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선언 100주년을 맞는 2019년, 우리는 남북 두 정상이 70년 장벽을 허물고 상호 오갔던 전년도의 역사적 사건을 다시 기억하고자 했다. 판문점 선언 1주기를 3.1선언 100년의 역사와 더불어 기리고 싶었던 것이다. 2018년 평창 올림픽과 함께 이 땅에 불어 닥친 평화의 기운은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하늘이 우리를 돕고 세계가 이 땅의 운명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 생각했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중에 남과 북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 서명했고 이를 남북한의 민(民) 모두가 자랑스럽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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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도 이 사건을 세계역사의 변곡점이라 여겨 놀라움으로 지켜보았다. 민족 자주성에 기초한 평화공존의 길을 판문점 선언을 통해 열어젖힐 수 있었으니 실로 억울하게 죽은 조상들마저 기뻐할 일이었다. 70년 휴전상태를 종전협정으로 바꿔 전쟁 없는 민족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에 기초한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시각차가 너무도 컸다. 한국전쟁 이후 두 국가 간에 쌓인 불신의 골이 깊었던 까닭이다. 체제보장을 우선시하는 북한과 핵 포기를 앞세우는 미국 사이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된 문재인 정권의 입지 역시 많이 축소되었다. 급기야 4.27 판문점 선언 1주기를 앞둔 시점에서 북미 간 하노이 회담은 결렬되었고 두 국가들 간의 접점을 찾는 일이 점차 힘겹게 느껴졌다.

최근 중국의 개입으로 북미대화가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한미 정상간 조우도 다시 가시화 될 것이라 하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민족의 자주성에 기초한 판문점 선언의 정신이 얼마나 지켜질 것인지 걱정이 크다. 이제 한반도 평화체제는 중국의 개입으로 더욱 복잡해 질 개연성이 많아졌다. 지난 70년의 역사가 그랬듯이 우리들 뜻대로 이 땅의 미래를 세우는 일이 여전히 지난해진 것이다. 본 『백서』가 발간된 이후라도 이 땅을 감쌌던 지난해의 평화기운이 다시 넘쳐나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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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것은 비단 강대국들의 원심력 탓만은 아니었다. 해방 정국에서 비롯한 이념갈등이 이젠 남남갈등으로 확산되어 민족의 구심력을 흩어놓은 비극적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평화기운을 부정하고 민족의 자주성을 폄하하는 정치가들과 그를 추종하는 이념집단으로 민족의 뜻이 하나로 묶여질 수 없는 현실에 우리는 더 크게 절망한 것이다.

주변 강대국들의 원심력에 맞서려면 민(民)의 구심력이 절실한 것인데 남남갈등으로 우리들 미래를 원심력에 휘둘리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구심력이 확보되어야 원심력과 조화를 이뤄 민(民)의 앞날을 앞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간 우리들 역사는 양자 간의 갈등으로 제자리에 머물고 말았다. 4.27 판문점 선언이 민족의 자주성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런 연유에서였다.

▲ “4.27 민(民)+ 평화 손잡기” 행사 『백서』가 한글과 영문으로 발행되었다. ⓒ이정배 교수 제공

3.1 선언 100주년의 해, 4.27 선언 한 돌을 맞아 우리들 민(民)은 이런 과거를 결코 답습하길 원치 않았다. 원심력의 현실을 인정하되 공히 자주성의 가치에 무게를 실고 우리 현실을 직시했다. 100년 전 조상들이 자주와 평화 그리고 세계성을 내세우며 일제에 맞섰듯이 우리도 자주성을 앞세워 이 땅에 드리운 평화기운을 온전히 실현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중국까지 관여하게 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되었기에 난제가 적지 않겠으나 그럴수록 남남갈등을 극복하는 의지를 더욱 키워 나갈 필요가 생겨났다. 바로 “4.27 민(民)+ 평화 손잡기” 행사는 판문점 선언의 실현을 위한 염원과 의지의 표출이었다.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지 이런 뜻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어져야만 할 것인바 그 출발점으로서 이번 손잡기 행사는 참으로 중요했다. 

말했듯이 당시는 안팎의 요인으로 4.27 판문점 선언의 실현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던 남북 간의 약속이 다시 예전처럼 지지부진하게 될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었다. 이에 생각하는 백성(民)들이 뜻을 모았고 간절한 염원을 표출하였다.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정부 차원을 넘어 민(民)의 힘으로 그 선한 뜻을 돕되 우리들 미래인 평화체제를 위해 주체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의한 것이다. 70년간 펴지 못했던 이 땅의 허리인 DMZ에 함께 모여 평화를 노래하고 미래를 스스로 꿈꿔 보자는 취지였다. 이 땅의 허리가 고추 세워질 그날을 위해 함께 손잡고 기도할 것을 민(民)들에게 호소했던 것이다. 우리 뜻과 무관하게 잘려진 허리를 이제 우리 의지로 다시 세울 것을 하늘에 바라고 조상들에게 소원하며 말없이 그곳에 묻힌 뭇 영혼에게 빌었다.

