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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간의 신뢰회복, 6·15 남북공동선언 정신으로민중신학자의 눈으로 세상 읽기 (24)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 승인 2020.06.15 16:41

6·15 남북공동선언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늘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 각기 다른 이념과 사상과 제도를 갖는 국가체제가 자리를 잡은 지 50년도 더 지나서야 남측과 북측의 정상은 2000년 6월 13일 처음으로 만나 회담을 하고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국가 최고 의전인 의장대 사열과 분열을 베풀었다. 분단과 전쟁,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적대관계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두 정상의 만남과 국가 의전은 실로 감격스러운 광경이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과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이어나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통일의 방안에 관련하여 자주의 원칙, 평화의 원칙,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밝혔고, 「남북기본합의서」는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고, 남북 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협력 등에 관한 지침을 담았다. 이처럼 남측과 북측 사이에서 체결된 민족통일의 원칙과 지침에 바탕을 두고, 두 정상은 6·15 남북공동선언 제1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천명하여 민족공조에 바탕을 둔 자주적인 민족 통일의 원칙을 천명했다. 제2항에서 남북 정상은 남북통일의 방향에 관련하여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선언했다. 나머지 제3항으로부터 제6항까지는 이산가족, 장기비전향 복역수 등에 관련된 인도주의적 조치, 경제협력과 교류, 남북 당국간 대화 체제 구축,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 등에 관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김대중 정권이 수립된 뒤에 남북 사이에 어느 정도 신뢰가 구축되었기에 성사되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빛정책’을 내걸고 선제적으로 대북 화해와 협력 조치를 취했다. 1998년에 남측이 북측에 금강산관광 사업을 제안하여 성사시킨 것이 신뢰회복의 첫 걸음이 되었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개성공단이 착공된 것도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개성 지구에 전진 배치된 조선인민군 군대를 후방으로 이동시키고, 남북 경제협력의 가시적인 모델인 개성공업지구 개발에 남북이 합의한 것은 상호신뢰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와 같이 남북관계 형성의 기본 원칙들과 그 실천 모델을 제시하였기에 6·15 남북공동선언은 그 이후 수차례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쌍방 합의를 도출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북측의 핵무기 개발로 불거진 복잡하고 어려운 한반도 비핵화 논의 과정과 대북 제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7년 10월 2일부터 사흘간 정상회담을 열었고, 10월 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채택했다. 남북이 주도하는 평화와 통일의 원칙이 넘북정상선언의 핵심을 이루었다는 것은 두말할 것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무려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1차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채택했다. 판문점선언에서 두 정상은 민족공조와 자주의 원칙을 확인하고, 남북의 공동번영과 통일,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적대행위 종식, 한반도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 등을 추구하기로 합의하고, 군사분계선 일대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금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 한반도 비핵화 실현 등의 세부적인 목표를 명시했다. 같은 해 9월 18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진행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훨씬 더 세부적으로 정식화하고,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부속문서로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김여정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가 드리운 그늘

최근 10여일의 사이를 두고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은 탈북자 단체들이 이북으로 보낸 반북선전삐라에서 ‘우리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고 ‘핵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문제로 삼아 강력한 대남 성명을 두 차례 발표했다. 그는 조선로동당 위원장이자 국무위원장인 김정은과 당과 국가로부터 대남사업의 책임을 위임받은 핵심 인사이다. 그가 남측에 보내는 공식적인 성명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의 성명은 로동신문을 통해 발표되어 이북 주민들과 전세계 사람들에게 공개되었고,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고 대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6월 4일 그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 살포 등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 선언과 군사합의서 조항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얼마 있지 않아 6.15 20돐을 맞게 되는 마당에 우리의 면전에서 거리낌없이 자행되는 이런 악의에 찬 행위들이 ‘개인의 자유’요, ‘표현의 자유’요 하는 미명하에 방치된다면 남조선당국은 머지않아 최악의 국면까지 내다보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남측에 대해서 금강산관광 폐지, 개성공업지구의 완전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김여정의 6월 4일 성명이 주목되는 것은 그 동안 남측이 취한 행태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6.15 남북공동선언, 2018년 판문점 선언, 남북군사합의서의 원칙과 지침을 되돌아 볼 것을 남측에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선언서들과 합의서들을 짚으면서 그는 남측이 대북 적대행위를 방조함으로써 남북 간의 신뢰 관계가 깨졌고, 그 문서들이 불러일으킨 ‘기대’와 ‘희망’이 ‘절망’과 ‘물거품’으로 변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김여정의 6월 4일 성명에 접한 남측은 즉각 대북 전단 살포를 남북교류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관련 단체들의 법인 인가를 취소하는 절차를 시작하고, 대북 비방을 금지하는 관련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북측은 통일전선부장과 대변인이 나서서 판문점 선언 이후 2년이 지난 시점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남측이 서둘러 취하는 조치들이 진정성이 없다고 비난하고, 6월 9일 12시를 기해 청와대 핫라인을 위시하여 남북 간에 설치되었던 모든 연락망을 단절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지난 6월 13일 김여정은 또 다시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이 성명에서 “우리 조국의 상징이시고 위대한 존엄의 대표자이신 위원장 동지의 절대적 권위를 감히 건드리고” 접경 지역에 삐라를 살포한 데 대해 전체 인민이 한결 같은 목소리로 “세상이 깨여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장을 보자.”고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인민의 결의가 모아져 ‘국론’이 확고하게 굳어졌다는 의미심장한 언급을 한 뒤에 그는 두 가지 중대선언을 했다. 하나는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음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고, 남측을 적으로 규정하고 대남 군사 행위를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김여정의 성명은 “우리 군대 역시 인민들의 분노를 다소나마 식혀줄 그 무엇인가를 결심하고 단행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단호한 말로 끝을 맺고 있다.

