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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살리는 예배란새 성전의 희망(에스겔 43:1-5)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 승인 2020.10.18 17:08
▲ Charles Chapiez and Georges Perrot, 「Le Temple de Jérusalem et la Maison du Bois - Liban restitués d’après Ezéchiel et le Livre des Rois」 (1889) ⓒWikipedia
1 그 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쪽을 향한 문이라 2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 같고 그발 강 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4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을 통하여 성전으로 들어가고 5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8월 넷째 주일부터 코로나 사태로 인해 거의 두 달을 교회에서 모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모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는다면 지난 3월과 4월에 그랬던 것처럼 교회는 또다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아무도 확신할 수 없지만, 정부에 의해 예배 모임이 금지될 가능성은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언제라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5월 첫 주에 저희가 다시 모임을 갖기 시작했을 때, 우리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속된 세상을 등지고 은혜로운 교회에서 살아가기를 강조해왔다면, 이제부터 교회는 교회 건물을 벗어나 세상에서 복이 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강조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에스겔의 말씀을 통해 그가 과거 성전의 어떤 모습을 비판하고 있는지, 또 새로운 성전에 대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교회를 이루어가야 할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에스겔이 본 하나님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기에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말씀을 전했던 예언자입니다. 예언자이기 전에 그는 제사장이기도 했습니다.

에스겔 8장에서 그는 하나님께 머리채를 잡혀 예루살렘 성전으로 날아가게 됩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기보다 환상의 일부입니다. 8장 이후에 나타나는 말씀들은 실제 사건이라고 말하기에 애매한 점들이 몇 군데 나타나고, 예레미야가 전하는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과도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8장과 9장의 환상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진 우상숭배를 고발합니다. 성전이 더럽혀졌기에 10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성전 동문을 열고 떠나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나왔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해가 뜨는 동쪽에서 오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성전은 동쪽을 향하도록 만들어져 있고, 성전 앞문인 동문은 하나님께서 출입하시는 문입니다.

에스겔 44장 1-3절에는 성전 동문을 다시 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타납니다. “내가 그리로 들어왔으니 닫아 두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성전 동문이 하나님 전용이라는 권위의 표시라기보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그 문을 열고 성전을 떠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에스겔 8-11장의 예루살렘 성전은 솔로몬이 건축하였고, 1차 바벨론 포로기까지 세워져 있던 그 성전입니다. 당시의 성전은 심판받아 마땅한 모습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떠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심판으로 인해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으며 솔로몬 성전은 파괴됩니다.

이제 에스겔은 40장에서부터 새로운 성전에 대한 환상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 성전이라고 불리는 이 성전은 실제로 건축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학개 2장 3절을 통해 알 수 있는 포로기 이후 다시 건축된 제2 성전은 솔로몬 성전보다 초라했습니다. 에스겔은 솔로몬 성전의 두 배 이상되는 성전의 모형을 보고 남겼기 때문에 제2 성전은 에스겔 성전보다 훨씬 초라한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에스겔 40-42장은 성전의 외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43장에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 성전으로 들어가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성전 동문은 하나님께서 출입하시는 문이기 때문에 오늘 본문 4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동문을 열고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복음성가 찬양집 중에 오늘 본문 2절에 나온 단어를 딴 찬양집이 있습니다. ‘많은 물소리’라는 찬양집인데, 이로 인해서 우리는 ‘많은 물소리’를 청량한 강물 흐르는 소리, 시원한 파도 소리 등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많은 물소리’는 크고 두려운 소리를 의미합니다. 3절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이 모습을 ‘성전을 멸하러 오실 때 보이셨던 모습’, ‘그발 강가에서 뵈었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성전을 멸하러 오신 하나님의 모습은 당연히 두려운 모습입니다. 그발 강가에서 뵈었던 하나님의 모습은 에스겔 1장에 잘 나타나 있는데, 에스겔은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워서 땅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마지막에서도 에스겔은 땅에 엎드립니다.

에스겔의 하나님 묘사와 그가 하나님의 모습에 두려워하였다는 이야기는 하나님께서는 항상 동일한 분이심을 알게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셨던 하나님이나, 바벨론 포로들을 위해 그곳에 찾아오신 하나님이나, 새로운 성전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 모두 동일하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때로 심판하시는 하나님, 때로 어려움을 주시는 하나님, 때로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 하나님을 거부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은혜를 내리시고 복을 주시며 회복시키시는 하나님까지 거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

에스겔이 8-11장의 환상에서 본 성전은 우상숭배로 가득한 성전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남겨져 있던 관료, 장로, 백성들이 모두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기에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아래에 이어지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성전이 더렵혀진 다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바로 왕들에 의해 성전이 더럽혀졌다고 말씀하십니다.

