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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당했던 땅에서 일어서다베냐민 출신 왕(사무엘상 10:1)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7.19 13:19
▲ Elie Marcuse(1817-1902), 「사울 왕의 죽음(Death of King Saul)」(1848) ⓒWikipedia
1 이에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맞추며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게 기름을 부으사 그의 기업의 지도자로 삼지 아니하셨느냐

요즘 교회 블로그에 올리기 위해 오후 성경공부 시간에 함께 살펴봤던 이스라엘 역사를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예전 원고 그대로 자료를 올리려고 하다보니 부족함이 많이 느껴져서 다시 정리하면서 말씀을 살펴보고 있는데, 예전에 말씀을 나눌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점들이 많이 발견되어서 쉽게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전해드리려는 말씀은 그때도 살짝 언급은 했었지만, 깊이 있게 살펴보진 못했던 부분의 말씀입니다. 사울이 왕으로 선택된 이야기를 오늘 나눠보려고 합니다. 사사기에서 사무엘로 이어지는 성경의 말씀 속에서 왜 사울이 선택되었는지 우리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사울에 관한 몇 가지 정보와 훗날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다는 점, 사울 이후에 다윗이 선택되었다는 점을 통해 사울이 선택받은 이유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사울의 외형이 출중했다는 점은 종종 어린 다윗의 모습과 비교됩니다. 하나님께서 첫 번째 왕은 외형으로 선택하셨지만, 그의 실패를 보신 후 중심을 보시고 다윗을 선택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가볍게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첫 선택이 실패했다는 이야기로 이어지기에 좋은 해석은 아닙니다.

10장 후반부에 나타난 미스바 총회에서 사울이 제비를 통해 왕으로 선정되었을 때, 사울이 짐보따리 사이에 숨었다는 점을 통해 왕이 되기 전 사울은 수줍음이 많았다고도 해석합니다. 하지만 왕이 된 후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 해석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만, 사울이 정말 교만했는가를 생각하면서 사무엘상을 읽어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울이라는 인물이 선택된 사건 자체는 어찌보면 하나님의 뜻이기에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일 수도 있습니다. 또 그의 선택에 있어서 다윗처럼 ‘중심을 보았다’라는 식의 언급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추측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가 오늘 살펴보려는 내용이 하나님께서 어떤 의도로 사울을 선택하셨는가에 대한 추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이를 따르는 일은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신앙 행위입니다. 하지만 그 길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조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인, 역사가의 생각을 추측해보려고 합니다. 특히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되던 시기 출애굽에서 왕정 말기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신명기 역사가의 생각을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서사

신명기 역사가의 생각을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사사기의 마지막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사기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이스라엘의 죄와 사사의 등장, 이스라엘의 구원이라는 도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17-18장에 나타난 미가 집안의 레위인 제사장에 대한 이야기와 19-21장에 나타난 레위인과 첩의 이야기는 이전까지 보여진 사사기의 도식에 어울리지 않는 서사를 보여줍니다.

이 두 이야기는 사사기 안에서만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이후 사무엘과 열왕기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이야기와 함께 생각해야 그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저희가 오늘 생각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사사기의 마지막 서사, 19-21장에 나타난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도 설교 말씀을 드린 적이 있기에 간단하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브라임 지역에 사는 레위인에게 첩이 있었는데, 그녀는 베들레헴 출신입니다. 어느날 그녀는 바람을 핀 후에 친정으로 도망쳐 버립니다. 에브라임의 레위인은 그녀를 쫓아 베들레헴에 왔고, 장인을 설득해 그녀를 데리고 에브라임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날이 어두워지자 그들은 하룻밤 묵기 위해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로 들어갑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그들을 맞아 유숙하게 하지 않았지만,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이 이들을 맞아줍니다. 그 후에 이들은 베냐민 지파의 불량배들에 의해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과 세 천사에게 벌어졌던 일과 똑같은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롯의 이야기와 에브라임의 레위인 이야기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레위인을 맞아준 노인이 그의 첩을 불량배들에게 넘겨주었고, 그녀는 밤새 겁탈당해 죽었다는 점입니다. 다음날 아침 이 사실에 분노한 레위인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이스라엘 11지파를 소집하였고, 이들은 분노에 차서 베냐민 지파를 몰살합니다.