김여정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의 두 차례 담화는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 오늘 한반도에 깊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북측이 남측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남북관계 개선 노력에 종지부를 찍고, 군사적 대결 국면을 조성하겠다는 선언은 북측에 대남 강경파가 전면에 나섰다는 신호로 여겨진다.

남북간 신뢰상실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김여정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의 두 차례 담화를 꿰뚫고 있는 메시지는 남측에 대한 신뢰가 깨졌기에 더 이상 선의를 갖고서 남측을 마주 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6월 4일 성명 말미에서 “선의와 적의는 융합될 수 없으며 화합과 대결은 량립될 수 없다.”고 적었고, 6월 13일 성명에서는 남측을 적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남측에 대한 불신과 적대는 무엇보다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고 존엄’을 모독한 대북 전단 살포를 방관한 남측이 결과적으로 북측의 사상과 제도와 체제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고, 대북 적대 행위의 효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두 담화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남측에 대한 신뢰 상실이 깊고 넓게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여정이 남북관계 개선의 시금석으로 여겨져 왔던 금강산 관광의 폐지,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등을 들고 나온 것은 남측이 미국의 편에 서서 유엔의 대북 제재를 방패처럼 앞세우며 남북 협력과 교류를 실질적으로 회피하고, 남북간 민족공조와 자주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고 진단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남북군사합의서 파기를 언급한 것은 한미군사훈련이 계속되고, 남측이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신무기체계를 계속 도입하고, 미국이 전략무기를 한반도에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이 상존하기에 그 합의서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뜻한다. 남북군사합의서가 접경지 전단 살포 등 적대행위를 근절하고 남북 간에 군사적 신뢰 관계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그 합의서를 폐기하지 않을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이 모든 불신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이 남측의 중재자 역할 실패에서 비롯되었다는 북측의 판단 때문에 증폭되었을 공산이 크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북측의 핵시설 폐기와 대북제재 완화를 맞바꾸기 위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도한 빅딜은 북측의 핵시설 폐기 범위를 둘러싼 이견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북측은 영변 핵시설을 폐기 대상으로 꼽은 데 반해, 미국 당국은 영변 핵시설 이외의 다른 핵시설들의 폐기를 추가로 요구했다. 하노이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일관성 있게 영변 핵시설 폐기를 기점으로 해서 그에 상응하는 대북제재 조치 완화에 착수하자는 중재안을 냈으나, 그 중재안은 미국 당국에 의해 거부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안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먹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할 것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노이 빅딜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북측의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안이 먹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측이 문 대통령에게 극도의 불신을 표명하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서도 따져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북측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에 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에 관해 언급할라치면 험한 말로 문 대통령을 비난해 왔고, 심지어 한반도 비핵화가 북미 사이의 일이니 문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라는 말로 쐐기를 박곤 했다. 남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판문점선언이 무색하게 된 것이다.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가 국가의 체면을 구기지는 않는다

최근 남북 간에 조성된 위기는 남북 모두 남북관계를 형성하는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제대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원칙은 오늘 20주년을 맞이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에 오롯이 담겨 있다. 민족공조와 자주의 원칙이 그것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그 원칙은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과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에 뿌리를 두고 있고, 10·4 남북공동선언, 판문점선언, 평양선언 등에 명료하게 적혀 있다.

한반도에서 관철되는 미국의 군사·정치적 헤게모니와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맞서서 남북이 민족공조에 바탕을 두고 자주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지만, 통일을 향해 가는 남북 사이의 특수한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그 원칙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 남북이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와 체제를 갖고 있지만, 그 때문에 민족공조와 민족대단결로 나아가지 못할 까닭이 없다. 서로 다른 것에 유념하고 그 차이를 존중할지언정 그 차이를 빌미로 삼아 상대방을 비방하고 적대시할 이유도 없다. 이를 인식하였기에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로부터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상호비방을 금지하고 적대행위를 하지 말자고 약속하였던 것이다. 남북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할 때에만 평화관계를 유지하고 장기적으로 통일의 방향을 잡아나갈 수 있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남측은 남북이 상호비방과 적대행위를 하지 않기로 약속한 판문점 선언 이후 2년 동안이나 북측의 ‘최고 존엄’을 모독하는 대북 전단 살포를 거의 방관하다시피 했다. 김여정이 지적한 바와 같이, ‘개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존중되는 사회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고 법에 의율하여 처벌하기 위해서는 설득력 있는 논거들이 제시되어야 하고 국민적 합의를 구해야 한다. 남북교류법 등에 의율하여 처벌하는 것도 까다로운 데, 입법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사실 남측은 이러한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따라서 대북 전단 살포의 금지와 처벌에 관련해서는 북측에 해명할 것을 충분히 해명하고, 사과할 것을 사과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대북특사 파견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UN의 대북제재를 해제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자

대북 전단 살포의 금지와 처벌, 이에 관련된 남측 당국의 해명과 사과 이외에도 남측이 남북 신뢰회복을 위해 할 일은 많다. 무엇보다도 남측은 한편으로는 UN의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는 가혹한 대북제재를 해제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북제재 조건 아래서 가능한 한도에서나마 남북 경제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민족공조와 자주의 원칙에 충실한 남측의 국가 행위일 것이다.

