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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나침반그리스도인의 결박(시편 2:7-8)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5.31 17:06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령의 역할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우쳐주시는 일과 우리가 세계 만방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시는 일입니다. 오늘 저희는 성령이 깨우쳐주실 예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너는 내 아들이라’라는 곡이 있습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 잡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자국난 그 손길 눈물 닦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은혜로운 찬양곡이고, 우리에게 힘을 주는 찬양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찬양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간혹 이런 은혜로운 찬양에 나오는 내용이 성경 어느 구절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지를 찾아보면, 당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찬양의 내용과 성경의 전체적인 말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라는 찬양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저희가 읽은 시편 2편 7절이 찬양의 근간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시편 2편은 이 곡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말씀 중에서 은혜로운 구절 몇 절만 따서 읽고 암송하는 신앙 풍조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이며 때로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찬양 자체의 은혜만을 본다면 괜찮지만 떼어낸 구절을 해석한 의미가 역으로 성경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이로 인해 성경 말씀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조금 우려가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희는 시편 2편의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너는 내 아들이라’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시편 2편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왕과 하나님

시편 2편의 말씀을 읽어보면,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1-3절에서 세상의 군왕들, 이방 나라의 왕들이 대적하고 있는 인물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 고대 이스라엘은 왕정시대였다. 이들에게 큰 고민은 왕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선택의 순간이었다. ⓒGetty Image

3절에서 이방 나라들이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고 말하는 점을 보면 마치 종속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독립을 꾀하는 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를 속국으로 삼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성경을 제외한 고대 문헌들을 본다면, 다윗과 솔로몬 시대 역시도 약간 고민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시편 2편은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들을 속국으로 삼고 있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의 이방 나라들은 자신들을 묶고 있는 이스라엘의 족쇄를 벗어버리고자 계획합니다. 하지만 4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계획을 비웃으십니다. 또 이들에게 분노하시며 이들을 깨뜨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보통의 경우 이스라엘이 이방 제국의 속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여러 속국은 때때로 독립을 꾀하며 종주국에 반항합니다. 대게의 경우 이들이 독립을 시도하는 때는 종주국의 왕이 바뀌는 시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는 말씀은 ‘산고를 이겨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늘 왕으로 세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즉 왕의 대관식을 떠올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스라엘의 왕이 바뀌는 시점에 이방의 속국들이 독립과 반란을 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새로운 왕을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 구하라” 이방 나라를 깨뜨리고 그 땅을 받기 위해 왕이 해야 할 일은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2편의 말씀은 당시 왕을 신으로 여기던 이방의 풍조에 반박합니다. 왕이 신인 것이 아니라, 신께서 왕을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왕의 권위는 신,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일 뿐이고 왕이 하나님을 의지할 동안은 능력을 받아 나라를 강대하게 만들 수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부서지고 깨질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결론부인 10절은 세상의 군왕들을 향해 지혜와 교훈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그 지혜와 교훈은 11절에 나타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고 떨며 즐거워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12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그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라고 말합니다. 이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나라의 종속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왕을 섬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존재입니다. 다른 국가의 왕들이 섬기는 존재는 그 왕이 아니라 왕을 세우신 하나님이 됩니다. 이방의 나라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왕을 섬긴다고 여기지만, 시편 2편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그 왕을 세우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종속국에 요구되는 것도 종주국에 바치는 돈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섬김이 됩니다. 시편 2편은 왕의 대관식, 즉위식을 보여주며 제왕시에 속하는 시를 적고 있지만, 그와 함께 왕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복이 있도다

시편 2편의 마지막은 ‘복이 있도다’로 끝납니다. 이는 시편 1편 1절의 ‘복 있는’과 연결되어 시편 1편과 2편을 하나의 시로 묶어줍니다. 즉 시편 2편은 단지 왕위 계승에 관한 시, 이방 국가에 대한 시가 아니라 복의 길을 알려주는 시가 됩니다.

