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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야곱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일어나 벧엘로 가자!(창 35,1-7; 요 14,25-27)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0.06.11 17:15
▲ Lo Spagnoletto, 「Jacob’s Dream」(1639) ⓒWikipedia

오늘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지난 날 그가 했던 서원을 일깨우시며 벧엘로 가라 하십니다. 이 사건으로 그의 생애의 한 단락이 정리되고 마감됩니다.

야곱은, 오래 전, 에서의 위협을 피해 어머니의 고향으로 피신을 해야 했습니다. 형제들은 보통 티격태격하며 성장합니다. 야곱과 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런데 이를 심각하게 만든 것은 어머니 리브가의 지독한 편애였습니다. 이삭을 속이고 장자에 대한 축복을 가로챌 정도였습다.

에서의 분노는 살의를 낳았습니다. 야곱의 소심함과 리브가의 편애가 초래한 파국적 결과입니다. 그 댓가 또한 작지 않습니다. 리브가는 야곱을 다시는 볼 수 없었고 야곱은 긴세월 머슴과 다름없는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갈등을 일으킬 정도의 편애가 얼마나 위험한지 야곱 이야기는 잘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도망가는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선택하신 이유는 모릅니다. 야곱이 하나님에게 하는 말을 보면, 하나님과 그의 관계가 특별했던 것도 아닙니다. 아곱은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와 함께 하셔서 그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야훼를 그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몰랐을 리 없고 그의 아버지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을 리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께 이런 조건을 내미는 것은 아버지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녀가 아버지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당연히 섬기게 되는 것은 아님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런 그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하십니다. 그와 동행하고 그를 지키시고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먼저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약속은 자기 땅을 떠나야 했던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홀로 된 자와 함께 하시고 불안에 떠는 자에게 위로와 안전을 약속하시며 희망없는 자에게 희망을 주십니다. 야곱의 처지를 섬세하게 살피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 하실 것입니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어려움을 고백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보호와 동행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야곱에 대한 약속을 하나하나 이루어가시고 집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지만 다 아시는 대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곱에게는 넘어야 할 큰 장벽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에서와의 대면입니다. 그는 도망가던 때와는 또 다른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그를 도망가게 만든 사건에 의해 촉발된 원천적인 불안입니다. 불안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라면, 그 불안을 이겨낼 힘의 근원은 자기에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도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처음에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를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고 하나님이 그 위에서 그에게 말씀하셨다면, 이번에는 그와 씨름을 하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환도뼈를 부러뜨리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다니,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야곱은 다리를 절게 됩니다. 어쩌면 그는 속으로 이게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지키신다는 것이냐고 항의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는 다른 사람과 더 이상 씨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무기력한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습으로 그가 내일의 불안을 이길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그에게 남겨주신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그 기원에 대한 성서의 설명과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번역하면 ‘엘(~하나님)이 싸우실 것이다’ 입니다. 하나님은 대체 누구와 왜 싸우시겠다는 것일까요? 하나님 앞에는 환도뼈가 뿌려져 제대로 서지도 걷지도 못할 야곱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건의 의미는 여기 이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야곱은 사람뿐만 아니라 지금처럼 하나님과도 씨름하며 겨루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야곱을 위해 하나님은 야곱 대신 싸우시겠다고 선언하시며, 이를 잊지 않도록 이름으로 지어주신 것이 아닐까요? 환도뼈가 스스로 자기 문제를 해결하는 힘과 의지의 상징이라면, 그 이름은 더 이상 그런 힘이 없는 사람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함축합니다.

절뚝이며 걸어가는 그에게 아침 해가 찬란하게 비칩니다. 밤이 물러가듯 그를 사로잡고 있던 불안도 하나님의 약속의 빛에 의해 그 힘을 잃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바뀐 그는 에서를 만날 수 있었고 에서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상대를 이겨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던 야곱이 이제는 자기를 낮출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를 위해 싸우실 하나님의 동행이 오히려 그를 겸손하게 했고 화해를 가능케 했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힘을 내려놓고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를 위해 싸우시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겸손하면서도 높은 자존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불안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위로자입니다. 불안과 고통, 실망과 슬픔에 잠겨있지 않도록 성령은 우리 안에 평화를 만들어냅니다. 우리 속의 환도뼈를 의지하지 않고 성령의 도움에 의지하라고 야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무엇을 해야 좋을지 막막할 때 성령께서는 주의 말씀과 일을 기억하게 하시며 우리의 길을 비추시고 열어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은 아들들 때문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야곱에게 지난 일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에게 생명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그 일을 잊고 있었을지도 모를 야곱은 그제서야 그의 집 안에 있던 모든 이질적 요소들을 땅에 묻고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그렇게 말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우리에게 의지할 곳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우리가 모든 불안을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하십니다. 새로운 희망의 땅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일어나 그 희망의 땅으로 올라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이므로 성령이 빚어내는 우리의 평화는 세상의 어떤 평화와도 같을 수 없습니다. 어떤 질병도 어떤 불행도 어떤 고난도 그 평화를 훼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평화는 우리가 그 모든 것들을 견디고 이기게 할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위로와 진리와 평화의 영을 의지하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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