우선, 대북제재 완화에 관련해서 말한다면, UN의 대북제재가 그 목적이 불분명한 가혹한 조치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UN의 대북제재는 ‘한반도 비핵화’를 명분으로 내걸고 북측의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억지하고 포기하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 제재조치는 북측의 무역과 대외 금융활동을 거의 전면적으로 봉쇄할 정도로 가혹하다. 이러한 가혹한 조치가 북측의 비핵화와 핵탄두의 운반수단 개발을 포기하도록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과 봉쇄 정책을 풀고 북미 관계정상화와 북미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전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북측은 그러한 평화체제의 군사적 담보가 ‘한반도 비핵화’라고 본다. ‘한반도 비핵화’는 단순히 북측이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기만 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언제든 한반도에 핵무기를 전개하거나 이북을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의 실효적 폐기를 전제한다. 바로 여기서 북측의 비핵화에만 초점을 맞추어 설계되고 시행되고 있는 UN의 대북제재는 그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음이 드러난다.

‘한반도 비핵화’의 성격과 논리를 놓고 볼 때, ‘한반도 비핵화’ 없이 북측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는데도, 북측의 비핵화만을 겨냥한 대북제재가 계속되어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의 성격과 과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면, 남측은 UN의 대북제재의 무모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대북제재 해제나 완화를 촉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남측이 그런 일에 나서야 하는 까닭은 남측이 ‘한반도 비핵화’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통일을 향한 길에서 특수 관계를 맺고 있는 남북은 경제협력과 교류를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그것이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을 촉진하는 길이고 낮은 단계로부터 남북통일을 성취해 가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남측은 UN과 국제사회에 대북제재 해제나 완화 조치를 취할 것을 호소할 필요가 있다.

UN의 대북제재 아래서도 남북 경제협력과 교류를 위해 할 일은 많다

그 다음, UN의 대북제재 아래서도 남북 경제협력과 교류를 위해 남측이 할 일은 많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열매인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업지구 가동은 UN의 가혹한 제재 조건 아래서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여행은 UN 대북제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남북이 서로 합의해서 금강산 관광을 언제든 재개할 수 있고, 이북의 여러 지역으로 여행과 관광을 확대할 수도 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북 지역에 ‘개인여행’을 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는데, 남북 신뢰관계가 회복되면 남북 쌍방의 합의에 따라 개인여행을 얼마든지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UN은 북측에 석유를 반입하거나 금융기관을 설치하거나 북측으로부터 섬유·봉제류를 반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조건 아래서도 개성공업지구는 부분적으로 가동될 수 있다. 섬유·봉제류 생산을 제외한 나머지 제품을 생산하고, 남북 당국 간의 합의를 통하여 임금을 현물로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면 UN 제재를 회피하면서 개성공업지구 가동을 재개할 수 있다. 개성공업지구 가동 재개는 남측이 언제든 결단하여 북측과 더불어 풀어나가면 될 사항이지, UN 대북제재 때문에 할 수 없다고 말할 사항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에게 해도 되냐고 물어볼 사항은 더더욱 아니다. 남측과 북측의 철도망 연결과 이북의 도로망 재건 및 확장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핵무기 개발과 무관한 철도망 연결과 도로망 확충은 UN의 제재대상이 아예 아니다.

민족공조와 자주의 원칙에 충실하다면, 남측과 북측은 UN의 가혹한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엄중한 조건 아래서도 경제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고, 한반도 차원에서 민족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인프라 구축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원칙과 ‘배짱’을 갖고 밀고 나가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미국 대통령의 눈치를 보기만 하였기에 신뢰를 잃은 것이 아닌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맺음말

조선로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의 담화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북측이 남측에 무엇을 요구하는가를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이로써 조성된 위기와 긴장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과 원칙에 따라 풀어나가면 될 것 같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지 않는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를 맺고 있는 남북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결국 평화와 통일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 도정에서 남북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신뢰관계이다. 남북의 신뢰관계는 그때그때 조성되는 엄중한 한반도 정세에서 민족공조와 자주의 원칙에 충실하고,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 자리 잡은 두 국가의 사상과 제도와 체제의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원칙에 따를 때 비로소 굳건하게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러한 신뢰회복에 바탕을 두고 남북통일의 길로 나가자는 것이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과 원칙이다.

강원돈 교수(한신대 신학부/민중신학과 사회윤리)  wdkang55@h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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