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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이 있기 전에 그리스도가 계셨다복음과 율법 (1)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0.04.04 16:45

『기독교강요』제2권 제5장까지 칼빈은 우리 자신이 죄짓고 타락해서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칼빈은 제1권 서두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철저히 연결되어 있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인도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우리가 죄인이라는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구속주이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율법보다 그리스도가 먼저

“타락한 인간은 마땅히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구해야 한다.” 이것은 제2권 제6장의 제목입니다. 그런데 칼빈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제12장에서 본격적으로 서술하고, 제7장부터 제11장까지는 율법과 성경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칼빈은 율법을 말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 구약성서의 대표적인 법인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

이것은 루터적인 접근과 완전히 차별화된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터에게는 율법과 복음의 순서입니다. 율법이 먼저 나와서 우리를 정죄하고, 그 다음 복음이 언급되는데, 칼빈에게는 복음과 율법의 순서입니다. 복음이 먼저 말해지고 그 복음의 빛에서 율법이 해명됩니다.

칼빈에 의하면 원래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에서 경건을 배우고, 거기서 영원한 생명과 완전한 복락으로 나아가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반역한 후로, 이 길은 차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여러 방법으로 아버지 같은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주시지만,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깨닫기는커녕, 오히려 우리의 양심이 안에서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간주하거나 대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II.vi.1).

그러므로 칼빈은 우리에게 바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권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칼빈은 바울이 “무수한 기적이 가득히 들어찬 하늘과 땅 – 이 웅대한 극장”을 “하나님의 지혜”라고 불렀다고 말하며, 이 하나님의 지혜를 잘 보면 “우리는 지혜를 얻어 하나님을 알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를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인간적인 성향과 맞지 않더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 십자가의 도를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칼빈에 의하면 성경은 확실히 처음 사람의 타락 이후로 구원은 오직 중보자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증언합니다(참고, 롬1:16). 그러므로 칼빈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17:3)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단지 그리스도의 시대만이 아니라 모든 시대, 그러므로 그리스도 이전과 당대와 그 이후를 포괄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칼빈은 성경이 구원의 유일한 문(요10:9)이라고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호된 어조로 비판합니다(II.vi.1).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

칼빈은 이 같이 구원이 오직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하고, 이제 그리스도 이전 시대, 곧 구약시대의 계시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는지를 해명합니다. “중보자를 떠나서 하나님이 저 고대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신 일이 없고 은혜를 받으리라는 희망을 주신 일도 없다”(II.vi.2).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의 기쁘고 축복받은 상태는 항상 그 토대가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있었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II.vi.2). 분명히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셨고, 그 계약은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창17:4).

그러나 이 말씀은, 칼빈에 의하면, 바울이 정확하게 해석하였는데, 곧 아브라함이 약속받은 복의 근원인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갈3:14). 이렇게 칼빈은 구약의 많은 증거들(II.vi.2)을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해명하며 구약시대에도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계시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환란을 당하고 박해를 당하던 그들에게 계약의 근거였고, 위로의 약속이었습니다(합3:13, 왕하8:19, 사7:14). 그러므로 칼빈에 의하면 경건하고 신실한 유대인들은 그들 의 소망을 항상 그리스도께만 두었던 것입니다(호1:11, 3:5, 미2:13, 암 9:9,11)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하라(II.vi.3)고 하셨습니까? 그 까닭은 하나님이 너무도 숭엄하고 높으시기 때문에, 중보자가 없으면 땅에서 기어다니는 구더기와 같은 죽을 인생으로서는 그분께 도저히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II.vi.4). 우리는 칼빈이 이미 제1권 제13장 10절, 제14장 5절 등에서 하나님의 최고의 천사를 중보자로 설명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구약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명시적으로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에게 소망을 두었다라고 생각􏰀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칼빈은 여기서 구약의 신실하고 경건한 인물들은 중보자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더라도 구원을 얻게 하는 지식 이 될 수 없다고 한 것이 분명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모든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그들이 그를 보며 그를 믿게 하셨다. 이레니우스도 같은 의미로 말하기를 하나님 자신은 무한하 시지만, 우리의 마음이 그 광대무변한 영광에 압도되지 않도록 아들 안에 서 유한하게 되시고 우리의 작은 척도에 자기를 맞추셨다고 했다. … 이레니우스의 말은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해된다는 뜻에 불과하다.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라고 한 요한의 말은(요일2:23) 언제든지 옳았다(II.vi.4).

이렇게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나, 구약시대에서조차,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속주였고, 앞으로도 그러시리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로써 중요한 내용은 다 말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칼빈은 이제 그 교훈을 직접 구약성경으로 들어가서 확증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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