우리는 4.27 평화 손잡기 운동을 이 시대의 독립운동이라 여겼다. 평화체제의 확보없이 진정한 독립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1운동 당시 이념, 종교, 계급, 남녀, 노소의 차이 없이 함께 만세를 불렀듯이 우리 역시도 모든 차(差)를 뒤로하고 오로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한마음 될 것을 호소하였다. 그렇기에 여전히 잔인한 4월이었으나 우리는 ‘꽃피는 봄날 DMZ로 소풍가자’는 아주 평범한 구호를 내걸었다. 온가족이 함께 손잡고 이곳의 아픔을 경험하길 바란 것이다.

동시에 분열과 갈등의 땅, 수없는 사람들이 묻힌 DMZ, 이곳에서 우리들 미래를 함께 꿈꾸게 할 목적에서였다. 생태적 보고이자 평화의 산실이 될 이곳 DMZ가 우리 뿐 아니라 인류의 공동자산이라 믿은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먼저 평범한 민(民)들에게 호소했고 종파를 떠난 종교인들 모두에게 청했으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해달라고 부탁했다.

특별히 민(民)의 자각을 한 종교인들이 많이 참여했다. 이들은 500킬로에 달하는 DMZ 곳곳에 묻힌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각기 자기 종교들의 의식으로 묻힌 이들을 기렸고 그들의 바람이 이 땅의 평화인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살아 숨 쉬는 민(民)들의 손을 잡기 이전에 전몰 희생자들을 소환하여 그들과 먼저 소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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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그날은 이 땅의 미래를 위한 축복의 날이 되었다. 남쪽에선 수백 대의 버스로 사람들이 올라왔고 DMZ 인근 지역에선 이들을 맞고자 지역주민들이 몇날 며칠을 지새웠다. 지방정부의 협조가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의 경우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돋보인 행사가 되었다. 이 손잡기 행사를 위해 조직된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각 지역의 본부들, 이들의 헌신적인 준비와 지도력 덕분에 수십만이 함께한 행사에 작은 불상사도 생기지 않았다. 본 행사의 중요성을 간파했고 이를 위해 주도면밀하게 준비 한 결과였다.

앞으로도 지속될 민(民)주도의 4.27 행사에 이들이 쌓은 경험이 크게 사용될 것이며 이들이 엮은 조직이 대단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날 함께 손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소원하는 선언문을 함께 읽은 수십만의 사람들이 이 시대의 독립군이자 의병이 되어 나라의 미래를 옳게 만들 수 있겠다. 이런 경험이 우리들 미래를 위한 아주 큰 자산이 될 것이기에 말이다.

“역사는 처음이 있어 마지막이 있지 않고 마지막이 있어 처음이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우리들 과거 역사가 아무리 훌륭한들 나라의 허리가 잘린 현실에서 그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우리들 민(民)의 힘으로 잘린 허리를 다시 세울 때 비로소 우리 역사는 다시 뜻을 찾게 될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우리는 헌법에 명시된 ‘민주공화국’을 다시 찾았고 세웠다. 3.1 선언 100년을 축하하면서 우리는 독립의 의미를 다시 질문했고 국가의 정통성을 다시 생각했던 것이다. 세계가 놀란 사건, 촛불혁명의 힘이 없었다면 참으로 어려웠을 주제였다. 이 힘이 ‘4.27 DMZ 민(民)+평화 손잡기’를 통해 재현되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민(民)이 주도한 4.27 손잡기 행사가 멀리는 동학혁명, 3,1 만세운동 그리고 4.19혁명, 6.29 정신과 잇대어 있으며 가까이는 촛불혁명의 열기를 품고 있음을 끝까지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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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부족한 것이 많았다. 모두가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과정에서 의견 차로 서로 불편해진적도 있었다. 행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역량이 미흡했던 탓이다. 과거 독립 운동가들이 그랬듯이 대의를 위해 자기 것을 버리는 종교적 숭고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직 우리들 뜻이 영글지 못하여 의욕만 앞선 경우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MZ에서 보여준 민(民)들의 손잡기 행사, 그리고 해외 각 지역에서 동포들의 같은 퍼포먼스는 우리들 미래가 어둡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번 4.27 행사의 씨앗이 어떻게 열매 맺을지 대단히 궁금하다. 이/저런 방식으로 진화해 가면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민(民)의 활동이 구체화 될 것이다.

아마도 먼 훗날 4.27 손잡기 행사 이전과 이후로 우리 역사를 나눠 이야기하는 때가 도래할 수도 있겠다. 본 행사를 처음 꿈꿔 상상했던 사람, 이 꿈을 나누려고 애썼던 종교인들 그리고 수없는 시간을 이 행사를 위해 바쳤던 활동가들 무엇보다 먼 거리 마다하고 수백 대의 버스에 몸 싣고 달려와 준 남녘의 민(民)과 이들을 맞은 DMZ 지역 주민들의 수고는 서로 무게를 잴 수 없을 만큼 똑같이 중하고 귀하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들 역사에 ‘4,27 DMZ 민(民)_평화 손잡기’ 운동은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사건은 반듯이 파장을 낳을 것인데, 원심력으로부터 우리들 자주성을 돋보이게 할 것이다.

이정배 교수(顯藏아카데미)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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