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리아와 엘리사벳 ⓒGetty Image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어느 한때만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절기상 기다림절 넷째 주일입니다. 한 주 한 주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기다림이 희망을 낳는 것을 경험합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의 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코로나19를 마스크와 함께 입에 달고 살아왔습니다. 비록 힘들고 지치게 하는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주님을 기다릴 수 있었고, 그 기다림으로 주님을 닮아가며 코로나19를 이긴 새로운 미래를 희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시련의 시간이 우리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시간으로 바뀌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넉넉하게 하는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오늘의 누가복음 본문은 마리아 찬가로 불리는 본문입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노래를 부르게 된 것은 그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를 낳을 것이라고 알려준 후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천사의 말은 마리아를 당혹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천사의 설득에 마리아는 그 일이 말씀대로 자기에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하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아마도 그의 친척 엘리사벳이 임신 6개월이라는 말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임신할 수 없었다고 했던 엘리사벳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곧 엘리사벳에게 달려갑니다. 축하의 마음보다 확인하려는 마음이 더 컸을 것입니다. 놀랍게도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인사를 합니다. 뱃속의 아이를 ‘내 주’라고 하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은 마리아에게 복이 있다고 축복을 합니다. 엘리사벳은 동방박사들이나 목동들보다도 훨씬 전에 예수를 알아보고 ‘주’로 고백한 사람입니다. 마리아는 이를 보고 천사가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말씀도 불가능하지 않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그가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서 이를 확인했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사라가 아이를 낳았던 것과 똑같은 일이 그에게 일어났습니다. 마리아 자신의 경우는 이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그의 말씀이 현실이 될 것을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그의 찬가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그에게 하나님은 ‘할 수 있는 분’ 또는 ‘능력 있는 분’입니다.

그의 이 고백은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꿈을 다시금 이끌어내게 했습니다. 새 질서의 꿈입니다. 권력과 부로 교만해진 자들이 약한 자들을 짓밟는 기존의 질서를 뒤엎을 능력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마리아는 자신의 사건에서 보았습니다. 불의한 질서가 어떤 것이든 그 전복에서 하나님의 능력만이 아니라 그의 긍휼과 자비가 드러남을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법을 주면서 하나님 자신은 자비한 분이기에 약자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할 수 없고 그들을 위해 보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22,21-27). 바로 이것이 마리아가 경험한 예수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오랜 기다림이 뱃속의 아이에게서 실현될 것을 보고 기뻐하며 새 질서를 노래합니다.

(능력 있는) 그분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눅 1,50-54)

우리는 하나님의 새 질서 창조가 그에게서 시작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을 외경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실현시키시는 능력의 하나님이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를 기다림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새 질서를 기다림입니다. 마리아가 보았던 예수 희망이 우리의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을 낳는 우리의 기다림이기를 빕니다. 그 기다림과 그 희망은 새 질서를 위한 행동을 우리 가운데 낳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새싹이 돋아날 것을 보았습니다. 그에게는 야훼 경외가 즐거움이고, 야훼의 뜻을 위해 자기의 뜻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겸손이 있고, 야훼의 뜻을 실천하는 단호함이 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권리를 세우기 위해 공의로 일할 것입니다. 불의한 세상을 그의 말씀으로 심판하시고 폭력적인 악인들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질서의 꿈이 마리아에게서 다시 살아나고 계속되고 있음을 봅니다. 이 꿈을 살린 예수사건이기에 그 꿈 없는 예수사건은 없습니다. 예수사건은 이를 실현시키려는 하나님의 의지를 확인할 뿐만 아니라 그 미래를 담보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함은 그 사건을 받아들이고 그 사건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전복된 질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넘어 사람과 자연, 자연과 자연의 관계에까지 이릅니다. 일체의 적대적 관계가 해소되고 평화가 실현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셨던 세상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의 형상으로 지으셨고, 모든 생명체들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평화 세상의 한 조건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잃어버린 그 질서를 우리에게 꿈으로 주셨고, 예수사건을 통해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완성의 때는 우리에게 가려져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 일에 동참하라고 부르십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새 질서를 위한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기를 빕니다. 하나님은 그 응답 속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입니다. 그때 마리아를 벅차게 했던 감격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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