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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시편 15:1-5)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1.02.02 15:17
▲ 가장 종교적인 행위인 제사 혹은 제의는 사회적 정의와 연결되어 있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교회가 지긋지긋하다.’ 이 표현 주중에 들어보셨나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쓰인 한 교회의 벽에 계란이 투척되어진 사진을 보셨나요? 더 이상 참담한 마음도 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참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개신교에서 단체 확진이 뜨고, 까페를 닫고. 개신교에서 단체 확진이 뜨고, 체육시설을 닫고. 개신교에서 단체 확진이 뜨고, 공연장을 닫고. 개신교에서 단체 확진이 뜨고, 학교를 닫고. 하지만 교회는 계속해서 모이고. 이게 정상인가?” 하는 글도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2:47 말씀 중에는 성령을 받아 공동체를 이룬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호감을 가졌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우러러봤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는 더 이상 호감이 가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혐오의 대상입니다.

코로나 이후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지 조사를 했는데, ‘거리를 두고 싶은’, ‘사기꾼 같은’, ‘이중적인’, ‘이기적인’, ‘무례한’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긍정적인 대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년 6월 조사 결과이니 2021년 오늘에는 더 심한 부정적인 표현들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상황이기에 저와 성도님들이 오늘 본문을 통해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과 무너진 교회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함께 읽은 본문 1절에서 시편 기자는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예수님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셨듯이 ‘주님의 장막, 주님의 거룩한 산’도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님의 장막’은 보이는 집을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1절 이하의 본문을 보면 더 명확하게 이 세상에 속한 집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3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4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5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으며, 무죄한 사람을 해칠세라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저와 성도님들은 이 말씀대로 살고 있는 사람일까요? 주님의 장막에 사는 사람,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는 사람은 본문에 나온 2절부터 5절까지의 일들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어서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시편기자는 고백합니다.

왜 흔들리지 않을까요?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살기로 ‘노력’하잖아요? 그럼 불안과 두려움이 늘 뒤따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말씀대로 사는 게 불편하고, 불확실하다 여길 것입니다.

깨끗하게 살고, 정의를 실천하고,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고,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고,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이웃을 모욕하지 않고, 약속한 것은 손해가 되더라도 지키고, 높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들로 안주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장막을 지으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오늘 말씀과 반대로 살아야 합니다. 혹은 이 중 몇몇은 눈감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장막에 사는 사람은 이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달려가려 하는 길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치는 길로 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 목사, 성도들은 세상의 가치를 쫓아갑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보이는 장막을 지으려 합니다.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을 가지기 위해 교회에 나와 기도하고 예배드립니다. 목사들은 성도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더욱 부축이며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성공을 위해 목회를 합니다. 물론 우리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삶을 다시 조율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교제는 세상과는 다른 가치를 품고 살아가는 어려움에 ‘격려와 용기’를 더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중에 치유와 관련된 두 가지 세미나를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한 세미나는 부모 또는 자녀 잃은 상처를 치유해주는 모임이었습니다. 또 다른 세미나는 개인의 상처 등을 치유해주는 모임이었습니다.

이 두 세미나의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세미나 마지막에 “이 세미나를 통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가져가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은 ‘공포, 두려움, 상처, 좌절, 과거, 한계’를 버린다고 대답했습니다. ‘사랑, 배려, 위로, 함께 하는 이들’을 가져간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올 때 우리도 버리고 또 가져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두려움, 스스로 장막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 욕망 등을 버리고 사랑, 평안,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예배 가운데 회복한다면,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장막에 거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말씀드린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은 상처와 과거로부터 치유되어 자유롭게 살았다. 그리고 더 사랑하며 살아갔다고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예배에 참여 한 이후 더 자유롭게, 더 사랑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소개해 드린 세미나중 개인의 상처 등을 치유해주는 모임은 참가비만 2014년 기준으로 600만원이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서,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간절함만큼이나 세미나에 참여한 사람은 해답을 얻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세미나의 진행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6일 동안 진행되는 이 세미나에 참여한 당신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거야!”, 완전히 달라질 거야!

저는 이 세미나를 보면서 오늘날의 교회 공동체는 무엇을 하고 있나? 라는 질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녔고, 수년을 교회에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달라졌나? 성도님들은 어떤 기대로 예배에 참석하고 있을까? 어떤 간절함으로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오고 계실까? 궁금해졌습니다.

시편 기자는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지만 이제는 이렇게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삶과는 다르게 살아야하는 본문에 나오는 이런 삶을 살아가게 될 텐데, 정말 주님의 장막에 살고 싶으십니까?” 보이는 장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막을 추구하며, 소망하는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주님의 장막에 살면 어떤 변화가 있기에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게 될까요? 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의 가사로 주님의 장막에 사는 기쁨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2.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3.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슬픔 많은 이 세상이 천국으로 바뀝니다. 나의 주변 환경이 어떻든지, 내 맘 속에서 하늘나라를 누립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과정이 하늘나라를 체험하는 순간들이고 주님과 동행하는 곳이 곧 하늘나라로 경험되어집니다.

천국을 이미 경험하고, 천국을 이미 살고 있기 때문에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네,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곧 주님의 장막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을 누리기에 본문의 2-5절처럼 자연스럽게 살게 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노력한다고 살아지는 삶이 아닙니다. 해야 할 것 같아서 할 수 있는 실천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안과 두려움만 키울 뿐입니다. 본문 2-5절의 실천은 주님의 장막에 사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살아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장막에 대한 소망이 없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장막을 세우려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내려놓아야 할 것을 내려놓지 않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성도가, 교회가 세상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세상을 차지하려고 하는데 당연히 신뢰를 잃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은혜가 되는 것은 이미 우리는 주님의 장막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지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깨닫지 못해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 할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눈을 하나님께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그럼 오늘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살아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장막에 거하는 기쁨을 경험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장막에 거함으로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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