베냐민 지파 사람을 모두 죽이기 직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동족을 죽이고 있으며, 자신들의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베냐민 지파에 최소한의 인원을 살려둔 채 전쟁을 끝내게 됩니다.

사무엘상과의 연결

사울의 왕위 등극을 살펴보기 전에 사사기의 마지막 서사를 살펴보는 일은 상당히 의미가 있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특히 사사기의 사건이 벌어진 기브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있는 사무엘은 실로의 엘리 제사장에 의해 키워졌지만, 본래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던 엘가나의 자식입니다. 역대기에 따르면 엘가나는 레위의 아들인 고핫의 자손으로 레위인입니다.

이쯤에서 사무엘상에 나타나는 또 한 명의 주인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아도 연결점을 찾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훗날 버림받은 사울을 대신해 사무엘에게 다시 기름 부음을 받은 다윗은 레위인의 첩과 마찬가지로 베들레헴 출신입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이야기는 분명 사무엘상 초반의 왕정 수립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사기의 이야기가 허구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아마 중심적인 흐름은 실제 이스라엘 역사에 기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11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전쟁은 분명 있었던 사실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 전쟁이 되었던 이야기의 세부적인 사항은 상당히 정교하게 짜여져 있습니다. 에브라임 지역의 레위 사람, 기브아의 베냐민 사람, 베들레헴의 유다 사람이라는 세부사항과 그들이 마주한 상황을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와 유사한 서사로 이끌어간 점은 분명 이후 이야기를 위한 신명기 역사가의 노력입니다.

참고로 창세기의 완성이 사사기보다 늦을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면,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사사기 마지막 이야기, 베냐민의 죄악 이야기에서 기인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 두 이야기의 기원은 같은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나라 혹은 지파가 멸망할 정도의 죄악’으로 치부되는 사건으로 구전되어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베냐민 지파에서 왕이 세워지다

어쩌면 사사기의 마지막 사건과 왕정이 수립된 사건 사이에는 상당히 먼 시간적 거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바로 직후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만약 이런 사건이 과거에 있었다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의 인물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 이스라엘 온 족속이 모인 곳에서 제비뽑기를 하였고, 그곳에서 사울이 왕으로 뽑힙니다. 이때 10장 27절을 보면, 어떤 불량배들은 사울을 탐탁치 않아 했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사무엘상은 이들을 불량배라고 표현했지만, 어쩌면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지파도 아니고 자신들의 죄로 인해 멸망 직전까지 갔던 베냐민 지파였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은 어쩌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이 압록강까지 점령한 이후에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고 그대로 한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는 이제 대통령제를 표방하여 대통령을 뽑는데, 초대 대통령으로 평양 사람이 선출된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바로 오늘 사무엘상에 나타난 상황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하나님에 의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상황을 역사서에 기록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들은 지금 나라의 멸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의 나라가 멸망하는 순간에 그들은 과거 멸망할 뻔했던 베냐민 지파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던 베냐민 지파 중에서 왕을 세우신 하나님을 떠올렸습니다.

이들에게 이 사건은 하나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나라가 멸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일으키시고 우리의 왕을 다시 세우시리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사무엘상에서 희망적인 이스라엘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 가지 장치를 추가합니다. 회개하며 하나님께 다시 다가가려 했지만 결국 버림받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처참하게 버림받아 회개와 구원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울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에 다시 왕이 세워진다 하더라도 또다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길을 걷는다면 하나님께 처참하게 버려지리라는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도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태도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어떤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믿고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길은 결단코 걸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최근 이 이야기를 계속 드리고 있습니다만, 여러분께서 너무 많이 들어서 항상 마음에 생각나실 때까지 말씀드릴 계획입니다. 지금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절망을 이겨내고 희망을 품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연약해서 힘들고 절망적인 순간에 그런 긍정적 사고를 떠올릴 수가 없습니다. 절망을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런 순간에 힘들고 어려워도 그냥 기억이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순간에도 여러분과 함께 계시며 여러분의 미래를 이끌어가고 계신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억지로 절망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알고 있기에 언제나 희망을 품게 되시길 바랍니다.

‘희망’이라는 말이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잘 될 거라는 믿음이 희망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언제나 우리가 잘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니다. 포로기의 시작점에서 희망을 기록한 역사가들처럼, 언제나 하나님 안에 거하며 희망을 품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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