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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 더 좋았습니다!코로나 블루 속에서도 찾아야 할 기쁨(출애굽기 16:3-5)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09.20 16:08
▲ James Tissot, 「만나를 모으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The Gathering of the Manna) ⓒGetty Image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5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준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

출애굽기에 따르면, 출애굽 직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마실 물이 없습니다. 물이 없으면 사람은 죽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쓴 바닷물이 아닌 단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에 나타난 ‘마라’ 사건입니다.

물이 없어서 모세에게 항의하는 이야기는 출애굽기 17장과 민수기 20장에 또다시 나타납니다. ‘맛사-므리바’ 사건입니다.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물을 주셨습니다.

물이 충족된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다시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우리에게 고기가 없습니다. 단백질이 없다면 사람은 힘을 얻지 못합니다!! 고기가 아니라 떡이라도 배불리 먹고 싶습니다.” 바로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입니다.

이 두 사건은 멀리 떨어져 있을 것 같지만, 물을 구하는 이야기는 출애굽기 15장에 나타나고, 오늘 본문은 출애굽기 16장에 나타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 직후인 17장에는 또 물을 달라고 요구하는 맛사-므리바 사건이 나타납니다.

출애굽기 14장은 홍해를 건넌 이야기이고, 15장 마라 사건에 앞선 말씀은 모세와 미리암의 찬양입니다. 출애굽기가 보여주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온 순간에 물을 달라고 외쳤습니다. 물을 얻은 직후에는 하나님께 고기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배가 불러오자 이제는 다시 물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물, 단백질은 인간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께 따질 만한 일입니다.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달라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고기를 달라고 원망하면서 하는 이야기를 살펴봤으면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이집트에서 노예살이 하던 당시, 자신들이 고기를 구워 먹지는 못할지언정 고기 굽고 있는 이집트 관원들의 곁에 있었다면 고기 한 조각은 얻어 먹을 수 있었다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지금은 고기 한 조각 얻어먹을 처지도 못 된다고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이집트에 있을 때에는 최소한 떡은 마음껏 먹었다며 처지를 한탄합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쿠푸 왕(주전 2589-2566년) 피라미드와 관련된 유적 중 당시 사제 카이의 무덤 벽면에는 파라오가 백성들에게 맥주와 의식주를 제공하여 모두가 행복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실제 유물 중에는 당시 피라미드 노역자들에게 맥주와 빵과 고기를 제공하였던 증거가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에 만들어져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파피루스인 ‘메르에르 일지(Dairy of Merer)’에는 피라미드 감독관 ‘메르에르’의 건설 일지가 남겨져 있는데, 이 일지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숙취, 전갈에 물림, 종교적 이유, 등의 이유로 휴가를 낼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쿠푸 왕 시절의 유물들로 인해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의 노예 생활은 거짓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았습니다만, 주전 1274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루브르 두루마리(Louvre Leather Roll)’에는 도시 건축 감독관 중 한 사람이 자신에게 할당된 벽돌 중 2000개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고하는 내용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벽돌을 만드는 노동자에게는 가혹한 처벌이 내려지곤 했습니다. 출애굽기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습니다.

최소한 출애굽과 가까운 시기 노동자 대우는 쿠푸 왕 시절처럼 좋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차라리 그때가 좋았다고 호소합니다. 할당량만 다 채우면 뭐라도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기는 ‘코로나 시대’입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문밖으로 나갈 수 없는 시대입니다. 간혹 마스크를 깜빡하고 안 쓰고 나왔다면 다시 집에 가서 마스크를 쓰고 나오던가, 이미 집에 가기 어렵다면, 입과 코를 가린 채 마스크를 구입하러 약국으로 향해야 하는 때입니다.

마스크를 쓰고 나갈 수라도 있다면 좋겠지만, 정부는 사람들에게 집에만 있으라고 권하고 있으며 집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친한 사람들과 만나려고 하면,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지, 그 사람이 코로나에 걸렸을지 걱정하며 만나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아이를 일주일에 한 번 학교에 보내면서도 혹시 반 아이들 중에 코로나에 걸린 아이는 없을까, 혹시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아이가 내 아이의 가장 친한 친구는 아닐까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부쩍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이 좋았다,” 이 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때가 더 좋았습니다.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매일 등교시킬 때가 더 좋았습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편하게 만날 때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예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코로나가 하나님의 심판이라느니, 반대로 우리에게 은혜가 될 수 있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코로나는 우리가 자연에 미친 악영향이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왔을 뿐입니다. 우리나라를 향했던 수많은 태풍과 비정상적인 장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이 순간에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위 ‘코로나 블루’라고 말하는,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에만 갇혀 있기에 겪는 우울증을 겪으며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울했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자신들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처음에는 기뻤지만,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는, 직선으로 걸으면 3일밖에 걸리지 않는 그 길을 걷다가 힘들고 지쳤습니다. 그래서 매일 힘들다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고기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옛날을 떠올립니다. ‘노예살이를 했어도 그때가 좋았는데 …’ 사람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항상 예전이 더 좋습니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조금이라도 힘이 있었던 예전이 더 좋게 느껴지는 일은 당연합니다. ‘1년전, 5년전, 10년전, 20년전, 30년전, 그때가 좋았는데’라는 생각은 우리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신명기 29장 5절에서 말합니다.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광야에서 인도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아지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다.”

우리는 지금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인지 모릅니다. 지금의 기쁨을 당시에는 항상 깨닫지 못합니다. 언젠가 우리가 방독면을 쓰고 살아가야 할 순간에 우리는 ‘차라리 마스크 쓰고 다닐 때가 좋았다’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기쁨이 없습니까? 우리에게는 여전히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사소한 일 하나 때문에 웃을 수 있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라는 전 세계적인 위기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자면 아주 작은 내 몸 하나가 힘들고 아픈 순간에도, 정말 못 살겠다는 소리가 내 목구멍에 걸려있는 순간일지라도 우리는 작은 일 하나로 웃으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참된 삶,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을 얻은 삶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의 차이가 ‘거룩함’에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거룩’은 ‘구별’에서 온 말입니다만, 우리말 ‘거룩’은 무언가 신성함에 가까운 표현으로 느껴집니다. 물론 성경에서도 신성하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의 구분점은 날마다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와 없는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도 날마다 기쁨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그들은 스스로 기쁨을 발견하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억지로 찾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늘 기쁨을 주신다는 근본적 믿음이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누릴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항상 나중에야 행복과 기쁨을 깨닫게 되지만, 여러분께서는 순간순간에 그 모든 것을 느끼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분명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께 기쁨을 허락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듯, 여러분께 기쁨과 행복을 오늘도 분명 내려 주십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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