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과 신약의 성서 기자들은 하나님을 성전에서 만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Getty Image

예레미야는 큰 족적을 남긴 예언자이지만 어떤 점에서는 불행한 예언자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평화에 대한 요시야 시대의 한 줄기 희망도 예상치 못한 그의 죽음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세우고자 했던 그의 예언은 그 시대 사람들의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들이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확실한 표지였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동시에 안전을 보장하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신앙’이 된 그들의 통념을 송두리째 부정했습니다. 그는 그 ‘신앙’이 거짓이며 하나님은 성전을 버릴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말씀에 의거한 직접적인 것이지 성전을 매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은 그 관계의 표현이고 또 그 관계를 촉진시키는 것일 수 있어도 그 이상은 아닙니다. 성전이 그 관계의 핵심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하고 분명한 사실인데 때때로 사람은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를 망각합니다.

그 관계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성서 곳곳에서 알 수 있는 대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사랑이고, 창조 때부터 시작된 오랜 사랑입니다. 창세기 5,1-3이 시사하는 대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단순히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관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관계는 종말론적으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로 또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로 완성됩니다. 참으로 놀랍고 긴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그 사랑의 관계가 지금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짝으로 요청합니다. 그래서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 사랑입니다. 당연한 요구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 사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이 하나님을 향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우리 삶의 원칙이 되고 우리 삶 가운데서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고 우리가 모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동일한 그의 백성이고 그의 자녀입니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들이 자연스레 형성됩니다. 형제요 자매요 한 백성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점은 잘 인지되지 않고 있습니다. 억압과 수탈과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오늘의 본문은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고, 억압하는 자들의 손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하여 주고,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사람의 피를 흘리지 말라(렘 22,3; 7,5-6과 사 1,16-17도 참조).

이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으로 성서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그렇게 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요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총괄됩니다. 하나님 사랑의 얼굴은 이웃 사랑입니다. 이웃 사랑 없는 하나님 사랑은 거짓입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 없는 이웃 사랑은 허위입니다. 이웃과 공감할 수 없는 이웃 사랑은 위선입니다. 이웃 사랑은 이웃을 탐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시대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보려고 한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그런 어리석음으로 공평과 정의가 실종되고 약자들 고통당하고 무죄한 사람들의 피가 땅을 적시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본문의 말로 하면 악한 때, 악한 시대입니다. 예레미야는 죽음의 길을 가는 그 시대를 돌이켜 생명의 길을 가게 하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서 기자는 오늘 우리에게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라고 촉구합니다.

주님의 뜻이 달라졌을까요? 예레미야가 말하고 성서가 곳곳에서 분명하게 알려준 것과 다른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5,3은 악한 때의 특징을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심’에서 찾습니다. 더러운 것에는 거짓과 불의와 부정 등이 다 포함될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특징은 교회가 애지중지하는 십계명의 내용과 다르지 않고 예언자들의 구체적 경고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성서기자는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강조함으로써(엡 5,6) 이 점을 더 선명하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악한 때에 주의 뜻을 실천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일지 모릅니다. 또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악한 때의 세상에 물들어 술에 취한 듯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세상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기 위해 본문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성령에 따라 살라고 합니다. 성령의 도움은 악을 거부하고 사랑의 삶을 살게 합니다. 그 열매를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게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속에 사랑을 일으킨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며 서로 ‘노래로’ 대화하게 하고 서로 복종하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세상의 악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세월입니다. 탐욕과 악을 따라 다니며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사랑은 큰 행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작은 사람들, 고통당하는 사람들, 병든 사람들 그들에게 먹을 것이나 마실 물과 함께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에서 사랑을 봅니다. 그 마음 그 행동은 우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살도록 용기를 줄 것입니다.

그때 주님을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교회는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곳이 되고 땅에 평화가 임할 것입니다. 그 사랑의 삶을 시작함으로 세월을 아끼는 삶을 살아갑시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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