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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선교사들과 조선인들이 북간도에 세운 교회들북간도 독립운동을 추동한 캐나다장로회 교회들과 설립자들(1906~1923) ⑵
이이소 | 승인 2021.01.16 16:22
▲ 의료를 통한 선교를 하기 위해 성진에 제동병원을 세운 그리어슨 목사는 한국 독립운동의 후원자였다. 사진은 그리어슨 목사(앞줄 가운데)가 제동병원을 배경으로 한국인 직원들과 단체 촬영을 한 모습. ⓒ‘조선을 향한 머나먼 여정’

공의회시대(1893~1906)

본격적으로 북간도에 전도를 통해 조선인들이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면서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교회가 세워지면서 자연스럽게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는 지점이 생겨났다. 먼저 공의회시대는 공의회의 회원이 선교사로만 구성된 ‘선교사’ 공의회시대(1893년~1900년)와 선교사와 조선인 총대로 구성된 ‘합동’ 공의회시대(1901년~1906년)으로 나뉜다.

⑴ 선교사 공의회시기(1893~1900)

캐나다 선교사들은 선교사공의회시대에 해당되는 1898년에 내한하였다. 그들은 원산 일대를 선교지로 분할 받은 후에 조사, 권서인, 어학교사와 함께 함경북도지역을 순회, 전도하였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여 2년 사이에 8개의 교회를 세웠다.

성진교회, 홍원읍교회, 예동교회, 정평읍교회, 영흥군 진흥교회, 영흥읍교회, 단천군 원덕리교회, 경성군읍교회가 그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이다. 그러나 캐나다장로회 교회가 북간도에 세워지기까지는 8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하였다.

⑵ 합동공의회시기(1901~1906)

902년에 구례선 선교사가 함경도를 경유하며 실시했던 용정 순회 전도가 큰 결실을 맺었다. 1906년에 용정시교회가 세워졌는데 이 교회야말로 캐나다장로회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북간도 최초의 장로교회이다. 연변문사자료집 8권 118에는 창립자를 홍순국과 박무림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조선예수교 장로회사기 상> 227에는 용정시교회 설립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다른 기록을 하고 있다.

“선시에 선교사 구례선(R. G. Grierson)이 북만주와 서백리아 등지에 산재한 조선인에게 전도할 목적으로 자기의 부친과 업아력(A. F. Robb)과 홍순국으로 동행하며 복음을 전할 시에 신주한 자와 타지에서 당지에 온 신자들이 합하여 집회 예배하는 중 영수 구춘선, 집사 이보연이 인도인이 되어 교회를 성립하니 그 때로부터 용정은 전도의 근거지가 되어 선교사 구례선, 업아력(A. F. Robb), 부두일(W. R. Footel), 매길노, 박걸(A. H. Baker) 등이 차례로 순회하는 중 교인이 증가하여 교회가 점차 전진하니라.”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는 ‘양무정자(양목정자)교회’이다. 전도인 ‘안순영’과 중국 장로교인 ‘단금’의 노력으로 세워졌으며 선교사 ‘업아력’이 왕래하며 교회를 성장시켰다. 세 번째로 세워진 교회는 ‘광제암(광제욕)교회’이다. ‘김련보’와 ‘한학렬’이 믿은 후에 신자들이 늘어남에 ‘김영제’ 목사가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후에 선교사 ‘박걸’과 목사 ‘김내범’, ‘최덕준’이 시무하였으며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독노회시대(1907~1911): 함경대리회 소속시기

1907년 9월 17일 미국남북장로회, 캐나다장로회, 호주장로회 4교파 선교사공의회 결정에 따라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조직되었다. 독노회시대는 1907년에 시작되어 1911년까지 계속 되었으며 거리, 기후 등의 문제로 신속한 노회 모임이 어려우므로 경충대리회, 평북대리회, 평남대리회, 황해대리회, 전라대리회, 경상대리회와 함경대리회를 설치하여 노회의 위임사건을 처리하게 하였다. 이 시대에 북간도는 함경대리회에 속하였다.

독노회시대에 북간도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독노회시대에 함경대리회는 원산, 함흥, 성진, 회령, 동만주 5구로 나누어졌으며 각 구마다 선교사회가 세워지고 전도회가 조직되어 전도회인을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여 복음이 왕성하게 퍼져 교회설립이 활발하였다. 1907년에 남감리회 선교사 ‘하리영’과 전도인 ‘이화춘’이 전도해서 ‘남공선’ 등과 함께 세운 ‘와룡동교회’가 장로교와 감리교의 분계조약에 의하여 장로교 쪽으로 이전되었다. 선교사 ‘부두일’과 ‘김영제’ 목사가 교대로 시무하였다. 같은 해에 정재면의 전도로 용정 중앙교회가 세워졌다.

1908년, 모아산교회가 세워졌다. 이응현의 전도로 이병춘이 등이 믿기 시작하여 교인이 점차  증가하여 선교사 부두일, 박걸과 조사 김영제와 김내범이 순회하며 관리하였다. 1909년에는 명동교회가 세워졌다. 정재면의 전도로 김약연, 김하규, 김정규, 문정호, 문치정, 최봉기 등이 믿었으며 선교사 박걸과 목사 김영제가 순회하였다. 같은 해에 호천포교회가 세워졌다. 최봉렬이 전도하여 한수량이 믿으면서 교도가 증가하였다. 선교사 박걸과 목사 김영제가 순회하였다.

같은 해에 훈춘성내교회가 세워졌다. 신자 오병묵과 황병길이 중국교회 제도를 따라서 함께 강당을 마련하여 예배와 전도를 겸하였으며 학교도 세워서 동포 자녀들을 교육하였다. 선교사 박걸과 조사 김내범이 순회하였다. 같은 해에 용정시교회에 조사 김계안이 이주하여 간도지방 순회전도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불교인으로서 기독교에 개종하여 열심히 전도하였으며 권서로 근무하다가 조사로서 용정시교회에 부임하였다.

