내가 적색 리스트에 오른 건 좀 문제가 있다네. 내가 봤는데, 그간 수령액이 한 80%쯤에 불과하더군. 적색 리스트에는 보통 100% 수급자들이 오르잖은가.” 이러한 장길도의 말에 킬러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뭐, 80%쯤이라고? 80%면 괜찮은 거야? 이봐 장길도씨, 양심이 좀 있어야지!”

절망에 빠진 장길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들은 가망이 좀 있는 거 같은가? 이길 것 같아? 아닐세. 곰곰이 따져보면 자네들도 가망 없긴 마찬가지야. 시간이 노인의 편이 아닌 것처럼 젊은이의 편도 아니지. 시간은 결국 살아 있는 모두를 배신할 걸세. 싸우다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덧 자네들도 맥없이 늙어 있을 테니까.”

자신의 노령연금TF생활을 돌이켜보며 후회막급입니다. 그리고 장길도는 수련 씨와의 근사한 40년을 생각해봅니다. 길지 않았습니다. 정말 짧았습니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수련 씨는 제거될 것입니다. 반면 “싹 죽여 버리고 싶은 새파란 개새끼”들만 있습니다. 장길도의 말입니다.

“바보, 뭐가 애국이고 국가냐. 수련 씨 같은 착한 노인을 죽여야 유지되는 게 무슨 나라냐. 이따위 나라는 한시바삐 멸망해주는 게 인류에 대한 기여다.”

전부 끝난 것입니다. 이제 장길도는 분실해버린 단어들을 하나둘 속으로 헤아려보았습니다.

“누나, 스승과 동료, 자존심, 신뢰, 명예, 애국……. 너무 많고 또 너무 뜨거워 속이 바짝바짝 탔습니다. 새콤한 사과 한 알이 먹고 싶었다. 아니다. 사과를 먹고 싶은 게 아니다. 사과 따위는 개한테 줘버려도 좋다. 그깟 사과가 뭐라고 그걸 구하려 밤새 달렸던 자신의 젊음과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사과 두 알을 꼭지째 우적우적 씹어 먹던 수련 씨의 젊음, 그토록 수많은 게 가능했던 젊음, 그리고 이제는 영영 잃어버린 저 새파란 젊음이 그리운 것이다.”

장길도의 마지막입니다. 소설은 이렇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은퇴한 전직 공무원 장 씨(70세, 남)는 서울 성북구 자신의 집에서 전깃줄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서랍에서 나온 달랑 넉 줄짜리 유서에는 오래 앓던 아내의 죽음에 상심하여 삶의 동기를 잃었다고 적혀 있었다. 장 씨 부부를 오래 보아온 이들은 아내를 떠나보낸 장 씨가 자살을 안 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사람들이 상처받은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갖지 않는 한 이러한 죽음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덕에 사회는 숨통을 트고, 한층 젊어진다.”

코로나19로 물리적 거리두기(도대체 누가 ‘사회적 거리두기’라 명명했는가? 오히려 사회적 관심가지기가 필요한데)가 이제 타자에 관한 공감이 아니라, 혐오로 변질되어 갑니다. 이렇게 바이러스에 굴복하게 되면 AD(질병 이후)시대는 희망이 없습니다.

아무튼 소설은 담담한 문체와 무심한 듯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적절한 곳에 배치되는 소설적 소도구들을 통해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서정적으로 응축시켜냅니다. 작가 박형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우리의 현실을 시원하게, 전복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노인의 삶과 죽음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는 새로운 주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박형서는 소설을 통해 단지, 이 사회의 모든 불행의 원인을 노인들에게 돌리는 것의 문제점을 짚어낸다는 것입니다. 14년 후의 우리 사회는 노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았습니다. 그저 그가 노인이라는 것, 이 사회의 모든 불행이 노인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었습니다.

3.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

놀라지 마세요. 국가인권위원회의 ‘노인인권종합보고서’에 의하면 청년층의 56%가 고령화 사회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겼다고 생각하고, 77%가 복지가 늘면 청년층의 부담이 증가될 것이라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노인들에 대한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자료는, 이제 고령화 사회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박형서의 소설이 시작된 이 지점은 대한민국의 다른 세상의 시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고 믿고 있는 도시계획학자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베이비부머의 귀향을 권면하며 『베이비부머가 떠나야 모두가 산다』 (개마고원, 2020)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베이비부머들에게 귀향은 새로운 기회일 수 있다. 60대에 은퇴해도 20~30년을, 50대에 은퇴하면 30~40년을 더 살게 될 이들에게 귀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첫째는 먹고 사는 측면이다. 앞으로 대도시가 젊은이들에게 적합한 혁신산업의 터전으로 재편되어가면서, 지방도시에는 중장년 및 노년층이 인생 2막의 일자리로 시도해볼 수 있는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많아질 것이다. 또한 대도시의 치열한 경쟁 환경과 높은 생활비를 생각하면, 조금 덜 벌더라도 지방에 내려가 사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지방에 거주하면 17~18% 정도의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노후를 의미 있게 보내는 측면이다. 오랫동안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한 이들은 관계의 빈곤에 시달리게 된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온 베이비부머들에게는 가까이 사는 친구도 없다. 이들에겐 귀향이 새로운 커뮤니티를 꾸리는 기회가 된다. 가까운 이들과 같이 놀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늙어갈 수 있다면, 그건 그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노후에 가까울 것이다.”

이러한 귀향정책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제적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귀향을 한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또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어떤 제도들이 강화되어야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둘째는 ‘사회적 관계 조성’에 관한 것입니다. 곧, 귀향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지역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거주여건을 조성해야 될 것입니다. 셋째는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고향’에 관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 의료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개발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지금 베이비부머의 절반인, 약 805만 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의 약 60% 이상이 자기 주택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이 은퇴 후에도 계속 수도권에서 살면서 일을 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일자리 및 부동산을 둘러싸고 청년세대와의 충돌이 야기될 것입니다. 이것은 세대갈등만이 아니라 ‘공간과 사람의 부조화’에도 큰 문제입니다. 청년에게 적합한 공간은 도시이며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은 청년들인데, 정작 그들이 높은 집값 압력으로 인해 도시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미래 성장의 활력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마강래 교수는 ‘세대간 분화’를 제안합니다. 곧, 청년과 노인의 직업과 생활 터전을 분리함으로써, 두 세대가 부딪히지 않고 공존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화를 위한 중요한 방법이 바로 ‘베이비부머의 귀향’인 것입니다.

수도권에 사는 베이비부머의 절반은 지방 출신으로, 산업화 시기 이촌향도의 흐름을 따라 수도권을 비롯한 대도시권으로 이동한 이들입니다. 이들이 은퇴 시점을 맞이해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제2의 인생을 꾸리게 도움으로써 수도권의 과밀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동산 가격도 안정되고, 젊은 세대의 거주 안정을 돕고, 지방도시의 쇠락을 막으며,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규모 있는 도시 교회의 목회는 30-40대 젊은 목회자가 젊은 세대들과 함께 사역해야 할 것입니다. 베이비부머 세대 목회자(포괄적으로 1955-1974년 20년 동안 태어난 이들)는 저부터 고향으로 돌아가 지방의 어르신들과 함께 지방을 살리는 목회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새로운 질병이후(AD)세상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으로 귀향할 때 비로소 시작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AD세상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영원한 하늘 본향으로 돌아갈 때 완성될 것입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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