7절에 나타난 왕들의 음행하였다는 말씀은 그들이 우상숭배에 적극적이었다는 지적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따르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음에 나타난 ‘죽은 왕들의 시체’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왕의 비문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도 말하고, 어떤 이는 죽은 왕들 자체를 가리킨다고도 말합니다.

8절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가 나타납니다. 왕의 궁전과 하나님의 성전이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씀하십니다. 왕의 궁전이 성전과 붙어있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악을 행하는 왕들이 성전 바로 옆에 있었기에 잘못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저는 성전이 왕들에 의해 이용되기만 했던 상황에 대한 비판으로 봅니다. 좋게 생각하자면 왕이 하나님과 가까이 살아가고자 성전 옆에 왕궁을 지었을 수도 있습니다. 나쁘게 생각하자면, 하나님의 성전 옆에 왕이 살고 있기에 왕의 권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옆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자신의 권위는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이미지를 백성들에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해 왔습니다. 특히나 왕궁 옆에 있는 성전에서만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만든 조치는 모든 백성이 왕의 주변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이 왕들에 의해 이용당해온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누군가의 이용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거룩한 장소입니다.

에스겔은 43장 13절 이후로 제사와 관련된 규정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돌아오신 이후 제사가 되살아났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제사 규정, 제사장 규정이 이어져서 나타납니다.

에스겔이 꿈꿨던 새로운 성전은 하나님을 향한 제사가 바르게 드려지는 장소였습니다. 누군가의 이용 대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장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 그렇기에 우리의 죄와 더러움이 씻겨지는 장소가 성전이었습니다.

에스겔의 문제

저는 개인적으로 에스겔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에스겔 43-47장에 나타난 제사 규정은 왕권을 약화시키고 제사장의 권한을 높이려는 에스겔의 시도가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중에서도 일반 레위인의 역할은 약화 되고 오직 사독 가문 출신의 제사장만 높임을 받도록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성전 환상을 보게 된 40장은 에스겔에서 자주 보게 되는 연대 표시로 시작합니다. 이 연대는 ‘우리가 사로잡힌 지 25년’으로 표시됩니다. 바벨론 포로기가 시작된 주전 597년으로부터 25년째이기 때문에 주전 573년이 됩니다.

아직 학자들의 글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저는 이 연대 표시가 1장 2절에 나타난 연대,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이라는 연대와 대조를 이룬다고 봅니다. 1장 2절의 연대는 1장 1절에 나타난 ‘서른째 해’의 해석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1장 1절의 30년은 에스겔이 이 예언서를 작성하고 있는 시점이라고 봅니다. 에스겔이 처음 하나님의 환상을 본 시점은 그로부터 25년 전이 되며, 에스겔의 이야기는 1장 2절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

에스겔은 과거 솔로몬 성전이 무너지지 않았던 시기는 왕의 연대로 표시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성전의 시기는 ‘우리’의 연대로 표시합니다. 새로운 이스라엘의 시간은 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지 표명으로 해석합니다.

어쩌면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들 중에서 여호야긴의 복권을 바라며,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37년에 에월므로닥에 의해 높임을 받게 되었다고 기록한 열왕기 역사가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에스겔은 분명 왕권 약화와 제사장 권력의 강화, 제사장 중에서도 사독 계열 제사장에게만 권력이 집중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자신이 비판했던 왕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신도 하나님의 성전을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의 이런 흑심을 제거하고 생각한다면, 에스겔이 전한 새로운 성전의 희망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습니다. 오직 진정한 예배가 살아나는 공간이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 하시는 곳이 성전입니다.

우리의 교회

코로나로 우리는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모여서 예배를 드립니다. 앞으로 우리는 예배가 무엇인지를 더 고민하고, 우리 교회의 예배는 어떻게 드려져야 할지 고민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민에 앞서 한 가지는 분명히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지금 시대에 있어서 예배의 형태, 장소가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예배가 하나님을 향한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인지,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고 우리의 죄를 뉘우치며 씻음을 받는 예배인지가 중요합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형태로든, 어떤 장소에서든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그곳에는 분명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순간에 드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떤 형태의 예배를 이루어가던, 어떤 모습의 교회를 세워가던, 우리가 참되게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예배드리는 모든 장소는 에스겔이 47장에서 말한 것처럼 생명을 살리는 은혜의 물줄기가 끊이지 않고 흘러내리는 곳일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모시며 함께 예배드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더러움을 씻고, 우리의 속을 오직 은혜로 채우시는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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