1910년에 용정시교회가 예배당을 신축하였다. 같은 해에 만진기교회가 세워졌다. 교인 한수현의 전도로 강성황, 강용철이 먼저 믿었고 강씨 일가들이 미구에 교회를 설립하였고 김내범 목사와 서창희 조사가 지도하였다. 같은 해에 훈춘 덕혜향에 대황구교회가 세워졌다. 교인 김하정과 김동현이 자주 드나들며 복음을 전하였고 신자들이 늘어나서 교회를 설립하였다. 박걸 선교사와 김내범 목사가 순회하였으며 후에는 이병하 목사가 시무하였고 장용하 장로가 장립되어 당회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에 훈춘 차대인구교회가 세워졌다. 교인 김강, 김병현(김병관), 김명규가 전도하여 교회를 설립하여 박걸 선교사, 서고도 선교사, 이병하 목사가 돌려가며 시무하였다. 같은 해에 훈춘 경신향에 옥천동교회가 세워졌다. 교인 이춘이 자주 왕래하며 전도하였고 신자가 늘어나며 교회가 부흥하여 박걸 선교사와 이병하 목사가 번갈아 시무하였다.

1910년에 100만 명 전도대가 서울에서부터 시작하여 각 처에 가서 전도하였으며 그 영향으로 삼국전도회를 조직하여 성진항을 중심으로 북청. 이원, 단천, 삼수, 갑산, 길주, 명천, 경성, 부령, 회령, 종성, 온성, 경원, 경흥, 북간도(동만주), 해삼위 등지에 전력전도를 하였다.

1911년, 장백현교회가 세워졌다. 교인 이은경, 조덕수, 이주섭 등이 내지에서 그 마을에 이사하여 동현 신흥덕촌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하였다. 같은 해에 장은평교회가 세워졌다. 성진사람 양진섭이 12호, 72인을 이끌고 명암촌으로 이주하여 교회를 설립하고 마을 이름을 장은평으로 지었다. 박걸 선교사와 부두일 선교사. 김영제 목사, 김내범 목사가 서로 번갈아 계속해서 시무를 하였다. 양형식, 양종식, 이태언, 양창식이 장로로서 시무하였다. 교인들이 300여 명이 넘었으며 계속해서 부흥일로에 있었다.

같은 해에 적안평교회가 세워졌다. 조사 김계안과 강백규(1)의 전도로 김봉렬이 믿고 신도가 계속적으로 증가하자 김영제 목사가 순회하며 교회를 설립하였다. 후에 부두일 선교사 김내범 목사, 이하영 목사, 최덕준 목사가 시무하였으며 이태현, 염창화, 최봉렬이 장로로 세워졌다.

같은 해에 국자가교회(소영자교회)가 세워졌다. 평양교인 유기연이 이사하여 복음을 전하여 신자 수가 늘어나자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박걸 선교사와 김영제 목사가 왕래하여 정식으로 교회를 설립하였고 부두일 선교사, 김내범, 최덕준, 유지선 목사와 유찬희, 서성권, 박의섭, 유우일, 유흥원 장로가 연이어 계속 시무하여 교회가 왕성해졌다.

같은 해에 정동교회가 세워졌다. 교인 강익태의 전도로 유한풍이 믿고 신자가 증가하여 40여 인이 모이니 김내범목사가 왕래하며 교회를 설립하고 유한풍이 집사가 되어 시무하였다. 같은 해에 화용현교회(2)가 세워졌다. 성진교인 남성호가 전도함에 신자가 많아져서 교회를 설립하였고 당시에 최선탁목사와 문재린조사가 시무하였다.

같은 해에 은포교회가 세워졌다. 김약연 장로의 전도로 심성문과 엄방진이 믿었고 신자가 계속 늘어남에 교회가 설립되었고 최선탁 목사와 문재린 조사, 김용연, 김원변, 윤영복 집사가 시무하였다. 같은 해에 두도구교회가 세워졌다. 교인 강찬규, 홍일표가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여 신도들이 적지 않게 일어남에 따라 박걸선교사와 김내범이 연차 방문하여 교회를 설립하였다.

교회당 건축 후에는 이순창, 조명환, 조병수 장로를 장립하고 당회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에 간장암교회가 세워졌다. 교인 강백규의 전도로 김영섭, 김동의, 김동희 등 10여 명이 믿고 교회를 설립하였으며 박걸선교사와 김영제 목사가 순회하여 교회가 부흥을 하였고 예배당을 건축하고 현기윤을 장로로 장립하였으며 당회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에 훈춘 용지향에 신풍교회가 세워졌다. 교인 진형권의 전도로 신자가 늘어나서 교회가 설립되었고 박걸 선교사와 이병병 목사(3)가 순회하며 보살폈다.

같은 해에 일송정교회가 세워졌다. 교인 공원보와 박병섭의 전도로 신자가 늘어나서 교회가 설립되었고 박걸선교사와 이병하목사가 순회하며 섬겼다. 같은 해에 훈춘 경신향에 금당촌교회가 세워졌다. 오재영의 전도로 신자가 늘어났으며 배례사선교사와 이병하 목사 순회하며 시무하였다.

미주

(미주 1) 호이전, 문홍복 주필, <연변문사자료 제 8집, 종교사료전집>, 118.
(미주 2) 화룡현이다. 호이전, 문홍복 주필, <연변문사자료 제8집, 종교사료전집>, 118;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편, <종교사>, 148.
(미주 3) 리병하의 오기.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 편, <종교사>, 148에는 리병하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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