시편 1편이 의인과 악인의 구분을 통해 복된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면, 시편 2편은 국가 간의 관계를 통해서, 또 진정으로 섬겨야 할 분, 진정으로 경외할 분을 가르쳐 줌으로 우리에게 복된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편 2편에서 복을 얻기 위해 제시된 방법은 하나입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피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어서 안 되는 점은 시편 2편이 1편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기만 하면 복이 있다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1편에 나타난 복의 조건들을 충족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이 복 받는 사람입니다.

1편에 나타난 복의 조건은 이렇습니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악인, 죄인, 오만한 자가 되지 않도록 이끌어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읽고 마음에 새기며 이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율법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을 전해드릴 때마다 걸림돌처럼 생각하는 말씀이 사도 바울의 서신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3-2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이 말씀은 마치 믿음이 있으면 율법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사라져야 할 어떤 것처럼 느껴집니다. 로마서에 나타난 율법에 대한 수많은 말씀도 우리가 이제 율법에서 벗어났고 ‘믿음’만 있으면 구원으로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이는 사도 바울에 대한 오해이며, 이 역시도 성경을 몇몇 구절만 떼어 읽어서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 필요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기 때문에 율법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뿐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율법을 ‘초등교사’로 일컫는 것처럼, 로마서에서도 사도 바울은 율법이 우리의 길을 가르친다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상응하는 단어인 율법은 우리가 벗어나야 할 법조문이 아닙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결박은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의 길을 알려주고 우리가 복된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는 장치이며 교사입니다.

메시아를 따름과 복

이제 지금 시대 우리의 신앙에 따라 시편 2편을 다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시편이 기록되던 시기에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기름을 부으신 존재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왕을 섬기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우리가 메시아로 고백하는 예수님을 따라야 함이 맞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며,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2장 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하나님 말씀을 오랫동안 들어왔다고 해서 의인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순간 “믿습니다. 아멘”을 외친다고 해서 의인이 되지 않습니다. 이를 행하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따름도 우리가 삶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결코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희롱하는 일이며, 오히려 예수님과 기독교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여러분들께서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이런 실천의 삶은 선한 삶을 거부하는 이들, 자신의 재물만을 늘리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결박이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결박이 우리를 옭아매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약속의 징표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복에 관해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게 될 ‘복’이라는게 무엇일까요? 무엇을 받기 위해서 율법을 마음에 새기고 이를 행하며 살아야 할까요? 이를 위해 우리는 시편 2편과 연결된 시편 1편의 말씀을 다시 살펴보게 됩니다. 시편 1편 3절 말씀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철에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시편 1편은 이 나무에 열매가 항상 맺혀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철에 따라 열매를 맺을 뿐입니다. 지금 시대의 우리가 보기에 너무 부족해 보입니다. 우리는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열매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복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에 따라 열매 맺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에서 열매가 맺히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당연히 이루어질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노력한 사람은 노력의 보상을 받게 되고, 일한 사람은 그 일의 댓가를 받게 되는게 복입니다.

이 나무는 잎이 마르지 않습니다. 뿌리가 든든하여 그 잎이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뿌리만 단단하게 내려 있어서, 결코 죽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항상 푸른 잎을 드리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어려움이 닥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아플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잎이 마르지 않는 사람은 그런 시기에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삶에서 노력해온 모든 결실을 얻게 됩니다.

지금 시대는 그 누구도 우리의 노력이 보상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결과는 알 수 없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어떤 기업에 취업하려고 한다 해도, 어떤 국가 공무원직에 응시한다고 해도, 지옥같은 경쟁률은 우리를 낙담하게 만듭니다. 그 누구도 성공을 입에 담을 수 없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노력한 만큼 보상이 따른다는 당연한 이치를 당연하게 받을 수 있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연한 일이 당연히 일어나게 될 줄 믿기 때문에 그 사람은 낙심하지 않고 생명력을 이어 갈 수 있습니다. 힘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형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따라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당연히 얻어야 할 복을 당연하게 누리시길 바랍니다. 성령강림주일에 이 당연한 결과에 대한 복을 깨닫게 되시길 바라고, 우리가 이를 잊고 살아가고 있다면, 성령께서 우리의 영을 깨워주시고, 우리 맘에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금 새겨주실 줄 믿습니다. 그 말씀 속에서 항상 마르지 않는 잎을 드리우며 복된 생명력을 세상에 전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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