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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과 신약의 다섯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의 그리스도 (3)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 승인 2020.05.16 17:44

칼빈은 『기독교강요』 제2권 제10장에서 구약과 신약의 일치점들을 길게 서술하였기 때문에, 다음 장의 서두에서는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혹자는 신구약간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는 말이냐고 물을 것이다. 또한 구ㆍ신약을 서로 전혀 다른 것으로 대립시키는 많은 구절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할 것이다”(II.xi.1).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 다섯 가지

칼빈은 여기서 다섯 가지의 차이점을 말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차이점은 두 계약의 처리방식, 또는 집행방식에 있습니다. 첫째는 앞에서 말했던 것과 동일한 점이 강조됩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복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다만 지상의 복의 형태로 간접적으로 받은 반면에,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영생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옛날에 자기의 백성이 마음을 고상하게 가져서 하늘 유산을 생각하기를 원하셨고, 그들의 이 소망을 더욱 잘 배양하시기 위해서 그 유산을 당에 붙은 혜택의 모양으로 그들에게 보이시며, 이를테면 그들 이 맛보게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복음이 내세의 은총을 더욱 명백하고 분명하게 계시했으므로, 주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셔서 직접 내세를 명상하게 하시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쓰시던 낮은 훈련 방법을 버리신다(II.xi.1).

구약과 신약성경 사이의 두 번째 차이점은 그림자와 실체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구약은 실체 대신에 이미지와 그림자만을 보여줄 뿐이나, 신약은 현존하는 진리와 실체를 계시한다는 것입니다(II.xi.4). 율법과 예언자들은 언젠가 분명히 계시될 그 지혜를 맛보게 해주었고, 그러므로 반짝이는 그 지혜를 단지 멀리서만 가리켰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었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열렸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계시되었으며(골2:3), 이 지혜와 지식에 의해서 우리는 가장 깊은 하늘 성소에 거의 다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II.xi.5).

칼빈은 율법과 복음에 대해 사도 바울이 제시한 대조(고후3:6-11) 속에서 두 성경 사이의 세 번째 차이점을 발견합니다. 이 세 번째 차이점에서 칼빈은 루터를 상기시키는 표현을 언급합니다. “율법은 문자적인 교훈이고, 복음은 영적인 교훈이며, 전자는 돌판에 새겼고 후자는 사람의 마음에 새겼으며, 전자는 죽음을, 후자는 생명을 전파하며, 전자는 정죄를, 후자는 의를 전파하며, 전자는 무효하게 될 것이 요 후자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II.xi.7). 그러나 율법과 복음을 이렇게 대립시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전체적으로 칼빈의 생각과 동떨어진 생각입니다. 칼빈은 곧바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는 문자와 영의 이 차이를 근거로 주께서 유대 민족에게 주신 율법에 아무 효과도 없었고, 그들 중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선 자가 하나도 없 었다고 추측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 차이점을 지적하여 비교한 것은 은총이 풍부하게 된 것을 찬양하려는 뜻이다. 동일한 입법자이신 하나님이 … 복음 전파에 은총을 풍부히 베푸신 것을 찬양한다(II.xi.8).

네 번째 차이점은 세 번째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마치 속박이 자유와 대립되는 것처럼, 구약과 신약은 서로 대립됩니다(롬8:15, 참고). 구약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불어넣기 때문에 “속박의 계약”으로 일컬어지고, 신약은 신뢰와 확신을 강화시켜주기 때문에 “자유의 계약”으로 일컬어집니다. 율법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지만, 복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줍니다(갈4:22-31).

물론, 구약의 족장들 역시 “우리와 동일한 믿음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와 기쁨은 율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율법에 의해서 노예와 같은 압박을 받고 양심의 불안으로 지쳤을 때, 복음에 의지하여 피난처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제사법적인 율법에 여전히 종속되어 있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이 소유했던 자유는 우리와 달리 율법의 모든 두려움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러한 자유는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할 것입니다(II.xi.9).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차이점은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하나님은 한 민족을 택하시고 은혜의 계약을 그 민족에 국한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정과 신임과 보호를 받았으나, 다른 민족들은 그대로 어둠 가운데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예를 누렸으나, 다른 민족들은 모두 하나님께 접근하는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때가 이르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오심으로써 그때까지 한 민족과 다른 민족 사이를 막고 있던 장벽이 무너지고, 열방이 그의 유업이 되고 그의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게(시2:8)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유를 회복하시기로 지정하신 ‘때가 차매’(갈4:4) 주께서 하나님과 사람의 화해자로 나타나셨다. 오랫동안 하나님의 자비를 이스라엘 의 경계선 안에 국한하던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4), ‘먼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엡2:17, 의역), 이는 그들이 함께 하나님과 화평하여 한 백성으로 융합하게 하시려는 뜻이었다(엡2:16). 그러므로 지금은 유대인이나 헬라인(갈3:29), 할례나 무할례의 차별이 없고(갈6:15), 오직 ‘그리스도가 만유시요 만유 안 에 계시다’(골3:11). ‘열방이 그의 유업이 되었고 그의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러’(시2:8),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중단 없이 다스리게’ 된 것이다(시72:8, 의역, 참조, 슥9:10)(II.xi.11).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동일하다

칼빈은, 위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차이점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이 어떠한 것이었든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 혹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으셨던 계약의 본질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하나님이 옛 계약과 새 계약 양쪽 모두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에 의해서 중생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으로 계명에 복종한(갈5:6) 약속의 자녀들은(롬9:8) 창세 이후로 모두 새 계약에 속했다”라고 말한 어거스틴에게 동의하면서(II.xi.10), “성경에 창세 이후로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다고 말하는 성도들은 모두 우리와 함께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동일한 축복에 참여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II.xi.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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